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나 사람들은 눈치를 보며 말조심을 했다. 기껏해야 아저씨처럼 집안 식구들에게나 불만을 털어놓는 정도인데 인섭은 그다지 친하다고 할 수 없는 선택을 앞에 두고 거침없이 정치 이야기를 꺼냈다.“이번 선거 말요, 솔직히 그게 있을 수 있는 일이오? 조봉암 같은 이는 아예 선거에 등록도 못하게 방해를 해서 결국 못 나왔잖소. 들으니까 대리투표도 숱했고 공무원들이 누구를 찍는지 노골적으로 감시를 했다더군. 경찰들이 동원돼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하여튼 이건 선거라는 게 허울뿐이지, 민의를 반영하는 게 아니란 말이오.”인섭은 거침없이 막걸리를 들이켜고 선택은 잠자코 그의 말을 들었다. 그는 정부에 대해 상당한 불만이 있는 듯했다. 선택 역시 나라가 정상이 아니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선뜻 맞장구를
나는 산촌에서 태어났으나 어린 시절을 부산과 진해의 바닷가에서 보냈으므로 어쩌면 어촌의 먹거리 유전자가 내 몸 안에 있는지도 모른다. 내 안의 그 유전자가 완도에서도 멀리 떨어진 외딴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남자와 결혼을 감행하게 했을 수도 있겠다.결혼하겠다고 시부모님께 인사를 하러 갔던 날 완도에 딸린 새끼섬 생일도 선착장 부근에서 주황색의 통에 담긴 문어들을 보았다. 남편은 문어가 주황색을 좋아한다고, 그래서 주황색 통을 문어가 다니는 길목에 놓아두면 자기 집인 줄 알고 들어가 절대로 나오지 않기 때문에 끌어올리기만 하면 된다고 하였다. 여자들은 논게를 잡아 긴 막대기 끝에 매달고는 물이 가슴까지 차는 바닷물로 들어가 가만히 있으면 문어가 게를 물고 나오기도 한단다.문어가 머리는 크지만 아
태풍 너구리가 다가오니 배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태풍이 화제다. 뭐 배농사 짓는 이들만이 화제겠는가만, 배는 바람에 의한 피해가 다른 것들에 비해 큰 편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시인 유하의 첫 시집 제목이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였을까. 압구정동이 개발되기 전에는 온통 배밭 이었기 때문이다. 태풍이 불어닥쳐 주먹만 한 배들이 미처 자라지도 못한 채 수 없이 바닥에 뒹구는 모습을 바라보면 가슴이 쓰리다.배밭에서 태어나 배농사를 짓고 있는 필자로서는 배에 대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듯 호기를 부리기도 하지만 아직도 모르는 구석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런데 배를 먹는 사람들은 배 하나에 씨앗이 몇 개인지 아는 사람이 있을까? 별로 많이들 알고 있지 않을 것이다. 배가 크고 달고 시원하면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에서 한국은 더 이상 새우가 아니라 돌고래라고 했다. 중국이나 미국과 같은 고래는 아니지만 스마트하고, 민첩하며 꽤 인기가 많은 돌고래 말이다.”‘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의 저자 영국인 다니엘 튜더는 한국의 엘리트들이 소위 미국 등 선진국에 대한 자신들의 콤플렉스와 시민들을 다루기위해 한국인 스스로에 대해 부정적이고 자기를 의심하는 이야기를 만연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으로 평등주의나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논의를 막고 성장과 진보를 위한 희생의 강요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더 이상 새우가 아닌 돌고래가 새로운 변화를 시작한다. 우리가 힘을 합쳐 노력한 결과 7월 1일에 건강보험의 치과영역에서 새로운 변화가 시작된다. 75세 이상만을 제한적 대상으로 하지
막걸리에서는 약간 시큼한 맛이 났다. 인섭은 마치 술꾼처럼 잔을 내려놓고 캬아, 하는 소리를 내며 오이를 집어 들었다. 선택도 따라서 오이 한 쪽을 입에 넣었다.“정형, 농촌을 살리는 게 중요하긴 하지만 실은 나라 일을 맡은 정치인들이 좀 잘해야 되는 거 아뇨? 솔직히 나는 이번 선거를 보고 기가 막혔소.”인섭이 뜻밖의 말을 했다. 선택도 열흘쯤 전에 끝난 제 3대 국회의원 선거에 대해 들은 말이 있긴 했다. 하숙 아닌 하숙집 주인인 신정호 씨는 정치에 관심이 많은 이였다. 돌아간 아버지와 함께 철도노조에서 활동한 전력이 있어서였을까, 그는 선거 전후에 술을 마시고 들어와 울분을 토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선거 날 얼마 전이었다. 저녁상을 함께 받은 한규와 선택 앞에서 그는 소주잔만 연신 뒤집
