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1월 11일을 즈음하여 각 지자체별로 농업인의 날 기념식을 합니다. 행사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수농산물을 전시하고 선진적(기준은 다르지만) 농민들을 시상하며 농업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농민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더불어 이 어려운 경제상황에 농업인들이 더욱 증진해줄 것을 부탁하며 준비한 음식을 나누는 자리를 갖습니다.암요, 이런 행사를 잘 기획해서 이 어려운 농업환경에서도 농업을 지켜가는 농민들을 위로하고 또 농업의 발전방향을 나누는 일은 지역사회에서 중요한 일이지요. 다만 농업정책과 같은 박자가 돼야 하는데 정
지역에 로컬푸드직매장을 만들고 나서 더 바빠졌다. 농번기고 뭐고 간에 매장문은 매일매일 열어야 하고 매일매일 팔 농산물은 있어야 하니 아무리 농사일이 바빠도 틈틈이 쌈채소 몇 봉, 무 몇 개, 배추 몇 포기 들고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든다.그 날은 나락 베던 날이었다. 아침부터 이것저것 할 일이 많았지만 로컬푸드직매장에 구색이라도 갖춰주자 싶어서 텃밭에서 재배한 채소 몇 가지를 들고 나갔다. 빨리 진열해놓고 와야 하는데 다른 생산자들도 있고 하니 마음처럼 빨리 일처리를 할 수가 없었다.그래서 “아이구, 큰일났네. 오늘은 나락 베는 날
“여성농민회 하면서 제일 좋은 건 뭐예요?”“내 이름을 찾은 거야. 결혼 후 누구도 나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어. 처음엔 ‘누구누구각시’, 그러다 아이를 낳게 되면 ‘누구엄마’, 그러다 보면 마을에서 댁호를 하나씩 지어주지. 대부분 고향마을 이름을 따서 ‘누구댁’. 세월이 가면서 내 이름을 잊어버렸어. 내 이름은 김예분이야.”느지막이 낳은 딸이 얼마나 이뻤으면 이름까지 이뿐이라 지어주었을까?“오메 이름 이뿌게도 지어줬구만. 나는 공순이랑께. 공달에 태어났다고 공것이라 공순이랑께.”옆에 계신 언니가 한마디 거든다. 다들 자기 이름에
진즉 뽑힌 고추나무에서 고추가 말라가고 있습니다. 뽑힌 고추나무들 옆, 된내기를 피하라고 천막을 씌워놓은 고춧골 한 고랑을 잡아 끝물고추를 땄습니다.밥과 반찬을 담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수확보다 뒤처리가 더 힘듭니다. 밭에서는 욕심껏 땄는데 저녁에 열심히 다듬고 분류하는데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일에 밭에서 부렸던 욕심을 후회합니다. 간신히 크기로 나누고 크지 않은 것들의 꼭지를 따 씻은 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짧은 잠을 접고 일어나 물기가 빠진 고추로 장아찌를 담고 멸치랑 볶고 종종 썰어 고추 간장을 만들었습니다. 틈틈이 밥하고 국
계절이 바뀌는 이 즈음이면 여기저기서 부고문자가 날아듭니다. 소식을 접하게 되면 상주와의 관계 정도에 따라 마음속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기만 할 때도 있고, 조의금만 보낼 때도 있다만 아무리 바빠도 직접 조문해서 상주를 위로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며칠 전에도 그랬네요. 이 바쁜 가을 일철에 아는 언니가 친정아버님이 운명하셨다는 연통을 해서 일 끝나자마자 한걸음에 장례식장으로 갔습니다.눈자위가 빨개진 상주언니를 잠시 위로하고는 조문객들끼리 장례식에서나 만나지는 바쁨에 대해, 서로의 일상에 대해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 자리에서 아주 오랜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내 이야기이기도 하고, 내가 직접 보고 들은 이야기이기도 하다.언니네텃밭 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제일 많이 받는 질문 중의 하나가 “언니네텃밭 활동을 하면서 참여한 여성농민들에게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이다. 나는 웃으며 말한다. “권력관계요.” 농담조로 대답하지만 사실이다.9년 전, 처음 시작할 때는 공동작업 하기가 쉽지 않았다. 매주 화요일 꾸러미 보내는 날에는 같이 작업을 해야 하는데 남편들이 “오늘은 밭에 무슨 일을 해야 한다, 논에 무슨 일을 해야 한다”면서 꾸러미 작업에 못 나
