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몇 차례 쏟아지고 나니, 풀이 기세등등하게 올라오기 시작한다. 풀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나는 제초제를 비롯한 농약을 쓰지 않는다. 작은 풀일 때는 괭이로 긁고, 조금 더 크면 호미로 뽑고, 풀이 무릎 가까이 크기 시작했다 싶으면 예초기를 사용한다. 물론 그렇게 할 수 있는 적은 규모라서 가능한 선택이다.그래서 농사짓기 시작한 해에 선물 받아 쓰기 시작한 충전식 전기예초기는 내가 좋아하는 영농도구이다. 작동이 쉽고, 가볍고, 무섭지 않다. 게다가 충전한 배터리가 다 되면 작업을 중단할 핑계도 만들어 쉴 수 있게 해주는, 눈치가
기상청에 대한 신뢰도가 자꾸 떨어진다. 장마철도 아닌데 일기예보가 실시간으로 달라진다. 참깨를 심으려고 일꾼들과 비닐을 씌우면서 일기예보를 자주 확인했다. 이틀 후에 비 올 확률은 60%인데 날씨는 흐리다고 발표했다. 레이더 영상에 파랗거나 빨간색 색으로 잡히면 비구름이 몰려오고 있다는 것인데 60%의 확률이란다. 비가 올 수도 있고 오지 않을 수도 있음을 감안하라는 것인지 불안하기만 했다. 일꾼 중에 중국 연길에서 온 사람이 있어 일기예보를 좀 봐달라고 했더니, 중국 기상청 일기예보는 이틀 후에 비 올 확률이 90%였다. 다음날이
작년 여름부터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앉을라치면 “아이구, 다리야”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고 일어나려면 손으로 바닥을 짚어야 했습니다. 일시적인 증상이라고 여겼는데 8월 말, 무거운 짐을 들고 오랫동안 걷고 난 후 점점 심해졌습니다. 땅을 딛는데 구름을 걷는 느낌이었고 이곳저곳으로 통증이 옮겨 다녔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국과 반찬들을 만들어 배달을 하는 날은 한숨으로 시작해 한숨으로 끝났고 다리를 헛디뎌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좋아지겠지, 좋아지겠지 했는데 더했다 덜했다 오락가락하면서 나빠지는 쪽으로 치달았습니다.제 통증 하소
마늘과 양파 등 봄 수확이 한밤중입니다. 뒤이어 이모작 파종까지 마치려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는 지경이지요. 그렇게 또다시 농촌의 오월이 흘러갑니다. 제아무리 뼈 빠지게 일해도 살림이 나아지지 않는 까닭이 뭘까요? 정말이지 주변 사람 중에 게으른 사람들은 아무도 없던데, 부지런하면 잘 산다는 신화는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요?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22년 농가 및 어가 경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농가소득은 4,615만3,000원으로 전년(4,775만9,000원)보다 160만6,000원 감소했다 합니다. 특히 전체 4,000만
지난달에 원주시 청년농업인 정착 지원사업에 응모했다. 원주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청년창업농 정착 지원사업을 올해부터 나이 조건을 확대해서 추진하고 있다. 원주시조례상 청년농업인은 만 45세까지로 규정돼 있어, 40세에서 45세까지의 청년농업인을 자체 재정으로 추가 모집해서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청년농민들에게 매달 110만원에서 90만원까지 3년 동안 바우처 카드형식으로 지급되는 청창농 지원금은 급하게 도입된 탓에 이런 저런 한계도 있고, 돈을 쓰는 기준 때문에 한동안 논란이 된 적도 있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나는 청년이 이 지
이 지역의 마지막 서리가 4월 20일이라 해 농사 일정을 맞추는데 4월 27일에 서리가 내렸다. 며칠 전에는 장마처럼 5일 동안 비가 왔다. 사계절의 규칙성이나 흐름이 자연스럽지 않고 기습적인 공격처럼 이례적인 상황이 잦아서 농사꾼으로서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사는 지역이 바다에 인접해 있어서인지 아들 둘은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생선회를 잘 먹었다. 간재미를 사 와서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도마에서 썰어주면 어린아이 둘이 간재미 한 마리를 다 먹었다. 그럴 때마다 집에서 만든 초고추장이 밍밍하니 맛이 없단다. 그러면서 굳이 시중에서 판
