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역에서도 지난주에 늦게사 여성 농민단체에서 토종벼 손 모내기를 진행했습니다. 늦었다는 말은 모가 늦었다기보다는, 드디어 우리 지역에서도 토종종자 사업을 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뜻이 있는 지역에서는 이미 여러 가지 토종종자 사업으로 토종 종자의 가치를 확인하고, 땅에서 유전자원을 보유하는 일이 더없이 중요함을 확산시켜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선진지역 덕분에 우리 지역에서는 늦게라도 손쉽게 토종종자 사업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 값진 하루의 단상을 살펴보며 우리의 농업은 참으로 여러 가지 의미가 있고, 어떻게 하면
생태농에 뜻을 두고 귀농을 준비하던 때에는 ‘자족하는 농부라면 영농일지를 기록하고, 이웃과 교류하고, 매일 아침에 밭이나 산으로 출근하여 농사짓고 채취하면 되겠지’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 외의 시간은 지역에서 토종씨앗을 수집하고 장구도 치며, 비나 눈이 오면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는 삶을 바랐는데, 연고 없이 무작정 내려간 지역에서 뜻밖에 여성농민회 언니들의 끈끈한 도움을 받아 그 꿈은 예상보다 수월하게 이룰 수 있었다.2,000여 평을 친구 셋이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기계 없이 농사지으며 살았고, 결실이 잘 맺히면 다행이었
씨 나락을 파종할 때 4가구 그러니까 8명이 품앗이를 한 지 20여년 된 것 같다. 볍씨를 파종기에 넣어서 비닐하우스에 재놓기까지 필요한 일꾼은 8명 정도다.10년 전까지는 볍씨를 파종한 상자를 5장씩 들어서 비닐하우스 안에 쟀는데 지게차를 활용하면서부터 작업이 약간 더 수월해진 것 외에는 똑같은 과정을 해왔다.50대 2명과 60대 6명인데 올해부터는 근골격계가 멀쩡한 사람이 없다. 품앗이 일꾼 중에 가장 짱짱하던 남성이 농사일이 바빠지는 4월에 어깨를 다쳤다. 밭두둑의 나무들을 베다가 넘어져 어깨인대가 끊어졌다. 농사철이라 차분하
마을에서 사무장으로 마을살림을 해온 지 어느새 3년이다. 마을에 청년이 귀한지라 귀농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장님이 같이 일 좀 해야겠다 하셨다. 마을 통장과 영수증만 잘 관리하면 된다고 하셨는데 막상 해보니 신경 써서 챙길 일들이 꽤 되었다. 새해가 되면 윷놀이도 한판 벌이고, 삼복더위에는 온 마을 식구들이 함께 더위를 이겨내도록 닭도 한 마리씩 잡숴야 하고, 봄·가을로 있는 마을 청소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총회 등 굵직굵직한 행사만도 만만치 않았다. 코로나로 오프라인 행사들은 취소되었지만 마을회관 관리비나 부역 준비 같은 마을
몇 주 전 어느 날 새벽에 마을이장님께서 마을방송을 통해 농업경영체 등록을 언제까지 하라고 안내를 하셨습니다. 기한이 조금 남아 있었지만, 남편이 마음먹은 모날 아침에, 농업경영체 공동경영주로 등록하러 갈 참이라고 도장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마침 하나뿐인 도장이 내 손에 없었습니다. 올해부터 협동조합 이사로 등재되어서, 사무실을 이전하려니 도장이 필요하다고 서울 사무실로 올려보냈기 때문입니다. 도장이 없다는 말에, 남편이 대뜸 어떻게 도장이 하나뿐일 수 있냐고, 매우 문제가 있는 상황이라는 듯 놀라 했습니다. 아니 약간 짜증을 내는
버스 정류장에서도, 밭에서도 모이는 곳마다 작물 이야기가 한창이다. 무엇을 심었는지, 어떻게 자라는지, 날씨가 어떤지 농번기에는 촌에 오로지 식물 이야기로 꽉 찬다. 농사를 제대로 지어보라는 듯 자신감을 심어주는 새싹은 본격적인 농사의 서막을 알린다.관리기나 괭이로 밭을 갈고 두둑을 짓는 여성농민이 오롯이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농지는 1,000여평 정도 될까. 물론 사람 손이나 트랙터의 힘을 빌린다면 말이 달라지니 여성 농민의 가계 규모가 천차만별 다양하겠지만, 당최 농사만 지어 여유롭게 먹고 사는 그녀들이 얼마나 있을지 궁금하다
