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들녘에 마을방송 앰프가 수시로 코로나19 상황의 위험성을 알리며 정적을 깹니다. 노동 외의 시간이면 무언가를 소비해야 생활할 수 있는 도시의 삶과는 다르게 자연에 기대어 무언가를 생산하는 생산자의 일상은 코로나든 아니든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사실 동구 밖을 나가지 않고도 그럭저럭 괜찮은 삶을 살 수 있다면, 뭐 그리 나쁜 삶도 아닐 것인데, 소비가 삶을 윤택하게 하고, 경제만이 우리 삶을 승급시킬 수 있다는 신화에 갇혀 모두가 아우성이지요. 코로나19 상황이 너무 안타깝고 염려스럽고, 그만큼 도시 사람들이 더한 고생에 애
해가 짧아진 시골, 코로나19로 어디 갈 일이 많이 줄어든 남편, 아이들과 함께 있는 저녁시간이 길어졌다. 모두 나쁠 수는 없다는 것은 이렇게 쓰이는 걸까?며칠 전 저녁시간에 마을 뒤편에 외따로 있는 우리 집 옆 논 주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땅을 팔고자 한단다. 물려받은 선대의 땅이 공동명의로 돼 있어 차후엔 더 정리하기가 힘들듯해 정리하고자 한다는 얘기였다. 남편은 “산골 논을 얼마에 사겠냐”며 “사려고 나서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애초에 못박아버렸다.통화내용을 옆에서 듣고 있던 차에 농사지을 땅을 찾는 친구가 생각나서 남편을
벌써 12월이 돼버렸다. 언제 봐도 시간은 늘 나를 앞서 나간다. 준비도 되지 않은 채 또 한 해의 끝이 돼버린 달력을 보노라니 결산할 생각이 든다. 나의 한 해의 대차대조표는 어떻게 될까? 인생이 보람차려면 받는 것 보다 내주는 것이 더 많아야 하거늘, 나는 늘 받는 것이 더 많아 늘 송구할 따름이다. 농사도 결산을 해보면 남는 것도 없으면서 1년 한 해 바쁘게, 정신없이 흙하고 뒹군 그런 해가 또 와 버렸다.인생 뭐 별다를 것도 없지만 그저 안락한 집에 따스한 온기를 같이할 사람들이 있으면 그게 행복이 아닐까 싶다. 나의 입에
어디 계시나요? 수해참사 이후 대통령을 비롯해 수없이 많은 높으신 양반들이 이곳을 찾아 왔습니다. 지역의 절반이 물에 잠기다 보니 어느 부처라도 해당 사항이 없는 곳이 아마 없었겠지요. 하지만 유독 단 한 번도 오지 않은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님이십니다.긴긴 장마에 한여름의 수해참사 연이은 태풍까지 2020년 농촌현장은 쑥대밭이 됐습니다. 저 같은 조무래기 농민이 어찌 그 깊은 속을 알겠는가 싶지만 농식품부가 적극행정 경진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한 것도 모르고 우리 동네에 안 온 것만 가지고 아쉬워하는 속 좁
전라도와 경상도 할 것 없이 도계를 넘어 전국적으로 통일된 하나의 결이 있었으니 그것은 농사일에 있어서 남녀임금의 차등 지급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신화와 같아서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거룩한 질서인 듯합니다. 혹 누군가가 문제의식을 느끼더라도 그것을 깡그리 눌러주는, 넘을 수 없는 벽같은 한마디가 있었으니 바로 ‘남자는 힘든 일을 하니까 돈을 더 줘야 한다’는 것이지요. 없잖아 그런 측면도 있었습지요. 돌을 쌓거나 아주 무거운 짐을 들거나 하는 일들 말입니다.하지만 오늘날에는 대부분 힘이 아주 많이 드는 일은
11월이 되고 된서리가 내리기 전에 가을걷이를 해야 함으로 몸과 마음은 바빠진다. 벼와 사과를 제외하고는 얼마 되지 않는 농사지만 봄에 심어둔 작물들이 제법 일거리가 된다.밭에 풀 반 들깨 반. 지난 7월 많은 비에 토사와 함께 쓸려온 도둑가시풀이 왕성한 번식을 해 그나마 들깨 고랑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들깨를 반나절 찌고 나니 온몸에 도둑가시(풀씨)가 붙어서 마치 큰 도깨비 방망이가 된 기분이다. 도둑가시가 별거냐 꿋꿋이 들깨를 찌어 모아서 갑바 위에 쌓아두고 두드리면 떨어지는 들깨소리는 소나기처럼 시원하고 들깨향은 코끝에서