따르릉 따르릉… 아침 일찍 걸려온 전화 한 통.“엄마! 이번달 용돈 언제 줄꺼야? 핸폰 회사에서도 문자왔어.”“알았다.”아이들에게서 오는 전화의 90%는 돈 달라는 전화다. 식탁 위엔 밀린 우편물이 가득하다. 종류도 다양하다. 한숨 쉬고 앉아 있을 여유가 없다. 무엇을 심어야 괜찮아질까 스마트폰을 열어 이리저리 검색해본다.남편에게 “며칠이라도 노가다 뛰면 어때? 그래도 여자보다 남자 일당이 훨씬 많잖아.”“…이번엔 괜찮을 거야.”평생 농사꾼 남편 말수가 적어졌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리고 올해도 씨앗을 뿌리며 모종을 심으며 늘 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머릿속이 뭉친 신문지로 꽉 찬 것 같고 가슴이 답답합니다. 오랫동안 고민하고 있으나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2002년 ‘농림부지정 경기여주여성농업인센터’라는 현판을 걸고 사업이 시작된 지 17년째인데 이런 일은 처음인지라 막막하기 그지없습니다.여성농업인센터는 농어촌생활에서 발생하는 여성농어업인의 자녀보육 및 교육, 가정, 농업경영 등의 고충을 상담하고 여성농어업인을 위한 교양 강좌, 문화 활동 등을 종합적으로 지원하여 젊고 유능한 여성농어업인의 농어촌 정착을 도모한다는 목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사업입
전남지역에서 농도라는 별칭이 아깝지 않게 선진농업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름하여 농민수당입니다. 해남군에서 내년부터 농가마다 월 5만원씩 지역상품권을 지급하는 형태로 추진한다 하니 오매불망 농민들이 소원하던 일인 바, 더없이 반갑고 또 반갑습니다. 직불제와 더불어 농가 소득보전정책인 농민수당 지급이 급물살을 타고서 지방자치단체에서부터 실시한다하니 이 어찌 반갑지 않겠습니까?농업이 갖고 있는 공공성과 공익성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소득보전의 형태로 지원하는 것이니 이는 인구소멸론으로 불안하기 그지없는 지역사회에 한줄기 빛과 같은 희
밭에서 일하고 어둑어둑해져서 집에 들어오면 온 몸이 땀과 흙먼지범벅이다. 몸은 끈적끈적하고 목은 마르고 모기에 물려 가렵기는 하고…, 빨리 씻고 싶은 생각밖에 없다.샤워하고 얼굴에 로션이라도 좀 바르고 헤어 드라이기로 머리도 말리면서 한숨 돌리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으면서도 남편 배 고플까봐 머리는 말리지도 못 한 채 봉두난발을 하고 싱크대 앞으로 달려간다. 조금이라도 빨리 밥상을 차리려고 넓지도 않은 부엌을 뛰어다니다시피 한다.누가 배고프다고 재촉하는 것도 아니고, 가사노동은 여성만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말로는 외치면서도 내가 왜 이
결혼 후 6년을 시댁에서 살았다. 하우스를 다른 마을에 지으며 관리사 명목으로 컨테이너를 설치하고 자연스럽게 분가 아닌 분가를 하게 되었다.고부갈등이 딱히 심한 편이 아니었지만 분가를 하던 날 어깨를 누르던 무언가가 없어진 기분이 들었다. 존재만으로 심리적 압박이 있었을까?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던 기억이 난다.하우스를 짓던 때 나는 둘째아이 출산을 위해 친정에 머무르고 있었다. 출산 후 이십일도 되지 않아 시아버지의 임종을 계기로 친정엄마는 갓난아이를 안고 장례식을 함께 치렀고 그 이후 지금껏 나랑 함께 살고 계신다.“
‘임 총무님, 우리 너무 오랫동안 못 보았는데 한 번 만나야 하지 않을까요?’ 다람쥐 쳇바퀴 도는 날들 속에서 아뿔싸! 합니다. 5년 전, 만나면 이렇게 좋은 우리들이 기약 없이 흩어지면 안 된다, 계모임이라도 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오고가다 결국 총무를 맡았는데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일 년 반 넘게 모임을 못 했더니 계원들의 그리움이 넘쳤나봅니다.40도를 웃돌던 날인데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나 싶을 만큼 만나는 장소가 시원하였습니다. 힘겹게 잡은 시간이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서로의 마음으로 준비한 놀이와 프로그램으로 나의 마음
도대체가 궁금했습니다. 왜 그토록 말리는데, 아니 그토록 뜨거운 햇살아래서 일을 하다가 참변을 당할까요? 행정에서도 마을방송으로 하루 세 번씩 고하는데 말이지요. ‘군민여러분, 오늘 우리지역은 폭염특보가 내려졌으므로 낮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바깥활동을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압니다. 알고말고요. 이 날씨에 바깥에서 일을 했다가는 아차하면 목숨까지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요. 그런데 왜 비슷한 사고가 끊이지 않을까요? 궁금하기 이를 데가 없었습니다. 안전불감증이라구요? 노인이 되면 말초신경이 둔해져서 더위를 잘 못 느낀다구요? 정
