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람이 하나 있어. 이 세상에서 가기 전에 동네 양반들께 술 한 잔씩
▲ 김기만씨가 마늘 묶음을 건조대로 올리고 난 뒤 휘청거리다가 경운기 적재함의 기둥을 붙잡고 있다. ▲ 비닐을 들썩일 때마다 마른 먼지게 하얗게 일어난다. 김태정씨가 갈고리로 걷어낸 비닐을 한쪽으로 치우고 있다.
▲ 여성농민과 '만원의 행복' 회원들이 함께 수수 모종을 심고 있다. “우리 땅과
순창여중 2학년이에요. 이름은 박성실이고요. 지난주까지 시험이었어요. 함께하고 싶었는데 그동안 올 수 없었어요. 오늘 처음 나온 거예요. 추모하고 싶어서. 대통령님께서 따뜻한 집에서 잠잘 때 언니, 오빠들은 차가운 물속에 잠겨 있었다는 게 화가 많이 났어요. “왜 그렇게 울었어요?” 너무 슬펐어요. 무서웠고. 언니, 오빠들 부모님 생각도 했어요. 얼마나 속상하실까. 그런 생각이요. 어른들이 원망스럽기도 했고요. 눈물이 쉽게 멈추지 않았어요. “매주 월요일마다 추모촛불이 열린다는데 또 참석할 거예요?” 네. 같이 해야죠. 모두 잊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저도 그래요. 학생이라서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지만 슬픔은 나눌 수 있는 거잖아요. 세월호, 절대 잊지 않을 거예요. 사고는 회
▲ 여성 농민들이 빈 모판을 볍씨 파종기에 놓고 있다.
“삼천만 잠들었을 때 우리는 깨어 … ” 해발 793.5m 모악산 정상에서 농민가가 울려 퍼진다. 팔뚝질을 하며 농민가를 부르는 농민들의 모습 뒤로 이 나라 식량의 보고, 김제평야가 지평선을 드러내며 시원스럽게 펼쳐진다.지난 4일 김제농민회와 김제시여성농민회의 2014 영농발대식이 모악산 정상 및 금산사 일대에서 열렸다. 농업과 농민을 희생시키는 개방농정의 시대에 맞서 결코 농업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언의 자리였다. 김운용(60) 김제농민회 회장은 “비웃음을 받아도, 농업환경이 척박하여 힘이 들어도, 일 년 내내 땀 흘려 농사지어야 남는 것 한 푼 없어도 또다시 봄이 오면 논밭을 갈고 새 희망의 씨앗을 뿌린다”며 “앞으로도 변함없이 그렇게 농업을 이어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올 한 해 풍년 농사와
하늘은 이른 아침부터 끄물거렸다.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낼 듯 시커먼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들녘에선 트랙터의 굉음이 요란했다. 트랙터는 수천 평 남짓한 배추밭을 종횡무진 내달렸다. 트랙터의 육중한 바퀴에 배추는 산산조각 짓이겨졌다.배추의 파란 겉잎과 노란 배춧속이 황토와 뒤범벅이 돼 들판에 널 부러졌다. 산지폐기. 지난 25일 전남 해남군 산이면 노송리의 김환용씨 밭에서 겨울배추는 그렇게 폐기처분됐다. 폐기하는 데 걸린 시간은 1시간여 남짓. 정성껏 길러온 시간에 비하면 ‘찰나의 순간’이었다. 산지폐기 가격은 겨울배추 최저고시가격의 50% 수준이라 했건만 자식 같은 배추를 갈아엎은 농민의 허망함에 비할 수 없었다.바퀴마다 배춧잎이 들러붙어 있던 트랙터를 멈춘 후 김씨는 한동안 트랙터에서 내리질 못했다.
