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정신이 깃든 농민 옷을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농민문화로 확산됐으면 좋겠어요” 한국사회 산업화 과정의 아픔과 1980년대 암울했던 군부독재 시절을 온 몸으로 겪어온 이기연 씨. 그는 노동자 문화운동을 통해 현장과 노동자에게 힘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민중미술’에서 답을 찾고 활동했다. 이후 ‘우리옷’의 우수성과 철학을 널리 알리기 위해 우리옷 브랜드인 ‘질경이’를 설립해 우리옷 연구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 옷은 살림의 문화, 농민복은 농민문화 전달통로 가능 한도숙=어려운 삶을 살아오셨지요. 풍문여고를 졸업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제 지인 몇 분도 이 사장님을 알고 있더군요. 학창시절에 유명했나보죠. 이기연=그림을 유별나게 그렸었
늘 그렇듯 두 계절을 지나 한 계절이 바뀌는 가을의 시작점에 서 있습니다. 그 어느 해 보다도 뜨거웠던 여름. 우리들의 낮과 밤을 점령했던 무더위와 열대야를 두 녀석이 보쌈 해 가버렸네요. 볼라벤과 덴빈의 심술 덕에 남부지방은 몇 십 년 된 소나무가 뽑히고, 운행 중이던 차량이 물에 잠기고, 등교생이 부상을 입고, 농가에 큰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태풍 온다고 유리창에 신문지와 테이프를 붙인 건 머리털 나고 처음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서울은 조용히 지나갔지만요. 누군가는 좁디좁은 땅이라고 하지만 이렇게나 먼 나라 이야기 같은걸 보면 우리나라도 참 넓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넓어서 아직 내나라 땅 구석구석도 밟아보지 못했으니까요. 그래서 나는 자전거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일주하는 게 작
오늘 대한민국의 농촌은 병들어 있다고 한다. 그곳은 더 이상 뭇사람들의 고향이 아니며 도시민들의 비애와 분노를 누그리고 인간성을 회복시키기에 마땅한 곳이 아니다. 그곳도 도시와 못지않은 경쟁의 소용돌이와 자본의 예리한 칼끝이 이미 깊숙이 들어와 버린 처절한 생존의 현장이다. 여차하면 보따리를 싸들고 훌쩍 떠나야할 패배자들과 탈락자들이 끙끙 신음을 내며 농촌의 끝자락에 매달린 곳이다. 도연명(陶淵明)은 쌀 닷 말에 자신의 인격을 팔고 싶지 않아 벼슬을 버리고 시골로 들어가며 ‘귀거래사’라는 시를 썼다. 물론 예전의 법도대로 한다면 현직에 있을 때만 서울에 있고 벼슬을 놓으면 시골로 가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돌아가시기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내놓고 고향인 봉하로 내려가 농사를 지은 것이 그런 모
양약은 흔히 효과가 빠르지만 부작용이 많다고 생각하고, 한약은 효과는 느리지만 부작용이 없거나 몸에 큰 무리를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무 작용이 없는 물질을 복용한 경우에도 10% 전후로 부작용이 생긴다는 것이 연구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한약도 어떻게 보면 우리 몸에서는 이물질인데, 한약을 복용한 후 어떤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부작용이 생기는지, 얼마나 강하게 나타나는지, 약을 중단해도 계속 부작용이 발생하는지 등이 더 중요합니다. 한약의 경우 대개 복용을 중단하면 며칠 안에, 길어야 일주일 안에 부작용이 없어지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한방약은 부작용이 적다”는 말보다 “부작용이 있으나 정도가 가벼운 것이 많고 중단하면 대개 좋아진다
며칠 전, 다섯 명의 남자들이 우리 집을 방문했다. 50대 전후의 남자들은 모두 귀농을 꿈꾸는 이들이었다. 그 중 한 사람이 이름을 대면 알만한 소설가이고 그런 인연으로 우리 집으로 일종의 사전 견학차 온 것이었다. 마침 복숭아를 따던 날이었고 얼추 작업도 끝난 시간이었기에 시장에 가지 못한 흠집 난 복숭아를 한 바구니 씻어와 원두막에 둘러앉았다. 학교선생을 하다가 일찌감치 퇴직한 이도 있고 도저히 무슨 일을 하며 평생 살았는지 요령부득인 사람도 있었는데, 그들의 공통점은 농사일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귀농을 꿈꾸는 이들이라 그런지 복숭아를 먹으면서 연신 농사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가만히 들어보니 영 초짜들은 아니었다. 토양이니, 미생물이니, 효소제재니 하는 전문(?) 농업용어들을 스스럼없이 구사하며 대