아름다운 봄날들이 계속됩니다. 꽃도 예쁘고 새도 지저귀는 봄날, 할 일도 참 많습니다. 쭉쭉 올라오는 참나물, 취나물 뽑고 다듬고 풋마늘 솎기를 합니다. 온 힘을 주어 뽑으면 뽑히기도 하지만 끊어지는 게 더 많은 풋마늘 뽑기를 계속하다 보니 해가 저뭅니다. 뽑은 풋마늘을 집으로 가져와 다듬고 씻고 썰어 장아찌를 담그고 나니 온몸이 으슬으슬 춥고 아파옵니다.지금 자면 참 좋겠다, 하는 바람과는 다르게 허겁지겁 노트북을 켜고 온라인 회의 주소 줄을 찾아 접속을 합니다. 매달 진행되는 농촌특화형 성평등 전문강사 자조모임이 온라인으로 열립
“아~ 아~ 알리겠습니다. 골프장 문제로 회의할 것이 있으니, 각 가정에서는 한 분씩 모날 모시에 마을회관에 모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민주공화제가 시작된 지 몇백 년이 흘렀고, 그사이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특히 여성들의 참정권에서 눈부신 변화가 있었다고 하겠지요. 민주주의의 상징인 고대 그리스의 광장에서도 여성들은 투표에 참여하지 못했고, 18세기 말에 시작된 유럽의 민주공화정에서도 여성들은 선거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여성들도 온전히 투표권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스위스가
해가 길어지고, 한낮의 볕이 따가워지고, 동네 밭에 퇴비 냄새가 퍼지기 시작하면 마음이 바빠진다. 실상 밭에 나가 딱히 할 수 있는 일은 없지만 다른 집 밭의 동태를 살피며 머릿속으로 수없이 올해 심을 작물 계획을 세운다.바야흐로 봄이 온 것이다. 이 짧은 계절에 꼭 챙겨먹어야 할 나물이며, 두릅이며 옻순 등이 돋아나는 것을 살피고 맛보며 새삼 이렇게 살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그러면서, 슬슬 걱정이 시작된다. 밭을 갈고 두둑을 만들 때도 돌아왔기 때문이다.나는 농사 규모가 적어 기계가 크게 필요하지 않다. 웬만한 일들은 괭이와 호
논에 보리가 잎을 충분히 키우지 못한 상태에서 이삭부터 밀어 올렸다. 가난한 집에 아이가 많다고 봄 가뭄으로 생존의 위기를 감지한 보리가 번식을 서두르고 있다. 벌은 아직 잠이 덜 깼는데 밭 두둑에 심어 놓은 배나무와 자두나무 그리고 복숭아나무도 꽃망울을 열었다. 예년보다 높은 온도 때문이라고 한다. 도로변의 벚꽃을 시작으로 산벚나무들도 연분홍색으로 산을 색칠해가고 있다.보리 이삭이 올라오고 있는 논에서, 말뚝을 박고 얼기설기 쳐놨던 끈을 걷었다. 내가 끈을 잘라서 거두면 남편은 말뚝을 빼서 트럭에 실었다. 일은 둘이 하는데 누군가
오랜만에 글을 쓰는데 참 힘듭니다.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았는데 가슴이 콩콩거리며 멀미라도 나는 것처럼 속이 울렁거리며 손이 떨립니다. 쓰다가 지우고 쓰다가 지우면서 속상함이 폭풍처럼 일어납니다.우리 동네에는 재작년에 뽑은 이장이 있습니다. 재작년 말에 뽑았고 작년 말에 결산보고 총회를 하였고 올해까지 임기가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토요일 저녁 어떤 사람이 마을 방송을 하여 4월 15일에 이장선거를 한다고 합니다. 오늘 아침 마을회관을 갔더니 북내면장 명의의 북내면 공고 제2023-13호라는 이름으로 외룡리 이장선출 선거관리위원
공부하는 것을 썩 좋아하지는 않는데, 가끔 TV에 역사·교육·건축·과학 등 평소 접하기 어려운 내용을 강의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공부가 되기도 합니다. 게다가 얼굴이 제법 익은 연예인들이 가벼운 질문을 하고 답변을 하는 방식인지라 부담없이 꽤 양질의 강의를 안방에서 들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또 출연하는 강사들의 면면도 그렇고, 내용도 미래지향적이며 다수의 이익과 철학에 부합하는지라 전체적으로 호평을 받는 것 같습니다.며칠 전에도 그런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때마침 농업분야였습니다. 농업에 관한 내용으로 TV에서 대중 강좌가 이뤄진
우리 몸에 이로운 것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 엉겅퀴, 쑥, 냉이, 질경이, 달맞이꽃 등은 산과 들에 자생하는 흔한 풀이지만, 예로부터 약성이 있어 우리를 지켜온 식물이다. 그중에 쇠무릎이라는 풀도 있다. 한자로는 소 우(牛)와 무릎 슬(膝)로 우슬이라 한다. 줄기의 마디가 타원형으로 툭 불거져 소 무릎과 닮은 모양새일 뿐더러, 그 효능이 하체 관절에 좋다기에 유래된 이름이다. 전국의 들판이나 논둑에 자생하는 다년생 잡초이지만, 필자는 씨앗을 받아 밭에 작물로 재배한다. 옛 선조들은 무리한 노동 후에 우슬을 먹어 왔고, 자기 몸