이른 아침부터 ‘달달달’ 거리는 경운기 소리가 요란하다. 가지처럼 뻗은 마을 골목골목마다 ‘달달달’ 소리가 들리는 듯싶더니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경운기를 끌거나 예초기 등을 들고 마을 어귀에 있는 마을회관으로 모인다.오늘(10일)은 충북 진천군 농업기술센터의 2014 농기계 순회수리교육이 있는 날. 진천군은 농민들의 농기계 수리 불편 해소를 위해 농기계 수리에 어려움을 겪거나 교통이 불편한 산간 오지마을을 대상으로 순회수리를 시행하고 있다. 이달부터 시작된 순회수리는 오는 9월 말까지 90차례 시행될 예정이다.해발 573m 무제봉(武帝峰) 아래 나지막이 터를 잡은 상봉마을에 농기계 순회수리반이 방문하자 열 일 제쳐두고 모인 농민들로 마을회관 앞이 북적인다. 충북 진천군청에서 15km 가까이 들어와야
올해 나이 스물여덟, 경기도 여주에서 농사짓고 있는 젊은 농부 허향화입니다. 하하. 진짜 젊지요? 고향은 전남 해남인데요. 한국농수산대학을 2009년에 졸업한 뒤 여주로 왔어요. 학교 선배가 농사 같이 지어보는 게 어떠냐고, 권유해서요.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내려갈까 고민도 했지만 제 농사를 지으며 자립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 여주에 남았어요.이곳에 온 지도 벌써 6년째네요. 선배와 고구마?땅콩도 재배하고 작년엔 7천 평 규모로 벼농사도 지었어요. 작년 벼농사 수익이요? 벼농사가 워낙 적어서… 1천 만 원에 조금 못 미쳤어요. 그래서 겨울 작물로 상추를 심었는데 정말, 휴…. 상추 1상
주섬주섬 방수작업복을 겉옷 위에 껴입었다. 행여 모를 일에 대비해 물에 젖으면 안 될 휴대폰과 지갑 등은 미리 꺼내 논둑에 올려놓았다. 지난 20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평화동의 한 미나리꽝. 그곳에선 이미 겨울미나리 수확이 한창이었다. 파릇파릇한 봄의 기운이 물이 가득 괴어 있는 논 위에서 생기를 띠고 있었다. 미나리를 심은 논, 미나리꽝으로 한 발 두 발 내딛었다. 진흙의 물컹물컹한 감촉이 장화를 통해 느껴졌다. 허리춤까지 담수해 놓은 물의 수압에 의해 헐렁했던 방수작업복은 ‘쫄쫄이’ 바지처럼 몸에 착 달라붙었다. 뭐라 표현하지 못할 미나리꽝의 차디찬 기운이 두 다리를 감싸고돌았다. 날이 풀렸다고는 하나 냉기
“옳거니 잘한다.”, “저런, 이를 어째.”, “천벌을 받아야해.” 드라마 삼매경에 푹 빠졌다. 시시각각 변하는 극중 상황에 박장대소가 터지는 듯싶더니 이내 탄식이 흐른다. 삼삼오오 모여 페트병을 베개 삼아 눕기도 하고 꽃무늬 벽에 등을 기댄 채 두 다리 쭉 편 할머니들의 시청소감에 경로당이 시끌벅적하다. 전북 김제시 월성동 월성여성경로당. 여느 경로당과 다를 바 없는 풍경이지만 이곳은 꽤 특별하다. 날로 고령화 되어가는 농촌에서 홀로 남은 노인들이 모여 공동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기존 경로당을 개보수한 ‘한울타리 행복의 집’, 즉 ‘그룹-홈’이다. 경로당이 지난 2009년 6월 그룹-홈
겨울 삭풍의 한기를 막아내기에는 비닐 한 장의 두께가 너무 얇다. 차갑게 식어 버린, 아스팔트가 내뿜는 냉기를 감당하기에는 바닥에 깔린 스티로폼과 은박 돗자리가 너무 초라하다. 인근 건물에서 애써 당겨온 전기마저 없었더라면, 이 겨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농성장을 차린 농민들의 신세가 너무나 처량하다. “부정선거로 당선된 박근혜 정권에게 빼앗긴 민주주의와 쌀을 되찾아 오겠습니다.” 지난달 28일 쌀 목표가격 23만원 보장을 요구하며 농성에 돌입한 농민들이 내건 구호다. “농업은 대통령이 직접 챙기겠다”던 박근혜 정부의 공약이 헛된 약속임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8년간 동결된 쌀 목표가격을 겨우 4천원 인상하겠다는 정부의 뻔뻔함에 맞서 농민 스스로 생존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번듯한(?) 천막 하나 세
눈이 시리다. 그것도 맛있게. 가을햇빛에 알알이 주황빛깔 온전히 드러낸 감 덕분이다. 미려하다는 말이 과분하지 않을 만큼 수천 개의 감타래에 매달린 감은 그만큼 아름답고 곱다. 눈이 시린 만큼이나 건조장 가득 채운 감 특유의 달큼한 향에 코가 취한다. 보고 맡으니 이미 곶감을 한 입 베어 문 양 입안에 군침이 돈다.경북 상주시 내서면 서원리 밤원마을의 한 감 건조장. 국내 최대 곶감 산지답게 건조장에 줄지어 매달린 감타래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나마 “올해 작황이 안 좋아서” 이 정도다. 200평 크기의 건조장 가득 감타래를 매달 시 약 70만개의 곶감을 생산할 수 있다. 그러나 올 여름 폭염 탓에 감나무에 ‘급성형 둥근무늬
