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여름부터 초가을에 비가 잦아 가을농사가 늦게 시작되었습니다. 그 궂은 지난 계절의 날씨와는 달리 깊은 가을 날씨는 연일 맑아서 고맙다고나 할까요? 짧은 기간에 가을 파종을 하려하니 곁눈질 한번 못하고 내리 일해야 했습니다. 귀촌한 지 4년째 접어든 이웃도 농사의 양을 조금 늘렸습니다. 풍경 좋은 바닷가 펜션 마을에 이사를 했더라면 필경 펜션 일을 했을 분들이, 공기 좋다고 우리 마을로 이사 온 바람에 농사꾼 이웃과 더불어 살며 텃밭농사를 조금 늘이기 시작하더니 올해는 거의 전업농 수준으로 거듭났습니다.새내기 농사꾼 부부는 갑자기
얼마 전 후배가 ‘왜 남자들은 농사일은 해도 살림은 안할까?’라고 물었다. 주말 부부로 사는 후배는 얼마 전 남편 농장에 다녀왔는데, 남편 농장에 일 도와주러 온 대부분 남성들은 여성이 나타나 밥을 해주기 전에는 일만 하고 있더라고 했다. 하우스 일은 궁금해도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 점심에 뭘 먹을 수 있는지는 전혀 안중에 없다고 했다. 이것이 남녀의 차이인지 성향이 차이인지에 대해 우린 한참을 얘기 나눴다.농촌에서의 성역할은 도시보다 더 보수적으로 구분되는 것이 현실이다. 마을 행사가 있으면 여성들은 대부분 먹을 거 해내느라 바쁘
어제는 텃밭을 정리하느라 온몸이 땀으로 흥건했는데 오늘은 들에 나오니 겉옷 하나를 더 입고 싶은 날씨다. 가을이라는 계절이 펼쳐진 모양이다. 농사꾼은 봄에 바빠야 가을에 볼일이 있다는데 올해의 봄과 여름은 정말 혹독한 시련을 줬다. 봄에는 갑자기 따뜻했다가 다시 추워져서 과실수의 꽃눈이 우왕좌왕 갈피를 못 잡게 했다. 여름에는 몇 번의 폭우, 무엇 하나 남기지 않고 다 쓸어버리고 말겠다는 다짐이라도 한 듯 앙갚음을 품은 빗줄기였다. 덕분에 배 터지게 애를 썼지만 계산상으로 별 볼 일 없는 농사꾼의 가을이다.이곳의 밭작물은 대파 일색
추석연휴가 마무리돼 갑니다. 언제나 사람들은 태어나고 세상을 뜨지만 명절이나 기념일 등에 태어나고 세상을 뜨는 건 각별한 느낌입니다. 설날이 생일인 막내 동생, 20년 전 추석을 하루 앞두고 칸쿤에서 자결한 이경해 열사…. 결혼이나 명절을 앞두고 초상이 나면 방문은 하지 않고 조의금만 보내는 게 다반사인 농촌에서, 쓸쓸하게 장사를 지내야하는 것 같아 심난합니다.이번 연휴에도 아들과 딸 초등학교 동창들의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이나 아이들이 적은 농촌에서 초등학교 동창들은 같은 지역에서 태어나
2020년부터 농림축산식품부에서는 농촌특화형 성평등 전문강사 육성을 야심차게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늦었지만 꼭 필요한 사업이고, 머잖아 농촌사회에 유의미한 진전이 올 것이라 여기며 1기 전문강사 과정에 등록했습니다. 물론 그동안의 활동에서 간간이 여성농민을 대상으로 여성농업정책이나 농촌현실을 이야기하며 농촌사회의 불평등을 말해왔습니다만, 부족함이 많던 차에 좋은 기회가 생긴 것이지요.공부하는 과정은 재미있었습니다. 그쪽 분야에서 쟁쟁한 경험을 가진 이론가나 정책가, 또는 실천가들이 강사로 편성돼 그동안 강사로서 부족했던 점을 보충