착하게 살면 나만 손해보고 산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자주 있다.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고, 그야말로 어릴 때에는 온순하고 방긋방긋 잘 웃는 아이들은 귀여움을 받기는 하지만 관심은 적게 받는다. 일단 칭얼대고, 건강상의 문제가 많은 아이들이 더 많은 보살핌을 받게 되고, 손 한 번이라도 더 가고 약 한 알 더 먹고 밥 한 끼라도 더 얻어먹게 된다. 착하게 살면 손해본다? ‘돌아온 탕자’처럼 묵묵히 자기 일을 하면서 타인에게 폐 끼치기를 꺼리고 주위의 기대에 부응하며 살아가는 경우보다 때로는 제멋대로 행동하고, 길을 잃고 헤매고, 심지어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서 살아가는 경우가 더 많은 관심과 배려를 받는 경우가 많다. 사소한 일에도 소송을 걸어버리는 전문 소송꾼들이나 악질적으로 불만을
누구나 그럴 테지만 내게도 정체불명의 이메일이 오곤 한다. 개인정보가 숱하게 유출되었다니 아마 그렇게 흘러나간 메일 주소로 오는 듯하다. 나는 불행히도 소통을 잘 하지 않고 사는 쪽이어서 오는 메일 대부분을 열어보지도 않고 지운다. 진짜 중요한 일은 결코 편지로 오지 않으며 인간은 평생 동안 한두 통의 꼭 필요한 편지를 받는다는 소로우의 말을 충실하게 믿는 독자인 탓이다. 그렇긴 하지만 제목이 일단 낯익으면 클릭을 하여 열어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물론 그런 것들도 대개 그냥 지웠어도 좋을 것들이 대부분이다. 오늘은 내가 속한 한 작가 단체에서 온 메일을 무심코 열었다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용은, 박정희를 다룬 영화를 제작하는데 제작을 돕거나 홍보위원으로 참여해달라는 것이었다. 저명한 인사
저는 곶감으로 유명한 경북 상주시 내서면 서원리에 살고 있는 두 딸의 엄마이자 3년차 농촌 초보새댁 유미경 이라고 합니다. 처음 제가 이곳으로 이사 왔을 땐 아침저녁으로 들리는 개구리소리가 시끄러워 밤잠을 설쳤는데 요즘은 매미 개구리 소리가 안 들리면 어색하기까지 하네요. 대도시에서 자라지 않았지만 상주 시내에서 살다가 곶감농사를 짓는 남편을 따라 시내와 20분 거리인 내서면 서원리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이곳에서 생활하기 전까진 낭만적인 전원생활처럼 쉽게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볼 일이 있을 때면 시내와 20분 거리니까 쉽게 왔다갔다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농촌생활이라는 게 그리 넉넉하지 못해 치솟는 기름 값을 감당하기가 힘들어서 생각만큼 외출하기가 힘듭니다. 시내에
태풍이 자주 몰려오는 듯하다. 7월에 불어 닥친 ‘카눈’은 별 피해 없이 지나갔다. 그러나 이번 8월 28일 태풍 ‘볼라벤’은 많은 농민들의 가슴을 쥐어뜯어 놓았다. 게다가 먼저 발생한 14호 태풍 ‘덴빈’이 대만에서 머무르고 있다가 다시 북상하며 비바람을 쳐 설상가상 피해가 늘어날까 걱정이다. 태풍이 불면 걱정근심으로 밤을 지새우는 이들이 과수재배 농민들이다. 특히 배나 사과를 재배하는 농민들의 근심걱정은 같이 있기 불편할 정도로 깊다. 그래선지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여기저기 안부와 위로 전화가 바쁘다. 그도 그럴 것이 넓은 과수원에 즐비하게 떨어진 사과나 배의 모습이 대단히 선정적이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추석을 가까이 두고 수확을 눈앞에 둔 상태여서 한 개만 떨어져도 아까운데 절반 가까이 떨어지고 나
하지불안증후군은 심각하고 만성적인 신경계질환으로 수면장애의 흔한 원인이며 많은 환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질환에 대한 인식은 매우 낮은 실정 50대 중반의 여자 환자가 밤에 가만히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자려고 누우면, 다리에 무엇이 기어 다니는 것 같아 신경이 쓰여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내원했다. 가끔은 저리거나 심지어는 아프기까지 했다. 그래서 일어나서 걸으면, 증상이 완화되고 다시 자려 하면 증상이 심해져서 잠을 이루기가 힘들었다. 벌써 몇 달째 일주일 3차례 정도 계속돼, 항상 피곤하며, 만사가 귀찮아져 생활하기 힘들다고 호소했다. 하지불안증후군, 수면장애의 일종 이와 같은 증상이 있으면 하지불안증후군을 의심해야 한다. 하지불안증후군은 전 국민의 7.5% 가 앓고 있는 매우 흔한 수면
