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고 사랑하는 조합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로 시작하는 인사말을 흘낏 넘겨보다가 준석은 헛웃음을 쳤다. 아무리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게 사랑한다는 말이었다. 게다가 조합원 태반이 저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인데, 그런 인사가 합당한지 준석의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이엠에프 때 대통령이 된 이가 연설할 때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이라고 할 때도 퍽이나 이상하게 들렸다. 사랑이란 말은 진짜 그런 말을 할 만큼 가깝거나 친밀한 사람에게 쓰는 말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어쩌다 걸려오는 전화에서도 툭하면 사랑합니다, 고객님 운운하여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유들유들한 이상태의 얼굴이 겹쳐서 인사말 첫머리를 보고는 그 뒤는 읽을 마음도 일지 않았다. 조합장을 직선으로 뽑
돼지고기는 꼭 잘 익혀서 먹어야 한다고 들었다. 대학을 다니던 어느 날 친구들과 의정부 어느 쯤에서 제육볶음을 먹고 귀가해 자다가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간 적이 있었다. 고추장에 버무려져 조리된 그 고기가 덜 익은 것이었는지 아니면 세균탓이었는지 잘 모르지만 그날의 고통만은 잊지 못한다. 그 뒤로 나는 삼겹살은 과자처럼 바삭하고 노랗게 구워질 때 까지 기다려서 먹고 고추장 양념으로 버무린 돼지불고기도 혹시 익지 않으면 어쩌나 하여 늘 조바심치면서 오래 불에서 익혀 상에 올렸다. 돼지를 키우던 환경을 기억한다. 어린 시절 내 모든 추억의 근원지였던 외가 뿐 아니라 돼지를 키우며 살던 그 어떤 누구의 돼지우리도 거기서 거기였다. 먹다 남은 음식이 모아져 가는 곳, 10m전방에서도 알 수 있는 돼지우리의 냄새, 돼
고구마는 어지간해선 꽃을 피우지 않는다. 그런데 고구마가 꽃을 피웠다. 그것도 넝쿨이 아주 실한 상태에서 메꽃 같은 나팔을 여럿 매달고 있다. 언뜻 생각은 50년 전으로 달려간다. 60년대 삼남은 물론 전국적으로 가뭄이 들었던 어느 해 모를 내지 못해 호미로 논바닥을 긁으며 모를 낸 해가 있었다. 그때는 분식과 혼식이 강요될 만큼 식량사정이 좋지 않던 시절이었다. 가뭄은 식량기근으로 이어지고 굶주림을 몸소 체험한 세대들은 걱정이 태산과 같았다. 가족이 주리기라도 하면 그것은 죽음과도 연결된 것이기에 모두가 근신하고 둠벙에서 물을 퍼 나르는 등의 노력으로 농사를 지었다. 고구마도 그렇게 심었다. 꾹꾹 눌러 심고 물을 퍼 날라 뿌리고 풀을 베어다 이랑을 덮었다. 그렇게 간신히 뿌리내린 고구마가 꽃을 피웠다. 아
고혈압식단을 부탁받고 고민한 적이 있다. 하루 세 끼 일주일 식단을 6개월간 짜야했는데 갑자기 한 사람의 음식을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나로서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염분을 제한하거나 칼로리를 낮추고 육류의 섭취도 줄여야 하는 등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지만 나는 내 나름대로 먼저 식단을 짜는 원칙을 세웠는데 그 중 제일로 꼽은 것이 제철에 나는 식재료를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그 식단을 지키며 음식을 먹을 사람이 사는 곳으로부터 가능하면 가까운 곳의 식재료를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생각이 거기에 머물자 제일 먼저 떠오르는 식재료가 사과였다. 고혈압식단이 필요한 지인은 장수에 살고 있었고 고혈압에 먹어도 되는 대표적인 과일이 사과이기
아들만 삼형제를 두고 그 입들을 먹여 살리느라 밤낮없이 일에 매달린 덕에 정덕봉은 이내 행랑살이를 끝내고 목구멍에 풀칠할 정도의 전답을 장만할 수 있었다. 그리고 큰 아들 승태가 대학교에 들어갈 무렵에는 마을에서 칠천 평 정도를 소유한 손꼽히는 땅 부자가 되었다. 더구나 세 아들 모두 까막눈 부모에게서 나온 자식답지 않게 공부에 힘을 쓰더니 척척 대학까지 붙어주었다. 당시만 해도 시골에서 세 아들을 모두 대학교까지 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덕분에 논 몇 마지기가 상아탑 아닌 우골탑으로 들어갔어도 만나는 사람마다 건네는 축하 겸 인사를 받는 맛에 정덕봉의 어깨에 힘이 들어가던 시절이었다. 그 무렵부터 정덕봉이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다. 원래 못 먹는 술이 아니었건만 제 주머니 돈 나가는 것
