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농사 일이 한밤중일 때였습니다. 이미 다른 집들은 2모작 모심기 준비도 끝나갈 무렵에 우리집은 마지막 마늘을 뺐습니다. 부지런히 마늘을 빼다가 목이 말라서 물을 찾는데, 아뿔싸 서두르다 물을 챙겨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마늘빼기는 꽤 고된 노동이라 목마름을 참기는 어려운 법이지요. 어쩔 수 없이 일을 하다말고 물을 마시러 차로 이동을 해야 했습니다.때마침 농로 모퉁이를 돌아가니 농로를 가로질러 호스를 깔고 경운기로 물을 푸고 있었습니다. 이럴 경우 호스 주변에 각목을 대서 차들이 지나다녀도 되도록 조치를 취하는데 그런 준비가 안
3년여 전부터 거창군여성농민회 토종살림 회원들은 거창지역 마을 곳곳을 다니며 토종씨앗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그 수고 덕에 자칫 사라질 수도 있었던 씨앗을 찾아내고 기록하며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다.나 또한 로컬푸드 실무자들과 다품목·다품종 농가조직을 위해 마을 방문을 할 때 토종씨앗 조사사업에서 찾아낸 토종마늘, 들깨, 고구마, 감자가 있다는 정보를 참고할 수 있어서 도움이 됐다.그중 작년 초봄에 들렸던 신원면 오례마을에서 삶은 고구마를 얻어먹었는데, 이 고구마가 최소한 40~50년 전부터 심고 순을 내어 이어져온
요즘 유튜브가 대세이다 보니 별걸 다 유튜브로 접한다. 시사부터 문화·경제 등등. 친구가 오늘 잠깐 짬을 내서 놀러왔다. 그 친구 하는 말이 요즘 유튜브에 푹 빠져있다면서 특히 고추농사에 푹 빠졌다고 한다. 이곳 나주는 주 작목이 배인지라 배 이외에는 관심 없다던 친구가 요즘 다양한 농사가 재미있다고 한다.젊을 때는 몰랐던 다양한 밭작물 키우는 재미도 있고 특히 어떤 농사에서 자기만의 기술로 성취감을 맛보고도 싶은가 보다. 나이가 든다는 게 그런 것인가 보다. 앞만 보고 전진하는 젊음도 때론 필요하지만 시야가 넓어지는 눈과 마음이
우리마을 권역이름은 ‘효장수권역’이다. 지리산 아래 장수마을의 이미지를 기반으로 ‘효’라는 이름을 덧붙였다. 그 이름을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왜 내게 들었을까? 장수에 효를 붙여 놓으니 노인의 돌봄은 가족이 그것도 가까이 사는 며느리가 책임져야 함을 강조하는 단어로 가슴팍에 다가왔던 것에 대한 심한 거부감이 들었지만 드러내놓고 반대의견 한 번 제시하지 못했다. 무엇이든지 잘해야 하고 야무져야 한다는 강박이었다. 아마 농촌에 들어온 날부터 내게 생긴 병인 듯싶다.요양보호사교육원에 드디어 등록을 했다. 내가 아니라 남편이다. 여성농민들
좁은 땅덩어리를 가진 나라이지만 아랫녘과 윗녘 날씨가 확실히 차이가 나서 아랫녘은 농사도 웬만하면 이모작을 합니다. 벼를 수확한 논에 저온성 작물인 마늘과 양파, 밀과 보리를 심거나 조사료 풀을 키웁니다. 밭에도 별 가온 없이 월동채소인 배추, 시금치 등을 심어 겨울 밥상을 채웁니다. 또 이른 봄에 감자나 완두콩, 강낭콩을 키워내고는 곧장 고구마나 들깨, 녹두 등을 심어 농사 보람을 이어갑니다.이모작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몇 배의 품과 노력이 듭니다. 농사계획도 한 해 단위가 아닌, 두 해를 기본으로 계획해야 원활하게 돌아가게 되는
지난 6일 거창에서도 손모내기 행사가 있었다. 벼농사의 소중함과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소원하는 손모내기 행사는 거창 아림고 행복학교 프로젝트 ‘노니(논이) 뭐하겠노’와 공동체지원농업의 일환으로 농가와 토종벼 활동가들이 함께하는 통일쌀공동체와 연계해 진행됐다. 무더위가 시작돼 걱정이었지만 다행히 구름이 끼고 손모내기 하기 좋은 날씨였다.손모내기에는 아림고 학생, 교직원 및 통일쌀공동체 회원가족 70여명이 참석해 요즘은 보기 드문 풍경을 만들어냈다. 대부분 서툰 몸짓이었지만 진지하면서도 성실하게 모를 심으며 논을 채웠다. 낯설고 호기
