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윤병구 기자]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광주전남연맹(광전연맹)은 지난달 31일 광주시청 앞에서 ‘농민대표를 국회로! 민중당 지지! 광주전남 농민 1만인 선언운동 기자회견’을 개최했다(사진). 광주전남의 농민들이 유일하게 당선권에 있는 민중당 비례대표후보 2번 김영호 농민후보를 반드시 국회로 보내 농민 직접정치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기자회견엔 문경식·박행덕 전 전농 의장과 김재욱 전 전농 광주전남연맹 의장, 위두환 전농 부의장, 권용식 전농 광전연맹 의장, 손솔 민중당 청년비례후보, 이성수 민중당 전남도당 위원장, 박형대
[한국농정신문 윤병구 기자]지난 9일 광주광역시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 민중당 농민 국회의원 예비후보 참배식이 진행됐다.참배식엔 김영호·전성기·안주용 민중당 농민 국회의원 예비후보가 참석했다. 이들은 전국농민회총연맹 조직후보로 결정된 바 있다. 더불어 문경식·한도숙·박행덕 전 전농 의장과 전농의 박흥식 현 의장, 위두환 부의장을 비롯한 회원, 박형대 민중당 전남농민위원장과 당원들이 참석했다.세 후보는 민족민주열사들 앞에 전농 조직후보로서 농민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는 농민의 직접 정치 실현을 반드시 이뤄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광역자치단체 최초의 농민수당 지원조례를 주민발의한 전남 농민들의 사례가 관계자들의 깊은 탄식을 자아내고 있다. 아무리 많은 주민들의 뜻을 모은들 행정과 의회가 이를 너무나 쉽게 덮어버릴 수 있다는, 주민조례청구제의 치명적 허점이 드러난 것이다.전남지역 농민들은 올해 전남 농민수당 지원조례 주민발의에 뛰어들었다. 피폐한 농업환경 속에서 자신들의 가치를 인정받고자 스스로 나선 것이다. 지난 5월 30일 조례청구 교부신청을 한 뒤 승인이 떨어진 6월 15일부터 불과 45일 동안 4만3,151명의 서명을 받아냈
[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걸음마 단계를 준비하고 있는 광역지자체 농민수당에 지금까지 농민수당 운동을 주도했던 농민들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못하는 사태가 전북에 이어 전남에서 또 다시 벌어졌다. 전남 농민들은 지난달 말 여의도에서 청와대와 국회의 상여를 든 지 일주일도 안 돼 전남도의회의 상여를 들고 행진하며 규탄에 나섰다.30일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전농 광전연맹), 민중당 전남도당, 민주노총 전남본부, 전남진보연대는 전남도의회 앞에서 전남도의회가 도민을 무시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며 기자회견을 열었다.앞서 20일
[한국농정신문 심증식 편집국장]“전남 보성군 노동면 거석리에서 나서 한 번도 주민등록을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았어. 군대도 안 갔고, 전농 의장할 때 서울 왔다 갔다 한 거 빼고는 타지에 적을 둔 적이 없어. 그야말로 토박이야.” 문경식씨는 대를 이어 고향을 지키며 살아온 전형적인 농민이고 농촌사람이다.“10살 때부터 할머니 손잡고 농사일 배우러 다녔어. 내가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됐지. 10식구가 한 집에 살았는데 일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어.” 그는 전남 보성의 가난한 집안 7남매 중 넷째, 아들로는 둘째로 태어났다. 위로 세분의
[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고난에 찬 삶을 통해 사랑을 얻고, 그 사랑의 헌신적 실천을 통해 지혜를 얻었으며, 그 사랑과 지혜로 해방을 얻으셨네(심규한 중앙대민주동문회 4기 회장 추모사 중).”백남기투쟁본부를 전신으로 하는 ‘백남기농민 3주기 추모제 추진위원회’가 고인의 선종 3주기인 오는 25일을 기리기 위해 작년에 이어 올해도 추모의 자리를 마련했다. 북상하는 태풍이 만든 강한 비에도 불구하고, 300여명에 달하는 인파가 추모제에 참석하기 위해 21일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을 찾았다.정현찬 백남기농민 기념사업회 준비위원장
‘압구정’은 한명회가 지은 정자다. 이후 압구정은 조선 말기 철종의 부마인 박영효에게 하사됐다가 갑신정변으로 박영효가 실각되면서 사라지게 됐다. 지금은 압구정, 정자는 사라졌지만 지명으로 남아있고 부유하고 화려한 강남의 상징으로 남아있다.압구정은 한도숙 전 의장의 고향이기도 하다. 강남개발이 시작되기 전 압구정은 배받이었다. 한 전 의장의 아버지는 대지주의 마름으로 살았다. 지주보다 더 악독하다는 그 ‘마름’이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는 착한 마름이었다고 한다.그래서 수십 년 마름을 하면서도 땅 한 평 차지하지 못했다. 한 전 의장은
[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전농 광전연맹)과 민중당 전남도당(위원장 이성수)은 지난달 30일 전남도청 앞에서 ‘전남농민수당 조례안 발표 및 주민발의 청구 기자회견’을 열고, 문경식 전 전농 의장(오른쪽)을 청구인 대표로 해 조례청구 교부신청을 마쳤다. 조례안 발의를 위해 이제 두 주체는 서명 수임자들로 하여금 도내 19세 이상 주민 총수 157만6,735명의 약 1%인 1만5,768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내야 한다. 전라남도(지사 김영록) 역시 농민수당 시행 의지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농민들과 민중당이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지난 11일 광주광역시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 열린 ‘민중의 벗 고 정광훈 의장 8주기 추모제’에서 문경식 추모사업회장이 추모사를 하고 있다. 문 회장은 “마지막 순간까지 민중운동과 진보정치를 위해 헌신하셨던 의장님에 대한 그리움이 더 간절해진다”며 “노동자, 농민, 빈민, 청년학생, 여성 등 각계각층 진보 대중들을 하나의 전선, 하나의 진보정당으로 묶어 세워 자주통일을 완수하고 민중의 집권을 반드시 실현하겠다”고 다짐했다.