51톤, 45톤, 10톤. 지난 23일 전남과 전북, 강원 농민들이 각 도청 앞에 쌓은 볏가마의 무게다. 전남의 경우 ‘톤백’ 51개, 40kg가마 266개가 도청 앞에 차곡차곡 쌓였다. 농민들은 “8년간 동결된 쌀 목표가격엔 생산비와 물가가 반영돼야 한다”며 쌀 목표가격 23만원 보장을 요구했다. 정부는 당초 4천원 인상안인 174,083원을 제시했다가 농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179,686원까지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며 한 발 물러섰다.반면 농민들은 물러설 기세가 아니다. 쌀 목표가격 논란을 계기로 박근혜 정부의 농업포기, 농민무시 정책에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가 결연하다. 23일 도청 앞 야적을 시작으로 내
밀양, 거기에 사람이 있다. 수확 시기를 놓친 깻잎 따던 손 툭툭 털며 산 중턱으로 향하는 할머니가 있다. 벼멸구로 인해 누렇게 삭은 들녘 바라보며 굽은 등 뒤로 뒷짐 진 할아버지가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니면 누가 이 땅, 이 자연 지키겠냐며 최소한의 일손이나마 돕고 싶다며 모여든 사람들이 있다. 한국전력의 765,000볼트(765kV) 고압송전탑 건설 강행에 맞서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사람들이 있다. 밀양시 단장면 태룡리 용회마을에 사는 올해 일흔 살의 장씨 할머니의 “바드리(송전탑 건설예정지) 간다”는 말은 곧 송전탑 막으러 간다는 말의 동의어다. 그녀는 “국민 없는 나라 없고 주민 없는
속이 꽉 차니 단단히 여물었다. 낮과 밤의 기온차가 클수록 배추의 속은 더 단단해졌다. 이슬을 흠뻑 머금은 배추겉잎을 걷어내자 옹골찬 배추의 속이 허옇게 드러났다. 해발 600미터 이상 고랭지에서 재배되는 배추다. 강원도 정선, 평창, 태백 등지에선 요즘 고랭지 배추 출하가 한창이다. 민족의 명절, 한가위 전후로 모두 출하될 배추다. 일부는 가락시장으로, 일부는 김치공장으로 이미 행선지를 받아놓은 배추는 하루가 멀다하게 5톤 트럭에 가득 실려 산지를 떠났다. 지난 10일 강원도 정선군 화암면 건천리의 한 들녘에서도 배추를 수확하는 손길이 분주했다. 세상이 깊이 잠든 시간에 시작된 작업은 동이 틀 때까지 지속됐다. 경사진 밭에서 걷어낸 배추를 망에 담고 트럭에 옮기는 작업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밤샘
비 온다는 예보에 반가워 할 새도 없다. 유례없는 지독한 가뭄 탓에 밭에 심은 콩은 타 들어간 지 오래. 그나마 잘 익은 참깨마저 비에 젖어 썩어버리진 않을까 참깨 수확하는 농민의 손길이 분주하다. 꽉 동여맨 밀짚모자, 힘줄이 불거질 만큼 앙 다문 입술, 땀에 젖어 반질거리는 구릿빛 피부는 다름 아닌 묵묵히 버텨낸 한 여름 농사의 고됨이다.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을 타고 온다’는 처서(處暑)를 이틀 앞둔 21일, 신우용(67, 경북 예천군 예천읍 통명리)씨 부부는 경운기에 한가득 싣고 온, 갓 수확한 참깨를 집 앞 하우스로 부지런히 나르는 중이었다. 찜통 안에 들어앉은 듯 흘러내리는 땀을 손등으로
이보다 더 절절할 수 있을까.이보다 더 적확할 수 있을까.이보다 더 생생할 수 있을까.‘강정에 평화.’ 평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이 애면글면 두 발에 의지해 엿새 동안 제주 전역을 걸었다. 평화를 갈구하는 사람들이 날 선 철조망에 가로막힌 강정포구 앞 구럼비를 두 손을 맞잡아 감쌌다. 입에서 입으로 ‘강정에 평화’가 불러지고 손에서 손으로 ‘강정에 평화’가 이어지고 눈에서 눈으로 ‘강정에 평화’를 확인코자 했다. 제주해군기지 건설로 인해 구럼비가 학살되는 현장에서 인간띠가 되기를 자청한 사람들은 “구럼비야 사랑해!”를 온 몸으로 외쳤다. 국책사업이라는 미명하에 한 마을의 평화를 송두리째 짓이겨놓은 개발세력의 몽매함에 경고장을 꺼내들 듯 무수한 노란 물결이 강정포구 앞 구럼비에서 연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강원도 홍천군청 앞 골프장 건설 반대 노숙 농성장. 미처 헤아리지 못한 146일을 처절히 버텨 온 홍천주민들이 있다. 얇은 스티로폼 위에 깔린 돗자리 한 장, 눅눅한 이불 몇 개, 한 독지가가 기증한 모기장 2개가 농성장의 전부다. 어둠을 밝히는 전구 하나, 무더운 여름을 이겨낼 선풍기 하나 없다. 146일을 버텨오는 동안 군청은 4차례에 걸쳐 농성장을 철거했다. 농성을 위한 그 무엇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군청에 주민들은 끈질기게 맞서고 있다. 월운리의 조인자(59)씨는 “내 고장을 지키기 위한 일이다. 보상비? 그깟 몇 푼 더 받기 위해 수 년 동안 (맞서 싸운 다는 것은) 사람이 할 짓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