횡성여성농업인센터에 교육을 다녀왔다. 여기저기 둘러보고 싶은 마음에 아침 일찍 출발하여 익숙한 산세며 계곡 그리고 논밭에서 자라고 있는 작물들을 눈에 넣고 왔다. 그러던 중 특히 습도 높은 이즈음에 딱 좋은 식재료인 율무가 자라고 있는 밭을 보았다.율무는 나에게 있어서 아주 특별한 잡곡이다. 지리산으로 이사를 오던 해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복통으로 시작해 끝도 없이 계속되는 토사에 시달리고 있을 때 한의학교수님으로부터 처방을 받은 약이 바로 율무죽과 율무차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개월에 걸쳐 율무죽을 끓여 먹고 율무로 차를 달여 마시며 지냈었다.원산지가 베트남인 율무는 우리나라에서도 해발이 낮은 습지에서 잘 생육한다. 탄수화물 67.7%, 단백질 13.8%, 지방 5.1%의 영양소를 가지고
이 땅에 약 일만 년 전부터 농사는 시작 됐다. 그때의 농사는 그저 자연농사였을 것이다. 농약도 비료도 쓰지 않고 밭을 고르고 씨앗을 뿌렸을 것이다. 그러니까 자연농업의 역사는 일만 년이나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땅만 있으면, 그리고 종자만 있으면 농사는 짓는 것이다. 물론 잡초를 제거하고 짐승들을 막아내는 번거로움은 일상다반사였겠지. 세월이 지나면서 농법도 발전해서 거름을 만들고 뿌리는 것까지가 근대 화학농법이 도입되기 전까지 이어졌다. 그게 친환경농사라면 농사다.그런데 근대적 농법은 질소비료와 DDT로 대표되는 화학농약의 등장으로 획기적 수확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는 토양의 산성화와 생태계의 파괴 등을 수반했다. 또한 먹거리의 안전성이 인류를 위협했다. 그런 위험성이 있음에도 지난 200여년
지난주 어머니와 함께 온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을 상담하는데 상담이 거의 마무리되는 과정에 아이가 울면서 교정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것 입니다. 이유는 어머니와 상담하는 사이 아이는 카카오톡으로 친구와 교신을 했는데, 교정치료를 했던 친구가 자신이 받았던 치료가 너무 아팠다고 겁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잘 달래서 치료를 하기로 결정했지만 치료를 받는 당사자는 누구나 치료에 대한 불안감과 공포가 있게 마련입니다. 교정치료는 충치 치료나 외과적 시술에 동반되는 아픈 치료가 아니어도 약간의 불편함이 유발 되지만, 치료하는 병원의 노력과 환자의 협조로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우리의 입은 매우 예민합니다. 고춧가루가 끼어 있어도 금방 알아차릴 정도 입니다. 하물며 교정 장치와 교정용 철사가 장착되면 약간의 불편함과
소금꽃세상을 먹여 살리는 농민이 있습니다. 세상을 만들어가는 노동자가 있습니다. 이들이 흘린 값진 땀의 힘으로 농민과 노동자가 스스로 자랑스러울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꿈꿉니다. ‘소금꽃’은 농민과 노동자, 세상을 짊어진 이들에게 보내는 무한한 찬사입니다. 매달 한 번씩 농민과 노동자의 모습을 지면에 함께 싣습니다. 전국금속노동조합과 함께 합니다. 정직한 땀의 힘을 믿습니다. 이 땅의 농부 016김성수(80, 충남 논산시 지산동)“시청 공무원으로 퇴직했지. 그 뒤로 한 30여년 가까이 농사지었나. 이제는 자식들 주려고 조금만 해. 얼마 전에는 감자도 캐서 나눠줬어. 논도 조금, 밭도 조금, 판매하는 건 거의 없다고 봐야해. 한 여덟 마지기 농사짓는 데 이것도
얼마 전 본원 치과에 틀니가 보험이 적용된다고 오신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80대로 보험 틀니(부분 틀니)가 가능한 상황이었지만 연세에 비해 치아관리가 잘되어 윗니는 부분틀니로 사용 중이었으며, 아랫니는 최근에 왼쪽 어금니 두개가 빠진 상황이었습니다. 다른 아랫니들은 든든한 상태로 특별한 치료를 요하지 않는 상황이었으나 틀니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멀쩡한 오른쪽 어금니까지 씌워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지난 칼럼에서도 상실치의 수복 방법에 대해서 언급하였지만 이런 경우 임플란트(implant)가 가장 좋은 치료법 중의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임플란트는 최근 30년간 치과영역에서 가장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분야 중의 하나이며, 근래에 들어서는 상실치 수복의 첫 번째 대안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임