반갑지 않은 비가 또 왔다. 비가 온다고 하면 갑자기 해야 할 일들이 나를 향해 뛰어오는 것 같다. 비 맞으면 안 되는 기계들도 안으로 들여놔야겠고 하다못해 도랑의 물 흐름을 방해할 만한 뾰족한 돌 하나에까지 신경이 쓰인다.온다는 비에 쫓겨서 허둥대다가 정작 비가 오면 느긋해지는 것이 아니라 미뤄뒀던 또 다른 일감과 몸살기가 마중 온다. 차분하게 늦잠을 자면서 좀 쉬어야겠다 싶다가도 마냥 누워 있을 수가 없다. 냉장고 청소도 해야겠고 밑반찬도 미리 만들어놔야 들일하다 집에 들어와서 밥상 차리는 일이 수월하다. 게다가 머리 염색할 때
날이 풀리면서 농사를 계획한다. 땅을 갈고 씨앗을 챙기는 때가 다가오면 한 해 농사 시작할 생각에 설레면서 한편으로는 심란해진다. 농기계 작업이 필요한 때가 되기 때문이다. 넓지 않은 경작지라 해도 땅을 갈고 고랑을 만들 때는 기계가 꼭 필요하다.농기계임대센터에 전화를 걸어 임대를 문의하니, 담당자가 자꾸 불안해하며 직접 운전할 것인지를 되묻는다. 나는 중장비 운전 자격증도 있고 교육도 꾸준히 받았다고 하는데도 끝내 마뜩잖아한다. 순간, 욱하는 감정이 들지만 이내 참고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다. 직원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많고 많은 반장이 있습니다. 생애 최초로 만나는 학급 반장에서부터 방송반, 군대의 내무반장, 일터의 작업반장은 물론이고 농사작목반도 반장이 있습니다. OO반으로 나누는 모든 단위의 책임자는 반장이라고 하니까요. 대관절 반장의 지위와 역할은 무엇이던가요? 아마도 각 단위에서 설정하기 나름일 것입니다. 그 반을 대표해서 거의 모든 것을 감당하는 직위일 수도 있고, 그저 한갓진 감투에 불과한 자리인 경우도 있겠지요. 어쨌거나 책임만큼 수고롭고 영예로운 자리가 될 것입니다. 마을에도 반장이 있다는 것 아시지요? 법정리는 물론이고
작년에 셋째를 낳고 나니 확실하게 내 일상은 다른 모든 일에 우선하여 자식농사를 짓게 되었다. 마흔 가까운 나이로 아이를 5년 만에 출산하니 내리사랑이라고 마치 할머니가 손주를 보는 마음이 이럴까 싶게 아이가 마냥 깜찍하다. 내 자궁과 유방이 키워낸 생명들. 둘째와 터울이 져서 그런지 아기가 감은 눈을 뜨고, 엄마~ 소리를 내고, 뒤집기를 하고 배밀이를 하다 엉금엉금 기어 다니고, 첫니가 나는 일련의 과정들이 처음인 듯 신비롭다. 아이라는 씨앗을 품어 자립할 수 있도록 키워내는 정성을 보면 어느 엄마들에게도 저 깊숙이 생명을 거두는
트럭을 몰고 밭에 가는 길에 벚꽃 무리가 이른 아침부터 감성을 들쑤신다. 이쁘기도 하네! 라는 감탄사를 저절로 웅얼거리게 된다. 벚나무 아래에서는 샛노란 민들레가 존재감을 작게나마 뚜렷하게 보이고 산에는 산벚꽃이 하얗게 색을 칠한 수채화 풍경이다.라디오를 들으면서 일을 하다보면 ‘벚꽃엔딩’을 하루에도 몇 번을 듣게 된다. ‘오늘은 우리 같이 걸어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뭍사람들의 꽃 타령으로 4월이 출렁거린다.무슨 경주라도 하는 것처럼 밭들마다 트랙터 소리가 요란하다. 대파 정식을 할 시기라서 퇴비를 뿌리느라 역
불편함의 시작은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시작됐다. 본인 소개도 없이 다짜고짜 내가 시작한 농산물 판매장 소유 여부와 몇 가지 호구 조사를 하더니 이웃 마을에 축사를 소유한 마흔 좀 넘은 남성과 만나보라는 것이었다.워낙 사람 만나길 좋아하고, 결혼 생각도 있는 터라 “만나보면 좋죠”라고 대답했다. “힘들지? 외롭지?”라는 물음에 친구들도 있고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씀드렸다. 다시 몇 살이냐는 물음에 답하자 “이미 너무 늦은 나이”라며, “지금이 지나면 이제는 어렵다. 보내줄테니 연락해라”라는 나무람이 돌아왔다. 절대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