‘순실이 어디가냐? 알바요! 뭐? 언니한테 알빠요가 뭐여!’ 얼마 전 농촌 어르신들이 등장해서 화제가 되었던 일자리 연결 회사 광고가 있었다. 어르신들이 말귀를 잘 못 알아들으시는 것을 재미있게 만든 광고였는데, 실제로 젊은 우리는 알바를 찾고 있다. 여름 농사철이 끝나고 나면 대략 올 한 해 농사지은 것의 계산이 나온다. 후작으로 심은 작물은 어차피 도지나 투입된 비용으로 나갈 것이니 제외한다. 매년 계산을 해보면 이건 아닌데 싶어진다. 직거래를 하면 좀 더 남을 것 같지만 택배비 박스값 주고 나면 뭐가 남는지 잘 모르겠다. 주문
햇살이 다소 누그러졌지만 여전히 공격적이다. 다시 장마가 시작된 것처럼 3일째 비가 오고 있고 앞으로 3일 동안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다. 1시간에 쏟아진 비가 20mm가 넘어도 더 이상 놀랍지 않고 자주 겪는 현상이 되었다.겨울배추를 파종해서 본잎이 나오기 시작했다. 보름 후에는 정식을 해야 하는데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 달린다. 수시로 난동을 부리는 날씨 때문에 농사가 더 어렵고 감당해야 하는 수고와 비용이 늘어나고 있다. 기후위기를 겪으며 어찌어찌 농사를 지어놓으면 무관세 수입이라는 신종수법으로 농산물 가격을 때려잡
너무도 따뜻했던 4월이었습니다. 우리는 아직 안 심은 고추를 남들은 다 심으니 조바심이 날 정도였습니다. 좀 일찍 심은 고추가 잘 자라 가는데 갑자기 5월 중순에 며칠 추운 날이 계속 되었고 많은 밭이 냉해를 입었습니다. 사람들은 냉해 입은 고추를 뽑아 다른 작물을 심기도 하고 고추모종을 다시 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애를 쓰며 키워놓은 고추가 계속되는 비에 병에 걸려 죽어갔습니다. 마을에서 지금까지 고추밭 망가지지 않은 집을 찾기가 쉽지 않은 올해입니다. 고추농사가 망가지니 고추 값이 정해지지 않습니다. 1년 먹을 고춧가루
우리 마을에 산 지 꼭 15년째입니다. 하늘빛과 산그늘은 그대로인데, 속살은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품앗이로 심던 마늘은 양도 많이 줄었고, 품앗이 문화도 거의 없어졌습니다. 빈 밭의 풀도 못 봐주던 그 부지런함은 어데로 가고, 예사로 밭고랑에 풀이 자랍니다. 당연하게도 그 무서운 풀을 감당할 몸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루 일하면 이틀은 병원에 다녀와야 하는 처지다보니 풀보다 몸을 챙길 수밖에 없게 된 것이지요.무엇보다 더워도 너무 더운 여름날씨에 농사일을 할 수가 없다보니, 노동의 평준화가 이뤄진 것입니다. 농민 모두 부지
작년 가을, 농업경영체등록을 하고자 임대차계약서를 쓸 수 있는 땅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어렵게 지금 농사짓는 곳을 얻게 되었다. 새로 얻은 밭은 도로 옆에 있긴 하지만 양 옆으로 나무가 심겨 있는 길을 따라 들어간 외진 곳이다. 작년까지 농사짓던 땅은 면 거리 한가운데 있었다. 덕분에 동네 어르신들의 온갖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잔소리도 그만큼 들었지만 혼자 일해도 긴장되거나 무섭지는 않았다. 오히려 하루에 몇 번씩 지나가시면서 말을 건네시는 어르신들을 피해 길에서 먼 고랑에서 일을 하기도 했었다.그런 상황에 익숙해져서인지 새