토마토의 계절이 왔다. 때마침 충북에 사는 지인이 흙살림의 꾸러미로 보내지는 토마토를 한 상자 보내주셨다. 충분히 익은 것을 따서 보냈는지 달고 맛나다. 목이 마를 때 시원한 물을 마시면 좋겠지만 물과는 또 다르게 토마토를 몇 조각 입에 넣으면 갈증도 가시고 몸의 열도 내려주니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린다고 할 수도 있겠다. 목본의 씨방이 자란 것이 과일이라 불리기 때문에 초본의 열매인 토마토는 채소라 불리는 것이 맞지만 새콤달콤한 맛까지 가지고 있으니 나에게 토마토는 그저 과일로 인식되고 있다. 잘 익은 붉은 토마토의 생김새가 마치 감의 모양과 비슷해서 어린 시절에는 ‘일년감’으로 불렀던 토마토를 한방에서는 번가(蕃茄)라 부른다. 번가는 성질이 약간 차고 그 맛은 달고 시다. 신 음식은 생각
햇살이 꽤 따가운 유월 초순이었다. 인섭의 뒤를 따라간 곳은 청계천 둑에서 멀지 않은 허름한 대폿집이었다. 교복을 입은 채 술집으로 들어가는 게 마음에 걸려 주저하자 인섭이 씩 웃으며 돌아보았다. “걱정 말고 들어오소. 누가 잡아갈 집 아니니까.” 선택은 누가 보는 듯해서 뒤를 돌아보며 인섭을 따라 들어갔다. 토요일이어서 아직 한낮이었다. 술집은 드럼통을 엎어놓은 탁자 세 개가 전부인 옹색한 곳이었다. “할머니, 술청 비워놓고 어디 가셨수?” 인섭이 안쪽으로 난 문을 향해 큰 소리로 주인을 불렀다. 말투로 보아 자주 오는 집인 모양이었다. 대낮인데도 어두컴컴한 안쪽에서 문이 열리자 환한 빛이 들어왔다. 문 안쪽에 작은 마당과 우물이 보였다. 어느 가정집 귀퉁이에 가건물을 지어 술
농촌진흥청이 전주혁신도시로 이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농촌진흥청의 이전과 관련해 일부농민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농촌진흥청이 정조대왕의 근대적 농업구상의 발원지인 수원에 터를 잡고 농업근대화의 기수로 50년 넘게 한국농업을 상징하고, 앞으로도 한국농업의 힘과 위상을 만들어 가야한다는 뜻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농촌진흥청의 이전이 근대화의 청산이라는 상징적이고도 실질적인 변화라면 이전의 필요성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농촌진흥청의 이전은 노무현 대통령의 지방균형발전이라는 틀에서 진행되었다. 아쉽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하나 놓친게 있다. 그것은 농업 패러다임의 변화를 농촌진흥청 이전의 당위성으로 확보하지 못한 점이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에게 이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
매실을 딴다. 작은 것을 한 알씩 따자니 속에서 천불이 난다는 사람도 있다. 그럴 만도 하다. 한 시간을 따도 20kg 한 상자 채우기가 어렵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땀을 흘리다 보면 어느새 상자들이 채워져 간다. 저것이 몸에 좋다니 사람들이 불티나게 가져갈 것이고 그로인해 농사지은 맛이 나는 게다. 그런데 올해는 다르다. 매실이 넘쳐난단다. 해마다 그나마 몇 줌씩 팔아주던 소비자 쪽에서 가져 오지 말라고 한다. 가격이 너무 싸서 시장에서 샀노라 한다. 검색을 해보니 말도 안되는 가격에 경매되고 있다. “매실 10kg짜리 5상자 경매가격이 만원! 농가수취가격 300원!” 에라 이럴바엔 인심이나 쓰자. 여기저기 나눠 주고도 100kg이 넘게 남는다. 그냥 다 효소 담그기로 한다. 효소 만들어 놓으면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 키울 때 자주 배가 아프다고 했다. 그때마다 친정어머니가 만들어 두신 매실고를 먹였었다. 그래서 요즘도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나는 매실고나 매실청을 만들어 기숙사 생활하는 딸아이에게 한 병씩 보낸다. 곧 여름철 장마가 시작된다고 한다. 습도와 기온이 높아 식재료나 음식들이 쉽게 상하고 눈으로 확인되지 않아 잘못 먹은 음식으로 인해 배탈이 나서 복통이나 설사에 시달리게 된다. 장마가 끝나면 대기의 온도는 더욱 올라가고 몸의 내부에서는 열이 발생하면서 찬 음료나 빙과류를 찾게 되어 장마철과는 또 다른 배탈에 시달리게 된다. 매실은 장마철이든 불볕더위든 여름에 꽤나 유용한 과실이다. 매화나무 열매인 매실을 한방에서는 매자(梅子)라 하는데 보통은 덜 익은 청색의 열매(靑梅
