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의사가 된 것이 1986년이니 이제 2년만 지나면 30년입니다. 그동안 많은 배움도 있었고 수많은 환자를 만났고 보람을 느낀 경우도 많았고, 실수할 때도 있었으나, 그보다 많은 경우에 의사로서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끼는 경우가 가장 많았습니다. 질병은 수없이 많고, 의학이 발달했지만 아직도 질병 자체를 완벽히 파악하고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질병을 정복하려는 인간의 열망을 비웃는 듯합니다. 인간이 건강하고 오래 사는 것이 항상 행복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원하는 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의사는 사람들의 건강을 유지 증진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현대인은 여러 가지 유해 환경과 잘못된 생활 습관 때문에 다양한 만성 생활습관성 혹은 환경 질환이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온 것은 선택이 열 네 살 되던 해, 그러니까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일 년 전이었다. 초겨울 무렵이었다. 갑자기 집안이 술렁거렸다. “전보가 왔넌디, 우째 심상치 않유. 형님헌테 뭔 일이 있는 것 같어유.” 손바닥만 한 누런 종이를 든 삼촌이 급하게 삽짝으로 들어섰다. “이게 뭣시라고 쓴 거냐? 눈이 어두워 보이질 않는다.” “급래요 영등포 병원 장자라고 써 있구만유. 형님이 병원에 있으니께 얼른 오라는 말 아녀유?” 할아버지는 들었던 담뱃대를 떨어뜨렸다. “야가 어디 좀 아프다고 오라고 헐 인사가 아닌데, 필시 무슨 일이 있나보구나.” 할아버지의 수염이 떨리고 있었다. “그러니까요. 거기도 사람이 있는데, 집에 전보를 친 거 보믄 보통일이 아닌 거 같어유. 얼른 올러가봐야쥬.”
누구나 추억을 만들고 산다. 그 추억 속에는 늘 아련하게 오감을 자극하는 음식들이 함께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내가 기억하는 대부분의 음식들은 어머니가 해주셨던 것들이고 어머니와 얽힌 추억들로 남아있지만, 그 음식들을 먹으면서 만들어진 다른 가족들과의 에피소드들도 꽤 오롯하게 남아있다. 요즘처럼 시도 때도 없이 매식을 하는 경우에는 음식과 맺어지는 자잘한 순간들이 미묘하게 감성을 건드리는 추억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내가 아직 미혼이었을 때만 해도 매식이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매식은 추억으로 남았다. 중학교 입학식에 다녀오던 길에 버스를 갈아타는 미아리고개 정류장 앞 이층 중국집에서 아버지와 함께 먹던 짜장면, 한 달에 한 번씩 계모임을 하러 가시는 어머니를 따라가서 먹던 불고기, 소풍 전날 선생님께
우수 경칩 지나면 대동강 얼음이 풀린다는 속담이 있다. 우수가 지난 19일이고 경칩이 3월6일이니 딱 보름간의 날 차가 있다. 옛 사람들은 우수가 지난 첫 5일에는 수달이 물고기 사냥을 해 말리고 두 번째 5일엔 기러기가 북쪽으로 날아가며 세 번째 5일에 초목에 새싹이 난다고 했다. 이 보름동안 땅속의 얼음도 녹고 개구리가 동면에서 깨어나는 기후로 변하게 된다. 여기서 기후(氣候)라는 말이 생겨났다. 이 보름간을 기(氣)라하고 다시 5일간을 후(候)라고 한다. 그러니 15일 단위의 일기 변화가 사람들의 생활에 밀접하게 작용한 것으로 본 것이다. 보통 기후라고 하면 사계절의 변화를 두고 생각했지 싶은데 사실은 보름간의 날씨 변화를 기후라고 했다니 날씨 변화에 매우 민감한 반응이었던 것 같다. 우수는 본격적으로
