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병신년(丙申年)은 가히 “난세(亂世)”라 불러 부족함이 없는 한 해였다. 그 마지막 날 12월 31일, 광화문광장에 모인 촛불 시위대 말석에 참가하여 박근혜 치하의 국정문란과 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 사태를 규탄하던 중 어마지두에 새해 정유년(丁酉年)을 맞이한 소감은 착잡하였다. 박근혜 통치하의 4년을 되돌아 볼 때 이미 해마다 곳곳에 나라가 망할 징조가 나타나고 있었다.갑오년의 304명 세월호 수장(水葬), 을미년의 옥시싹싹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1,000여명의 살상사건, 병신년의 최순실과 문고리 3인방들의 국정농단 사태, 이외에도 2014년 갑오년 코오롱의 경주 마우나 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고(138명의 사상자)와 장성 효사랑 요양병원 화재사고(28명의 사상
[한국농정신문 심증식 편집국장]제주도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에서 당근 농사를 짓고 있는 백의통씨를 찾았다. 1939년생 78세, 그 세대의 사람들이 모두 그러하듯 백씨의 삶엔 우리 근대사의 질곡이 그대로 담겨있다. 백씨는 일본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이름도 특이하다. 일본에서 지은 이름 ‘히로야마 요시미치(白山 義通)’의 한글식 발음이다.아버지 고향은 제주, 아버지는 일제 때 일본 오사카에 건너가서 생활을 했고 백씨가 9살이 되던 해 해방과 더불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해방된 고국에 돌아온 아버지는 2년만에 4.3항쟁 희생자가 되었다. 이후 홀어머니와 어렵게 살아왔다.1972년 제주 구좌농협 창립 멤버로 활동하다가 농협에 들어가 일을 하게 되었다. 25년간 농협근무를 하고 1997년 정년퇴직
[최용탁 소설가]한-미 FTA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정점을 찍는 일대 사건이었고 그만큼 자본과 민중의 대결 또한 길고도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공식적으로는 노무현 정권 때인 2005년에 시작되어 2011년 이명박 정권하에서 완전하게 체결된 조약이지만 그 뿌리는 더 깊었다.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이미 1989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는 ‘아태지역국가들과의 FTA 체결에 대한 검토 보고서’에서 미국에게 바람직한 FTA 대상 국가로 싱가포르, 대한민국, 대만을 꼽으면서 한-미 FTA 체결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였다. 애초에 미국의 주도로, 미국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시작된 협정이었고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자본주의 하위체제로서 한국은 비주체적 협상 파트너였다. 미국은 세계 제일의 농산물 수출 대국이었고
[김성훈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대표]전인권 ‘걱정말아요 그대’“우리 다 함께 노래합시다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합시다.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고 말해요. 새로운 꿈을 꾸겠다고 말해요.”청와대 200미터 앞까지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운 백만 군중 앞에서 울부짖듯 가객 전인권의 표효소리는 민중들의 떼창과 함께 어울려 청와대 구중궁궐 깊숙이 파고 들었을 것이다.필자는 56년 전 1960년 4월 19일 대학 3학년생일 때, 그 길을 민주주의 열망에 피가 끓는 학생 청년들 무리에 섞여 “독재자 이승만 하야”를 목이 터져라 외치며 미치도록 달렸었다. 총성이 난무했던 그 길을 이번에는 앞뒤 좌우가 군중 떼에 밀착되어
