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말이 없었다. 침묵이 무거웠다. 울분, 탄식, 체념이었을까. 굳게 닫힌 입이 열렸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합니까.” 보름 후면 걷이할 나락이었다. 흔히 하는 말로 이런 풍년이 없었고 보는 이마다 “나락 참 실하네” 한마디씩 거든 논이었다.황금물결이 이는 논으로 쇠스랑을 건 트랙터가 굉음을 울리며 진입했다. 벼 이삭은 나락보다 큰 바퀴에 속절없이 쓰러지고 짓밟혔다. 물이 덜 빠져 아직 굳지 못한 논의 진흙 사이로 나락이 파묻혔다. 시퍼런 하늘, 금빛 벼, 가을하면 떠올리는 천연의 빛깔 속에 이질적인 잿빛 진흙이 살풍경스러운 모습만큼이나 도드라졌다.논엔 ‘쌀 대란 대책없는 박근혜는 퇴진하라’, ‘정부는 재고미 종합대책을 마련하라’, ‘쌀 수입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바다와 맞닿은 비탈진 밭이 끝없이 펼쳐진 곳, 밭과 밭이 만나 이루는 완만한 곡선이 꼭 야트막한 산 능선처럼 이어진 곳에 농민들이 점점이 서 있다.농민들의 노동의 흔적이 오롯이 남은 자리엔 빨간 망들이 촘촘히 놓여 멀리서 보기엔 빨간색 대형 그물을 밭 전체에 펼쳐놓은 것 같다. 흔히 볼 수 없는 진풍경이다.지난 14일 우리나라 양파 주산지 중 한 곳인 전남 무안군 현경면 일대는 막바지 양파 수확에 온 고장이 부산했다. 현경면을 가로지르는 2차선 국도엔 빨간 양파 망을 가득 실은 트럭이 수매장 또는 판매처를 향해 쉴 새 없이 오갔고 국도변 갓길에는 막 수확한 양파를 직접 팔기 위해 농민들이 세운 ‘점방’ 또한 군데군데 설치돼 있었다.운전을 하며 시선이 가닿는 곳 마다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비포장 농로를 따라 트랙터가 굉음을 울리며 달리자 뿌연 연기가 피어오른다. 트랙터 후미에 달린 트레일러엔 수십여 개에 달하는 모판이 오와 열을 맞춰 촘촘히 쌓여있다. 볍씨에서 터 손 한 뼘만큼이나 자란 모가 얕은 진동에도 바람에 일렁이듯 흔들린다.모 심을 논에 오니 아직 이앙기가 도착 안했다. 3,000만원을 웃도는 가격에 구입한 이앙기에 말썽이 생겨 농기계 수리센터에 맡긴 게 오전, 모내기철에 이앙기가 말썽이니 속이 그만큼 더 탄다. 먹구름 잔뜩 찌푸린 날씨에 저녁부터 내린다는 비마저 흩뿌리니 일을 빨리 끝내야 한다는 부담에 마음만 더 초조하다.이윽고 수리센터 직원이 이앙기를 싣고 오자 잠시 시운전을 한 뒤 모내기에 나선다. 6조식 이앙기에 모판과 비료를 싣고 직사각형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볍씨 살포기의 전원을 켰다. 한 쪽에서 빈 모판을 놓자 궤도를 따라 이동하며 상토가 채워졌다. 그 위에 철원의 밥맛 좋기로 유명한 ‘오대’ 품종의 볍씨가 촘촘히 살포됐다. 볍씨가 드러나지 않도록 상토를 다시 덮은 모판이 다른 한 쪽으로 나오자 농민들은 손수레를 이용해 모판을 하우스로 옮겼다.이미 하우스 안에선 예닐곱 명의 여성농민들이 모판을 기다리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여성농민들은 손수레에 실려 온 모판을 오와 열을 맞춰 가지런히 하우스 바닥에 놓았다. 100평에 달하는 하우스 안에 약 1,500개의 모판이 빼곡하게 놓이자 바로 옆 동 하우스에서도 같은 작업이 반복적으로 되풀이됐다. 흔히 말하는 ‘하우스 못자리’였다. 이날 못자리에 나선 박호일씨는 “하우스 한 동당 2만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더디 올 듯 했던 봄이 시나브로 왔다. 겨울의 황량한 때를 씻어내기엔 아직 이르건만 하우스 문을 열고 마주하는 풍경이 ‘봄봄’ 한다. 알싸하고 향긋한 달래 향이 코끝을 자극하더니 이내 입가에 침이 고인다. 냉이와 더불어 봄이 옴을 알리는 대표적 봄나물, 달래. 겨우내 양분을 머금고 있다가 연녹색 줄기를 흙속에서부터 밀어 올린 달래에 봄의 기운이 한껏 스며든다.