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농촌에서 살아가는 장애당사자 주민의 이동권, 자기 생활방식을 결정할 권리, 사회참여를 위한 농(農)적 방안, 장애인 먹거리기본권 등을 한 번에 아우를 주제를 찾기는 애매하다. 분명한 건 이 문제 모두 장애인 기본권에 직결되는 문제이며, 농업·농촌·먹거리 담론과 연결되는 문제라는 점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문제들을 논의할 기회는 흔치 않았다는 고민 아래, 은 장애인기본권 관련 기획을 진행한다.장애인의 농사, 나아가 장애인의 노동을 우리 사회는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을까? 생산성 향상
참으로 힘들었던 여름은 그 꼬리를 감추고 언제나 단명인 가을이 서서히 지리산을 물들이고 있다. 이번 여름이 가장 덜 더운 여름으로 기록될 거라 했고 극한호우란 단어가 등장했던 올여름, 유난히 더웠고 또 비는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고 많이 쏟아부었던가. 그럼에도 지리산의 들녘엔 알곡들이 여물면서 단순한 식량 그 이상의 무게로 벼들이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초봄 모를 준비하고 논물 대면서 시작하는 벼농사, 식량은 기본이고 가장 생태적인 저수지에 청정 산소를 생산하는 초록 공장 역할을 하는 우리들의 오래된 미래다. 게다가 봄부터 가을 그리
“칼노래라는 것은 우리 대신사 수운 선생께서 여기 전라도 남원 선국사 은적암에 머무르실 때 지으신 노래올시다. 여기 은적암에서 석 달을 머무르셨는데, 그 사이 도력이 더욱 왕성하시니, 그 희열을 금치 못하여 스스로 노래를 지으시어 달 밝고 바람 맑은 밤을 타서, 목검을 짚고 묘고봉상에 홀로 올라 노래를 부르며 칼춤을 추시니, 그 노래를 일러 검결 즉 칼노래라 하였습니다(녹두장군, 송기숙 저).”‘때가 왔네 때가 왔네 다시 못 올 때가 왔네. 만년에 하나 날까 말까 한 대장부가 다시 못 올 때를 만났으니, 용천검 드는 칼을 아니 쓰고
어린 시절엔 아예 인연이 없던 곳이고, 일을 하면서도 그리 자주 갈 일이 없던 곳이 청양이었다. 몇 년 전 새로 부임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청양의 한 지역에서 김장 나눔 봉사를 한다고 하여 불려간 일이 마지막 방문이었던 것 같다. 한마디로 낯선 곳인데 그런 청양엘 아직 여름 같은 가을 9월에 찾은 까닭은 고추와 구기자 축제를 하는 시기와 오일장이 맞물린 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구기자가 많이 나는 곳이니 한번 가봐야지 하는 생각을 늘 하고 있기도 해서 마음이 동하기도 했다.청양이 구기자의 산지로 유명한 것은 다 알려진 일이다. 하
근 10여 년 농촌 교육을 한다며 강사로 들락댔다. 기초지자체마다 가용할 수 있는 교육비가 책정되고 농촌의 교육 대상과 범위도 넓어지는 추세다. 생활세계가 겹치는 면 단위 교육도 많아지고, 마을 단위 교육도 활발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다만 교육의 질이 받쳐주는지는 냉정하게 들여다볼 일이다. 교육에 참가하는 주민들은 대체로 직책이라도 하나 맡고 있는 리더들이 많다. 보고용 사진도 잘 나와야 하고 강사 섭섭할까 싶어 공공근로를 나온 노인들이 자리를 채우기도 한다.교육 내용은 중요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영농교육이나 직불금 관련 교육
지난 14일과 15일 이틀 동안 경남 산청에서 ‘함께평화’가 준비한 함께평화영화제가 열렸고 필자는 부대행사로 ‘지리산을 그대로’라는 이름으로 사진전을 진행했다. 행사의 일환으로 작품 판매 수익금은 전액 함께평화에 후원을 했다.‘함께평화’는 산청 주민들 스스로 모금을 통해서 3년 전인 2020년 8월 14일 산청읍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고 그 평화의 정신을 이어나가고 있는 주민들의 자발적 모임으로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영화제를 개최했는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 행사의 일환이었다.이번 전시회는 개인적으로 세 번째 ‘지리산을 그대
