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 새로이 여성농민 생산공동체가 하나 생겼습니다. 겨울 바다작업을 같이 하던 언니들과 함께 모여서 만든 것이지요. 그 첫 사업이 우리가 생산한 마늘쫑과 마늘로 장아찌를 담가서 판매하는 일입니다. 바쁜 농번기에도 함께 모여 공동작업을 해내며 우리의 활동을 계획하고 점검해냈습니다.일을 하는 내내 이 바쁜 철에 혼자서는 절대 안 하고 못 할 일이라며 서로를 위로했습니다. 그리고는 며칠 전 인근 마을장터(이도 마을청년회와 부녀회가 처음 시도한 값진 자리)에 참여해서 시장성을 엿보았습니다. 결과는 ‘첫술에 배부르랴!’였습니다만 알 수 없
수확한 마늘을 창고로 들이고 못자리까지 정리하고 나니 비로소 텃밭에 열린 오이와 애호박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어느새 많이도 자라서 달달한 첫물오이나 첫물애호박 등으로 밥상을 차리니 여름 맛이 납니다. 큰일은 끝났다 하지만 그러고도 이런저런 집안일들이 널브러져 있고 돌봐야할 농작물들이 많네요.사실 주농사와 텃밭농사에 드는 잔손은 거의 어머니의 손을 거칩니다. 한여름 입맛을 돋우어 주는 동부콩이며 겨울간식 고구마나 일 년 내내 김치에 넣어먹는 생강농사는 내손을 하나도 보태지 않고 날로 먹는 셈입니다. 순전히 어머니의 노동에 힘을 입고
양파 밭을 애써 돌아간다. 동네 분들이 “양파 때문에 어째?” 라고 걱정을 한다. “많은 양이 아니어서 괜찮다”고 웃어 보이지만 마음 한 구석에 있는 눈물주머니가 새려고 한다. 지난달 까지만 해도 동네에서 제일 좋다던 양파가 병에 걸려 잎이 새까맣게 말라 녹아내린다. 한 두 해 농사지은 것이 아니니 사실 이것쯤은 그냥 넘길 수 있다. 이보다 더 할 때도 많았다. 이 양파를 키우기 위해 작년 가을부터 들였던 남편과 나의 노동은 그냥 술 한 잔으로 잊어버릴 수 있다.그러나 가슴에 맺히는 것 한 가지가 있어서 좀 마음이 아프다. 볕이 몹
오뉴월 품앗이는 사흘 안에 갚아야 한다고들 하지요? 딱 이맘 때 쯤의 농사일손이 그만큼 귀하다는 말일 것입니다. 일 년 중 가장 해가 긴 철인지라 지금쯤 하는 농사일이 다른 어느 때 보다 중요한 것임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겠지요. 이 바쁜 때는 다른 잔머리도 안 굴립니다. 오로지 때맞춰 농사일을 해내는 것만이 정답이지요.우리집은 다른 지역의 농사규모와 비교할라치면 귀여울 정도의 소농임에도 우리마을에서는 이른바 대농입니다. 그러니 아직 농사일이 한밤중인데 이제 나이가 들어 농사규모를 줄이고 줄인 분들의 봄농사는 거의 마무리되어갑니다.어
늘 바쁘게 살지만, 지금과 같은 농번기가 아닐 때는 그나마 한가한 편이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오죽하면 여우가 애를 업고가도 모르고, 얼마나 동동거렸으면 누운 송장도 돕고 싶고, 생명 없는 부지깽이도 나섰으면 했겠습니까? 오뉴월 하루 볕살의 가치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진정한 농사꾼이겠지요. 그 볕을 놓칠 새라 하루 종일 종종거리며 이 밭에서 저 논으로 신출귀몰하게 움직입니다. 참말이지 이럴 때는 어디선가 우렁각시가 나타나서 집안일이라도 도와줬으면 하는 바람이 생깁니다.한두 달 전인가, 뜬금없이 남편더러 일
본격적인 지방선거 운동기간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그전까지는 후보를 알리면서 선거조직을 정비하고 조직체계를 세우는 일에 집중했다면, 이제부터는 정책을 말하고 다닐 시기지요? 혹자들은 정책 따위는 필요 없다고, 구도만 좋으면 된다고들 합니다만 때로 좋은 정책이 후보를 대신할 수도 있습니다.대규모 산업단지 유치로 지역경제를 살리겠다는 말은 이제 통하지 않지요? 대신 지역의 사회적, 인적 자원을 바탕으로 조화롭게 일을 꾸며 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모양새인 듯합니다. 농촌지역의 상당수가 여성농민인데 기실 그들을 위한 정책의 대부분은 노인복
