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하동 횡천에서 청학동 가는 길, 청암면에 있는 청암중학교 들머리에 커다란 돌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큰 산 아래 큰 인물 난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지리산 사람들에게 지리산이 어떤 의미로 자리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다.지리산 아흔아홉골 그중에도 가장 명당자리에 학교가 있었고 그 학교는 마을의 구심점이 되기도 했지만 인구 절벽의 시대를 증명하듯 숱한 학교들이 문을 닫거나 또 합쳐지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그렇지만 여전히 학교는 지속 가능한 우리들의 미래를 보장해줄 첫 단추임은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농촌에서 살아가는 장애당사자 주민의 이동권, 자기 생활방식을 결정할 권리, 사회참여를 위한 농(農)적 방안, 장애인 먹거리기본권 등을 한 번에 아우를 주제를 찾기는 애매하다. 분명한 건 이 문제 모두 장애인 기본권에 직결되는 문제이며, 농업·농촌·먹거리 담론과 연결되는 문제라는 점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문제들을 논의할 기회는 흔치 않았다는 고민 아래, 은 장애인기본권 관련 기획을 진행한다.한국사회에서 장애인의 사회참여와 자립을 보장할 공간은 찾기 힘들다. 최근 몇 안 되는 사회참여
갑오년 5월 31일 농민군이 용머리고개를 넘어 전주성에 입성했다.“이때는 4월 27일(양력 5월 31일) 전주 서문 밖 장날이라, 때가 오시(오전 11시~오후 1시)쯤 되자 장터 건너편 용머리고개에서 일성의 대포소리가 터져 나오며 수천 방의 총소리가 일시에 시장판을 뒤엎었다. 별안간 난포 소리에 놀란 장꾼들은 정신을 잃어버리고 뒤죽박죽이 되어 헤어져 달아났다. 서문으로 남문으로 물밀듯이 들어가는 바람에 동학군들은 장꾼들과 같이 섞여 문안으로 들어서며 한편 고함을 지르며 한편 총질을 하였다. 서문에서 파수 보는 병정들은 어찌 된 까닭
장수군은 사과, 오미자, 소고기가 특산품이라 몇 년 전부터 레드푸드의 고장으로 불려왔다. 사과와 오미자는 생과로도 잘 팔리고 있고, 여러 종류의 가공품으로도 개발되어 전국으로 팔려나가는 곳이다. 군청 근처에 소고기를 파는 식당인 한우명품관도 있지만, 인사동에 장수하늘소란 이름의 소고기집도 있을 만큼 장수소고기는 전국적으로 꽤나 알려져 이제는 몽골 등으로 진출을 하는 중이란다.농업기술센터를 통해 여성농업인 교육을 몇 년인가 했었고, 장수의 떡집을 만드는 레시피 개발과 브랜드컨설팅도 했었고, 중성지방을 낮추는 연간 식단 만들기 등등의
일이 있어서 대통령실 조직도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농업정책을 담당하는 농해수비서관은 여전히 경제수석 밑에 소속돼 있다. 정권이 바뀌어도 이 서열은 바뀌지 않는다. 문재인정권 시절에도 전 국민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농업정책은 경제수석에 종속돼 있었다. 이 서열은 역전불가능한 것일까?농업이 경제논리에 종속돼서야농업정책이 경제정책에 종속된 상황에서, 식량주권의 확보는 요원한 것일 수밖에 없다. 경제관료들의 머릿속에는 ‘식량은 수입해서 먹으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고, 농산물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예산은 줄여야 한다
해마다 오월 초순이면 한반도의 남쪽부터 꽃을 피우며 북상하는 철쭉은 이 땅의 봄이 깊어간다는 걸 알리는 파수꾼이다. 이즈음 지리산 자락 바래봉과 형제봉에서 철쭉제가 열린다. 하지만 필자는 철쭉이 활짝 필 무렵이면 뒷동산 마실 가듯이 황매산을 오른다.그것도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에 오른다. 철쭉을 배경으로 황매평원에서 바라보는 지리산 천왕봉을 감상하기 위해서다. 노을에 물들어 가는 장쾌한 지리산 주 능선을 바라보는 그 감동은 말로써 형언하기 어렵다.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볼 때 더 아름다운 지리산임을 확인할 수 있다.철쭉의 어원은 한자
이상하게 오일장 가는 날에 비가 자주 온다. 고흥오일장에 가는 날도 전날부터 비가 와서 물건 파시는 분들이 많이 안 나오시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했지만 막상 가보니 그렇지는 않았다. 고흥오일장은 4일과 9일에 서는 장으로 장흥이 서울의 정남향에 있는 곳이라면 고흥은 내가 살고 있는 남원의 정남향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다. 한반도 끝 육지와 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부 지역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아기자기한 섬들이 바다 위에 꽃처럼 떠있어 여행하며 눈으로 보는 즐거움이 큰 곳이다. 제법 시설이 괜찮은 숙소를 찾을 수 있
