[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붉게 소독된 볍씨를 살포기에 담았다. 모판 위에 볍씨가 촘촘히 흩뿌려졌다. 이어 볍씨가 드러나지 않도록 상토가 쌓였다. 싹을 틔우기 위한 모판이 준비되자 6사단 수색대대 장병들이 수레에 모판을 싣고 하우스 안으로 이동했다. 하우스 안에선 오와 열을 맞춰 모판을 가지런히 놓는 작업이 한창이었다.지난 8일 오대쌀로 유명한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의 못자리 현장을 찾았다. 전국에서 가장 먼저 못자리가 시작되는 곳, 철원의 하우스는 일 년 농사를 준비하는 터라 이른 아침부터 부산스러웠다.2,400여개의 모판, 460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하우스 내의 온도, 습도, 조도 등을 알려주는 시스템 계기판엔 명확히 34도가 찍혀 있었다. 갑작스레 찾아온 꽃샘추위 탓에 몸도 얼고 장비도 언 탓인지 하우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안경과 카메라 렌즈에 뿌옇게 서리가 끼였다. 융으로 닦아내도 그때뿐이었다.하우스 온도에 적응할 겸 잠시 뜸을 들이며 전방을 살피자 길이가 100여 미터 되는 하우스의 끝에서 한 농부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다가가보니 이미 땀범벅이었다. 참외를 따기 위해 두둑으로 허리를 숙일 때마다 얼굴에 송골송골 맺힌 땀이 후드득 떨어졌다.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농민을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은 새벽 4시에서 5시 사이였다. 하우스 딸기 수확 장면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였다. 수확량이 많지 않을 경우 예상보다 일찍 작업이 끝난다는 얘기에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차량 헤드라이트 불빛에 의지해 전남 담양군 창평면의 한 지방도로를 내달렸다. 가로등 하나 없는 2차선도로는 말 그대로 칠흑 같은 어둠 속이었다. 내비게이션에 입력한 주소에 다다를 즈음 농로로 진입했다.여전히 주위는 깜깜했고 이렇다 할 하우스도 잘 보이지 않았다. 차에서 내리자 그제야 검은 부직포로 뒤덮인 하우스의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날이 밝았다.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방역사로 일한 지도 벌써 5년째다. 오늘도 소 브루셀라병 검사 시료(혈액) 채취 일정이 빡빡하다. 공주 관내 농가를 돌며 70여두의 소와 씨름해야 한다.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사무실로 향했다. 전날 챙겨놓은 각종 방역장비가 차 트렁크에 빽빽하다.우리 사무소(충남도본부 동부사무소)는 총 5개 시·군에 있는 축산농가를 관할하고 있다. 세종시, 대전시, 공주시, 계룡시, 금산군이다. 동서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지역을 총 17명(위생직 6명, 예찰직원 1명)이 담당하고 있다.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아버지는 본인이 직접 겪어온 이 시대의 적폐농정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쌀 목표가격 24만원 보장하라!’ 아버지 세대에서 진즉 해결됐어야 할 이 절절하고 당연한 구호를 아들과 함께 외치는 현실은 결코 달갑지 않았다.힘겹고 고된 농민의 삶 속에서도 농민운동을 놓지 않고 끈질기게 해온 이유가 어쩌면 이 젊은 아들에게 있음을 아버지는 손팻말을 들고 스스로 곱씹을 뿐이었다.자신보다 더 나은 농업 기반, 지금보다 더 나은 농업 정책을 마련해 후계농인 아들이 더 나은 농업 환경에서 살아남기를 바라는 건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Carpe diem!’ 