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나고 자란 강원도의 춘천은 산으로 첩첩이 둘러싸이고 바다는 먼 곳이라 비린내를 맡을 수 있는 것이라곤 기껏해야 짜디짠 고등어자반 정도였다. 하지만 계란조차 쉽게 먹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으므로 고등어자반을 얻어먹는 날은 식구들의 생일 같은 아주 특별한 날 뿐이었다. 그러므로 당연히 바다에서 나는 것들을 제대로 조리하는 방법을 모르는 채로 살게 되었다. 서른이 다 되어 남쪽 바다에 점처럼 떠있는 한 작은 섬에서 태어나고 자란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한 후로 매일 매일을 갯내 풍기는 해산물들과 씨름을 하면서 그것들의 맛과도 조금씩 친해졌다. 지도에도 잘 나오지 않는 작은 섬이니 내륙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바다에서 나오는 것 외에 다른 식재료들을 다양하게 만날 수 없는 형편이었으므로 시어머니나
“참, 준석이 늬도 여기 서명해라.” 의자에 앉아 누군가와 전화를 하던 태성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뭔 서명? 인터체인지 이름 바꾸는 거는 벌써 했는데.” “이건 그기 아니구, 중학교 읎애는 거 반대하는 서명이여.” 준석도 들어서 알고 있는 일이었다. 준석이 졸업한 면내에 하나 있는 중학교가 폐교된다는 소문이더니, 아예 없어지는 게 아니라 이웃 면에 있는 네 개의 중학교가 통합되어 기숙형 중학교로 바뀐다고 했다. 면 단위의 중학교에 학생 수가 점점 줄어서 몇 개의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한 군데로 몰아서 큰 중학교를 만들고 아이들이 먹고 자며 학교에 다니게 한다는 거였다. 다른 군에서 그렇게 한 경우가 있는데 아이들의 성적도 좋아지고 여러 모로 좋은 평가가 나왔다고 했다.
약초재배단지가 있어 아이들을 데리고 견학을 갔던 의성에서 나는 마늘보다 먼저 마늘닭을 만났다. 이미 이름이 난 탓인지 친절하지 않은 인상을 주시는 아주머니의 눈치를 보면서 먹었는데 거칠게 짓찧은 마늘을 듬뿍 넣고 간장소스에 버무린 튀김닭이었다. 미처 익지 않아서 거의 생것에 가까운 마늘로 버무려진 닭을 아이들은 먹고 남은 소스에 밥까지 비벼서 알뜰하게 정말 잘도 먹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너무나 놀라웠고 마늘닭이라는 음식을 생각해낸 이가 무척 지혜롭다고 생각했으며, 의성이 마늘의 주산지이므로 가능한 음식이라는 생각을 했었다.닭과 마늘의 궁합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여름에 더위로 기운이 떨어질 때쯤이면 어김없이 마늘을 잔뜩 넣고 끓여주시던 어머니의 마늘백숙에 관한 기억이 꽤 오래된 과거
장마전선이 북부지역에서 생겨나 비를 뿌렸다. 워낙 크게 발달한 북태평양고기압이 북쪽까지 세력을 확장한 때문이라고 한다. 요 며칠간 초여름 날씨라고 보기는 어려운 고온이 사단이었다. 어쨌거나 음력 5월10일에 내리는 비를 태종우라 하여 이날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고 믿어왔다. 바로 그날 비가 왔다. 태종께서 기우제를 지내도 비가오지 않자 섭위에 꿇어 하늘에 석고대죄를 청해도 비가오지 않았는데 태종이 승하하자 비가 내려 백성들은 풍년이 들게한 태종을 우러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풍년은 군주의 덕이요 만백성의 은혜였다. 6~70년대도 다를 바 없었다. 풍년을 기약하는 풍년기원제(영농발대식)를 우리 스스로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농사일에서 풍작이란 것은 최상의 가치였음을 누가 부정하랴. 그런데 요즘 농민들은
통풍은 과거에는 부자들이 많이 걸리는 병이었고, 비교적 드물었으나, 최근 들어 40대 이상 남성을 중심으로 빠르게 환자가 늘고 있다. 남자는 0.6% 여자는 0.1% 정도의 유병울을 보이고 있고, 2010년에만 10만 명 이상이 통풍으로 치료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확한 원인을 밝혀지지 않았지만, 퓨린이 풍부한 식생활과 각종 대사 질환, 비만, 음주 등이 원인이 되어 혈중 요산이 높아지고 신장에서 충분히 배출이 안되어 고요산혈증이 생기고, 요산 결정체가 관절에 쌓여 생기는 급성 염증성 관절염이다. 주로 엄지 발가락 주변에 생기나, 발목, 무릎, 손목, 손가락 등 어느 관절에도 생길수 있으며, 요산 결절이 피하에 생기기도 한다. 치료를 안하고 방치할 경우에는 신장에 요산 결석이 생기고 신장
피라미드 속 미라의 눈과 겨드랑이에서 양파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양파가 죽은 사람에게조차 활력을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란다. 삼국시대부터 먹어 온 것으로 알려진 파와는 달리 1906년에 서울 뚝섬에 원예모범장이 설치되면서 양파의 재배기술과 품종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으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양파를 먹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0 여 년에 불과하지만 짧은 재배역사와는 달리 우리의 양파 사랑은 참으로 뜨겁다고 할 수도 있겠다. 90% 이상이 수분이지만 남은 10% 속에 인체에 유용한 성분이 150가지 정도가 발견되었다고 하니 가히 경이로운 식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 까닭에 한국인의 식탁에서도 양파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식품이 되었지만 양파의 국내 유통 중 77%가 중국산임을 생각하