지난 15일 강원도 홍천군 서석면의 한 시설하우스에서 달래 캐는 작업이 한창이다. 일방석에 앉은 여성농민들은 고명딸의 머리카락을 빗질하듯 달래 줄기를 한 방향으로 가지런히 모으며 다듬더니 호미 대신 세발 쇠스랑을 이용해 달래를 뿌리째 큰 덩이로 캔다.이어 뿌리가 다치지 않도록 살살 흔들며 뿌리에 붙은 잔흙을 털어낸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뜨거운 열기가 아궁이 밖으로 검붉은 불길과 함께 쏟아져 나왔다. 일렬로 늘어선 총 10개의 가마솥엔 전날 씻어 담아놓은 콩 400kg(1가마솥 당 40kg)이 담겨 있었다. 불길이 약해질세라 수시로 장작더미를 아궁이 속으로 밀어 넣기를 한 시간 즈음, 가마솥 뚜껑 사이로 끓은 콩물이 넘치기 시작했다. 꽤 짙은 허연 거품이 가마솥의 사면을 타고 흘러내리려 하자 그간 불을 지피느라 여념이 없던 여성농민들이 물을 한 바가지씩 뜨더니 가마솥 뚜껑 위로 붓기 시작했다.“한 번 매(팔팔) 끓인 다음엔 서서히 끓게 냅두는 거여. 이렇게 물을 부어주면 콩물이 넘치지도 않고 콩도 잘 삶아지고 1석 2조여.”불을 살피느라 2시간 남짓 가량 아궁이를 떠나지 못한 이들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백남기 농민의 쾌유를 기원하고 백남기 농민이 바라던 세상을 만들기 위한 우리의 의지를 담아 마지막 백여덟 번째 절을 올립니다.‘12월, 서울 대학로 거리는 추웠다. 차갑게 식은 아스팔트에서 살이 에이도록 올라오는 냉기와 맞서며 맨발로 서 있기를 30여분, 백여덟 번 두 손을 모으고 백여덟 번 허리를 숙이며 백여덟 번 이마를 아스팔트에 맞대던 염원의 시간이 흘렀다. 지난 2일부터 2박 3일 동안 모두 123명의 시민이 마음을 모으고 실천에 옮겼다.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108배가 되고 ‘일만 배(拜)’에 이르렀다. 총 13,284배.“백남기 어르신! 다시 일어나셔서 당신이 살아온 삶이 승리하는 것을 보여 주십시오.” 일만 배에 동참했던 시민들의 마음이 모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현수막이 풍년이다. ‘쌀값이 개사료보다 싸다니’ ‘분노의 나락’ ‘쌀을 국정화하라’ 등등 2015년 동 시대를 힘겹게 버텨내는 이 땅 농심(農心)의 분노가 현수막 문구 하나하나에 고스란히 담겼다. 120년 전 동학농민혁명 전봉준 장군의 매서운 눈초리가 삽화로 살고 ‘쌀값은 농민값’이라는 명백한 진리가 일필휘지의 붓글씨로 새겨졌다.각 시‧군청 앞에 쌓인 나락 위에, 볏짚더미만 덩그러니 남은 쓸쓸한 풍경 너머에, 사람들이 모이고 떠나는 읍면 교차로마다 가지각색의 현수막이 게시되고 나부껴 지나는 이들의 눈길을 붙잡는다. 시시때때로 트럭을 운행하는 농민들은 아예 ‘지어먹을게 없다 생산비 보장하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적재함에 매달
▲ 아침 햇살이 정미소 안으로 쏟아진다. 지게차의 엔진 소리가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 유병록씨와 정미소 직원이 도정기계로 나락을 쏟아붓고 있다.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 수확한 담뱃잎을 운반하기 좋게 말은 포대는 무게가 평균 20kg을 넘는다. 노승우씨가 담뱃잎을 어깨에 메고 트럭으로 옮기고 있다. ▲ 담뱃잎을 따자마자 옆구리에 끼운다. 우비를 벗고 수확에 나서자 옷과 팔토씨가 금세 담배 진액과 이슬에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 지난달 23일 경북 안동시 서후면의 통일쌀 경작지에서 전농 경북도연맹, 전여농 경북도연합,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대구경북본부 등 농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손모내기를 하고 있다.
