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심증식 편집국장]강원도 철원군 서면 와수리에 사는 한현수씨는 이력이 특이한 농민이다. 올해 나이가 여든인 그는 50년 전 월부장사를 하려고 이곳 철원으로 왔다.“원래 고향은 경기도 가평이야. 이곳에서 멀지 않은 현리라는 곳에서 월부장사를 했어.” 월부장사는 1960~1970년대에 성행했다. 목돈이 없는 사람들이 살림살이를 장만하기 위해 매달 형편껏 나눠서 돈을 내 물건을 들이는 것이다. 오늘날 할부 판매와 비슷하다. “현리에서 월부장사를 하다가 철원에 군인가족이 많으니까 오게 됐어. 그때가 1967년이니까 50년이 넘
[한국농정신문 심증식 편집국장]강원도 원주 출신의 이창복(80)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은 1958년 고려대학교에 들어갔다. 대학에 다니면서 이창복 의장은 당시에 씨알소리의 함석헌 선생과 서울대학교 유달영 박사의 강의를 들으러 다녔다. 이분들의 강연 내용은 농촌을 살려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당시 어려운 농촌을 살리는 것은 사회의 가장 큰 과제였고, 사회적 책임의식을 가진 지식인들의 중요한 관심사였다.이상적인 농촌 건설의 꿈, 학업으로 이어“함석헌 선생과 유달영 박사의 강연을 들으며 농촌에 기여해야 한다는 마음을
[한국농정신문 심증식 편집국장]전북 익산의 들판이 푸르게 변하고 있다. 이제 모내기가 끝났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이곳에서는 밀 수확과 모내기가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콤바인이 밀을 베고 있고 밀 수확이 끝난 논 여기저기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밀짚을 태우는 것이다. 밀짚을 태운 논에서는 물을 대고 트랙터가 부지런히 로터리 작업을 한다.옛말에 5월 농부, 8월 신선이라고 일 년 중 가장 바쁜 철이 모내기철이라지만 이렇게 2모작 농사를 하는 곳은 수확과 모내기를 동시에 해야 하기에 더욱 분주하다.5월 중순부터 시작
[한국농정신문 심증식 편집국장]경기도 평택군 청북면 옥길리. 불과 20년 전만 해도 전형적인 농촌지역으로 평택에서는 오지에 속하는 곳이었다. 버스가 하루에 두 번 밖에 들어오지 않는 곳으로 마을 사람들은 모두 농사를 지었다. 특히 옥길리는 노각(늙은 오이) 주산지였다. 전국 노지 노각의 90%가 옥길리에서 생산된다고 할 정도다. 그러나 이러한 평화롭고 순박한 농촌마을은 평택군에서 평택시로 바뀌고, 청북면이 청북읍으로 승격(?)하면서 농촌의 자취가 사라져 갔다. 옥길리에서 농촌의 자취가 사라져 갔다는 것은 결국 이곳이 고향인 농민들이
[한국농정신문 심증식 편집국장]2015년 11월 14일 백남기 농민은 경찰이 조준발사한 살인적인 물대포에 쓰러졌다. 그리고 300여일 동안 서울대학교병원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다 사망했다. 백남기 농민의 사망은 무도한 박근혜정권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였다. 백남기 농민의 사망 이후 연이어 벌어지는 사태는 박근혜 정권의 말기적 발악이었고 국민들은 용서하지 않았다.전남 보성군 웅치면 농사꾼 백남기 농민을 추모할 때마다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노동면에 사는 최영추 전 보성군농민회장이다. 고 백남기 농민이 11월 14일 서울 민중대회에 참
[한국농정신문 심증식 편집국장]2006년 11월 22일 한-미 FTA 반대를 위한 전국동시다발 집회가 있었다. 정부는 2006년 2월 한-미 FTA 협상을 공식 발표했다. 이후 본격적인 협상이 한·미 양국을 오가며 진행됐다. 진보정권 또는 일각에서 반미정권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했던 노무현정부의 한-미 FTA 추진은 농민과 노동자에게 큰 배신감을 안겨주는 사건이었다. 특히 한-미 FTA는 농업에 괴멸적 타격을 줄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기에 농민들이 우려하고 반발하는 것은 당연했다.2006년 10월 한-미 FTA 4차 협상을 마치면서 농민들이 체감하는 위기감은 더욱 커져갔다. 전국적으로 한-미 FTA 저지를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가 만들어지고 대책위원회 차원에서 2006년 11월
[한국농정신문 심증식 편집국장]설을 사흘 앞둔 지난 12일, 이날은 밀양 장날이었다. 상설시장도 있고 대형마트도 있는 어엿한 ‘시’이지만 2일, 7일에는 밀양 시외버스 터미널 주위 길가에 오일장이 선다. 경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설 명절을 앞둔 시골장은 활기가 넘친다. 장거리에 좌판을 펴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 절반은 오일장을 따라다니며 장사를 하는 분들이고 절반은 밀양 관내에서 손수 키운 농산물을 들고 나온 농민들이다.시외버스 터미널 주차장 맞은편에 70대 할머니 한 분이 밤을 팔고 있다. 추운 날씨에 두둑한 빨간 점퍼, 그 속에 빨
