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으로부터 하반기 노인일자리사업에 참가해 보라는 전화가 왔다. 농사일이 많아 그런 일에 나갈 수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이른 봄부터 이웃들이 노인일자리사업에 동원되고 있었다. 일주일에 사흘, 하루 세 시간씩 마을 골목길 정리와 청소를 하는 일이었다. 한창 밭 장만할 시기에 이웃 농부들이 청소한답시고 골목을 몰려다니는 것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었다.조그만 마을에 무슨 할 일이 그리 많다고 여덟이나 되는 이웃이 하루걸러 한 번씩 마을 청소 일에 나서는지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작업하는 날 잠시 나와 골목 한 바퀴 돌다 보면 삼만 원
마을을 주목하기 시작한 지도 꽤 됐다. 거창하지만, 신자유주의 이념에 따라 세계화와 국가경쟁력 도모를 위한 전 방위적 사회 시스템이 우리의 일상에서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면서부터다.농업 분야에선 개방농정으로 생산의 규모화를 불러왔고, 이는 곧 농민과 농민, 농민과 자연과의 관계를 좀먹기 시작했다. 세계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다 보니 경쟁에서 도태된 소규모 영세 농민은 은퇴를 강요받고, 경쟁력 없는 작물은 더 이상 재배되지 않게 되었다. 또한 자연에 순응하며 생명을 가꾸던 농민은 대량생산의 강박에 사로잡혀 땅을 병들게 하고 자연을 극복
Non-GMO 학교급식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을 할 때였다. 현장조사차 영양사들과 간담회가 있었는데 몇몇 분이 “우리 학교는 국내산 콩기름을 쓰기 때문에 GMO와는 거리가 멀고 학교는 안전하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확인해 보니 수입한 콩으로 ‘국내에서 짠 콩기름’이었다. 영양사가 ‘낚인’ 것이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재배한 콩으로 콩기름을 만드는 곳은 왜 없을까 생각해 보았다.또한 서울시교육청은 “GMO 표시제품을 사용하는 학교가 없으며, GM 대두나 GM 옥수수가 원료인 식용유·당류를 사용하는 학교가 33%이나, 정제 과정을 거쳐 유
코로나19와 인류의 지루한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최초 기원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2019년 말 중국에서 보고된 이후 1년 6개월이 지난 지금도 끝을 기약할 수 없는 질병과의 사투가 이어지고 있다. 발병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세계 각국이 국경을 봉쇄해 인적 교류를 최소화함과 동시에 백신 접종을 통한 질병 통제를 시도하고 있는 반면, 코로나19는 각종 변이종을 만들어 내며 일상 복귀를 위한 인류의 시도에 저항하고 있다.전염성 질병인 코로나19를 이겨내기 위해서 차단방역과 백신 접종의 두 가지 극복 전략을 동시에 적용하고 있는데, 산업적
몇 년 전 옆 마을에 7살짜리 어린 딸을 데리고 예경이 아빠가 귀촌을 했다. 처음엔 직업은 없었지만 그렇게 아픈 환자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몇 년 사이에 병이 깊어져 걷는 것조차 힘든지 지팡이를 짚고 다니기 시작했다. 밝은 표정으로 씩씩하던 예경이도 점점 표정이 어두워졌다. 작년엔 코로나 때문인지 학교도 잘 가지 않았다. 얼마나 아픈지 자세히 아는 사람도 없고 사람들과 관계가 없다 보니 늘 갈등이 생겼고 점점 섬처럼 고립되어 살고 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예경이가 걱정은 됐지만 마을 사람들도 관계를 하지 않으니 나도 방
코로나 이후 오랫동안 고요하던 마을회관이 요즘 들어 시끌시끌하다. 농사일로 무척 분주한 시기이지만, 보름 넘게 점심때가 되면 마을회관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코로나와 농사일 때문에 얼굴 보기 힘들던 이웃들이 서로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네고 날씨 걱정과 농사 걱정을 잠시 토로하고 나면 이야기는 늘 한곳으로 모아지고 주민들의 시선은 근심스럽게 마을 한복판의 농지로 향한다. 업자가 군청에 식물재배사를 짓겠다고 신청한 곳이다. 사업신청은 버섯재배사로 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주민들은 거의 없다.다른 지역의 여러 사례를 볼 때, 규제 때문