갑오년, 조선 농민들은 목숨을 걸고 싸웠다.그들의 싸움은 조선 말기 ‘민란의 시대’ 100년을 결산하는 것이었으며, 다른 한편 새롭게 등장한 제국주의 침략세력과의 첫 대결이었다. 조선의 운명을 가르는 판갈이 싸움에서 농민군은 크게 패했고 그들의 패배는 조선의 패망으로 귀착되었다. 세기의 투쟁, 그들은 무엇을 남겼는가?누천년 역사의 뒤안길에서 감당해온 억압과 착취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농민들의 투쟁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들은 꼬박 1년을 싸웠으며 조선 봉건 지배체제에 돌이킬 수 없는 크나큰 균열과 충격을 안겨
한동안 K-TV에서 송출하는 보는 재미에 빠져 살았다. 국민학생 때 봤던 드라마여서 ‘일용엄니’의 인기는 기억하지만 내용의 맥락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이제는 알겠다. 농촌을 낭만화하고 가족주의 체제를 공고히 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농촌이 처한 현실도 비교적 잘 담아내고 있었다.그중에서도 양촌리 마을에 ‘응삼이’로 대표되는 농촌총각의 결혼 문제는 매회 관통하는 중심 스토리다. 1985년 방영된 ‘서울행편’에서 마을의 노총각들이 단체로 서울로 맞선을 보러 간다. 이때 서울내기 ‘보배엄마(희옥)’와 ‘기홍’의 맞선이 성사돼
경남 하동군 청암면에 자리한 하동호는 1985년 1월에 착공하여 1993년 11월에 준공한 농업용 댐으로 청학동 계곡과 묵계 계곡의 물들이 흘러들어 거대한 산중호수를 만들었다. 지리산 둘레길 10구간과 11구간이 연결되는 지점에 있는 이 하동호를 한 바퀴 도는 하동호 둘레길이 새 단장을 하고 2000년 봄에 완성되었다.전체 길이 7.5km에 수평의 길이라 남녀노소 누구나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둘레길이 된 것이다. 하지만 지리산 둘레길 구간에는 포함되지는 않은 상태다. 이 하동호 둘레길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은 뭐니 뭐니 해도 아름드
전봉준, 손화중, 김덕명, 최경선, 성두환.1895년 4월 24일(음력 3월 30일) 새벽, 컴컴한 적굴에서 교수형이 집행되었다. 이들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진 것은 불과 하루 전 법무아문 권설재판소에서였다. 판결은 그날로 국왕의 재가를 받아 날이 바뀌자마자 형이 집행되었다(속전속결, 훗날 이날의 모범을 충실히 따른 자가 있었으니 박정희다. 이 자는 인혁당 재건위 관련 피고인 8명을 형 확정 18시간 만에 사형시켰다. 세상에는 역사를 이렇게 계승하는 자도 있다).1894년 4월 백산대회에서 이름을 올린 대장 전봉준, 총관령 손화중, 총
처음부터 영해시장엘 가려던 것은 아니었다. 2021년 8월에 다녀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불이 났던 영덕오일장이 궁금해서 길을 나섰다고 하는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1년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재건은커녕 철거도 덜 된 상태로 남아 있었다. 임시 시장이 있기는 하지만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다음날이 근처 영해면에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라 영해를 찾아가게 되었다.영해오일장은 만세시장이라 불리는 상설시장을 중심으로 5, 10일에 열린다. 만세시장이라 이름 붙여진 배경에는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일어난 3.1만세의거
20여년 전쯤에 여성단체에서 활동하시는 분들과 ‘성인지(性認知) 예산’에 관한 논의를 같이 한 적이 있었다. 관련 연구작업에도 참여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성인지적 관점(gender perspective)’이라는 말 자체가 사회적으로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이었다.‘00인지적 관점’의 중요성‘성인지적 관점’이란 각종 제도나 정책이 특정 성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지는 않은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검토하는 관점을 말한다. 이런 관점이 필요한 이유는 단지 ‘여성정책’이라는 범주에 들어가는 정책만이 여성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