겨울이면 면소재지 곳곳에서 화투판, 카드판이 벌어진다. 소재지에는 열 개가 넘는 식당과 세 개의 다방, 호프집 두 곳이 있다. 일 년 사이에 식당이 다섯 군데나 늘어난 것은 갑자기 산동면에 여러 큰 공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장지산 한 편을 밀어 골프장 공사가 한창이었고 평택에서 삼척까지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닦는데 산동면에 인터체인지가 서게 되어 한적하던 동네가 온통 공사판으로 흥성거리게 되었던 것이다. 식당이라고 해봐야 제 농사지으면서 푼돈이나 뜯어 써볼까 하고 간판은 걸었으되 메뉴라고는 흔해빠진 염소탕이나 삼겹살, 순대국밥 따위였다. 그러던 것이 외지인들이 꼬이면서 식당이 농사보다 더 쏠쏠하게 되자, 갑자기 대여섯 개의 식당이 더 생겨난 것이었다. 심지어 돈가스 전문 식당까지 생겨나 시골 노인들이 포
사혈용 침으로 피 한두방울을 빼주는 것만으로도 ‘복학’을 치료할 수 있다 돌 전후의 아기들은 말을 못하니, 표정과 울음만으로 병을 알아내고 치료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열이 심하게 난다거나, 기침, 구토, 설사, 발진 등이 있다면 우리 아기가 어딘가 아프구나 알아서 금방 병원에 갈 수 있으나, 그렇지 않고 약간 찡얼거리는 상태라면, 기분이 나쁜 건지 어디가 아픈 건지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옛부터 복학이란 말을 써 왔는데, 배속에 숨어 있는 학질(말라리아)이란 뜻이다. 학질은 두통, 고열, 구토 등의 증상을 보이다가 심하면 사망하기까지 하는 무서운 병이다. 힘든 상황에서 어렵게 벗어나다는 의미의 “학(학질)을 떼다” 라는 표현이나, “내 고뿔이 옆사람 학질보다 중하다”는 속담에서와
비가 오는지 마는지 타는 가슴을 더 태운다. 날씨야 그러든지 말든지 충북농업인회관에 도착하자 왕년의 투쟁가들이 다 모였다. 그중에서도 이재호 의장이 반가웠는지 그의 집에 와서 하루 자고 가란다. 이재호 의장은 담배농사만 전문으로 짓는다. 전농 초기 담배농가가 많이 있었으나 지금은 몇몇 정도다. 신탄진 연초제조창 싸움은 그에겐 전설로 남아 있다. 아직도 담배농사만을 고집하는 이재호 의장도 골초다. 담배에 대한 혐오론자는 대동법을 시행한 김육으로부터 송시열, 이익, 이덕무 등이다. 이들은 지금의 시점으로 봐도 딱 떨어지는 이론으로 담배가 건강에 좋지 않음을 강조했다. 반대로 장유는 담배 예찬론자이고 골초였다. 그는 담배의 화기 때문에 폐를 해칠 것이라 했다.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금 앞
선거 때마다 사람들이 모이는 건 보았지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강추위를 무릅쓰고 모여 있다는 게 준석은 믿기지 않았다. 줄잡아도 만 명은 훨씬 넘고 주최 측 추산이라면 오만 명이라고 과장을 해도 딱히 시비를 걸기 어려워 보였다. 다섯 시에 시작한다는 유세는 점점 늦어지더니 여섯 시가 넘도록 수만 명이 오매불망하는 후보는 도착하지 않았다. 준석은 시청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선 배가 고파서 뜨끈한 국밥이라도 한 그릇 먹고 싶었다. 마을 사람들은 허기도 잊은 듯 대형 트럭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와 악을 쓰듯 외치는 구호를 넋이 나가 듣고 있을 뿐이었다. “퇴근했냐? 했으면 같이 밥이나 먹을까? 나 시내에 나와 있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는 공무원으로 평생을 살았다
며칠 전 담양의 소쇄원에 다녀왔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를 식히기엔 더없이 좋은 대밭이 서늘한 바람 소리로 유혹하는 바람에 들어갔다가 벌써부터 극성인 모기에 물려 아직도 고생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지인에게서 받은 대접을 생각하면 그 고생이 하나도 고생스럽지 않다. 지금이 한창 때인 죽순을 이용한 다양한 조리법으로 만들어낸 음식의 감동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 마을에도 대밭이 더러 있기는 하다. 하지만 둘레길이 생기고 몰려드는 관광객들 덕에 불편한 일들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인근 마을의 한 지인은 해마다 때가 되면 죽순을 따서 먹기도 하고 나누기도 했는데 둘레길 개통된 후로 그 반도 만져보기 어렵다 한다. 그래서 그런지 대밭이 없는 나는 그나마 얻어먹던 죽순 구경을 하기가 쉽지 않다. 그
고구마를 한 자루 묻어두었더니 제법 튼튼한 싹이 수백개 올라왔다. 이제 본밭에 싹을 잘라 심어야 한다. 비가오지 않으니 물주며 심어야해 손이 많이 간다. 갑자기 뜨거워진 날씨에 죽지 않게 꼭꼭 눌러주며 땀을 흘린다.당뇨병이 있는 필자는 당뇨에 좋다는 작물이 있으면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되었다. 뚱딴지, 뽕나무오디, 달개비 등은 이미 항간에 소문이 자자한 당뇨를 치료하는 기능성작물이 되었다. 고구마 또한 배를 불리는데 그만이라 당뇨에 도움이 된다고 해 일부러 많이 심는다. 해짧은 겨울날 점심대용으로 고구마를 먹었던 기억이 아련하다. 쪄서 먹고, 구워먹고, 긴긴밤에는 생으로 깍아 먹었다. 방안 윗목에는 고구마 동고리가 몇 개씩 있었다. 가난한집에 고구마 동고리는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고 했다.고구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