분별없는 개방농정으로 고추농사가 망하게 됐다. 고추가격하락이 농사지을 힘을 빼앗고 있는 것이다. 1982년도에는 고추 한 평을 심고 그 고추값으로 한 평의 땅을 산다고 할 만큼 고추는 환금성 작목이었다. 그 후 수입산 연초로 담배농사가 어려워지자 담배농사 대신 고추농사로 몰려 고추값이 폭락했다. 농민들은 “노태우 고추 잘라버리자”며 조직적으로 고추투쟁을 시작했다. 개방농정으로 농민들의 설자리가 흔들리기 시작하자 조직적 저항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소몰이 투쟁과 고추싸움 두 가지가 본격적 농민투쟁의 상징일 것이다. 고추는 임진왜란 때 왜군이 조선사람들 먹고 죽으라고 가져와 심었다는 속설이 있을 만큼 임진왜란 이후 급속하게 퍼져나간 것으로 본다. 근거는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왜겨자’ 또는 ‘남만초
식은땀, 의욕 저하, 끌어 오르는 화 여성 갱년기 증상? NO! 40대 이후, 남성 호르몬 매년 1%씩 감소 하면 남성 갱년기 나타나… 복부비만, 근육량 감소, 체모 감소, 피로감 증가 증상도 과도한 음주, 흡연, 스트레스남성호르몬 결핍 키운다 중년남성 삶의 질 위해 예방 필요 50세 전후 여성에서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식은땀이 나고, 자기도 모르게 의욕이 떨어지면서, 화가 나는 등의 현상이 생기는데, 이는 여성 호르몬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생기는 증상으로 폐경기 증후군이라고 하며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런 증상이 여성 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나타난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남성을 남성답게 하는 성호르몬이 테스토스테론인데, 40대 이후 매년 약 1%
춘천에서 초등학교를 입학했지만 군인이라는 아버지의 직업 때문에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서울로 전학을 했다. 서울과 첫 인연을 맺은 곳은 정릉의 청수장 부근이었고 나는 어머니를 따라 아주 가끔 미아리고개를 넘어 돈암동으로 나들이를 했다. 그때는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계라는 경제활동(?)을 통해 저축을 하던 때였고 그때마다 큰 음식점에 모여 평소에는 먹지 못하던 음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내 나이 열 살, 그때 그곳에서 처음 먹어본 소고기로 요리한 불고기의 맛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리고 한 동안은 우리 모두에게 최고의 외식메뉴는 바로 그 불고기였는데 요즘은 서울엘 가도 그런 불고기를 파는 음식점을 찾아보기 힘들다. 음식으로 풀어낸 서울의 삶과 기억이라는 부제를 달고 따비출판사를 통해 나온
논에 우렁이를 넣는다, 오리를 키운다 하며 친환경 벼농사를 시작했던 사람들 중에 벌써 반 가까이 그만둔 것을 준석은 알고 있었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던 탓에 이미 편하게 논농사를 짓던 일에 익숙해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다시 관행농법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개울가에 붙은 병균네 논은 더 한심했다. 집안이 그렇게 되다보니 늘어나는 건 날마다 비우는 소주병이었고 아직 젊은 나이에 알코올 중독에 빠져버렸다. 농사는커녕 다니는 환경미화원 일도 아슬아슬했다. 보통 새벽 세 시에 나가서 열시가 좀 넘으면 일을 마치는데 그 사이에 이미 소주 몇 병을 비워 집에 돌아올 때에는 혀가 꼬부라져 있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오랜 정으로 감싸주지 않으면 직장에서 잘리고도 남을 판이었다. 허긴 일반 직장이 아니라 잘릴
트로이전쟁의 용사 오디세우스가 돌아오던 길에 풍랑으로 조난을 당했다. 다행히 어느 섬에 다다랐는데 이 섬은 여신 칼립소의 섬이다. 여신 칼립소는 오디세우스를 사랑하게 된다. 오디세우스에게 자신과 함께 낙원 같은 섬에서 신들처럼 죽지 않고, 편안히, 행복을 만끽하며, 사랑하며 살자고 속삭인다. 그렇다. 인간의 한정된 삶은 병마의 고통과 빼앗김의 공포와 전쟁의 폭력으로 얼룩져있다. 칼립소와 함께 한다면 아늑하고 행복한 삶이 영원해질 수 있다. 오디세우스는 오랜 고민을 해야 했다. 그리고 선택했다. 칼립소와 함께하는 것은 옳은 길이 아니라 판단했다. 인간으로서 고통과 공포가 견디기 어려운 형국의 길임을 잘 알지만, 신들과 같은 평온한 삶이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주진 못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자신이 얻