화단에 수선화가 잎을 한 뼘이나 내밀어서 꽃망울까지 받들고 있다. 봄이 발치에 와 있다는 기별이다. 두 팔 벌려 환영해야겠지만 썩 달갑지 않다. 오히려 계절의 변화에 몽니를 부리고 싶다. 어쩌라고! 엉거주춤하느라 준비도 못 했는데.날카로운 솔잎 끝으로 얼굴을 콕콕 찌르는 듯한 바람이 사납게 불던 날, 남편과 둘이 배추를 묶었던 끈을 걷었다. 남편은 내가 걷어가는 속도의 절반도 못 따라오면서도 허리가 아프다고 자주 앉아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농기계 다루는 일을 주로 하는 남편은 온몸을 움직이는 일감에는 젬병이다. 끈에 딸려 온 배추
2017년 귀농을 결심했다. 농업기술센터에서, 농업교육원에서, 농업대학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이론을 배우고, 집 앞 텃밭에서 시작해서 300평에서 2,000평으로 조금씩 임대규모를 늘려 실전 농부가 되었다.2018년 청년창업농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3년간 소정의 영농비를 지원받았다. 그 덕에 다양한 단체활동도 경험해보고, 교육도 받고, 돈 안되는(?) 토종 작물들도 다품종소량생산 해보았다. 그리고 나름의 가내수공업으로 꽃차, 과일청, 곡물간식류 등을 즉석 제조 가공하여 인터넷에서도 판매했다. 1차 생산부터 6차 가공 및 판매까지 귀농한
유난히 한파가 잦았던 긴 겨울이 끝나가고, 이제 새봄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봄은 농심에 제일 먼저 오는 것 같습니다. 반짝 추위가 찾아와 재차 겨울옷을 꺼내 입고도 공연히 빈 밭에 가서 쥐구멍에 무너진 두렁은 없는지 구석구석을 살피게 되고, 나무 눈이 움트는지 유심히 바라보게 됩니다. 본다고 봄이라하기도 한다더니, 봄맞이는 이렇게 살필 일이 많습니다. 바야흐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고, 농민들은 올해를 살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됩니다.이렇게 새봄이 시작될 때, 지난겨울에 봤던 인상적인 장면이 있어 정리하고 넘어가려 합니다. 이곳은 연
‘도시나 농촌이나 집 구하기가 쉽지 않구나!’ 오랜만에 통화를 한 친구는 귀농을 했다가 지금은 도시에 살고 있다. 지금 사는 곳이 재건축 예정지라 늦어도 내년 초에는 집을 나가야 한다고 했다. 필자도 시골집에서 시어른과 함께 살다가 아이들이 걸어갈 수 있는 면 단위 학교 근처로 분가한 터였으나 다시 논밭 근처로 갈 것인지, 계속 아이들 편의를 봐야 할지 고민 중이었다. 사실 우리의 우선순위를 따지기 전에 형편에 맞는 마땅한 집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시골에 빈집이 많아 보이지만 실제로 거래되는 집은 적었다.그래도 휴경기인 겨울철에는
이번 겨울은 한파와 쌓인 눈을 여러 차례 만났다. 장독대의 장독마다 백설기 같은 눈을 한 뼘 넘게 이고 있다. 그 옆에 무명 솜이불 속에서 얼굴만 빼꼼 내밀고 있는 듯한 애기동백꽃이 앙증맞다. 핸드폰으로 찰칵! 색이 바래거나 찢어지고 구멍 난 곳들을 가려서 화장하듯 온통 하얀 눈으로 덧씌워 놓은 풍광, 이쁘네! 는 잠깐이고 불편한 수고는 길어진다. 조만간 배달될 난방비고지서까지 눈에 어른거려 금세 움츠려진다.라디오를 틀어 놓은 핸드폰을 호주머니에 넣고 눈을 쓸었다. 쌓인 눈으로 비닐하우스가 폭삭 내려앉았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아이고
나에게는 중학교 3학년이 되는 큰 조카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는 작은 조카가 있다. 도시에서 어린이집 교사로 살던 시절, 결혼한 오빠 집에서 3년 정도 함께 살면서 아침밥 먹여 어린이집 출근길에 등원하고, 퇴근길에 같이 하원해서 씻기고 함께 잠들던 애틋한 조카들이다. 내가 귀농한 뒤론 매년 여름방학, 겨울방학 그리고 조금 긴 연휴마다 내가 사는 시골에 온다.이번 명절 연휴는 조카들과 함께 화천 신랑 집에서 보냈다. 화천의 겨울은 홍천보다 더 하얗고, 더 춥다. 신랑 집은 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데, 집에서 하우스로 가는 경사길에
자세히 오래 보아야 대상의 아름다움을 알 수 있다고 어떤 시인이 말하더니, 그것이 사람이나 사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도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요즘 지역 사랑에 빠졌습니다.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은 쨍한 햇살입니다. 육지에서는 흔하디흔한 가을 아침의 안개도 자주 보기 어렵습니다. 이 강한 햇살을 받고 자란 농산물들이 그 어디보다 맛나고 탐스럽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으니 참 뒤늦은 깨달음이지요. 게다가 사람들도 이 강한 햇살의 기운을 받아서 씩씩하고 힘이 넘칩니다. 영하의 기온으로 내려가는 추운 겨울 아침에도 물옷을 입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