지리산의 봄은 코로나19 파동과는 무관하게 해마다 연초록 새순과 온갖 꽃들로 숲을 화려하게 장식해 왔지만 이번 봄은 2020년 이후 마스크로부터 해방된 첫봄인지라 가는 곳마다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그동안의 억눌림을 봄꽃으로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충분히 이해가 가기도 한다.특히 섬진강 매화마을이나 구례 산수유마을 그리고 홍매로 유명한 화엄사는 말 그대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2023년의 봄이다. 그리고 만나기 힘들긴 하지만 봄의 진객인 노루귀나 바람꽃 등을 찾아 깊은 산속을 헤매는 들꽃 애호가들이 SNS에 올리는 화려
1895년 3월, 을미적 을미적 봄이 오고 있었다. 허나 봄이 왔으되 봄이 아니었다. ‘척양척왜’, ‘보국안민’의 기치를 든 동학농민군과 침략자 일제의 충돌, 조선의 명운을 건 한판 대결, 우금티 패전 이후 조선은 피바다에 잠겼다. 참빗 작전이라 했다. 제국주의 일본은 해외 침략의 첫걸음부터 피바람을 몰고 왔다. 참빗으로 훑어내리듯 씨를 말려 화근을 없애버리겠다는 일본군의 초토화 작전에 조선 관군이 동원되고 민보군이 앞장서는 골육상쟁의 비극이 벌어졌다.임무를 마친 일본군이 인천으로 귀환하고 전봉준을 비롯한 농민군 지도자들은 재판에
부엌 앞 장독대 항아리 밑으로 손톱만한 크기의 어린 쑥들이 올라왔다. 쑥국을 끓이거나 쑥떡을 해먹으면 좋겠다. 하지만 북쪽 지리산에 사는 나 같은 사람은 인내심을 가지고 좀 더 기다려야 한다. 올라온 쑥을 보고 반기는 것은 어쩌면 긴 겨울을 견디며 기다리던 봄을 만난 것 같은 마음에서일 것이다. 그래서 봄을 만나러 남쪽으로 내려간다. 특히나 바다를 끼고 있는 곳으로.서울의 정남쪽에 있다고 하여 정남진이라 불리는 장흥의 오일장을 만나러 나섰다. 들이 넓고 산도 좋은데 바다도 면하고 있는 곳이라 물산도 풍부하다. 대나무 말고는 초록이
무엇을 전환하고 넘고 싶었던 것일까한때 시민사회 운동 영역의 대주제는 ‘전환시대’였다. 전환시대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고민하자는 취지였다. 농민운동 부문에서의 ‘전환시대’는 투쟁을 넘어 대안을 만들어가자는 뜻이었다. 또 다른 유행으로는 ‘넘어’라는 동사가 붙는 형태였다. ‘이분법을 넘어’, ‘적대적 관계를 넘어’도 자주 썼다. 너는 너, 나는 나의 갈라섬을 극복하고 동지 관계를 회복하여 체제나 이념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는 의지 표현이었으리라.전농 창립 30주년을 맞이해 ‘지금은 전환시대, 투쟁 아닌 대안
하동 지리산문화예술학교, 남원 산내 진달래산천, 함양 온배움터, 구례 봉서리책방, 산청 공간산아… 지리산 자락에 깃들어 움 틔우고 있는 울타리 없는 학교이자 움직이는 교실들이다. 물론 지리산 5개 시·군에서 한 곳씩만 나열한 것이라 지리산 아흔아홉 골에 숨어 있는 숱한 배움터는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을 것이다.그중에 필자가 교사로 참여하고 있는 지리산문화예술학교는 2009년 지리산학교로 출발해서 지금은 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로 그 이름이 바뀌어 14년째 이어지고 있는데 필자는 올해로 4년째 초록걸음반 수업을 진행할 예정
우금티 혈전 이후 농민군 주력부대가 남쪽으로 퇴각하던 시기 대둔산을 근거지로 유격 항전을 개시한 부대가 있었으니 금산, 진산, 고산 등지의 농민군들이었다.이들은 우금티 전투 이전 를 맞아 금산, 진산 등지에서 치열한 매복 기습전으로 맞섰으며 일본군이 우금티로 몰려간 이후에는 관군이 몰려오면 사라졌다 떠나가면 다시 나타나는 게릴라 활동을 전개했다.이들이 대둔산에 근거지를 마련한 것은 12월 초순(양력) 퇴각하는 농민군 주력부대가
입춘이 지났지만 폭설이 내린 날 이른 새벽에 눈을 비비고 일어나 예산까지 갔었다. 눈을 핑계로 뒤로 미루고도 싶었지만 이번 오일장 투어도 도착하기 전까지의 설렘과 기대감은 까짓 눈쯤 이기고도 남았다. 아직 제설작업을 시작도 안 한 도로를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운전해 매 5, 10일마다 서는 예산장 입구 주차장에 도착했다.설렘과 기대는 딱 거기까지였다. 드넓은 주차장 근처 여기저기에 ‘백종원거리’라 매달린 간판들이 나의 뜨겁던 마음에 찬물을 끼얹었다. 대부분의 오일장들은 상설시장 안과 시장을 둘러싼 골목과 거리 주변으로 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