전주화약 이후 2차 봉기에 이르는 시기, 조선 땅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는가? 조정을 장악하고 있던 민씨 일파의 요청에 따른 청의 파병 결정은 일본군 상륙의 구실이 되었다. 일본군은 인천에 상륙하자마자 한양으로 올라가더니, 급기야 경복궁을 침범하여 민씨 일파를 몰아내고 대원군을 앞세워 친일내각을 출범시켰다.임오년 청나라에 납치된 이래 12년 만에 대원군이 정계에 복귀했다. 일본은 자신의 침략행위와 내정간섭의 방패막이로, 대원군은 고종과 민비를 폐위시키고 새로운 왕을 세워보겠다는 속셈이 있었다.대원군은 평양에 주둔한 청군과
홍천은 어머니의 고향이다. 뿌리를 찾는 사람처럼 한동안은 홍천으로 이사를 갈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을 만큼 내가 좋아하는 곳이다. 그러니 홍천에서 뭔가 일을 하자고 하면 앞뒤를 가리지 않고 달려가는 사람이 되었다. 휴게소에 들르지 않아도 5시간은 운전하고 가야 하는 곳인데 일년내내 수업을 하러 간 적도 있고, 어떤 마을들과는 뭔가 협업을 하러 뻔질나게 들락거렸다. 그런 홍천으로 오일장을 보러 가는 내 발걸음이 가벼운 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설렘 때문이었다. 다른 장에 가던 날보다 일찍 출발해서 홍천의 장에 도착했을 때는
농촌·농민·농업의 입장에서 본다면, 중앙정부가 더 많은 권한을 갖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지방자치단체가 더 많은 권한을 갖는 것이 나을까? 필자는 후자가 낫다고 본다.지방자치단체의 조례를 보면, 그래도 농촌·농민·농업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조례들이 있다. 정부가 운영하는 자치법규정보시스템(https://www.elis.go.kr/)에서 ‘최저가격’이라고 검색하면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을 위해 제정된 조례가 50개 이상 나온다. 중앙정부는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에 소극적이지만, 지방자치단체는 그래도 적극적인 곳이 많다.지역에서부터 만들
지리산엔 아흔아홉골이 있다고 하듯이 수많은 계곡이 있고 그 계곡을 따라 골골의 물이 모이고 또 모여 강을 이루고 그 강물은 바다로 바다로 흘러간다. 계곡을 끼고 걷는 길들은 숲의 기운과 함께 물이 흐르면서 발생하는 음이온까지 더해져 더 쾌적한 발걸음이 된다. 무더운 여름철에 부담 없이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지리산의 계곡길들을 소개한다.남원 구룡계곡길남원 8경 중 제1경인 구룡폭포를 만날 수 있는 구룡계곡길은 지리산국립공원 전북사무소가 있는 주천면 호경리 육모정에서 덕치리 구룡계곡까지 펼쳐지는 심산유곡으로 길이가 약 3㎞ 정도다.
아산으로 통합되기 전의 온양은 왕이 온천을 즐기러 다니던 곳이라 온궁(溫宮)으로 불렸지만 이제는 역사 속의 지명으로 서서히 잊히고 있는 중이다. 수도권 전철 1호선이 지나면서 ‘온양온천’역으로 불리고 있으니 명맥을 유지한다고나 할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온양온천역의 역사 한쪽의 고가다리 아래로 4, 9로 끝나는 날마다 장이 서는데, 그 풍경이 실로 장관이라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온양온천의 풍물오일장은 다른 지역의 오일장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곳에서만 느껴지는 색깔이 있다. 전철이 지나는 고가다리 아
영호대접주 김인배, 그이는 금구(현 전북 김제시 봉남면 화봉리) 사람이다.갑오년 무렵 금구현은 혁명의 본거지였다. 1893년에 있은 원평(금구현) 집회는 동학의 교조신원운동을 ‘척왜양’을 기치로 한 사회변혁 운동으로 고조시킨 강력한 거점이 됐으며, 9월 2차 봉기 당시 원평은 농민군의 가장 든든한 후방 기지가 됐다. 동학농민혁명의 주요 지도자들이 원평을 주 무대로 얼기설기 동지적 관계를 맺고 혁명의 큰 그림을 그려나갔으니 김덕명, 김개남, 전봉준, 최경선 등이 그들이다. 김인배 또한 이들과 더불어 성장했다.김인배가 역사에 처음 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