작업장 내 화이트보드엔 온갖 작업 내용이 빽빽이 적혀 있었다. 더불어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내용의 라틴어도 ‘성대한 수확기를 맞이하자!’는 농민들의 바람이 한껏 담긴 문구와 함께 화이트보드의 한 귀퉁이를 메우고 있었다.‘농업인의 날’이기도 했던 지난 11일 경남 진주시 진성면의 한 작업장에선 단감 수확 및 선별, 포장 작업이 한창이었다. 여성농민들은 크기와 무게 별로 선별된 단감을 5개씩 모아 비닐에 담았고 남성들은 포장된 단감을 20kg 컨테이너 박스에 차곡차곡 담아 트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전북 고창의 비탈진 밭은 크고 넓었다. 비닐로 덮인 이랑은 한 눈에 셈하지도 못할 정도로 길고 넓게 퍼져있었다. 그런 이랑마다 일방석을 끼고 앉은 여성농민 수십여 명이 줄지어 있었다.경사진 밭을 등지고 앉은 여성농민들은 한 손에 호미를 들고 양파 모종을 옮겨 심느라 여념이 없었다. 인근 노지에서 40여일 가량 직접 키운 양파 모종이었다.두 명씩 짝 지은 여성농민들은 한 이랑에 모종을 다 심을 때까지 좀처럼 일어서는 법이 없었다. 10여개의 비닐 구멍 사이로 모종을 심고 뒷걸음질로 밭의 사면을 내려와 다시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벼가 익어 고개 숙인 황금들녘 사이로 낡을 대로 낡은 콤바인 한 대가 탈탈거리며 나락을 벤다. 운전수는 농사경력 50여년의 서태주(72, 경남 함양군 서상면 도천리)씨. 요즘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포대형 콤바인(모델명 R1-241A)을 이끌고 부지런히 들녘을 오가건만 3조식이라 일의 속도가 더디다.허나, 벼가 탈곡돼 나오는 포대 옆 발판에 서있는 아내 이갑이(63)씨는 나락이 가득 담긴 포대를 떼 내고 빈 포대를 다시 매다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세마지기 남짓한 논을 직사각형 모양으로 한 바퀴 돌자 4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13일 현재 우리나라 전국 평균 폭염 일수는 26.1일이었다. 같은 기간 평균 폭염 일수가 가장 많았던 1994년의 25.5일을 이미 넘어섰다.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23일)까지 폭염이 지속돼 역대 최장 폭염 일수(31.1일)를 갱신할 가능성이 높다는 기상예보가 이날 뉴스를 통해 흘러나왔다.그러나 살갗이 따갑도록 내리쬐는 뜨거운 햇볕 아래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던 팔순농부에게 올 여름 폭염은 팔십 평생에 처음으로 “해도 해도 너무한” 가뭄과 ‘가마솥’ 더위로 다가왔다. 인근의 천수답 논은 물이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하우스 문을 여니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딱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하우스 안으로 한 발짝 내딛자 TV에서만 보던 어느 열대지방 키 큰 나무숲에 성큼 들어선 느낌이다. 활엽수는 하늘을 가릴 듯 넓게 뻗어 울창하고 5미터 남짓 쑥쑥 자란 나무엔 연두빛이 감도는 바나나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노랗게 잘 익기라도 했으면 뚝 떼 내어 한 입 베어 물고 싶을 만큼 싱싱하고 튼실하다.우리나라의 최남단, 제주도에서나 겨우 볼법한 풍경을 지리산 자락, 경남 산청의 한 시설하우스로 옮겨온 청년이 있다. 1ha 규모의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고무신은 논둑에 놓여 있었다. 알록달록한 꽃무늬 버선은 진흙으로 범벅됐다. 두 손에 낀 흰 장갑은 이미 색이 바랜 지 오래다. 그 흔한 일방석도 없이 마늘밭에 털썩 주저앉은 권화순(65, 경북 의성군 봉양면 문흥리)씨는 마늘을 캐 올려 흙을 터느라 여념이 없었다.“올 봄에 비가 자주 와 씨알이 작습니더.” 