점차 숨쉬기가 어려울 정도로 더워지지만 조금만 더 하면 하던 일은 끝맺음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고 밭골에서 낫질을 하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남편의 전화번호가 뜬다. 안 받아도 왜 전화했는지 알겠다. “날이 뜨거우니 집으로 얼른 들어오라”는 말일 것이다.그럴 만도 하다. 며칠 전 밭에 물을 대려고 애 쓰시던 동네 할아버지 한 분이 온열병으로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하셨다. 그러니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믿고 며칠을 못 봐도 전화 한 번 하지 않던 부부간에도 각자의 일터에서 무사한지를 확인해야 할 정도
아가씨, 도련님, 게다가 서방님이라니! 나이 많고 적음을 떠나 누군가가 불러야할 호칭이다. 편하고 친해지기 위해선 그냥 이름 부르는 게 더 낫지 않아요? 상대방의 기분 좋은 호응을 기대하지만 다들 화들짝 놀라 누군가의 눈치를 보게 된다. 바로 이어 들리는 혀 차는 소리는 문지방을 이미 넘어서고 있다.어디서 배워먹지 못한 인간이 집안 망신시키는 존재로 등극하는 건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나는 어느 때 부터인가 다른 이에게 먼저 말을 거는 행위가 어려워졌고 꼭 필요한 경우엔 어떻게든 앞에서 얼쩡거려 눈을 마주치게 하여 말
“선생님, 자꾸 전화해서 미안한데요, 바닷가에 못 간다고 하니 우리 가연이가 울면서 난리를 피우네요, 남편이 그냥 바다에 갔다 오래요. 이랬다저랬다 정말 죄송한데 혹시 자리 남아 있어요?” 친척분의 장례식 때문에 바다나들이에 못 간다던 혜인이 전화를 했습니다. “그럼! 잘 됐네! 내일 봐요.”사는 곳 가까운 몇 군데로 정한 버스 승차 약속 장소에는 아이들과 엄마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설렘으로 가득한 얼굴들입니다. 세 번째로 친구들이 올라탄 뒤 버스는 주문진으로 출발했습니다. 기쁨에 들떠 소리 지르는 아이들에게 그러면 내년에는 절대
장마철도 지나고 이제 본격적으로 무더운 여름철이 시작됐습니다. 습하고 무더운 날씨에 제철을 맞은 풀들은 완전 자기들의 세상입니다. 엊그제 깎은 논두렁풀이 고작 하루 이틀이 지났음에도 그 새를 못 참고 속잎이 솟구쳐 오릅니다. 무게가 있는 모든 사물들이 지구중력 때문에 바닥으로 향하는데 유독 식물만큼은 위로 뻗어 나가니 그 태곳적 힘을 사람이 어떻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언덕이 많은 이곳 산골 다랑논 밭두렁의 풀을 깎느라 남편은 아침저녁으로 예초기를 끼고 삽니다. 예초기로 풀을 베면 땀범벅이 되어서 집으로 돌아오곤 합니다. 그럴 때면
하지가 지났다고 하지만 하루해가 참으로 길다. 아침 해 뜰 때부터 저녁 해 질 때까지 하루 종일 동동동.여성농민들이 모이면 꼭 하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집안에서부터 들판까지 내 손길이 가야하는 곳이 끝이 없다는 것과 몸 어디 어디가 아프다는 이야기이다. 해가 긴 요즘 같은 때는 하루 10시간도 좋고 12시간도 좋다. 해가 있을 동안은 무슨 일이든지 힘을 써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여성농민이다.농사지어서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자니 농사규모를 늘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의 농촌이다. 자연히 일은 많고 그 일을 해 내자니 몸
내가 네 나잇 적엔 말이다. 말끝마다 나는 네 나이에 이렇게 살았단다. 시어머니, 친정어머니에게 듣던 이야기들을 나는 어느새 아이들에게 각색해서 말을 이어가고 있다. 그렇게 해주었음 하는 기대, 이제는 그렇지 않은 세상이라는 체념들,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가는 동안 세상은 쉴 새 없이 바뀌어 간다.밭에서 쪼그려 앉아 풀을 뽑는 이는 어느새 보기 힘든 존재가 되었다. 굶어 죽더라도 종자를 베갯머리에 넣어두는 농부는 과연 있을까?‘내년에도 농사짓고 싶다’는 구호가 서럽기만 하다. 우리 농업이 박물관에 박제화 될 날이 그리 멀지 않게 느끼
지역에 새로이 여성농민 생산공동체가 하나 생겼습니다. 겨울 바다작업을 같이 하던 언니들과 함께 모여서 만든 것이지요. 그 첫 사업이 우리가 생산한 마늘쫑과 마늘로 장아찌를 담가서 판매하는 일입니다. 바쁜 농번기에도 함께 모여 공동작업을 해내며 우리의 활동을 계획하고 점검해냈습니다.일을 하는 내내 이 바쁜 철에 혼자서는 절대 안 하고 못 할 일이라며 서로를 위로했습니다. 그리고는 며칠 전 인근 마을장터(이도 마을청년회와 부녀회가 처음 시도한 값진 자리)에 참여해서 시장성을 엿보았습니다. 결과는 ‘첫술에 배부르랴!’였습니다만 알 수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