[한국농정신문 심증식 편집국장]“어릴 때 어머니께서는 밭이란 밭에는 모두 땅콩과 참깨를 심었어요. 콩을 심기도 하고, 논농사를 하면서도 몇 천 평씩 밭농사를 했지요. 여기 여주사람들은 다 그랬어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땅콩 농사, 참깨 농사, 콩 농사가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그게 다 수입농산물 땜에 그렇게 된 거죠. 그게 아마 유알(UR) 이후일 거예요. 그러면서 벼농사를 주로 하게 됐어요.” 경기도 여주군 대신면 농민 박재홍씨의 이야기이다.여주 땅콩은 지금도 이름이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그러나 수입개방의 파고는 여주의 땅콩과 참깨농사에 직격탄이 됐다. 서서히 땅콩농사와 참깨농사가 줄어들고 그 자리에 고구마가 심겨졌다. 허나 고구마 농사도 오래가지 못했다. 한때 고구마 농사지어서 땅도 사고했다
[아르헨티나=심증식 편집국장, 통역 이보영]세계무역기구(WTO) 11차 각료회의가 열리고 있는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 사회과학부에서는 WTO 반대 투쟁의 하나로 ‘민중정상회담’이 열렸다. 민중정상회담의 부대행사로 사회과학부 앞길에서는 장터도 마련됐다.지난 11일 장터 한 편에서 농산물을 팔고 있는 프란츠를 만났다. 그는 ‘UTT’라는 글자가 새겨진 파란 모자를 쓰고 있었다. 자신을 루한(Lujan)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는 농민이라고 소개하면서 장터에 나온 이유가 농산물 판매와 더불어 WTO 반대에 동참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UTT’가 궁금해 물었다. 프란츠는 “영세농들이 토지를 갖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라고 설명했다. 라틴아메리카 농민들이 당면한 가장
[한국농정신문 심증식 편집국장]WTO 11차 각료회의가 개최되고 있는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각료회의에 대응하는 민중정상회담이 개최됐다.민중정상회담은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 사회과학부에서 11일부터 13일까지 이어졌다. WTO 각료회의가 힐튼호텔에서 자유무역 확대를 통한 자본의 이익을 강화하는 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면,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 사회과학부에서는 전 세계 농민단체를 포함한 사회단체 대표들이 모여 WTO에 대항하는 민중들의 의제에 대한 토론이 ‘민중정상회담’ 이름으로 진행됐다.민중정상회담은 11일 ‘노동하는 여성과 남성’, ‘자유무역과 부채, 기업권력에 저항하는 주권과 권리’ 등 11개의 포럼이, 12일에는 ‘식량주권1’, ‘노동하는 여성과 남성’ 등 10개의 포럼이
[한국농정신문 심증식 편집국장] WTO 11차 각료회의가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지난 11일부터 13일까지 개최된 가운데 한국 농민들이 지난 9일 현지에 도착해 WTO 반대투쟁의 목소리를 세계에 알렸다. ‘농민과 함께하는 농민의 길’ 소속 농민단체가 중심이 된 ‘WTO반대를 위한 한국농민투쟁단(단장 김영호 전농 의장, 한국농민투쟁단)’은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 대표 등 16명으로 구성됐다. 이에 앞서 한국농민투쟁단은 지난 7일 인천공항을 출발하며 “WTO 쌀개방을 폐기하라, WTO는 농업에서 나가라, 신자유주의의 시대는 끝났다”는 입장을 발표했다.한국농민투쟁단은 9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 비아캄페시나 소속 농민단체
[한국농정신문 심증식 편집국장]“2003년 국회에서 한-칠레 FTA 비준한다고 할 때부터 2004년 쌀 재협상 때까지 2년간 200일이 넘게 밖에서 살았던 것 같아요. 상주시농민회 사무국장을 할 때 인데, 그때가 농민회 전투력이 가장 강할 때였어요. 국회 앞에서 집회하고 한강대교 위에 우리 부장들 올려 보내고….”2003~4년은 황재웅씨가 농민운동가로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이며, 우리 농업이 근본적으로 변화가 시작된 시기이다. 이미 1995년부터 WTO 체제가 들어서면서 농업개방이 됐지만 이후 다자협상인 WTO는 답보상태를 보였고, 이에 대응해 양자협상인 FTA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나라 최초 FTA인 한-칠레 FTA는 농민들에게는 사활이 달린 문제였고 쌀 재협상은 농업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