요즘은, 어둑한 5시에 집을 나서 5시 20분쯤이면 주변이 밝아지면서 밭일을 시작할 수 있다. 햇살이 아직 비치지 않았고 일도 시작 전인데 땀샘은 언제 열렸는지 온몸에서 물기를 밀어낸다. 빗물처럼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가꿀 수 있는 참깨가 장마를 견디고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거듭 감사한다. 참깨 꼬투리가 굵어지며 여물이 들고 있는데 끄트머리에서는 계속 꽃이 피고 있다. 조만간 참깨를 벨 예정이라 더 이상의 생식 성장은 체력 낭비다. 꽃이 피는 끄트머리를 잘라주면 윗부분의 씨알까지 실하게 여문다.누워서 껌 씹는 정도의 가벼운 일감으로
SK가스화력발전소에서 내뿜는 매캐한 냄새와 자욱이 깔린 알 수 없는 안개로 창문도 못 열고 밥을 하다보면 열불이 납니다. 끈끈한 열불에 불쾌함을 더해주는 새벽의 마을방송. 오늘은 한 자루에 3만원씩 하는 소금을 반장에게 신청하라는 마을방송이 나옵니다. 여러 가지 생각이 오갑니다.경기여주여성농업인센터에서는 일주일마다 식사준비가 어려운 지역주민들에게 국과 반찬을 만들어 배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김치를 담기 위해 배추와 소금을 사려고 소금이 어디에 있냐 물으니 마트에서 일하는 분들이 소금이 다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
얼마 전, 농민에게 주는 상을 심사하는 활동이 있었습니다.감히 농민이 농민을 심사할 수 있는지, 그 자격 기준이 있다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 덥석 참가했습니다. 워낙 권위가 있는 상인지라 두말할 나위가 없기도 했지만, 또 다른 사심은 다른 농가의 속살을 볼 수 있는 더없이 귀한 기회이다 싶어 냅다 수락하였습니다. 최종 후보군에 오른 세 사람, 서류상으로는 대상자의 공적을 충분히 알기 어려웠기에 현장을 일일이 찾아다니는 수고로움이 심사과정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심사위원도 세 사람, 각기 다른 영역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이었기에 서로
올해 후계농으로 선발되어 필요한 절차를 밟아가는 과정에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지역의 또래 청년들을 만날 기회가 생겨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도시지역이라 농지가 너무 비싸서 고민이라는 얘기와, 농지를 임대하기도 힘들어서 빚을 내서라도 사야겠다고 결심한 얘기 등을 나누다가 작년에 땅을 임대하려고 고군분투했던 얘기를 하게 됐다.작년에 농어촌공사에 웬일로 꽤 괜찮은 땅이 임대로 올라와서 서류를 준비해서 접수를 했다. 나보다 먼저 접수한 인원이 있어 나의 순번은 2번이었고, 청년이 우선이니 내가 되겠거니 하고 있다가 그 농지에 대한 사정을
부실한 보리타작을 마치고 모내기하기까지의 과정은 실로 어떤 작전을 치른 것 같다.보리타작하는 클라스 콤바인이 맨 마지막 논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는 반대편 논에서 보릿대를 태우기 시작했다. 좋은 유기물을 태우는 것이 아깝지만 보릿대가 무더기로 둥둥 떠다니면서 심어놓은 어린모를 덮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보릿대를 태우면서 논두렁에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풀을 한 번 베는 효과가 있긴 하다. 바람 방향을 맞춰 보릿대에 불을 붙여 놓으면 바람이 알아서 보릿대를 태워준다. 보릿대를 태우면서 논 물꼬도 막았다.보릿대가 얼추 태워졌다 싶
