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술참기를 시작하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꿈에 허덕이다 깨어난 적이 있다. 멍하니 캄캄한 창밖을 바라보다가 차를 몰고 가다보니 지리산 성삼재에 다다랐다. 헐렁한 반바지 차림에 목 늘어난 흰 티셔츠를 입고 고무신과 주머니에는 담배와 라이터, 휴대폰이 전부였다.운무 낀 지리산은 쉽게 벗겨지지 않고 바로 앞 시야확보도 안되고 한여름 맞나 할 정도로 추웠다. 그 기분이 엊저녁 사나웠던 꿈을 씻어 주기라도 하듯 상큼하다.노고단 전망대에 올라 장엄한 일출을 기대했으나 솜털에 맺힌 이슬에 바람이 부니 오들오들 떨리듯 더 이상 못 있겠어서 내
친구랑 얘기하다 가슴 얘기가 나왔다. 친구가 노브라를 하고 남편한테 노브라를 했다고 말했더니, 남편 왈 “가슴이 안쳐져야 이쁘지!” 그러더란 얘기를 듣고는 나는 대번에 “그러려면 자기 부인한테 애도 낳지 말고 있으라 해야지! 가슴이 무슨 한 남자의 성적대상물이야?”라고 말했다. 같이 살아온 세월만큼, 임신, 출산, 육아의 과정을 거쳐 억척스레 잘살아 보겠다고 알뜰살뜰 산 것도 죄인가! 매우 불쾌했다. 그런데 오히려 친구는 능글맞게 웃으면서 “야~ 이왕이면 이쁜 게 좋은 거 아니야?” 헐~! 오 주여! 예쁜 것에 대한 기준이 고작 가
전 평택농민회 회장 이근랑 동지(사진)가 우리 곁을 떠나갔습니다. 장기간의 신장투석으로 망가진 몸에 갑자기 닥친 교통사고를 더는 이겨내지 못하고 너무나 갑자기 떠나갔습니다.소식을 듣고 밭고랑에 앉아 한참을 울었습니다. 이젠 눈물이 말랐겠지…. 하지만 영정사진을 앞에 두고 농민가를 부르면서, 추모제 영상을 보면서 또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향년 59세. 농민으로선 한창의 나이에.이근랑 동지는 수세투쟁의 한복판에서 농민운동을 시작한 이래 한 번도 원칙의 선을 넘지 않고 농민회 깃발을 지키며 살아왔습니다.잘난 놈, 배운 놈들이 더 빠른
겨울 날씨가 따뜻해 양파와 마늘, 보리가 풍년이 들어 가격이 폭락했다고 정부와 언론이 연일 떠들고 있다. 농사는 하늘이 90%를 짓는다 하니 정말 하늘 탓인가? ‘농민팔자가 그렇지’라고 그냥 받아들이기엔 억울하고 또 억울하다.정부 생긴 이래로 가장 많은 예산을 쏟아부었다는 양파를 들여다보자. 양파재배 전체 면적은 작년보다 17%나 줄었다. 정부에서도 적정 면적이 심어졌다고 한다. 물론 겨울 날씨가 따뜻했고 적당히 비도 왔다. 그래서 양파가 풍년이 됐다. 양파농민들은 따뜻한 겨울의 끝자락에서 양파가 과잉생산될 것이라 내다보고 양파주산
들녘마다 푸름이 짙어가고 있다. 벼들은 마음껏 물을 빨아들여 새끼를 치다가 머지않아 벼꽃을 밀어 올릴 것이다. 벼꽃은 작기도 하거니와 색깔도 향기도 짙지 않아서 마치 농부의 겸손함을 고스란히 닮았다.농촌과 농민은 이 나라의 경제 성장과 산업 발전의 훌륭한 디딤돌이었다. 세계 10위를 바라보는 우리나라의 경제는 농민의 뼈와 살을 짓이겨 이룬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국민들이 그것을 당연시한다는 것이다.생산비보다 조금만 비싸면, 그래서 농사를 지어 작은 이득이라도 볼라치면 농산물 값이 폭등했다고 하늘이 무너지는 호들갑을 떤다. 그러
농번기 마을공동급식! 다른 지역에선 벌써 오래전부터 시행되는 사업이지만 강원도에선 횡성에서 지난해 처음 시작, 올해에야 전 시·군으로 확대됐다. 더운 농사철 여성농민의 가사노동을 경감하고, 마음놓고 영농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함과 동시에 이웃들과 함께 밥을 나누며 정을 되찾아 마을공동체를 복원하고자 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사업이라 여기고 다른 시·도에서 시행되는 사업을 보면서 선거철만 되면 똑같이 요구했다. 강원도도 여성농민회가 중심이 돼 정책적 요구를 한 끝에 결국 반영됐고 우리 마을도 사업 신청을 하게 됐다. 횡성에선
우리 마을 월평은 작년 9월부터 작은 투쟁이 이어졌다.경전선 보성 무안 임성리 철도건설 사업이 진행되면서 마을이 어수선해져갔다. 마을 앞쪽을 교각이 아닌 성토 공사를 하면서 전경을 가로 막아 마을이 답답해져갔다. 이전부터 마을 주민들은 교각으로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연구용역결과는 시설공단의 뜻대로 성토로 결정됐고, 주민들은 더 이상 어떻게 하질못했다.이때 마을 한쪽에 이상한 구조물이 올라가고 있었다. 처음에 주민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통로박스였다. 보통 사용하고 있는 길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통로박스를