입안은 전신의 상태를 잘 반영하는 기관입니다. 몸이 피곤하고 전신 상태가 떨어질 때 입안이 붓고 입병이 나는 것도 비슷한 원리입니다. 또한 입안의 상태가 전신 상태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대표적 전신 질환인 당뇨 및 심혈관계 질환(고혈압 등)이 있는 경우 입안의 건강 상태 개선은 전신 상태 개선에 영향을 미칩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호부터 ‘농민과 건강’의 치과부분 칼럼을 담당하게 된 박두남입니다. 올해로 치과임상 경력 10년차 이며, 40대 중반의 여성입니다. 안성생협치과에는 올해 7월부터 근무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지면으로 여러분들과 만나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소중한 인연으로 만들어 가겠습니다. 첫 칼럼으로 어떤 내용이 좋을지 고민하다가 치과의사로서 보람을 느낀 일을 소개하기로
“더 악화되신 겨? 병원에서는 뭐라는데?” “연세두 있구, 즤덜두 자신이 읎넌 병이니께 퇴원할려면 하라는 투더라구요. 근데 집에 오셔두 누가 간병을 할 사람이 있어야쥬. 엄니두 자칫하다간 아부지보다 먼저 가게 생겼는디.” 병균의 아버지 장길태 씨는 두 달이 넘게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이미 여든이 다 되었고 평생 술을 좋아해서 일흔 전에 이미 간경화 진단을 받은 깐으로는 오래 살았다고 할 수 있었다. 이제는 병원에서도 포기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했다. 병균의 어머니 또한 얼마 전에 눈길에 미끄러져 넘어진 게 동티가 되어 자리보전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예끼, 승희 애비넌 그기 무슨 소리여? 그깟 눈길에 넘어진 게 뭔 대수라구 그런 험한 소릴 다 혀? 암만 속이 상해두 그렇지.” 준석 몫의
괴산은 고추의 고장이다. 그래서 나는 지리산으로 이사를 오기 전까지 괴산에 귀농한 농부를 통해 해마다 고추를 구입하였다. 첫 구입 때 한 번 방문하여 인연을 맺고는 늘 추석 전에 연락을 하여 첫물고추나 두물고추를 위주로 사서 잘 닦고 조금 더 말려 필요할 때 써왔다. 김장할 것은 김치용으로 조금 덜 빻고 고추장을 담을 것은 아주 곱게 빻아 따로 잘 싸서 냉동보관을 해 두고 평소에 음식을 할 때 넣어 먹을 것은 또 별도로 보관을 하는 일을 추석 전에 모두 끝내두었었다. 지리산 인근으로 내려온 이후로 나는 마을의 농부에게서 고추를 구입하고 있으며 도시에 살고 있는 지인들의 고추구입도 대행하고 있다. 물론 이 마을 대부분의 농부들은 친환경농법으로 고추를 생산하기 때문에 고추가격의 등락에 별 생각 없이 생산
樂飢臺.배고픔을 즐긴다는 의미다. 체념일까. 아니면 요즘으로 치자면 건강을 위해 뱃속을 비운다는 것인가. 낙기대. 이는 경북 영양군 석보면 두들마을 아랫자락 벼랑이다. 마을이 7,8미터 가까운 높이의 벼랑위에 있는 것도 기이하지만 그 벼랑을 낙기대라 칭하는 것도 기이하다. 이 마을은 ‘음식디미방’을 지은 장씨 부인의 석계고택이 있는 마을이다. 음식디미방은 17세기 중엽의 가루음식과 떡 종류의 조리법을 설명한 면,병류 등 모두 146개 항에 달하는 음식 조리법을 한글로 서술한 최초의 한글 조리서이다. 이만큼 음식에 대해 기록하려면 다양한 음식재료를 쓸 수 있는 경제적 기초가 탄탄해야 한다. 장씨의 남편 석계 이시명은 당대 영남의 5대부호로 손꼽혔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 집안의 사람이 낙기대라 명하고 배고
최근 여름 휴가철과 가을철에 나들이객들이 많아지면서 자동차 사고도 많아지고 있다. 다행히 큰 사고를 피하였어도, 자동차 사고의 특성상 가벼운 접촉사고라 할지라도 후유증이 오래 남는 경우가 많다. 교통사고 이후 치료와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교통사고의 대부분은 뒤에서 추돌을 당하거나 또는 반대로 앞으로 추돌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우리 몸은 앞, 뒤로 크게 흔들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특히 척추가 큰 충격을 받게 되는데 목이 “쾅” 하면서 앞으로 심하게 꺾였다가 반동으로 뒤로 심하게 꺾이는 충격을 받으며, 등에서 허리뼈까지 충격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사고 이후 일차적으로 병원에서 엑스레이와 여러 가지 검사를 받게 되고 증상이 심한 경우 입원치료와 약물치료, 물리치료를 병행하게 된다. 문제는 검사