대체 어쩌자고 날씨가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 가뭄에 폭염이 이어지더니 마치 장마철처럼 구구장창 비가 쏟아진다. 사람 마음이 간사하여, 지난주에 큰 비가 내릴 때만해도 이제 해갈이 되었다고 좋아했는데 햇빛 한 번 제대로 나지 않고 비가 이어지니 오히려 가뭄이 더 낫다는 생각마저 든다. 가물면 물이라도 퍼서 위급을 면할 수 있지만 속절없이 내리는 비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요즘은 한창 복숭아를 따는 때인지라, 수분을 빠르게 흡수하는 복숭아나무 특성상 비는 몹시 해로운 존재이다. 복숭아의 당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소비자들도 비가 많이 올 때 복숭아를 샀다가는 오이만도 못한 맛을 감수해야한다는 것을 안다. 당연히 값은 폭락하고 복숭아 과수원을 하는 나 같은 농민의 가슴은 타들어간다. 값이 떨어질
5,60년대의 보릿고개를 경험한 세대들, 특히 농촌에서 겪었던 사람들은 대개 끔찍했던 가난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절대적 빈곤 속에서 고통받은 이야기를 누구나 가지고 있다 하겠다. 나 역시 농촌에서 태어나 아버지나 주위 어른으로부터 가난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다. 하지만 그야말로 소설에나 나올 법한 극도의 가난과 고통의 세월을 거창의 표만수 선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절절하게 느꼈다. 마치 찰스 디킨슨의 소설에 등장하는 근대 초기 영국의 가난한 소년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 그 정도로 선생이 살아온 내력은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그런 가난과 고통을 뚫고 농민운동가로 거듭난 선생의 모습은 단단한 바위와도 같았다. 선생을 만난 것은 거창의 한 병원이었다. 교통사고를
나는 서울에서 태어난 전형적인 서울깍쟁이다. 유년기까진 친구들 거의 서울태생들이었고 서울 사람인 것이 우월한 것인 줄 알고 살았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며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를 벗어나지 못하고 사는 것이 우물 안 개구리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나와 다른 방식으로 다른 환경에서 땀 흘리며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이다. 이번 여름에 지리산둘레길 함양, 산청 구간을 걸었다. 뙤약볕 아래를 혼자 걷다 논과 밭에서 일하시는 어르신들을 만나면 어찌나 반가운지 수줍음 많은 내가 먼저 인사 건네고 말붙인다. 어디서 왔냐고 물으시는데 서울에서 왔다는 말이 선뜻 나오질 않는다. 당신은 뙤약볕 아래 일하고 계신데, 왠지 미안하다.서울여성회에서 ‘횡성으로 떠나는 즐거운 초록 휴가’를 다녀왔다. 언니네 텃밭 횡
정조대왕 때 서유문이란 사람이 서장관으로 북경을 다녀온 후 쓴 무오연행록(戊午燕行錄)에 보면 숭늉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밥을 먹고 체했는데 숭늉을 마시고 체증이 내려갔다는 이야기다. 숭늉과 관련한 이야기는 임원경제지나 개인 일기들에서 많이 나타나는걸 봐서 중요한 음료였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사신으로 북경을 다녀온 사람들의 기록에는 숭늉이 자주 등장하는데 중국의 기름기 많은 음식에 지친 위를 개운하게 하는데 숭늉만한 것이 없었나 보다. 숭늉은 밥의 전분이 열을 받아 분해돼 ‘포도당’과 ‘텍스트린’이 생기면서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소화를 돕는다. 바로 ‘텍스트린’이 소화제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숭늉이 우리 음식에서 사라진 것이 불과 30여 년 전의 일이다. 누룽지가 눌지 않는 전기밥솥의 등장이 숭
술이름에 혹해서 복원을 시도했던 술이 만년향(滿年香)이다. 만년향이란 주품은 1800년대 문헌인 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록된 방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술이 어떻게 해서 만년향이란 아름다운 이름을 얻게 되었는지, 아름다운 이름에 끌려 술빚기를 시도해보게 되었다.설레임 반 두려움 반으로 술빚기를 시도하면서도 자신이 서질 않아 밑져봐야 본전 아니냐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았다. 맹목적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방문에서 독특한 점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만년향처럼 사라지고 맥이 끊긴 술을 재현하는 술빚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 술의 특징과 함께 어떠한 맛과 향기를 담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만년향을 직접 빚어보면서 새롭게 경험하게 된 사실은, 만년향의 향기가 결코 장난이 아니라는 것