권씨는 예년만큼 굵지 않은 마늘 크기에 속앓이를 한 것처럼 약간은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허나, 양 손은 여전히 마늘을 캐고 있었다. 구름이 낮게 깔린, 흐린 날이었건만 쉴 새 없이 손을 놀리는 그녀의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천년차’라 일컫는 최고(最古)차나무 아래로 짙은 초록빛을 띤 야생 차밭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깎아질 듯 가파른 산비탈에 굽이굽이 유연한 곡선을 드러낸 차밭에 여성농민들이 하나 둘 들어선다. 작달만한 차나무 사이 좁다란 공간에 서자 ‘똑똑똑똑’ 찻잎 따는 소리가 이내 정갈하게 들리기 시작한다.지난 15일 경남 하동군 화개면 정금리 도심다원의 차밭에서 찻잎을 수확하는 여성농민들의 손길이 이른 아침부터 바지런하다. 차밭을 오가며 엄지 손톱만한 크기의 초록 찻잎을 따 허리에 동여맨 앞주머니에 넣기를 반복하자 때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벌써 4년 전 일이다. 남측에서 정성스레 준비한 딸기모주(어미모종) 5,000개가 북측으로 전달된 지가. 남측에서 키워 북측에서 육묘한 모종을 남측에 재이식해 생산하는 경남통일딸기, 사단법인 경남통일농업협력회(경통협)는 남북의 화해와 교류, 평화의 상징으로 딸기를 택했다.그러나 2014년에 북측에 전달된 딸기모주는 남측으로 다시 내려오질 못했다. 경색된 남북관계 속에서 전달 시기가 차일피일 늦어지며 북측에서 모종을 제대로 키울 만한 시간을 확보하지 못했다. 어렵게 준비한 모주였건만 2014년 그해, 경남통일딸기 사업은 흐지부지됐다.경통협의 통일딸기 사업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대중-노무현정부로 이어지며 남북관계에도 훈풍이 불자 경통협은 평양에서 육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봄볕 따스하게 내리쬐던 해는 어느덧 서산 너머로 기울었다. 감자 파종이 끝나가는 들녘에 시나브로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감자파종기를 후미에 매단 트랙터 전조등에 불이 켜졌다. 두둑을 덮은 비닐이 트랙터 불빛에 번들거렸다. 씨감자 보급 장치 양 옆에 앉은 여성농민들의 손길은 어둠 속에서도 분주하게 움직였다.하지 전에 수확할 요량으로 지난 12일 올해 첫 감자 파종에 나선 강진산(44, 충북 옥천군 안내면 현리)씨는 주중에 예보된 비 소식에 밭일을 서둘렀다. 인근 지역 농민들은 안 그래도 질퍽거리는 밭 사정에 이제나저제나 파종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전국적인 비 예보에 강씨 또한 퇴비와 비료 등을 뿌려 미리 준비를 마친 밭 대신 다른 밭에서 파종을 시작했다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곱게 빻은 찹쌀가루에 콩물과 술을 넣고 반죽해 삶는다. 이어 삶아낸 찹쌀가루를 얇게 밀어 일정 크기로 자른 뒤 하룻밤 정도 적당히 말린다. 밤새 잘 말린 원재료를 한 번은 150도, 또 한 번은 250도에 달하는 기름에 두 번 바싹 튀겨내자 손가락 정도의 크기로 한껏 부풀어 오른다. 노르스름하게 튀겨진 원재료를 보니 명절 때마다 즐겨 먹는 한과의 ‘민낯’이 드러난다.여기에 충남 서산의 특산물인 토종생강을 다져 넣은 조청을 아낌없이 발라 멥쌀을 튀겨 만든 쌀고물을 듬뿍 묻혀 낸다. 오늘이 설날인양 먹음직스런 모습에 염치불구하고 한 입 베어 무니 바삭거리면서도 조청의 달콤한 맛과 생강의 개운한 향이 어우러져 일품이다.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대암산(해발 1,304m) 능선을 타고 바람이 휘몰아쳤다. 비닐하우스 지붕 위에 두텁게 쌓여 있던 눈과 얼음조각들이 옆 비닐을 세차게 울리며 아래로 떨어졌다. 한 낮의 기온마저 영하 10도 이하로 맴돌았던 지난 10일 강원도 양구군 동면 팔랑리의 하우스에선 겨우내 자연 건조시킨 시래기를 수확하고 포장하는 농민들의 손길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하우스 문을 열기가 무섭게 매서운 찬바람이 등 떠밀 듯 불어 닥쳤다. 