[한국농정신문 최용탁 소설가]농민들에게 쌀은 언제나 삶의 원천이자 기쁨이었다. 쌀농사에 맞추어 한 평생을 살다간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쌀은 기쁨도, 식량주권을 지킨다는 자부심도 아닌 게 되어버렸다. 오히려 땅에서 내몰고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 되는가 하면 죽음을 강요하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쌀이 농민을 사지로 내모는 기막힌 상황, 그 정점에 2005년이 있었다.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작년 11월 14일에서 꼭 10년을 거슬러 올라간 2005년 11월 15일, 두 사람의 농민이 경찰이 휘두른 폭력에 쓰러져 목숨을 잃었다. 2005년은 수매제도 폐지와 농지법 개악으로 반농민적 농업구조조정정책이 심화되었고 쌀개방 협상이 마무리되어 국회비준까지 완료
[한국농정신문 심증식 편집국장]농촌 사회는 고령화를 넘어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농촌사회를 지탱하는 농민의 연령층은 6~70대이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깊이 패인 주름은 이 시대 농민의 상징이요, 고단한 농민들의 표상이다.그런데 강원도 홍천의 깊은 산골마을에 희망을 만들어가는 젊은 농부 김택우씨가 있다. 그의 꿈은 친환경 농사를 통해 가족 기업을 만드는 것이다. 강원도 홍천 겨울이 일찍 시작되는 이곳, 모두가 열악한 환경을 피해 떠나는 세태에 김씨는 오히려 친환경 농사의 최적지라며 훗날 아이들도 함께 할 수 있는 농장을
[한국농정신문 최용탁 소설가]“우리의 모든 가치를 시장가치로 전환하려는 WTO 칸쿤회의를 저지할 것이다. 우리 정부는 농민과 민중을 죽이려는 세계무역기구와 초국적자본의 대리인 구실을 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항의의 뜻을 밝히고 전 세계 민중과 연대하기 위해 우리가 멕시코로 가는 것이다.”2003년 9월 1일, 전국민중연대와 ‘자유무역협정ㆍWTO반대 국민행동’은 오전 11시에 서울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칸쿤 현지투쟁단 발족 기자회견을 가졌다.멕시코 칸쿤에서는 소위 WTO 제 5차 각료회의가 개최될 예정이었다. 각료회의에서는 2001년 4차 각료회의부터 시작된 도하개발의제(DDA)에 따른 새로운 무역체제 출범을 위한 여러 협상을 진행하기로 했다.그 첫 번째는 수출보조금과 국내보조(추곡수
[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 “얼마나 많이 쳐다봐야 하늘을 볼 수 있나?얼마나 많은 귀가 있어야 사람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을 수 있나?그래,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나야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음을 알게 될까?친구여, 그 답은 바람만이 알고 있네그 답은 흩날리는 바람 속에 실려 있네” (필자 역)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밥 딜런’이 마치 우리 대한민국 민생들의 현실을 노래 한 듯한 ‘Blowin’ in the Wind’의 가사 내용이다.세월호 참사,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메르스와 구제역병 만연, 옥시싹싹 가습기의 살인 행위, GMO(유전자조작 식품)의 우리 밥상 점령, 발암물질 제초제와 농약의 범람, 광우병
[한국농정신문 심증식 편집국장] 언니네텃밭 봉강공동체 생산자로 `현역 활동' 세딸 합동결혼식 축의금, 심장병 어린이 치료비로 보태들판의 벼는 누렇게 익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제 막 타작이 시작된 듯 이따금씩 벼베는 광경이 눈에 띈다. 집집마다 울타리 삼은 감나무에 붉게 익은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모습은 여기가 곶감의 고장 상주라는 것을 강조하는 듯했다.경북 상주시 외서면 봉강리 문달림 여성농민을 찾아 왔다. 우리나이로 79세. 문달림 여성농민은 어머니의 따스한 마음으로 살아오신 분이다. 농사짓고, 애들 키우고, 외조하고, 여기에 농민운동까지. 그야말로 삶 자체가 운동의 표상이다. 자신을 낮추는 겸손은 한 마디 한 마디 조심스레 하는 말투에까지
[한국농정신문 최용탁 소설가]남북한 정상이 평양에서 회담을 갖는다는 소식을 남북이 동시에 발표한 것은 2000년 4월 10일이었다. 회담 날짜는 두 달쯤 후인 6월 12일부터 사흘간이었다. 분단 이후 처음인 정상회담에 대해 국민들은 당연히 환영했지만 그 동안 어그러지기 일쑤였던 남북관계로 인해 성사되기까지 반신반의하는 분위기 또한 사실이었다.실제로 예정보다 하루가 늦어진 6월 13일, 평양 순안공항에 내린 김대중 대통령과 영접 나온 김정일 위원장이 악수와 포옹을 나누는 장면은 그야말로 감격적이었다. 반세기만에 이루어진 정상회담은 사흘간 이어졌고 역사적인 6.15선언이 발표되었다. 선언의 주요 4개 기본조항은 통일로 가는 징검다리로서 남북 민중의 염원이었다. 1. 남과