이삼일이 멀다하고 비가 내린다. 다행히 세차게 내리는 비는 아니고 촉촉이 내리는 비라서 마음은 놓이지만 일이 자꾸 늦어져서 큰일이다. 비 오기 전날 심어 놓은 모종들이 잘 살아 붙었는지 궁금하여 아직 빗물이 채 빠지지 않는 밭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멀리 부여에서 씨를 가지고 와서 모종 낸 토종고추, 동네 아지매한테 얻은 토종가지, 동네분이 심고 남았다고 주신 아삭이고추, 그리고 멀리 스페인 여성농민에게서 받아 온 스페인토종토마토까지. 하나하나에 그 사람들의 얼굴이 그려지고 사연이 생각나니 시간가는 줄 모르고 들여다본다.귀농후배한테
며칠 전 영암지역에서 참 어이없는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고, 하필이면 농사 일당벌이 나갔다가 귀갓길에서 당한 사고인지라 안타깝고도 애석하기 짝이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사고의 이면으로 한국농업의 현주소를 보게 되니 더욱 참담합니다.버스에 탑승했던 분들이 대부분 7~80대 고령의 여성농민들인 만큼 젊어서부터 평생을 골병이 들도록 농사일을 하신 분들입니다. 그분들의 뒷모습이 어떠했는지 안 봐도 뻔합니다. 옆으로도 휘어지고 거기에다 앞으로도 굽은, 바로 내 이웃들의 모습이니까요. 얼굴이 보이지 않는 새
남부지방에는 곡우 무렵이면 노지 작물들을 파종하거나 이식하는 적기입니다. 그러니 텃밭 작물이건 상업 작물이건 이 즈음 빈 논밭들이 곡식으로 채워집니다. 들녘이나 골짜기가 이른 아침부터 트랙터소리, 관리기 엔진소리로 요란합니다.다 같이 하는 농사이지만 농작물마다 관리주체가 조금 다릅니다. 논농사의 경우는 남성들이 하고 여성들은 주로 밭농사에 신경을 쓰는 편이 대부분이기는 하다만, 기계작업은 남성이 하고 사양관리는 여성이 하는 경우도 있지요. 또 어떤 집의 경우는 여성이 농사에 밝아서 남성은 시키는 일만 하는 집도 있고 반대로 남편이
한겨울 찬서리 된바람을 맞으면서도 틈만 나면 자라고 또 자란 마늘이 어느덧 수확을 한 달여 앞두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에 뒤지지 않으려는 풀들도 키를 자랑하며 앞다투어 자랍니다. 마늘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조심 풀을 뽑고 있는데 논어귀 옆길에서 '끼익'하는 불쾌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일을 멈추고 쳐다보니 승용차가 길가에 멈춰섰고 운전석쪽 바퀴가 낮은 허공에 들려 있었습니다. 한 눈을 팔았나봅니다. 크게 다치지는 않은 모양새여서 큰 걱정은 않고 다시 일을 이어가려는데 운전사 아주머니께서 다급한 표정으로 이쪽으로 오셔
“농촌지역 주민들이 토지, 물, 종자 및 기타 자연자원에 접근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며…대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지탱하며 지속할 수 있는 농업생산 방식을 실천하고 촉진하는 농민과 농촌지역민의 노력을 지원해야함을 확신하며….”난데없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몇 년 전 비아캄페시나에서 UN에서 『농촌과 농촌지역민 권리에 관한 선언』을 채택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 뜬금없는 이야기라고 생각됐다.현재 당장 내 발등에 떨어진 불이 얼마나 뜨거운데 UN이라니 거기가 어디요? 농민인 나는 당장 올해 농사로 먹고 살 수 있을지 없을지 막막한데 UN이라니 거기 뭐 하는데요?대한민국에서는 경찰이 “쌀값 보장하라”는 생존권 요구를 하는 농민을
많은 듯해도 쓰자하면 쓸 것이 없는 것이 돈하고 시간이랍니다. 시간이 빨리도 흘러서 어느새 파릇파릇 풀들이 돋아나니 농민들 마음은 더없이 바빠집니다. 농민들의 시간이사 본디 빠르지만 올해는 지방선거가 있는 해이니 이해당사자는 물론이거니와 주변사람들도 덩달아 분주해지겠지요.심심한 동네에 방송차량이 요란하게 후보를 알릴라 치면 시끄럽다하면서도, 막상 선거가 끝나고 세상이 조용해지면 적막감마저 드는 것이 차라리 선거차량이라도 돌아다니면 좋겠다고들 합니다. 사람구경이 쉽지 않으니까요.4년마다 돌아오는 선거인지라 당사자가 아닌 땀에야 유권자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그것인 양 매번 똑같아 보입니다. 앞에서는 서민의, 농민의, 지역의 정치를 하겠다고 하면서도 돌아서면 달라지는 것 없는 일상이 반복되고,