“농촌문제는 농민만의 힘으로 해결될 수 없을 것이라 봐요. 농촌을 살리려면 국민들이 함께 노력해야 해요. 기본적으로 농업·농사가 ‘사람 살림’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어요. 이것처럼 훌륭한 게 어디 있나요?”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서 농촌·농민의 삶을 그려낸 임옥상 화백은 농업이 갖는 의미에 대해 이 같이 밝혔다. 이어 “농사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이 많아요. 도시 사람들에게 의식의 혁명이랄까 단초를 농사를 통해서 얻어낼 수 있을 것 같아요”라며 농업의 중요성과 미래에 대해 강조했다. 시를 쓰는 농민인 한도숙 본지 사장과 농업·농민에 애착을 갖고 활동중인 임옥상 화백이 만나 농업과 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현실 그리지 않으면 작가윤리에 맞지
며느리는 이 집 말고 아파트로 이사 갔으면 좋겠다고 넌지시 말한다. 단독주택이니 겨울에 너무 춥고 보일러 기름값도 너무 들어가고 옛날에 지은 집이 불편하기도 하지만 나는 싫다. “꼭 가고 싶으면 가렴. 나는 이 집이 좋다”고 하니 이해가 가지 않는지 고개만 갸우뚱 했다. 작지만 앞마당에 잔디 깔렸고 꽃밭도, 텃밭도 있으니 삶의 즐거움이 여기에 있는 것을 젊은이들은 모르나보다. 텃밭이래야 기껏 한 80평쯤 될까 말까 하지만 고구마, 옥수수, 마늘, 오이, 고추, 가지, 토마토, 부추, 상추, 쑥갓, 호박, 울타리콩에 참 여러 가지를 심었다. 그도 농사라고 퇴비도 사고 씨앗에 비닐에 살 것이 꽤 된다. 며느리에게 시장 가는 길에 무, 배추 씨앗 사오라고 했더니 “거기서 몇 푼 나온다고요. 힘들어요. 그만
존스타인벡의 출세작 소설 ‘분노의 포도’는 1930년 대공황시기 민중들의 삶을 현실적으로 묘사하여 노벨상을 수상했다. 이후 ‘분노의 포도’는 가난한 농민들을 트렉터로 밀어버리는 자본의 비인간적 처사를 고발하여 사회주의리얼리즘의 진수로 곧잘 인용됐다. 농산물의 잉여가치를 올리기 위해 농장주와 자본가들은 포도를 농장에서 썩게 만들었고 배고픈 농민들의 인건비를 갉아먹었다. 이에 항거하는 농민들은 맞아죽거나 감옥으로 보내졌다. 그가 본 미국의 농업은 자본의 우악스런 힘으로 땅을 강간하는 수준이었다. 80년이 지난 지금 뭐가 변한 게있나? 여전히 자본의 착취는 여기저기서 음험하게 노동자, 농민들의 골수를 빨아대고 있으니…. 세계 식량 위기를 말하고 있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바로 소설 ‘분노의 포도’무
최근 올림픽과 유난히 더운 날씨 때문에 밤잠을 설친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약 이외에 불면증에 도움이 되는 방법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불면증의 증상은 사람에 따라 다양한데 잠들기가 어려운 경우, 잠을 길게 못자고 일찍 깨버리는 경우, 잠을 깊게 못 자서 잠을 자도 피곤한 상태가 계속 되는 것 등이 있습니다. 불면증이 일시적으로 있는 경우도 있고 장기간 지속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시적인 불면증은 입원, 시험, 발표 등 심리적 스트레스 상황에서 잘 생기고 만성 불면증은 우울증, 불안증 같은 정신적 문제에서 발생하는 경우, 다른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에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데 고혈압이나 심혈관계 기능부전, 갑상선 기능항진증, 류마티스 관련 질환, 파킨슨병, 위식도역류, 천식, 두부 손상,
방학도 다 끝나가는 중학생 아들이 아빠와 함께 할 숙제가 있다고 했다. 공부며 숙제며 모두 아내에게 미루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무심한 내게 함께 할 숙제가 있다니 의아한 일이었다. 들어보니 얼핏 수긍이 가면서도 이상한 숙제였다. 아빠의 직업을 체험하고 그 느낌을 적어오기라는 것이었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숙제였으니 요즘은 교육이 좀 달라졌나보다 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하지만 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버지가 공무원이면 거길 따라가서 체험하고, 택시운전사면 옆자리에 타고 체험한다는 말인가. 직업에 따라서 체험할 수 없는 아이들도 있을 텐데 일률적으로 그런 과제를 내준다는 게 우습기도 했다. 아버지의 직업 현장에서 찍은 사진도 첨부해야 한다고 했다. 아들은 보통 남이 아빠의 직업을 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