시중에 나도는 말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무인도에 갈 때 꼭 세 가지만 가지고 갈 수 있다면 무엇을 고르겠습니까? 요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치과의사를 하면서 꼭 3가지만 골라서 그것으로만 환자를 보아야 한다면 나는 무엇을 선택할까? 만약 딱 한 가지만 고르라면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신기하게도 마지막 한 가지는 처음에 고른 세 가지 중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더군요. 저는 마지막 한가지로 양치질을 선택했습니다. 우리가 치아를 잃게 되는 입안의 질환 중 대표적인 두 가지는 치아가 삭아서 생기는 충치(치아우식)와 치아 주위의 뼈가 줄어드는 잇몸질환(치주질환)입니다. 그런데 이 두 질환은 세균과 관련이 깊습니다. 즉 입안에 세균이 많으면 많을수록 위 두 가지 질환이 잘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입안은
할아버지를 도와 농사일만 하던 삼촌은 이상하게 들떠 있었다. 스물넷의 삼촌은 아직 장가도 들지 않았는데 늘 바지춤이나 저고리에 왼손을 감추려는 듯한 자세였다. 어릴 적에 작두에 엄지손가락 한 마디가 잘려나간 때문이었다. 눈 여겨 보지 않으면 언뜻 알아보기도 어려웠지만 삼촌은 그 탓인지 바깥출입도 잘 하지 않고 사람 만나는 일을 꺼렸다. 그러던 삼촌이 해방이 되고나서는 딴 사람처럼 변해서 밖으로 자주 나돌아다니는 거였다. 할아버지는 그게 퍽이나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자식이라곤 단 둘 뿐인데 하나는 아예 집을 등지고 또 하나는 딴 정신이 든 것 같으니, 집안이 어찌 될라는지 모르겄다.” 할아버지는 잠자리에서 혼잣말처럼 탄식을 하곤 했다. 집을 등졌다는 건 바로 아버지였다. 서울에서 기관사로 일하는 아버지가
언제나 그랬다. 그녀는 언제 어느 자리에서든 눈에 잘 뜨이지 않게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앉아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고는 했다. 외모가 너무 평범해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키도 작고 얼굴도 동글동글하고 어디 하나 예쁜 구석이 없어 여자아이들의 질투심을 자극하기에는 뭐 하나 돋보이는 것이 없는 정말 너무 평범한 아이였기 때문에 모두들 그녀를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고 심지어는 가끔 무시하는 것 같은 말투로 이야기를 건네기도 했다. 그래도 그녀는 별 불만 없이 그렇게 우리들과의 관계를 이어가고 있었고, 세월이 흐르고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무심해졌지만 오직 한 사람 그녀하고의 관계만은 달랐다. 다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아주 특별해져서 자주 연락을 할 뿐 아니라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하소연을 할 수 있는 자신들의
입춘추위를 보내고 나니 영동지역엔 폭설이 내려 걱정이라고 한다. 강릉지역엔 한길이 넘게 눈이 쌓여 사람 통행도 어려운 지경이란다. 그래도 봄은 온다. 얼었던 땅이 녹으며 발밑에 촉촉한 습기가 느껴지면 봄은 얼음장 밑에서 부터 오는게 확실하다. 그렇게 자연은 제 스스로 때를 맞추고 힘을 쏟아낸다. 때가 무르익어야만 움이 트고 꽃이 피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억지를 부린다. 특히 농사에서 억지는 사람을 골병들게 한다. 그 억지란 것이 자본에 의한 상품화다. 그걸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짓을 멈추지 못한다. 이유는 먹고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억지가 없다. 골병드는 일을 선택해 하면서 살기위해 한다는 이 억지스러움이 가장 정상적으로 보이는 사회 그런 농촌에서 우리는 희망을 보려하
