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란 놈이 어찌나 슬피 우는지 꼭 내 맘을 알고 같이 해주는 듯하다. 까치란 놈이 뻐꾸기에게 물었다. “왜 목이 쉬도록 우는거냐, 얼마나 울어 눈이 벌겋게 충혈 됐냐.” 뻐꾸기가 대답했다. “먹을 것이 없어 그렇다네.” 하기야 뻐꾸기 울어대는 철이 한참 가뭄이 들고 보리는 거두기 전이고, 아침 먹고 들에 나가면 긴긴해에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찬물바가지나 들이키는 철이기에 그런 이야기가 만들어 졌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뻐꾸기는 탁란을 한다. 그것이 정말 먹이를 구하지 못하기 때문인지 알 수 없다. 생태적으로는 뻐꾸기의 탁란은 탁월한 선택이라고 한다. 둥지도 짓지 않고 알만 남의 둥지에 낳아 두면 둥지의 임자가 자기 새끼로 알고 애지중지 먹이를 물어 날라 키워준다. 그렇게 해서 훌륭하게 뻐꾸기의 종을
감자의 계절이다. 하지감자를 캔다. 알이 굵직한 게 잘 삶아 놓으면 파실한 감자로 샛거리는 충분할 것 같다. 감자처럼 다양한 요리를 할 수 있는 것도 드물다. 쪄서 먹으면 그 자체가 한 끼를 대신할 수 있다. 여름에 짭조름한 반찬거리인 알이 잘잘한 간장조림까지 감자는 소박한 우리 식탁의 주인공이었다. 부여에서 보내온 감자를 보는 순간 현 정국에 대한 마뜩잖음이 주먹감자를 떠올리게 한다. 몇 일전 이란과 우리나라의 축구시합이 이란의 승리로 끝나자 이란감독이 우리감독에게 주먹감자를 먹여 말들이 많다. 이 주먹감자는 야유와 조롱이 묻어있다. 60년대 기차여행을 하다보면 철로변에서 놀던 아이들이 기차를 향해 주먹감자를 먹이곤 했다. 우리세대들이 그랬다. 그때는 분노와 저주의 표현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새로
우리 몸은 낮에 활동하고 밤에 쉬면서 피로를 회복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과도한 피로가 쌓이거나, 염증이 심한 경우 밤에 피로를 회복하지 못하고 몸에 쌓이게 됩니다. 이런 신호가 바로 밤에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대표적인 증상이 밤에 다리에 쥐가 나는 것입니다. 보통 운동을 많이 하거나 낮에 격렬한 활동 후 밤에 자다가 종아리에 쥐가 나서 잠을 깨보신 경험은 다들 있습니다. 그러나 평상시와 같은 활동~노동량인데도 불구하고 밤에 쥐가 나서 잠을 설치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건 몸에 피로가 잘 제거되지 않고 쌓이고 있다는 하나의 신호입니다. 즉 밤에 다리에 쥐가 난다면 ‘요즘 내 몸 상태가 많이 피곤하구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이런 증상이 심해지게 되면 밤에 잠을 방해할 정도로 아프게 됩
“땅값만 다락같이 올라가믄 팔 마음이야 있지. 암만 농사 지어봐야 돈두 안 되고, 해마다 가슴 졸이다가 속병되는 기 농산데, 누군들 짓구 싶어서 짓나? 누가 한 십억 준다믄 팔구 말지, 뭐.” 경태가 묻는 말에 농담처럼 대꾸하면서 속이 뜨끔하기는 했다. 한때는 농촌을 살려야 나라가 산다고 제법 열을 내어 주장을 하던 자신이 그런 말을 입에 올린다는 게 스스로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몇 년 전, 고작 다섯 명이던 농민회 면 지회에서 두 명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면서 지회가 흐지부지 되었고 결국 준석은 농민회 활동을 접고 말았다. 아주 적극적인 회원은 아니었어도 십여 년 가까이 해왔던 농민회였다. 정도 들었고 그간의 안면을 보아서도 발길을 끊을 일은 아니었는데, 왠지 꿈쩍도 하지 않는 벽에다 조약돌이