[한국농정신문=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대표]백성들은 자기 부모의 잇달은 서거사태 때 며칠씩이나 밤낮 통곡하며 거리에 뛰쳐나와 저승길을 떠나는 님들을 각각 곱게 배웅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막상 그 따님이 대통령에 입후보하자 원래부터 천성이 착한 이 땅의 서민들, 특히 순박한 농촌 백성들은 선친이 생전에 베푼 은고를 잊지 못해 열렬히 지지하고 나섰다. 금상첨화, 그 무렵(2012.11) 추곡가격이 가마당(80㎏들이 정곡) 17만원에 머물러 있을 때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가마당 21만원까지 끌어 올리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까지 하니까 농투성이 백성들이야 감지덕지 적극지지 투표하였음은 물론이다. 배신(背信)의 계절: 말 따로
[한국농정신문 심증식 편집국장] 추석을 쇠고 1주일째 되는 지난달 22일. 전국의 농민 5,000여명이 서울 한복판에 모였다. 쌀값폭락에 항의하기 위한 농민대회가 개최됐다. 대학로에서 광화문으로 행진하는 중에 돌연 콤바인 한 대가 농민 대오 앞에 등장했다. 대중교통과 도시민들로 가득 찼던 종로거리가 생경스런 콤바인을 앞세운 농민들의 절박한 목소리로 쩌렁쩌렁 울렸다. 농민들은 ‘쌀값 21만원 보장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후보시절 선거 현수막을 들고 콤바인을 따라 행진을 했다. 2016년 가을, 수확기를 앞둔 서울의 풍경이다.이 행진대열에는 당진시농민회 사무국장이자 전농충남도연맹 사무처장 이종섭(50) 농민이 함께 하고 있었다.이종섭 농민은 거리에서 투쟁은 물론 국회의
[최용탁 소설가]새천년이 시작되고 농민들의 핵심적인 투쟁 목표는 농가부채의 해결에 집중되었다. 농가부채는 길고 어두운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멀게는 봉건 왕조시대를 뒤흔든 환곡의 난이 곧 농민들이 짊어진 부채였으며 그로 인해 땅을 잃고 유민이 되거나 민란으로 일어나기도 했다.근대에 들어서도 농민들은 소위 장리 빚이라는 부채에 시달렸고 이는 다시 농협이나 금융기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게다가 수입자유화로 인한 농산물 가격 폭락은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부채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전체 농가부채는 2000년 무렵에는 38조원에 이르러 농민들의 삶을 짓누르고 있는 가장 무거운 짐이었다. 이는 10년 전보다 무려 6배 이상 늘어난 수치였다.부채는 곧 죽음이었다. 빚이 늘어나는 속도에 따라 스
[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대표]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은 조선왕조 오백년을 통틀어 우리 대한국민이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는 동서양에 길이 빛나는 불세출의 실학자(實學者)다. 오늘날에 이명박근혜 극우보수정권 치하에서 극심한 사회양극화와 도농이탈, 1% 대 99%의 비대칭성 등으로 무수한 고통을 받고 있는 기층 민중들의 참상과 이 땅에 농부로 태어나서 갖가지 설움과 억울함에 시달리고 있는 민초들의 절망을 바라보면서 다산 선생의 가르침에서 그 해법을 찾아보기로 한다. 구원(久遠)의 개혁사상다산 선생의 사상과 저술활동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개혁(改革)’이다. 그가 살던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전반은 조선 봉건사회의 해체