요즘 허리 아픈 환자들 중에는 디스크 수술 안 한 사람이 점점 드물어지고 있다. 사회가 고도화 되고 분업화 되면서 앉아서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단순 반복 작업이 많아지면서 운동할 기회는 적어지고, 어찌 보면 허리 병을 앓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하지만 한편으로는 점점 늘어만 가는 척추전문병원 광고들을 보노라면, 허리 아픈 사람이 많아 병원이 많이 생기는 것인지, 병원이 많이 생겨 허리 아픈 사람이 늘어가는 것인지 선후관계가 모호해진다. 어찌됐건 확실한 한 가지 현상은,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척추전문병원이 점점 늘어나고, 허리 수술 건수도 늘어가지만 허리 때문에 고생하는 환자 수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단기간에 요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찬 광고들을 보고 있노라면,
휴가철이다. 집으로 들어오는 계곡을 한 구비 돌 때 마다 옥수수를 쪄서 파는 사람들이 보인다. 옥수수다. 땀 흘리고 일하다 지쳐서 돌아가는 길이니 입맛도 없고 밥하는 것도 귀찮은데 집에 가면 누군가 쪄놓은 옥수수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간절함이 통했는지 현관을 들어서는데 택배 상자가 하나 놓여 있다. 춘천에 계시는 이모에게서 온 것인데 풀어보니 얼음팩에 둘러싸인 올챙이묵이 하나 가득하다. 양념장과 잘 익은 열무김치까지 들어있다. 입이 귀에 걸려 저녁으로 올챙이묵을 먹는다. 맛나고 맛나다. 내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강원도엔 정말 옥수수가 잘도 컸다.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니께 옥수수 쪄먹자고 투정을 부리면 할머니께서는 늘 밭에 가서 옥수수를 따올 테니 가마솥에 물을 넣고 아궁이에 불을 때라고 말씀
양말을 두 켤레나 신고 털이 든 겨울용 장화까지 신었는데도 두어 시간이 못되어 발이 시려왔다. 혼자 전정을 다 하려면 달포는 족히 걸릴 터였다. 아내는 다른 일은 다 잘하면서도 과수 전정만은 끝내 배우지 못했다. 하긴 여자가 전정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몇 해 전만 해도 과수원을 하는 친구들이나 작목반에서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품앗이를 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옛날 일이 되어버렸다. 작지 않은 사건 때문이었다. 안골에서 사과 과수원을 크게 하는 동필네에서 품앗이 전정을 하다가 한 친구가 사다리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고, 처음에는 허리를 삐끗한 정도로 알았는데 어쩐 일인지 점점 악화되어 그 해 내내 일을 못하고 드러누워 지내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 일로 친구 사이에 병원비니, 한 해
50여 일 간의 장마가 끝나자마자 국지성 소나기가 뒤를 따른다. 장마가 일찍 시작 됐지만 10여 일 간은 실종상태였다가 7월부터 장마전선이 활성화 돼 8월 5일 소멸 됐으므로 실제 장마는 한 달 남짓 된 것이다. 이런 날씨 현상은 도시 확대와 곳곳의 콘크리트 구조물들로 인해 자칫 큰 사고를 일으키는 현대의 고질병이 되고 있다. 즉 기상이변이라는 측면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나 이는 기상청의 발표가 과장된 측면도 있고 이를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매스컴의 문제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올 장마는 지루하게 긴 장마임에는 분명하다. 집안이 축축한 채 오래가니 노래기들이 풀섶으로 들어가질 않고 집안으로 기어든다. 징그럽고 냄새난다고 아내는 매일 노래기 잡는 일로 아침을 시작한다. 워낙 습기를 좋아하는 놈이라 화장
소파에 누워 설핏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 보니 아직 자정 전이었다. 잠결에 영주가 칭얼대는 소리를 들었던 것도 같다. 아내는 영주의 방에서 잠들어 있었다. 준석은 한기가 느껴져 방으로 가서 이불을 뒤집어썼다. 등을 댄 바닥이 서늘했다. 연탄보일러는 불이 셀 때가 있고 약할 때가 있는데, 새벽녘에 따뜻하려면 하루에 두 번은 갈아주어야 한다. 불구멍도 조금은 열어두어야 그나마 온기가 도는데, 두 번씩 갈아대는 것도 귀찮을뿐더러 연탄 값도 만만찮아서 늘 불구멍을 막고 지내다보니, 때로는 방바닥이 등 덕을 보자고 할 판이었다. 준석은 바닥에 깔려있는 전기장판에 제일 약하게 스위치를 켜고 따뜻해지기를 기다렸다. 담배 한 대 생각이 간절했지만 창문을 열었다가는 살을 에는 바람이 들어올 터여서 눌러 참는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