[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전국농민회총연맹(의장 박행덕, 전농)이 지난 24일 충북 증평문화회관에서 17기 2차년도 정기대의원대회를 열고 새해의 농민운동을 준비했다.박행덕 전농 의장은 대회사에서 “올해 전농은 국가가 생산과 유통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해 농민에겐 적정 가격을 보장하고 국민에겐 안정적으로 농산물을 공급하는 주요 농산물 공공수급제 도입과 농지개혁을 강하게 요구할 것”이라며 “또 평화와 번영, 통일의 시대를 맞아 남북농민 공동행사 추진, 북측 농민 초청 통일품앗이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박 의장은 “전농이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소 좀 키우다보니 퇴비가 제법 나와. 그럼 모아뒀다가 일 년에 한 두 번씩 주변에 나눠. 요새들 많이 가져가지. 오늘도 몇 집에서 가져갔어. 로터리 치기 전에 뿌려놓으면 땅심 기르는데도 좋잖어. 경운기 끌고 올 때도 있고 트럭 올 때도 있고. 양이 좀 되니깐 트랙터로 한 번씩 퍼 담으면 금방 끝나. 우리 논에도 이따 뿌릴 거여.”
[한국농정신문 심증식 편집국장]2015년 11월 14일 백남기 농민은 경찰이 조준발사한 살인적인 물대포에 쓰러졌다. 그리고 300여일 동안 서울대학교병원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다 사망했다. 백남기 농민의 사망은 무도한 박근혜정권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였다. 백남기 농민의 사망 이후 연이어 벌어지는 사태는 박근혜 정권의 말기적 발악이었고 국민들은 용서하지 않았다.전남 보성군 웅치면 농사꾼 백남기 농민을 추모할 때마다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노동면에 사는 최영추 전 보성군농민회장이다. 고 백남기 농민이 11월 14일 서울 민중대회에 참
[한국농정신문 배정은 기자·사진 한승호 기자]남과 북의 농민대표가 함께한 마지막 식사가 벌써 10년 전 일이 됐다. 12번의 금강산과 5번의 평양, 10년도 더 된 일이지만 남과 북의 농민들이 얼굴을 마주하고 희망을 이야기했던 때를 문경식 전 전농 의장은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전농이 남북농민교류에 나서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2000년 10월이었다. 북에 큰 행사가 있다며 남측 사회단체 대표들을 초청하면서 비행기를 보내줬다. 내가 낙농을 하고 있을 때라 직접 가지는 못했는데 행사에 참석했던 남과 북의 농민대표들이 서로의 농업현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당시 북의 농민들은 냉해와 서리피해로 어려운 시기였고 농자재도 부족할 때라 전농이 못자리용 비닐보내기 운
[한국농정신문 서정란 기자] 지난 12일 전농 광주전남연맹은 ‘2017 광주전남 농민 가족한마당’을 개최했다.지난해 나주농민회에 이어 올해는 광주시농민회가 바통을 이어받아 광주 빛고을체육관에서 1,000여명의 농민들이 한데모여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쌀부터 통일! 농업대개혁 쟁취! 농업혁명 실현!’의 기치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는 문경식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를 비롯해 김영호 전농 의장, 임우진 광주 서구청장 등 많은 기관·사회단체 인사들이 참여해 자리를 빛냈다.임우진 광주 서구청장의 환영사에 이어 김영호 전농 의장은 축사를 통해 “농민들이 주인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농민회를 강화해야 하며,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노동자, 농민, 민중의
‘가장 유능한 정치인은 민중이다’‘새민중정당(가칭)’이 지난 9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창당발기인대회와 창당준비위원회 발족식을 열고, 대중적 통합정당 건설을 성사시켜 민중의 직접정치 참여를 이뤄내겠다는 결의를 내비쳤다. 창당발기인으로는 민중진영의 대표자 250여 명이 참여했다.창당을 주도한 통합진보당 출신의 김종훈‧윤종오 국회의원, 김영호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문경식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 강병기 민중의꿈 상임공동대표 등과 더불어 노동계에서는 강규혁 서비스연맹 위원장, 김상구 금속노조 위원장, 이윤경 사무금융연맹 위원장, 김태선 정보경제서비스연맹 위원장, 이종화 건설플랜트노조 위원장, 권오길 민주노총 울산본부장, 김재하 민주노총 부산본부장, 김재명 민주노총 경남본부장,