본격적인 영농철이 돌아오니 괜스레 마음이 바빠집니다. 감자부터 심고 동부콩 넣을 준비며, 여름농사를 지을 땅에 거름을 넣고 갈아야 하는데 봄비가 꽤나 잦습니다. 봄비더러 일비라 하더니만, 아직은 아닙니다. 이런 날은 봄비맞이 칼국수 번개모임하기 딱 좋지요.비교적 가까운 옆 동네의 후배들을 찾습니다. 칼국수 먹게 00도 부르라니까 안 된답니다. 병원에 취직했답니다. 어머나, 이를 어째? 간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나는 농림부 장관도 아니고 도청 농정국장도 아닌데 이 젊은 여성농민의 탈농에 대해, 왜 이다지도 안타깝고 지역농업과 한국농업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지 모르겠습니다.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라 치면, 거름의 발효정도를 알아보려고 맛을 본다는 남편과 그렇게 죽이 맞던
심청전이나 흥부 놀부 얘기를 너무 많이 듣고 자랐던 것일까요? 착해야 한다, 참아야지, 사람이 그러면 쓰나? 그러게요. 착해야지요. 어려운 사람은 도와주고, 약자에게는 양보하고, 웬만하면 따지기보다 감싸주고, 남의 허물은 덮어주고 참고참고 참다가 곪아 터지는 요즘 세상입니다.끝없는 성추행 고발의 행진. 터질 것이 터지는 것이라 여기며 차라리 변화의 시점으로 잡자고 하면서도, 특정인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 감춰져 있던 우리의 이면을 보자니 착잡해지기도 합니다. 사람처럼 복잡하고 다면적인 존재가 또 있을까 싶어요.내가 당사자 아니라고 비난만 하고 있을 수도 없고, 내가 피해자 아니라고 방관해서도 안 될 것이고, 나는 절대 그럴 일 없다고 부정해서는 '사람'을 제대로 이해한다고
피투성이 여성들이 울고 있습니다. 피투성이 여성들이 용기를 내 세상을 바꾸고 있습니다. ‘#Metoo’ 운동은 개인에 대한 폭력을 넘어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 권력과 위계에 의한 폭력, 다수에 의한 소수의 폭력, 관습이라는 이름의 폭력에 대한 저항과 투쟁을 통해 지금보다 더 민주적이고 더 정의로우며 더 평등한 사회를 이룰 것입니다.그러나 저는 아직도 여전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녀들처럼 용기 내어 말도 못 하고 이불 뒤집어쓰고 글만 올립니다.설을 쇠고 나니 이런저런 모임들이 들썩입니다. 새로운 해를 맞기도 하거니와 이제 곧 일철이 되니 그 전에 한 번 모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동네도 얼마 전에 부녀회 총회와 마을 윷놀이를 했습니다.그 두 모임을 하고 난 소감을 딱 한
겨울가뭄이 극심하더니 때맞춰 봄비가 제법 굵게 내립니다. 너무 매말라서 월동작물들의 자람이 걱정되던 통에 반가운 봄비가 내리니 값으로 치자면 억만금은 될 성 싶습니다. 땅속 것들도 부랴부랴 새순을 뾰족뾰족 내밀 것입니다.나물캐는 처녀도 없고 나무하는 총각도 없으니 봄바람에 겨운 연정이 싹틀 리 만무하지만, 농민들에게 봄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이 비가 내리고 나면 마을안길에는 이른 아침부터 경운기 소리가 울려 퍼지겠지요.겨우내 구상해 온, 여느 때와 별 다를 바 없지만 새로운 기대를 주는 농사를 하나 둘 시작해 볼 참이지요. 마을회관 또는 어쩌다 길에서 마주치던 마을분들을 이제는 들판에서도 만나게 됩니다.작은 동네에서 마을분들과 만나 잠깐의 인사를 나누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요. 짧