고혈압처럼 보통 사람에게 흔히 병처럼 인식되는 병도 많지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 혈압약 판매는 2007년 이미 1조원을 넘어섰고, 2010년에는 2조2,540억원으로 가장 많은 진료비를 지출했다. 또한 30~40대의 젊은 고혈압 환자의 수가 빠르게 늘고 있다. 혈압은 도대체 왜 올라가고 고혈압은 왜 자꾸 문제가 되는 것인가? 평상시에 심장은 우리 몸에 필요한 혈액을 공급하기 위해 정상적인 혈압으로 혈액을 펌프질한다. 우리 몸의 혈압은 120~80 정도가 정상 수치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혈액이 더 많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잘 걸어가고 있는데 큰 개 한 마리가 갑자기 나타나 날 보면서 으르렁 거릴 때 말이다. 이때는 결국 도망가거나 싸우거나 둘 중 하나인데, 어떤 것을 택하더라도 평상시
‘입춘에 장독 깨진다’ 더니 기온이 곤두박질치니 입춘방을 붙이기 열적다. 그래도 ‘입춘추위는 꿔다가도 한다’지 않는가. 立春大吉(입춘대길) 建陽多慶(건양다경)을 먹으로 그려 붙일 곳도 만만찮은 문짝에 비스듬하게 붙인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계절도 그렇고 시절도 그러하다. 입춘은 지구가 태양을 도는 궤도(황도)의 위치가 높아지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북반구에는 해가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져 우리나라가 봄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입춘은 농경문화였던 우리민족이 태양력을 쓰지 않고 태음력을 쓴 까닭으로 태음력의 단점을 보완하기위해 도입한 24절기 중 첫 번째 날이다. 음력은 바닷가의 물때를 맞추고 배를 타고 고기잡이 하는 데는 유리하지만 농사를 짓는 데는 태양력이 유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
(이글의 아이디어는 상당부분 책 〈소프트웨어, 누가 이렇게 개떡같이 만든거야 (인사이트)〉에서 따 왔습니다.)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간다. 여기까지는 배가 고파 식당에 가거나, 옷 사러 가는 일과 아무런 차이 없이 진행된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접수를 하고 기다린다. 대부분의 병원은 환자에 맞춰 진료가 진행되기 보다는 의사에게 맞춰 진행된다. 의사가 나를 봐 줄 시간이 날 때까지 기다린다. 오늘은 운이 좋아 많이 기다리지 않고 내 순서가 되었다. 이제 나의 증상을 설명해야 할 시간이다. 의사가 과로에 찌들어 있지는 않은지, 이전 환자에게 화가 나 있는 상태는 아닌지를 잘 살펴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낸다. 의사가 알아 들을 수 있게 조리있게 잘 이야기해야 하는 거는 전적으로 환자의 의무이며 의사는 모니터에
“바보, 조센징 놈!”별 표정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화를 내는 적도 없던 교장은 그날 무섭게 성을 내며 짚고 다니던 단장으로 이씨의 얼굴이며 등짝을 미친 듯이 후려쳤다. 연못에는 붉고 노란 잉어들이 배를 뒤집은 채 떠올랐고 교장도 눈이 뒤집힌 것 같았다. 연못들은 작은 수로를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똥물이 쏟아진 연못에서 다른 연못으로 물이 흘러가지 못하게 막느라 야단법석이었다. 남자 선생님들이 신발만 벗은 채 물로 들어가 첨벙거렸다. 똥물에 더해 온통 바닥이 보이지 않게 피어오른 흙물 때문에 연못 위로는 더욱 많은 비단잉어들이 떠올랐다. 교장은 미친 사람처럼 일본말로 고함을 치고 몽둥이를 휘두르다가 제 분에 못 이겨 눈물까지 흘렸다. 이씨는, 나중에 알게 된 이름인 병삼은 주저앉아 매타작을 당하면