▲ 경희대 고승범(왼쪽), 정유진 학생이 오이 넝쿨에 유인줄을 매다는 중 우스개소리를 하며 웃고 있다. 밀짚모자와 알록달록한 일바지가 제법 잘 어울린다. ▲ 이과대학 농활대장인 이중근씨가 가지 순 양쪽에 집게를 꽂고 있다.
▲ 동네주민들이 설 대목에 출하할 배를 포장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게 참 더러운 세상인기라.” 경남 밀양시 상동면 고답마을 115번 철탑 아래서 만난 장문선(61, 고정마을)씨는 착잡한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송전탑 반대 4개면 주민들과 함께 한국전력의 신고리 - 북경남 765kV 송전 중단을 촉구하는 철탑 밑 농성에 들어간 지 12일째(6일 현재) 되는 날이었다.“이 싸움이 11년째라. 마을이 우예 됐는지 아나. 반쪽이라. 경로당에 가면 38선 그어놓고 (송전탑) 찬성 측 반대 측 갈라 앉는다. 말도 안 섞지. 섞어봐야 싸움뿐이라. 담 하나 없는 동네에 CCTV 설치한 집도 있고. 이래가 어찌 살겠노.”밀양 주민들은 지난해 12월 26일 115번 철탑 아래에 다시 천막농성장을 세웠다. 10년간 반대 투쟁에 나서면서 당했던 수많은 폭력과 인권유린, 마을공동체
눈보라가 몰아쳤다. 해발 1,242m 가칠봉에선 몸이 휘청거릴 정도의 강풍이
▲ 팔뚝 굵기보다 더 굵은 무를 차곡차곡 트럭에 싣는다. 이날 수확한 무만 1,000여개에 달했다. ▲ 드넓은 배추밭에서 쓸만한 배추를 고르는 게 농민들의 일이었다. 고르고 고른 배추가 탑차에 실렸다.
20여일 후면 수확할 나락이었다. 내년 봄 풍년농사를 기원하며 모를 심을 이앙기였다. 알알이 영글던 이삭은 갈아엎었다. 도청에 반납하려던 이앙기는 부숴버렸다. 10여분 만에 논은 흙탕물로 변했고 농기계는 산산조각이 났다. 분에 찬 농민들은 머리를 밀었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엔 잘린 머리카락이 붙어 흘러내리지 않았다. 삭발하는 내내 두 손에 든 손종이엔 ‘쌀 전면개방 선언 무효’가 또렷이 적혀 있었다. 지난 1일 정부의 쌀 시장 개방에 반대하는 농민들은 전국 각지에서 투쟁선포식을 열었다. 평택, 춘천, 당진, 부여, 예산, 괴산, 고창, 정읍, 진주, 창원 등지에서 논을 갈아엎고 농기계를 부수고 트랙터를 앞세워 ‘쌀 전면 개방 철회’를 정부에 요구했다. 오는 18일엔 전국 시군 동시다발 농
* 본 기사는 전남 영광서 농사짓는 강민구(51)씨 인터뷰 내용을 편지글로 각색했음을 미리 밝힙니다.어머니, 논을 갈아엎은 지도 어느덧 20여 일이 지났네요. 논을 갈아엎던 그 날은 진절머리 나도록 햇볕도 뜨겁고 숨도 턱턱 막히더니 요즘은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까지 부네요. 시간 참 덧없지요. 얼마 전, 입추도 지났으니 곧 수확의 계절이 다가오겠죠.어머니, 분을 참을 수 없었어요. 이 나라 정부가 쌀마저 외국에 내어준다 하니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요.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던데 가만히 있자니 우리 농민들 대놓고 무시할까봐 몸부림치 듯 자식 같은 논 짓이겨 버렸습니다. 속울음 삼키며 술도 많이 마셨네요. 그 날 이후 어른들께 혼 많이 났어요. 집안 어른, 마을 어른 할 것 없이 ‘미친놈’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