내가 태어나고 자란 강원도의 춘천은 산으로 첩첩이 둘러싸이고 바다는 먼 곳이라 비린내를 맡을 수 있는 것이라곤 기껏해야 짜디짠 고등어자반 정도였다. 하지만 계란조차 쉽게 먹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으므로 고등어자반을 얻어먹는 날은 식구들의 생일 같은 아주 특별한 날 뿐이었다. 그러므로 당연히 바다에서 나는 것들을 제대로 조리하는 방법을 모르는 채로 살게 되었다. 서른이 다 되어 남쪽 바다에 점처럼 떠있는 한 작은 섬에서 태어나고 자란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한 후로 매일 매일을 갯내 풍기는 해산물들과 씨름을 하면서 그것들의 맛과도 조금씩 친해졌다. 지도에도 잘 나오지 않는 작은 섬이니 내륙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바다에서 나오는 것 외에 다른 식재료들을 다양하게 만날 수 없는 형편이었으므로 시어머니나
“참, 준석이 늬도 여기 서명해라.” 의자에 앉아 누군가와 전화를 하던 태성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뭔 서명? 인터체인지 이름 바꾸는 거는 벌써 했는데.” “이건 그기 아니구, 중학교 읎애는 거 반대하는 서명이여.” 준석도 들어서 알고 있는 일이었다. 준석이 졸업한 면내에 하나 있는 중학교가 폐교된다는 소문이더니, 아예 없어지는 게 아니라 이웃 면에 있는 네 개의 중학교가 통합되어 기숙형 중학교로 바뀐다고 했다. 면 단위의 중학교에 학생 수가 점점 줄어서 몇 개의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한 군데로 몰아서 큰 중학교를 만들고 아이들이 먹고 자며 학교에 다니게 한다는 거였다. 다른 군에서 그렇게 한 경우가 있는데 아이들의 성적도 좋아지고 여러 모로 좋은 평가가 나왔다고 했다.
약초재배단지가 있어 아이들을 데리고 견학을 갔던 의성에서 나는 마늘보다 먼저 마늘닭을 만났다. 이미 이름이 난 탓인지 친절하지 않은 인상을 주시는 아주머니의 눈치를 보면서 먹었는데 거칠게 짓찧은 마늘을 듬뿍 넣고 간장소스에 버무린 튀김닭이었다. 미처 익지 않아서 거의 생것에 가까운 마늘로 버무려진 닭을 아이들은 먹고 남은 소스에 밥까지 비벼서 알뜰하게 정말 잘도 먹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너무나 놀라웠고 마늘닭이라는 음식을 생각해낸 이가 무척 지혜롭다고 생각했으며, 의성이 마늘의 주산지이므로 가능한 음식이라는 생각을 했었다.닭과 마늘의 궁합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여름에 더위로 기운이 떨어질 때쯤이면 어김없이 마늘을 잔뜩 넣고 끓여주시던 어머니의 마늘백숙에 관한 기억이 꽤 오래된 과거
장마전선이 북부지역에서 생겨나 비를 뿌렸다. 워낙 크게 발달한 북태평양고기압이 북쪽까지 세력을 확장한 때문이라고 한다. 요 며칠간 초여름 날씨라고 보기는 어려운 고온이 사단이었다. 어쨌거나 음력 5월10일에 내리는 비를 태종우라 하여 이날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고 믿어왔다. 바로 그날 비가 왔다. 태종께서 기우제를 지내도 비가오지 않자 섭위에 꿇어 하늘에 석고대죄를 청해도 비가오지 않았는데 태종이 승하하자 비가 내려 백성들은 풍년이 들게한 태종을 우러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풍년은 군주의 덕이요 만백성의 은혜였다. 6~70년대도 다를 바 없었다. 풍년을 기약하는 풍년기원제(영농발대식)를 우리 스스로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농사일에서 풍작이란 것은 최상의 가치였음을 누가 부정하랴. 그런데 요즘 농민들은