겨울의 한복판에 있는 것 같았는데 오늘이 벌써 입춘(立春)이다. 입춘 이후에는 겨울동안 활동을 줄이고 에너지 소모를 줄이려 웅크리고 있던 몸을 잦은 기지개를 켜며 일으키게 된다. 인체가 활동을 활발하게 한다는 것은 체내의 신진대사가 왕성하게 되고 있다는 의미와도 같으며 이때부터는 오장육부 중에 간이 하는 역할이 늘어나게 된다. 오장육부의 임금은 심장이지만 봄철엔 간이 임금노릇을 하게 된다. 인체에서 간이 하는 역할은 봄바람이 살랑거리며 나뭇잎들을 흔들어 나무에 봄기운을 전하는 것처럼 우리의 몸에 봄기운을 불어넣으며 인체 곳곳에서 기운을 잘 통하게 하는 것이다. 꽁꽁 얼어붙었던 땅에서는 아지랑이가 올라가면서 양기를 퍼뜨리고 인체도 덩달아 양기를 북돋우게 된다. 긴 겨울동안 쌓인 몸 안의 노폐물을 몸 밖으로 내
“선택이 늬도 그런 데 따러댕기는 거 아니지? 당최 으른덜 몰려다니는 데 꽁무니 따러댕기믄 안뒤야, 알겄지?” 할아버지는 불 꺼진 장죽을 놋재떨이에 땅땅 때리며 다짐을 두었다. “왜유? 어제넌 그 뉘유? 배급표 나눠주던 명자 아부지, 그 집에 가서는 돌팔매질루 기왓장얼 막 들깨부시구, 삽짝두 다 넹겨버리구 그런 재미난 귀경이 읍던걸유.” “어허, 으른이 시키믄 예에, 허고 대답을 해야지, 상눔들겉이 왜유,가 뭔고? 늬눔 종아리가 근질근질한가 보구나.” “예에, 잘못했어유. 고만 주무시게 불 끌까유? 할아부지 말씸대루 인제 안 쫓어다닐께유.” 호롱을 덮어 불을 끄고 난 후에도 선택은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할아버지에게는 그렇게 얘기했지만 패를 이루어 몰려다니는 어른들을 따라다니는 건 여간만 재미난 게 아
는 책을 펴낸 게으른 농부 이영문 선생의 태평농법이 세상이 처음 알려지기 시작할 무렵 남편을 따라 거창엘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그저 신기하고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과연 선생의 생각이나 농법이 세상에 얼마나 받아들여질까 하는 의문을 가졌었다. 그리고 십 년 쯤 지나 다시 만나기 위해 연락을 해보니 사천의 별학섬에서 지중해성 작물의 국내 토착화를 위한 일을 하고 있다 하셔서 그리로 찾아갔었다. 직접 만든 배, 직접 생산해 쓰는 전기 등이 신기했고 우리나라에서 지중해성 작물이 자라고 있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리고 이영문 선생이 들려준 많은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사실 나에게는 그날 그 바닷가에 널린 굴들과 같이 놀던 기억이 가장 또렷하게 남아 있다. 갯가에 흔한 돌멩이 하나
올해도 농업전망대회가 롯데호텔에서 열렸다. 해마다 열리는 농업전망대회는 관심 있는 농업계인사들로 북적댄다. 그러나 농업전망대회장에 진정으로 흙손흙발을 한 이들은 얼마나 될지 모른다. 농업관료와 학자들 농업단체 인사들 그리고 이를 보도하는 기자들이 자리를 채우기 마련이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을 향해 발표되는 농업전망이 아니라 연구자들 간의 말잔치판이 벌어지는 것이다. 일찍이 한국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으로 불리는 임원경제지를 집필한 서유구(1764~1845)는 농학서인 행포지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세상을 경영하겠다고 부지런을 떨어보았자 기껏 흙국(土羹)을 끓이거나 종이떡(紙餠)을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즉 아무리 이론을 들이대고 설파해도 결국은 먹지 못할 흙으로 만든 국일 뿐이고 종이로 만든 떡처럼