모든 것이 빠르고 빽빽한 1,000만 메갈로폴리스 빌딩과 아파트 숲 속 보이지 않는 변두리 구석구석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에서 하루하루 풀칠하고 있는 빈민층 도시청년들이 있다. 주거비와 생활비를 감당하며 좀 더 괜찮은 삶을 살아보고자 아등바등 해봐도 미래가 없다. “요즘 것들은 노오력이 부족하다!”지만 은행에 돈을 넣어두기만 하면 30% 이자가 붙었던, 대학 나오면 취직할 수 있었던 그때와 상황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요즘 것들이 졸업하면 얻는 것은 백수꼬리표와 학자금대출 뿐이다. 그냥 숨만 쉬었을 뿐인데! 번 돈은 통장을 스쳐지
마을에 나이 터울 많지 않게 품앗이 하던 집에서 참밥 장만해오면 “워어이~ 어이~” 악을 쓸 대로 쓰며 들릴 듯 말 듯 거리의 이웃을 불러 같이 술참 나눠먹으며 고된 농사일 격려하고 이겨 묵었던 때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은데, 이제 그런 광경은 쉬이 볼 수도 없을뿐더러 핸드폰으로 “어서와” 한번 청하고는 오지도 않았는데 밥술 먼저 뜨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보행이앙기를 끌다 수렁에 빠진 걸 건져내는 모습에 “뺏뺏 야왔어도 기운이 씨다”며 칭찬하시던 아재들도 이젠 요양원에 계시거나 작고하셔서 쑥스러운 칭찬 받는 것도 추억으로나 남
여성은 결혼하면서부터 여성 문제를 본격적으로 느낀다. 결혼과 행복은 같이 오는 것이 아니라 결혼은 자기로부터의 독립이며 이타적인 생활방식으로 접근하는 출발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여성들은 자기로부터의 독립이 아니라 부모로부터의 간섭에서 벗어나고자 결혼을 선택하기도 한다. 결국 자기 발등을 찍는 결과를 만드는 꼴이다.왕자와 공주가 만나서 왕자가 공주를 구해주고 둘이 결혼해서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라는 것으로 끝나는 옛날 동화책은 어린이들에게 일찍부터 사기를 치는 것이다. 어떻게 결혼하고 오래 오래 행복할 수
오늘은 연천을 다녀왔습니다.연천군농민회가 처음으로 통일 모내기를 하는 날입니다. 참으로 경사스런 날입니다. 연천은 불과 몇년전만 해도 북쪽의 총탄이 날아들고, 대북방송 소리가 어지럽던 곳입니다. 한국전쟁 전에는 북쪽 지역이었고 전쟁 후에는 군사 밀집지역이다보니 경상도보다도 더 보수적인 지역이기도 합니다.이런 곳에서 처음으로 통일 모내기를 하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지난해 정상회담과 지방선거를 지나면서 지역민들의 통일에 대한 기대감이 비약적으로 높아졌습니다. 물론 평화 분위기가 위축됐던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20살 풋풋한 청년으로 만나 이제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해지는 50의 나이가 되었네.30년의 세월동안 많은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고 기쁜 일도 슬픈 일도 함께 하는 시간들이었지.서로가 서로를 잘 알고 있다고 느끼던 순간도 있었고 또 어느 순간은 각자의 삶을 사느라 서로에게 소홀했던 시간들도 있었지.일반적으로 한 세대를 30년이라 하잖아.우리도 30년 동안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새로운 세대에게 우리의 빛나던 청춘의 나날들을 추억처럼 이야기하는 기성세대가 되었구나.기성세대라고 말을 하고 보니 약간 씁쓸하기도 하고 아주 조금은 서글퍼지기도
하늘을 알아야 합니다. 풍백우사 급은 아닐지라도 비 오시고 바람 불고 눈 오시고 서리 내리는 것쯤은 파종 때부터 추수에 이르기까지 일기예보 수준 이상을 터득해야 합니다.땅도 알아야 합니다. 무르고 찰진 흙의 성질과 마르고 질은 땅의 습성은 물론이요, 물이 고픈지 빛이 많은지 부처님 손바닥에 노니는 손오공이 어디로 도망치는지 알아채듯 꿰차야 합니다.생태를 익혀야 합니다. 온갖 벌레들의 생리와 방제, 숱한 양분들의 조화와 배합, 각종 작물들의 성장과 결실에 대한 깊은 성찰과 터득이 없이는 어디 가서 농사의 농 자도 말하지 마세요.경제도