그래도 고등학교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학생들은 자동적으로 학도호국단에 편성되었는데, 첫 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멀지 않은 무렵에 학도호국단의 이름으로 공고문이 하나 붙었다. 우연히 보게 된 공고문이 선택의 인생을 바꾸게 될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공고문의 내용은 방학을 맞이하여 학도호국단에서 농촌계몽대를 조직하여 향토 계몽운동에 나서는데, 거기에 함께 할 학생들의 지원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계몽 활동의 내용은 국문강습단을 조직하여 문맹퇴치운동을 하며, 국내외의 정세를 파악하여 교육열을 고취시키고, 민주주의 좌담회를 통해 정신계몽운동을 한다는 것 등이었다. 한참을 공고문을 읽고 있던 선택은 가슴이 뛰노는 것을 느꼈다. 학도호국단에서 제식훈련을 하거나 목총을 들고 총검술 따위만 배우는 줄 알았는데
아이들의 이가 잘 썩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식습관과 함께 당분이 많고 접착성이 강한 사탕, 쵸콜릿, 비스켓, 청량음료 등과 같은 음식을 많이 섭취하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오늘은 칫솔질을 잘해도 충치에 취약한 부분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하루에 3번, 식후 3분 이내에, 칫솔질은 3분동안’ 이라는 ‘3·3·3법’이라든지, ‘칫솔질은 위아래로 구석구석’이라든지 하는 말들은 모두들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그러나 위의 문구들을 생각하며 아무리 정성들여 이를 닦아도 충치를 일으키는 치면세균막(프라그)을 제거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치아와 치아의 사잇면과 어금니 씹는 면의 좁고 깊게 패인 곳 등은 아무리 칫솔질을 열심히 해도 잘 닦을
이월 말에 선택은 서울로 올라와 한규 방에 보따리를 풀었다. 옷 몇 가지와 책이 전부인 단출한 살림이었다. 본격적인 서울 생활을 맞이한 첫날 밤, 한규는 무엇이 좋은지 자꾸 히죽거리며 웃었다. “나도 말이야, 축구 선수가 되는 건데 잘못 생각했어. 내가 다닌 중학교에 축구부가 있었는데 진즉에 거길 들어가서 공을 찼어야 됐어.” 무슨 뜬금없는 소린가 해서 선택은 멀뚱하게 한규를 바라보았다. “소식 못 들었어? 내일 우리나라 축구 대표단이 일본으로 가잖아. 이번에 아주 일본 놈들 코를 납작하게 눌러주고 말걸. 이승만 대통령도 그랬대. 일본 놈들한테 지면 아주 현해탄에 빠져죽을 각오를 하라고 말이야. 이번에 이기면 그 뭐냐, 월드컵이라는 델 나간다고 하더만.” 선택으로서는 일본으로 축
다산 정약용 선생은 조선의 몇 안 되는 장수했던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18년의 긴 세월을 유배지에서 보낸 선생이 장수를 하게 된 비결을 꼽는다면 그건 단연 직접 농사를 짓고 자신의 채마밭에서 수확한 제철채소를 밥상에 올린 것이 아닐까 하는 결론에 도달한다. 선생이 문집에 남긴 기록을 보면 여름채소 중 아름답다고 표현한 오이를 비롯해 수십 가지의 텃밭채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런 선생에 힘입어 둘째 아들이 농가월령가를 쓰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농가월령가 오월령에는 ‘오월 오일 단옷날 물색(物色)이 생신(生新)하다. 오이밭에 첫물 따니 이슬에 젖었으며 앵두 익어 붉은 빛이 아침볕에 눈부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집에서 직접 오이를 키워보면 요즘도 별반 다르지 않게 단오를 전후로 첫물 오이를 따
시인이며 영화감독인 유하의 첫 시집 제목이 ‘바람이 불면 압구정으로 간다’였다. 물론 상전벽해로 변해버린 자본의 화려한 모습 뒤에 감춰진 속내를 고발하는 시였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인터뷰에서 짐짓 “압구정에는 배밭이 많았고 바람이 불면 배가 떨어지니 배를 주우러 가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던 것으로 기억 한다. 그랬다, 압구정에는 배밭이 많았다. 강남의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배밭이 압구정동에는 꽉 들어차 배꽃이 만발했다. 압구정의 배밭이 기록에 남았는지는 모른다. 다만 어릴 때 들은 기억으로는 일본인들이 재배했던 것을 해방 후 지역 농민들이 이어서 가꾸고 확대 한 것으로 안다. 가을이 되면 배를 따느라고 당시에도 일손구하기가 만만치 않을 정도로 양이 많았다. 대부분 가을에 소비를 하고 묵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