하지가 지나고 장마가 온다니 급한 마음에 토요일, 일요일 감자를 캤습니다. 다 못 캔 감자는 비가 잠깐 그치는 틈을 타 캐야 합니다. 심을 때의 한 상자가 캘 때는 스무 상자도 넘게 나옵니다. 감자는 잘 되었는데 그 감자들을 캐고 고르고 담고 하다 보니 잘 돼도 너무 잘 됐다는 약간의 불만이 나오고, 급기야 다 먹지도 못하는데 잔 것은 담지 말고 버리자는 아들의 제안도 나옵니다. 그래, 저거 주워가봐야 먹지도 않을 텐데 하면서도 아들 몰래 잔 감자들을 통에 담습니다.후덥지근한 날씨에 감자를 캐고 들어와 씻고 밥 차리고 할 일들을 하
모내기가 끝나자마자 미뤄뒀던 밭일에 비로소 눈을 돌립니다. 어느새 키가 훌쩍 자란 고추는 여차하면 가지가 쳐질 판입니다. 얼른 줄을 쳐야 고추가 주렁주렁 달릴 터이고, 소독소독 자란 참깨도 솎아줘야 합니다. 밭고랑 사이에 풀은 또 어찌나 빨리 자라던지, 자꾸 손을 잡습니다. 바쁜 일이 끝났다 해도 자잘한 일들이 넘치는 농촌 늦유월의 복판을 삽니다.젊은 시절에는 농사일이 힘들어서 가급적 일을 적게 하고 쉬고 싶은 마음이 많더니, 희한하게도 나이가 들수록 농사일이 더 재미있고 애착이 가기도 합니다. 그것이 농민으로 살아온 세월의 증거라
비가 몇 차례 쏟아지고 나니, 풀이 기세등등하게 올라오기 시작한다. 풀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나는 제초제를 비롯한 농약을 쓰지 않는다. 작은 풀일 때는 괭이로 긁고, 조금 더 크면 호미로 뽑고, 풀이 무릎 가까이 크기 시작했다 싶으면 예초기를 사용한다. 물론 그렇게 할 수 있는 적은 규모라서 가능한 선택이다.그래서 농사짓기 시작한 해에 선물 받아 쓰기 시작한 충전식 전기예초기는 내가 좋아하는 영농도구이다. 작동이 쉽고, 가볍고, 무섭지 않다. 게다가 충전한 배터리가 다 되면 작업을 중단할 핑계도 만들어 쉴 수 있게 해주는, 눈치가
기상청에 대한 신뢰도가 자꾸 떨어진다. 장마철도 아닌데 일기예보가 실시간으로 달라진다. 참깨를 심으려고 일꾼들과 비닐을 씌우면서 일기예보를 자주 확인했다. 이틀 후에 비 올 확률은 60%인데 날씨는 흐리다고 발표했다. 레이더 영상에 파랗거나 빨간색 색으로 잡히면 비구름이 몰려오고 있다는 것인데 60%의 확률이란다. 비가 올 수도 있고 오지 않을 수도 있음을 감안하라는 것인지 불안하기만 했다. 일꾼 중에 중국 연길에서 온 사람이 있어 일기예보를 좀 봐달라고 했더니, 중국 기상청 일기예보는 이틀 후에 비 올 확률이 90%였다. 다음날이
작년 여름부터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앉을라치면 “아이구, 다리야”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고 일어나려면 손으로 바닥을 짚어야 했습니다. 일시적인 증상이라고 여겼는데 8월 말, 무거운 짐을 들고 오랫동안 걷고 난 후 점점 심해졌습니다. 땅을 딛는데 구름을 걷는 느낌이었고 이곳저곳으로 통증이 옮겨 다녔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국과 반찬들을 만들어 배달을 하는 날은 한숨으로 시작해 한숨으로 끝났고 다리를 헛디뎌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좋아지겠지, 좋아지겠지 했는데 더했다 덜했다 오락가락하면서 나빠지는 쪽으로 치달았습니다.제 통증 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