딱히 음식 맛이 최고인 것도 아닌데 손님이 끊이질 않고 영업을 지속하는 지역의 식당이 있습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바로 지역민이 운영하는 식당이란 것이죠. 아는 안면에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것입니다. 식당뿐 아니지요.지역의 자그마한 카센터가 엔진오일 교체하고 타이어 손보는 정도의 기능만 해도 영업을 계속합니다. 시내에 더 크고 나은 자동차 서비스센터들이 있음에도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온 단골 고객들이 자리를 지켜주는 것이죠.지역의 산업은 이렇게 서로 간의 안면으로 유지·발전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혹자는 안면장사여서 식당의 음식 맛이 별로고 서비스 질도 낮아 경쟁력이 떨어진다고도 합니다. 틀린 지적은 아닙니다. 허나 최고 수준은 아니어도 주인 입장에서는 어디까지나 최선을 다하고자 노
미국의 영화배우들 사이에서 있는 벌어지고 있는 운동이라 하지요? 나도(미투, me too) 운동 말입니다. 여배우들이 영화 제작자에게 성추행 당한 사실을 폭로하고, 동료배우들이 나도 당했다거나 당신을 지지한다는 내용이 확산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배우답게 영화제에 검은 드레스를 입음으로써 뜻을 전달하기도 했다합니다.그러던 것이 얼마 전에는 우리나라 현직 여검사가 성추행을 당했다고 TV뉴스에 나와 폭로를 했습니다. 세상에나, 여검사와 여성농민의 공통점이 하나 있네요? 우리사회에서 검사 정도가 되면, 여성이라서 받는 차별이나 고통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요. 갑자기 여검사와 여성농민이 한 편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생활에서는 한참이나 거리감이 있는데 말예요.어쨌거나 대단
나이 든다는 것은 말이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몸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입으로 하는 말만을 믿고 입으로 말을 해야 알고 말로 확인을 해야 알게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살다보니 말로써가 아니라 몸으로, 몸에서 나오는 기운으로, 몸에서 나는 냄새 또한 말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같은 영역에 있는 사람들끼리의 이야기다. 어디까지가 같은 영역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때로는 같은 영역인 사람인 것 같아 ‘말을 안 해도 알겠지’ 싶어 말을 안 했다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고 또한 받기도 했다. 아직 더 살아야 알게 되는 문제이다.그러나 최근에 ‘이것’ 하나는 알게 되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은 오히려 몸에서 나오는 말을 알아채지 못
인근 면지역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학생이 한 명도 없다고 지역신문이 전하길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면에는 무려 36명의 신입생이 있다고 하니 세상에나, 고맙고 다행이지요. 아마도 우리 면에 천년의 숲 물건어부림과 그 언덕에 유명한 독일마을이 있기 때문이겠지요.덕분에 어린이날 주간이나 독일마을 맥주축제가 있을 때면 관내도로가 주차장이 될 정도로 관광객이 많습니다. 딱 농번기에 도로가 막히니 제 때에 농기계 수리조차 어렵다고 지역농민들은 불만이 많지만, 그래도 관내 초등학교 입학생들 숫자를 보니 고맙기만 하네요.우리 지역은 30년 후면 사라질 곳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해서 인구의 증감에 자연히 민감해집니다. 그런데도 지역의 풍습은 여전히 이방인에 대한 경계가 많이 남아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