[한국농정신문 최용탁 소설가]김대중 정부는 IMF의 신탁통치 속에서 출범하였다. 미국이 주도하는 IMF는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를 강제하는 방향으로 우리 사회를 옥죄어왔다. 거칠게 말해서 지구를 하나로 묶는 경제체제와 규제의 완화, 혹은 철폐를 큰 틀로 하는 신자유주의는 우리 사회를 뒤흔드는 강력한 힘이었다. 자유주의라든가 세계화 등 지금은 낯익은 신자유주의를 이루는 요소라 할 만한 정책은 이미 IMF 훨씬 이전부터 있었지만 본격적인 정책적 이념으로서 신자유주의 도입은 IMF 외환위기 직후인 국민의 정부 때 부터라는 게 정설이다. 정확하게는 김영삼 정부 말기에 시작되지만 이때는 레임덕에 시달렸을 때라 실질적으로는 김대중 정부부터라고 볼 수 있다.전회에서 살펴보았듯이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농민운
[한국농정신문 심증식 편집국장]입추도 지나고 처서도 하루 앞둔 22일 경북 성주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성주군에 들어서자마자 사드배치 반대 현수막이 제각각 시선을 잡아끈다. 사드 반대 투쟁 41일째, 김항곤 성주군수가 오전 10시 “제3부지를 수용한다”는 기자회견을 열어 인터넷 포털에서 속보로 전국에 뿌려지고 있었다. 이어 200여명의 군민들이 모인 가운데 성주군수의 기자회견을 반박하는 기자회견도 열렸다. 엎치락뒤치락 급박한 성주, 이재동 회장 취재가 무산될 가능성도 염두해 둬야했다. 그림자가 가장 짧아지는 정오 사드반대 결집장
[한국농정신문 최용탁 소설가]어느 사회현상이나 마찬가지지만 운동 역시 정세에 따라 상승과 하강을 되풀이하고 때로는 아예 지리멸렬하게 스러져버리기도 한다. 8,90년대에 타올랐던 민족·민중운동의 동력은 급속하게 무너지고 있었고 사회 전반적으로 보수적, 자유주의적 분위기가 확산되었다. 변혁에 대한 꿈을 키우던 세대가 갑자기 세계에 대한 믿음을 잃은 세대가 되어버렸다. 공동체의 꿈 대신 자기계발과 개인의 욕망이라는 낯선 세상이 펼쳐졌다.수많은 지식인들이 절망에 빠졌고 변혁운동의 선상에서 멀어져갔다. 세상이 변했다는 말 한 마디로 변절의 길을 가는 자들이 속출했다. 문화적으로도 X세대니, 오렌지족이니 하는 저질 문화가 주류로 부상했다. 갑자기 온 사회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어댔다. 권력을 가진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小作制度)는 금지된다.” 대한민국 헌법 제121조 ①항에 나와 있는 명문이다. 그리고 제②항은 “농업생산성의 제고(提高)와 농지의 합리적인 이용을 위하거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발생하는 농지의 임대차와 위탁경영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인정된다”라고 부연하고 있다. 경자유전 원칙에 의한 소작제 금지는 1948년 「제헌헌법」이후, 아니 고려, 조선, 일제 침탈기 그리고 동서고금의 역사에 면면히 이어져온 국가정신이었다.되살아 난 권력 부유층에 의한 농지 투기와 소작제의 망령그렇다면 현재 위 헌법조항은 어떻게 지켜지고 있는가? 광복 후 1949년 6월 농지개혁법이 제정 공포됐을 때의 소작농지
「2014 농민들」은 한국농정신문이 2014년 한 해 동안 매월 만든 특집호의 모음집이다. 책 표지를 장식한 몇 컷의 사진 중에 유독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 끈 것은 주름이 가득한 촌로의 얼굴이었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은 그가 살아온 삶의 무게와 고단함을, 굳게 닫힌 입은 오늘날 우리 농민들의 착잡한 심경을 말하고 있었다. 2014년 9월 진주시청 앞에서 개최된 쌀 개방 반대 집회에서 본지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포착된 농민. 사진 한 장을 단서로 수소문한 끝에 ‘74세’, ‘하우스 농사’를 짓는다는 것과 전화번호, 이름만 가지고 무작정 진주로 향했다. [이 사람] 첫 번째 순서로 찾은 이는 경남 진주시 대곡면에 사는 하만표 농민이다.대담 심증식 편집국장 진주에 도
농민운동을 오래 해온 이들은 한 마디로 농민운동은 수입개방 반대의 역사라고 말하곤 한다. 1992년 연말 대선을 앞두고 30여명의 대학생들이 명동성당 앞에서 대선후보들이 쌀 개방 반대에 대해 대통령직을 걸고 약속해 줄 것, 정부차원의 범국민 대책위를 구성할 것 등 3개 항의 요구사항을 걸고 삭발 단식농성을 벌였다. 그 무렵부터 농민운동의 UR반대투쟁은 광범위한 대중과 결합한다.운동의 중심에 서 있던 전국농민회총연맹은 범국민적인 연대투쟁으로 확산시키면서 WTO-FTA체제를 확립하려는 선진국들과 민족·민중간의 날카로운 전선을 세운다. 더불어 다국적 기업과 국내 집권층을 상대로 하는 운동 진영의 싸움이었다.1994년 3월 10일, 서울 여의도 여성백인회관에서 농민들과 사회단체 관계자 2백여 명이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