연말연시이겠다, 농한기이겠다, 요즘 술과 많이 친하시지요? 인류에게 술이 있다는 것은 어쩌면 큰 축복일지도 모릅니다. 사람 사이를 훈훈하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얼었던 마음을 녹여주기도 하며 술이 아니면 할 수 없었을 사랑의 고백을 하게도 해 줍니다. 술이 없는 축제는 생각할 수도 없지요. 그러나 모두 아시다시피 부작용이 있지요.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가정적·사회적인 문제들, 자동차 사고, 범죄 등등…. 또한 신체에 미치는 영향으로는 위염, 식도염, 위궤양, 췌장염, 고혈압, 협심증, 부정맥, 간염, 간경화, 이상지질혈증, 남성호르몬 저하, 근육병, 신경염, 골다공증, 피부병 등 셀 수 없이 많습니다. 태아에도 영향을 미치지요.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저능아가 되고 기형아도 나오고…. 오늘은 알코올에
대박은 국어사전에서 큰 배(大舶)를 말하는 것으로 어떤 일이 크게 이루어지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 풀이하고 있다. 여기에는 뜻하지 않게 횡재한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시쳇말로 대박이라고 하는 말은 말 그대로 큰 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 남녀노소 귀천을 가리지 않고 대박 타령들을 하는 것을 보면 흥부가 제비다리 고쳐주고 얻은 박 속의 은금보화로 팔자 고친 데서 대박이라고 하는 것은 아닌지 이쯤이면 참 소박한 꿈의 표현일 텐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대박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한 시기가 언제였을까. ‘부자 되세요’하는 인사말이 1997년 IMF부터 시작된 말이다. 아마 대박도 이 시기와 같이 하고 있을 것이다. 이 시기는 세상의 모든 가치가 돈으로 급속히 치환되던 시기였다. 빈
강진에 문상 갔다 이틀 만에 돌아온 남편이 몸보다 먼저 흰 상자를 불쑥 들이밀고 뒤따라 들어온다. 매생이 덩이가 족히 스무 개는 되나보다. 고향이 완도라는 걸 기억하고는 있지만 지리산 깊은 골짜기에 살다보니 남편이 그렇게 좋아하는 갯가 음식을 미처 챙기지 못하고 계절을 넘기기 일쑤다. 그러니 아마도 스스로 챙기지 않으면 매생이탕 한 번 제대로 먹지 못하고 겨울을 보낼 것이라 생각하고 사들고 온 것일 게다. 몸과 마음이 영 편치 않아 자리보전하고 눕게 될까 전전긍긍하고 있던 터라 남편이 돌아오면 예전에 어머니가 하시던 방식대로 소금이라도 뿌리고 싶은 심정으로 있었는데 매생이 세례라니, 이 많은 매생이를 어쩌라는 것이냐고.매생이를 보는 순간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산골에서 지표수를 먹고 사는 사람들의 겨울
초저녁잠이 까무룩 깊었었나보다. 일어나 앉은 정선택이 고개를 돌려 눈으로 평촌댁을 찾았다. 저만큼 떨어져서 잠든 아내가 가볍게 코를 곤다. 정신이 든 정선택이 머리맡을 더듬어 자리끼를 찾았다. 몸에 좋은 거라며 애들이 사온 약재 서너 가지를 함께 우린 물이었다. 마른 입술과 목을 적시고 들창을 보니 희끄무레하게 날이 밝아오는 것 같다. 이미 양력으로 삼월이 다 찼으니 일찍 해가 뜰 때도 되었다. 물로 가신 듯이 잠이 달아나고 선택은 오랜만에 맑은 정신이 돌아온 것만 같았다. ‘대체 내가 왜 이러지? 어디가 잘못된 것 같긴 한데.’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선택은 이상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마치 먼 여행을 하고 온 것 같았다. 아내는 여전히 가늘게 코를 골며 잠들어 있었다. 선택보다 늘 먼저 일어나는 아내였다.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