통풍은 과거에는 부자들이 많이 걸리는 병이었고, 비교적 드물었으나, 최근 들어 40대 이상 남성을 중심으로 빠르게 환자가 늘고 있다. 남자는 0.6% 여자는 0.1% 정도의 유병울을 보이고 있고, 2010년에만 10만 명 이상이 통풍으로 치료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확한 원인을 밝혀지지 않았지만, 퓨린이 풍부한 식생활과 각종 대사 질환, 비만, 음주 등이 원인이 되어 혈중 요산이 높아지고 신장에서 충분히 배출이 안되어 고요산혈증이 생기고, 요산 결정체가 관절에 쌓여 생기는 급성 염증성 관절염이다. 주로 엄지 발가락 주변에 생기나, 발목, 무릎, 손목, 손가락 등 어느 관절에도 생길수 있으며, 요산 결절이 피하에 생기기도 한다. 치료를 안하고 방치할 경우에는 신장에 요산 결석이 생기고 신장
피라미드 속 미라의 눈과 겨드랑이에서 양파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양파가 죽은 사람에게조차 활력을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란다. 삼국시대부터 먹어 온 것으로 알려진 파와는 달리 1906년에 서울 뚝섬에 원예모범장이 설치되면서 양파의 재배기술과 품종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으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양파를 먹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0 여 년에 불과하지만 짧은 재배역사와는 달리 우리의 양파 사랑은 참으로 뜨겁다고 할 수도 있겠다. 90% 이상이 수분이지만 남은 10% 속에 인체에 유용한 성분이 150가지 정도가 발견되었다고 하니 가히 경이로운 식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 까닭에 한국인의 식탁에서도 양파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식품이 되었지만 양파의 국내 유통 중 77%가 중국산임을 생각하
겨울이면 면소재지 곳곳에서 화투판, 카드판이 벌어진다. 소재지에는 열 개가 넘는 식당과 세 개의 다방, 호프집 두 곳이 있다. 일 년 사이에 식당이 다섯 군데나 늘어난 것은 갑자기 산동면에 여러 큰 공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장지산 한 편을 밀어 골프장 공사가 한창이었고 평택에서 삼척까지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닦는데 산동면에 인터체인지가 서게 되어 한적하던 동네가 온통 공사판으로 흥성거리게 되었던 것이다. 식당이라고 해봐야 제 농사지으면서 푼돈이나 뜯어 써볼까 하고 간판은 걸었으되 메뉴라고는 흔해빠진 염소탕이나 삼겹살, 순대국밥 따위였다. 그러던 것이 외지인들이 꼬이면서 식당이 농사보다 더 쏠쏠하게 되자, 갑자기 대여섯 개의 식당이 더 생겨난 것이었다. 심지어 돈가스 전문 식당까지 생겨나 시골 노인들이 포
사혈용 침으로 피 한두방울을 빼주는 것만으로도 ‘복학’을 치료할 수 있다 돌 전후의 아기들은 말을 못하니, 표정과 울음만으로 병을 알아내고 치료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열이 심하게 난다거나, 기침, 구토, 설사, 발진 등이 있다면 우리 아기가 어딘가 아프구나 알아서 금방 병원에 갈 수 있으나, 그렇지 않고 약간 찡얼거리는 상태라면, 기분이 나쁜 건지 어디가 아픈 건지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옛부터 복학이란 말을 써 왔는데, 배속에 숨어 있는 학질(말라리아)이란 뜻이다. 학질은 두통, 고열, 구토 등의 증상을 보이다가 심하면 사망하기까지 하는 무서운 병이다. 힘든 상황에서 어렵게 벗어나다는 의미의 “학(학질)을 떼다” 라는 표현이나, “내 고뿔이 옆사람 학질보다 중하다”는 속담에서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