본격적으로 농번기가 시작되고 논으로 밭으로 다니느라 바쁜 계절이 왔다. 와중에 이곳 나주는 배 냉해가 심해서 배까지 제대로 달리지 않아 애를 태우고 있다. 그런 것에 대비해 농작물재해보험을 들었으나 작년에 농협의 손실이 컸다고 계약을 일방적으로 변경하여 농가에서는 작년만큼의 보상도 받지 못할 상황이 돼버렸다. 아카시아향기가 날리는 상큼한 5월은 그렇게 잔인하게 지나가 버렸다.이제 배 농가에서는 그나마 달린 배에 봉지를 씌우느라 새벽부터 저녁까지 ‘천지삐깔로’ 바쁘다. 우리 여성농민은 전날부터 그래도 대충이나마 다음날 인부들 음식도
갑자기 부자가 된 기분이다. 농민수당 60만원, 여성농민 행복바우처카드 20만원, 코로나19 정부재난기금 선불카드 100만원, 전남형 재난기금은 아직 안 나왔지만 5월말 경에는 나올 거고 지난 어버이날엔 딸들에게서 30만원을 받았으니 기분만 부자가 아니라 사실상 부자가 된 게 틀림없다. 딸이 내 손에 쥐어준 봉투 겉면엔 ‘남한테 쓰기 금지’, ‘여가생활 즐기삼’ 이라는 글귀가 예쁘게 적혀있다.어딘가 아프다 싶어도, 뭔가 문제다 싶어도 왠지 나 자신을 위해 돈을 쓰는 게 인색하다 못해 묘한 죄책감이 드는 데다 내 모습과 마음을 들여다
어찌됐던 겨울 온난화에 봄철 냉해, 봄 가뭄을 견디고서 속속들이 농산물 출하가 시작되었습니다. 땅이 얼었다 녹았다 하는 초봄에 심은 완두콩도 진즉에 선을 보였고 마늘종이며 올양파, 심지어 마늘도 경매시장을 채웁니다.우리지역이 가장 아랫녘이므로 노지농사 중에서는 뭐든 일찍 수확해서 시장으로 출하되는 것이지요. 그렇더라도 가격으로 수확철 보람을 맛보기에는 좋은 시절이 아니어서 거저 일을 마무리한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는 꾸역꾸역 수확과 동시에 시장으로 내보냅니다.정성스레 키우고 알뜰살뜰 다듬은 농산물을 출하해도 여성농민의 통장에 돈이
새벽녘 안개가 산허리를 둘러 고요하게 가두고 있을 때 즈음 의식이 깨기도 전, 몸은 작업복을 걸치고 애써 빠질라, 장갑에 모자를 챙기며 미처 깨어나지 못한 머리를 흔들며 그렇게 밭으로 나간다.잠든 막둥이의 밝은 귀에 걸릴라 현관문을 조용히 닫고 바쁜 걸음을 총총대며 탄 트럭은 구불구불 산길을 오르고 고이 모여 있는 안개를 흩트려 깨운다.어둠이 금방 지나간 이 무렵은 죽은 듯이 고요함 속에서 맑은 산새소리와 단잠을 뺏긴 피곤한 숨소리가 부조화를 이루며 밤새 비에 흠뻑 젖은 꽃잎은 겨우 나무에 매달려 있다. 산속 가운데 사과밭은 “피기
농민수당을 드디어 탄다! 감격스럽다! 얼마 안 되는 농민수당이지만 돈의 문제가 아님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우리는 감격스럽다. 농업의 다원적, 공익적 가치가 드디어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것이기에 지역상품권 몇 장이 아니라 그동안 농사짓고 산 세월의 무게를 받는 기분이다. 일단은 즐겁고 기쁘다.그러나 이 즐겁고 기쁜 기분도 잠시 동안이다. 나도 농민인데, 여성농민인데, 남편 이름으로 지급된 농민수당을 기꺼이 100% 즐겁게 받을 순 없다. 나의 가치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아직은 이르다고, 아직은 예산이 부족하다고, 어쩔 수 없다고
농사경력 30년이 다 되도록 체감을 하지 못하는 여전히 초보농부다. 아스팔트농사 정치농사 진짜배기 농사까지 전부 다 그렇다. 따뜻한 날씨가 지속되는 겨울을 보내며 씨앗을 예전보다 먼저 뿌렸으니 한창 자라다 서리를 맞이하는 건 당연했는지 모른다.너도 나도 농민수당은 당신들이 고생한 게 맞다시며 내 한 표는 꼭, 하시길래 농민국회의원 결실을 보리라는 기대에 부풀기도 했었다. 아침 뉴스엔 공익형 직불금이 5월 1일부터 시행된다며 자랑 일색이다. 쌀 전업농들도 그리 생각할까? 쌀농사는 이후에도 100% 자급을 자랑할 수 있을까?농업재해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