농사를 하면서 자주 꾸는 꿈이 생겼다. 기존 농사짓는 땅 말고 새로운 땅을 얻어 농사 하는 꿈이다. 두물머리 안쪽 땅에는 하우스 네 동 쯤에 브로콜리를 심었던 것 같다. 그리고 즙용 케일을 심었던 동네 후미진 비탈밭. 원래 내가 했는데 내게 말도 없이 딴 사람에게 줘버렸는데도 말도 못하고 속상해하던 밭. 심지어 하늘에 띄워둔 밭까지. 밭이 바뀌며 꿈에 계속 나오니 마음이 편치가 않다.내 욕심이 많아서인가. 지금 농사도 많아서 허덕이면서 땅을 더 구하는 꿈을 꾸다니 욕심 아닌가. 그래 욕심은 욕심이다. 안정된 땅을 구하고 싶은 욕심이
“잎싹샘, 잎싹샘~ 나는 내가 자랑스러워요. 근데~ 샘 기다리다 힘들었어요.”“동현아~ 무슨 좋은 일 있어?”“저번저번때 내가 심은 팝콘옥수수가 흙을 뚫고 막 나왔어요. 나 땜에 우리학교랑 울동네 사람들 팝콘 먹을 수 있어요!!”3학년이 책임증식하기로 한 토종쥐이빨옥수수가 뾰족이 새순을 내밀고 빠른 녀석들은 벌써 쑤욱 올라와 있다. 소중하게 보여주는 녀석의 표정은 이미 고소하고 달콤한 팝콘을 한입 가득 먹은듯하다. 학교생태텃밭정원이 슬슬 만들어진다.아이들의 삶을 위한 마을교육은 어떤 것이 있을까? 정규수업시간에 마을학교 선생님과 학
“이거 큰일이네. 이제 어떻게 해요?”마당으로 들어서자 아내가 걱정스런 말투로 나를 맞았다. 읍내 군청과 농어촌공사 사무실과 농협을 다녀온 나의 어깨도 푹 처져있었다.“그러게, 어찌해 볼 도리가 없네. 다들 안 된다고만 하고.”마루에 털썩 주저앉았지만 정말 별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필경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농지가 나왔다. 660평, 서 마지기가 조금 넘는 마을 앞 산언저리 언덕바지에 자리 잡은 논이었다. 서너 해 묵혀둔 탓에 메마른 풀이 우거져 볼품없지만 산골 농지로는 제법 널따란 것이 잘 갈아엎
면사무소는 오늘도 오전부터 도떼기 시장마냥 혼잡하다. 산업계장 앞에 늘어선 농민들은 연신 앞쪽을 기웃거리며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기를 고대하는 눈치다. 면사무소 여기저기선 삼삼오오 시끄러운 대화소리에 정신이 사납다. 농민들이 두 달 가까이 직불금 신청 상담을 하기 위해 모여들면서 연출된 광경이다. 본연의 업무는 마비된 채 산업계 직원이나 주민이나 할 것 없이 불편하고 답답하긴 매한가지다. 산업계장은 평일엔 신청 상담 때문에 주말에 나와 업무를 보는 실정이라 했다.지난 이장단 회의에서는 결국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면장이나 군수는 현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옛말이 있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도 있는 걸 보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인생을 시작하느냐가 매우 중요한 것 같다.농촌에서는 예전의 어른들도 그랬지만 지금의 어른들도 종종 자녀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공부 열심히 해서 너는 손에 흙 묻히고 살지 말거라’. 그런데 힘겹게 농사지어 공부시키고 도시로 보내서 입신양명하면 자신을 길러 준 농촌을 돌아보는 이가 적다. 그들에게 농촌은 가끔 힐링을 위해 다니러 오는 풍경 좋은 동네일 뿐일까. 그 정도만 해도 다행인 것이 요즘은 투기하기 좋은 곳이라 보는
국민들의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농산물의 품질 뿐만 아니라 산업의 사회적 책임 요구도 증가하고 있는데, 2020년 세계적인 이상기후 발생과 함께 기후위기에 대한 화두가 큰 이슈로 떠오르면서 농업의 온실가스 배출은 큰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에 관한 대표적 협약은 2015년 12월 파리에서 출범한 파리기후협약으로 세계 195개국이 동참한 구속력이 있는 국제 조약이다. 이는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재임 당시 미국의 협약 탈퇴가 세계적으로 논란이 되면서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졌다.우리나라는 2020년 10월 ‘2050 탄소중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