[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故 정광훈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의장의 6주기 추모제가 지난 13일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 거행됐다.이날 추모제에는 박석운‧한충목 진보연대 상임대표, 이광석‧한도숙 전 전농 의장, 박인기 추모연대 상임의장, 김순애 전여농 회장, 민중연합당 김선동 전 대선후보, 정의당 윤소하 의원 등을 비롯한 각계 인사가 참석했다. 또 생전의 그를 기억하는 200여 명의 추모객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였다.문경식 정광훈의장추모사업회장은 “자주 민주 통일전사들이 미처 끝내지 못한 혁명의 축제를 준비하다 의장님을 뵙기 위해 모였다”며 “다시 조국과 민족의 전사로 의장님이 되서 민중의 바다로 가겠다”고 고인의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김영호 전농 의장은 “
[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광주전남지역 농민 1,010명이 민중연합당 김선동 대통령 후보 지지선언을 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1010명’의 농민숫자는 김선동 후보 ‘기호 10번’을 상징한다.광주전남 농민들은 지난 2일 광주광역시의회에서 민중연합당 김선동 후보 지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김선동 후보지지 농민 1,010명을 대표해 문경식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 위두환 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 안주용 민중연합당 농민당 대표 등이 참석했다.참석자들은 “김선동 후보는 국회의원 시절 농해수위 활동을 통해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를 발의하고 송아지생산안정제 정상화, 대기업 농업 진출 저지, 쌀 목표가격 인상, 쌀 관세화 개방 반대 등 농민을 대변하면서 농민을 위해 끝까
[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농업현실 반영 북청사자놀음 인기대회 초반 신명나는 풍물패와 함께 등장한 사자놀음. 아침부터 먼 길을 달려온 농민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공연에서 사자는 농민들의 입장을 대변했고 ‘2017 농민승리’라는 푯말을 내보여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또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이 모였냐”는 사자놀음 양반의 물음에 박형대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정책위원장은 “30년 전 쌀값으로 줘 놓고 벼 수매가를 다시 환수하라기에 화가 나서 올라와 부렀지!”라는 뼈있는 한 마디로 답해 농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미 항공모함 회항에 긴급발언한미군사합동훈련을 마치고 호주로 향하던 미 항공모함 칼빈슨호가 다시 방향을 틀어 한반도로 돌아온다는 소식에
[한국농정신문 서정란 기자] 민중연합당 김선동 대통령 예비후보는 지난 16일 전남 보성군 웅치면의 고 백남기 농민의 밀밭에서 벼 수매가 환수 원천무효 기자회견을 열었다.100여명의 당원들과 함께한 기자회견엔 문경식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 김영호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등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문경식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백남기 농민이 살아계셨다면 김선동 후보의 출마를 누구보다 반기셨을 것”이라며 “농민주권시대를 열기위해 투쟁하다 희생된 백남기 농민의 밀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의미가 깊다. 농민이 국민으로서 대접받는 사회를 건설하는데 모두가 힘을 모아 나가자”고 당부했다.김영호 전농 의장은 “모든 대선후보에게 우선지급금 환수 입장을 요청했는데
[최용탁 소설가]우리나라 민중운동이 짊어져야 하는 과제는 기나긴 세월 동안 반제(反帝)의 문제였다. 갑오년 동학투쟁부터 의병투쟁과 독립투쟁, 해방 후의 격랑과 이후에 펼쳐진 모든 운동 속에서 외세는 늘 상수였다.양요(洋擾)로 대변되는 봉건권력의 무능과 자주적 민족국가를 이루지 못한 내재적 요인, 냉전이라는 외인이 한반도에서 첨예하게 부딪친 전후 정세, 미 제국주의가 규정한 동북아시아 전략에서 철저한 하위 단위에 불과했던 남한의 지위 속에서 민중운동은 이중삼중의 고난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반공과 근대화라는 이중의 이념적 고난을 돌파해나가는 과정이 바로 지난한 민중운동의 가시밭길이었고 농민운동은 그 험로에서 가장 치열할 수밖에 없는 부문운동이었다. 농민운동은 이 쓰라린 근현대사를 관통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