문화라는 것들은 나도 모르게 스멀스멀 기어와 나의 몸 구석구석을 훑고 지나가는가 보다. 어떻게 보면 문화와 습관은 비슷한 면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다. 해마다 10월의 마지막 밤은 무슨 특별한 날도 아니건만 모 가수의 노래 때문인지 뭔가 특별한 날인 것 같다. 같은 노래도 몇 번 들어줘야 하고 뭐 그렇다. 이번 10월의 마지막 밤은 맛있는 고구마를 먹으며 지냈다. 밭에서 막 캐온 고구마를 따뜻하게 쪄서 따뜻한 방에서 먹고 노래나 듣고 있으니 뭐 세상에 별로 부러운 것 없이 느껴졌다.항상 농사일로 몸 한 번 제대로 뻗어보지 못하는
꿈을 꿨다. 운동장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앉아 사람들의 조롱담긴 웃음에 돌팔매질을 당하고 있다. 아무리 소리쳐도 목구멍 안에서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렇게 얼마나 꿈을 꿨을까? 등골이 서늘하다.20만원에 팝니다. 잠깐 썼다 지웠다 하는 과정에 누군가가 보게 됐고 이는 곧바로 사회 이슈가 됐다. 언론은 사라진 모성이 어쩌고, 인권이 사라진 세상 등 생모에 대한 소나기 같은 비난으로 시끌시끌하다. 그냥 눈물이 쏟아졌다. 얼마나 힘들었으면….왜 20만원이었을까? 막막함과 답답함이라는 단어가 한꺼번에 겹쳐온다. 여성 혼자서 아이를 낳고 36
가을걷이가 일찍 끝났습니다. 가을비는 떡비, 봄비는 일비라고, 가을비가 내리면 모든 일을 멈추고 떡을 해 먹으며 쉰다는데, 세 차례의 연이은 태풍 이후에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은 통에 단 한 차례의 휴일도 없이 일하게 돼 가을일이 일찍 끝나게 된 것입니다.일이 일찍 끝나서 좋기는 하나, 월동작물이 또 걱정입니다. 가을에 작물을 좀 키워놓아야 뿌리가 튼실해져 겨울에 동해를 덜 입게 되는데 한 달 넘도록 비가 안 내리니 올 겨울은 또 어떻게 넘길지 걱정입니다. 걱정, 걱정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또 양면성이 있습니다. 걱정이
시골집의 새벽은 낮보다 소란하다. 봄이 되면 산양의 짝을 부르는 소리가 또 여름이면 고라니의 고약한 소리와 밝아지는 여명과 함께 울리는 매미떼의 합창이 그야말로 야단법석이다. 그리고 가을 새벽을 맞이한다. 서늘한 바람과 함께 집의 모든 창은 닫히고 밤새 내려간 온도를 감지한 똑똑한 보일러는 덜커덩 소리를 내며 먼저 돌아가기 시작한다.집 주변이 워낙 조용한 탓에 보일러 소리가 크게 들리기도 하지만 연료는 곧 돈이라 한없이 돌아가는 보일러 소리는 눈을 번쩍 뜨이게 한다. “빨리 꺼야지.”모심기 몇 달 만에 들판은 누렇게 물들어가고 그것
일단 추석이 지났으니 나주 배농가들은 잠깐이지만 여유가 생긴다. 여유가 생기면 하고 싶은걸 해야 하는데 그게 그리 맘대로 되지 않나보다. 친구는 나이가 들며 건강을 더 챙기는데 중부지방에만 살이 몰린다며 걷기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그러나 이틀 만에 나가기가 싫어졌다고 한다.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게 우리네 농민들 생활이지만 농번기 때 허천나게 돌려버린 몸이 여기저기 망가지니 운동보다는 병원 가는 날이 더 많다.아침저녁으로는 추워서 몸도 마음도 오그라들고 자꾸 하던 모든 일들이 하기가 싫어진다. 한 해 한 해 달라지는 몸을
30년 전의 나의 이야기1톤 트럭 좌석 뒤편은 언제나 딸아이의 놀이터가 됐다. 잠이 오면 그냥 드러누워 자다 문을 스스로 열지 못하니 고래고래 엄마를 부르다 아빠를 부르다 그렇게 잠이 들곤 했다. 하우스 한편엔 커다란 고무통을 두고 그 속에 아이를 두고 일을 했다. 고무통이 크고 무거워 아이는 끝내 그 안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놀다가 울다가 그렇게 잠이 들곤 했다.딱히 봐줄 이가 없어, 기저귀를 떼지 못한 아이들의 어린이집 비용이 너무 많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행히 아이를 데리고 와서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할 일이었을까? 직장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