촘촘히 설치된 하우스를 좌우로 가로지르는 줄에 약 50~60일 동안 누렇게 잘 말린 시래기가 바람을 타고 출렁거렸다. 시래기 특유의 향이 코끝으로 훅 밀려들어왔다.수확에 나선 이준기(61)씨는 시래기의 건조 상태부터 확인했다. 일일이 손으로 만져본 뒤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무밭 3,000평을 갈아엎는 데 필요한 시간은 1시간여 남짓이었다. 트랙터 후미에 달린 쟁기가 빠르게 회전하며 밭을 ‘뚜드리자(농민들은 갈아엎는다는 말 대신 뚜드린다고 했다)’ 수확을 앞둔 무가 산산조각 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생생한 무청이 시퍼렇게 펼쳐진 밭은 순식간에 으깨진 무와 흙이 범벅된 쑥대밭으로 변했다.지난 13일 올해 경작 면적 7,000평 중 절반에 약간 못 미치는 면적을 갈아엎은 김병만(65,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씨는 “워낙 가격도 없고 불안정하니…”라며 말을 채 잇지 못했다. 시름 깊던 그의 눈은 매서운 한파와 바람이 몰아닥친 제주의 겨울 날씨만큼이나 을씨년스럽게 변해버린 무밭을 응시할 뿐이었다.앞서 제주월동무생산자협의회는 농민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지리산 자락 해발 768m 감투봉 능선 위로 붉은 해가 솟아오른다. 감투봉과 마주보고 있는 석남마을에 가을 햇살이 비추자 밤새 마을을 휘감던 냉기를 밀어내고 온기가 곳곳에 스며든다. 지난 15일 여명이 밝아오기 전부터 시린 손 녹여가며 곶감 만들기에 나선 최금호(77, 경남 산청군 삼장면)씨 댁도 날이 밝아오자 작업에 나선 일손이 더욱 바빠지기 시작한다.건조기에서 하루 이틀 숙성시킨 감말랭이는 이미 집 한 편 양지바른 곳에 가지런히 놓여 가을 햇살을 한껏 머금고 있다. 층층이 포개져 있던 감말랭이 바구니를 마당에 펼치던 최씨는 “아침저녁으로 이슬을 맞고 얼었다가 녹았다가 보름쯤 반복이 돼야 감말랭이가 된다”며 “이게 손이 많이 가지만 해 놓고 나면 달고 쫀득하니 찾는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트랙터와 연결된 탈곡기를 켠다. 귀가 먹먹할 정도로 ‘웅~웅~’ 거리는 소리와 함께 원형으로 된 급동(탈곡장치)이 힘차게 돈다. 20여일 가량 바짝 말린 들깨를 탈곡기에 넣자 순식간에 검불이 쌓이고 잘개 쪼개진 껍질이 먼지처럼 흩날린다. 탈곡된 들깨는 기계 한쪽 출구를 통해 쏟아져 바구니에 차곡차곡 담긴다. 이른 아침 코끝을 구수하게 자극하던 들깨향이 더욱 진하게 바람에 실려 날린다. 지난 14일 강원도 홍천군 남면 시동리 망덕산 아래 들녘에서 들깨를 터는 농부들의 손길이 바지런하다. 탈곡기에 들깨를 넣고 분리된 검불을 치우고 탈곡된 들깨를 포대에 담는 일들이 쉴 새 없이 이어진다. 풍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잘한 껍질에 머리며 어깨며 신발 속이 모두 먼지투성이다. 농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소이산(해발 362m) 전망대에서 바라 본 철원평야는 추수를 앞둔 벼로 황금빛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지난 8월 말에 불어 닥친 강한 비바람에 벼가 쓰러진 논에서는 콤바인이 쉴 새 없이 오가며 추수를 앞당겼고 이미 추수를 마친 들녘엔 탈곡이 된 볏짚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평야를 가로지르는 3번 국도엔 콤바인을 실은 5톤 트럭과 적재함을 매단 트랙터가 제 논을 찾아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올해도 어김없이 시작됐다. 북녘의 산하가 눈앞에 펼쳐지는 최북단 철원평야에서 일 년 농사의 결실을 맺는 가을걷이가 한창 진행 중이다. 여느 해보다 추석이 뒤로 밀렸음에도 불구하고 수확을 앞두고 쏟아진 폭우에 속절없이 벼가 쓰러진 논부터 추수를 서둘렀다.지난 13일 강원도 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