5월 첫째주 꾸러미를 보내는 화요일 아침! 공동체 언니들이 작업장으로 들어오시며 “야 오늘 아침엔 하얗게 서리가 왔다야. 옥수수 위로 말갛게 서리가 왔어. 브로콜리 잎이 딱딱하게 얼었다야. 춥다 난로 다시 내와야겠다” 하시며 인사를 한다. 곡우 지나 입하가 지나면 서리가 오지 않는다고 했는데 일찌감치 심어 놓은 작물들이 냉해를 입은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섰더니 햇살이 퍼지기 시작하자마자 더워죽겠다는 말들이 오고간다.해마다 이런 현상은 있어왔지만 매일 아침 언니들은 날씨에 민감하다. 그래도 입하가 지나서 아주 심어야 냉해피해를 입지 않
올해는 동학농민혁명 125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리고 첫 국가기념식이 거행된다.2월 국무회의에서 동학농민혁명 기념일(5월 11일)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했기 때문이다.그 동안 정읍(황토현 전승일, 5월 11일), 고창(무장기포일, 4월 25일), 부안(백산대회, 5월 1일), 전주(전주화약, 6월 11일) 등에서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을 서로 주장했는데 다행스럽게도 근래에 합의가 되었기 때문이다.이로 인해 우리 고장인 장흥에서도 올해까지는 4월 26일에 장흥동학농민혁명 기념식을 가졌지만 내년부터는 5월 11일로 옮기기로 했다.국가기념일로
비교적 어린 나이에 가업을 이어받기 위해 농사를 직업으로 삼고 있다고 하면 숨기려도 숨길 수 없는 깜짝 놀란 반응이 따라온다. 왜냐면 실로 나 같은 케이스가 아주 희귀하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자료에선 50세 이상 농림어업종사자 비율이 전체의 85%가 넘는다. 이상하다. 체감으로는 85%가 아닌 99%가 50대 이상인 것처럼 느껴지는데. 이렇듯 멸종위기 관심대상종의 입장이 되다보니 여기저기서 한국농업의 비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답변하기가 참 어렵다. 농업인구절벽 이슈를 넘어 지방소멸을 목전에 두고 있으며,
첫 칼럼을 뭘 쓸지 내심 연구하고 있던 차에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형님 출입국관리소 가서 데모 한번 해줘야 것는디요!”“뭔 뜬금없는 소리다냐? 알아듣게 차분히 이야기 좀 해봐라. 뭣 때문에 왜 농민회가…?”후배는 흥분했는지 잘 알아듣지 못할 말을 연신 해대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후배 말고도 인력사무소를 운영하는 친구와 선배들에게도 똑같은 전화를 받았다.데모를 해야 하는 이유인즉 근래 불법이주노동자 단속이 극성인데, 이렇게 되면 농민들이 고스란히 인건비 상승과 성수기 인력난으로 피해를 본다는 얘기가 주요 골자다.
봄이다. 벚꽃은 그야말로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개나리, 목련, 진달래 등등 꽃피는 순서를 잊었는지 요새 봄꽃은 동시에 피어난다. 아마 기후변화에 따른 그들 나름의 생존전략인가 싶다. 생존전략은 무조건 살아남아야 하는 게 최고 목표이며, 그러려면 변화된 환경에 자신이 변화해야 한다. 그렇다면 여성농민의 생존전략은 어떠한가! 지금의 농촌현실이 농업소득만 갖고 살 수 있는가! 그렇기에 누군가는 농외소득을 담당해야 한다. 생활비를 어디선가는 충당해야 한다. 빚으로 충당하는 것도 한도가 있는 것이고 그 대부분의 역할을 여성농민이 담당한다. 농
오늘(지난달 21일, 편집자)은 춘분(春分)입니다.이름대로만 하면 본격적인 봄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절기의 순서대로 보면 봄의 시작은 입춘(立春)이고, 얼음이 녹아 물이 되기 시작하는 절기는 우수(雨水), 땅 속의 개구리가 깨어난다는 경칩(驚蟄)을 지나야 드디어 춘분입니다. 입춘에서 시작해서 45일이 지나야 비로소 봄이 되는 것입니다.춘분이 되면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고 본격적인 논갈이를 시작합니다. 밤과 낮의 길이가 바뀌는 시절이다 보니 음양의 조화는 바람을 많이 일어나게 하고 마지막 추위가 기승을 부려 농사꾼들
지난 12일에 보절면에서 남원 최초로 농민총회가 성황리에 진행됐다. 농민수당에 대한 설명은 전라북도에서 가장 선두로 농민수당을 신설 중인 고창군농민회장이 맡았다.“농민이 주장하면 현실이 됩니다. 농민수당도 곧 현실이 될 겁니다.”농민회가 처음 수세싸움을 할 때도 그랬다. 당연히 내야 된다고 생각했던 수세가 부당하다고 문제 제기했고 농민들이 주장하니 현실이 되었던 것을 기억하는 농민들이 많이 있다. 이분들이 더 적극적으로 농민수당에 대해 질문도 하고 현실이 되도록 하는 방법도 물어 보고 한다.올해 최고의 관심사로 농민수당이 떠오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