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들은 학기 중에 미루어 두었던 아이들의 교정치료를 위해서 방학이면 치과를 방문하십니다. 아이들에게는 다양한 형태의 부정교합이 나타나지만 그 중 가장 흔한 것은 ‘전치부 과밀’ 즉 치아가 나올 자리가 부족하여 앞니와 송곳니가 삐뚤빼뚤하게 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정교합의 현상은 부모님이나 할아버지와 할머니 세대 때보다 빠르게 증가하는 것 같습니다.이렇게 치아가 삐뚤빼뚤하게 나오는 근본적인 이유는 치아의 크기에 비해 턱뼈의 크기가 더 작기 때문입니다. 학자들은 인류가 진화를 거듭하면서 소화기관이 점점 퇴화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인류가 불을 발견하고 사냥한 고기나 곡식을 익혀 먹으면서 열심히 음식을 씹어서 잘게 부수어 넘기지 않더라도 쉽게 소화 흡수가 될 수 있게 되었고 이에 따라 치아를 비롯한 소화기관
어리둥절한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던 임상호가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때까지 선택을 알아보지 못한 것 같았다.“이 친구야, 여기 정형 기억 안나? 기차 안에서 만났던.”그제야 임상호가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선택에게 손을 내밀었다. 여전히 귀티가 흐르는 허여멀쑥한 얼굴이었지만 두 해가 채 안 된 사이에 어딘지 많이 변한 듯했다. 그에 비하면 김재열은 처음 만났던 모습 그대로였다.“다시 만나지 못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만나게 됩니다, 그려. 그간 잘 지냈소?”선택이 마주 손을 잡으며 묻자 상호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상호 이놈이 부잣집 도련님 티를 제대로 내고 있답니다. 집에서는 귀한 맏아들한테 공부만 하라고 다 뒷바라지를 해주는데 공부는 아예 작파하고 문학놀음에 빠
비닐하우스와 유리하우스 등이 농촌에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겨울에 수박이나 딸기를 먹을 수 있는 기적이 우리의 밥상으로 왔다. 그 결과 우리는 계절을 잊고 제철음식을 혼동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냉장고가 나오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김치냉장고가 보편화된 요즈음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10월 말부터 김장을 시작하고, 이때 하는 김장의 양은 겨울 한 철 먹고 마는 정도가 아니라 일 년을 두고 먹어도 남을 만큼 넉넉하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해먹던 다양한 채소로 담그는 김치들은 사라지고 바야흐로 1년에 한 번 김치를 담는 시대가 온 것인지도 모른다.그래도 나는 여름에 먹는 겨울 김장김치가 부담스럽다. 젓갈과 양념의 진하고 무거운 맛이 여름 더위에 떨어진 입맛을 다시 찾기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름
온나라가 ‘프란치스코 파파’ 열풍이다. 웬만한 인기연예인도 이 정도 열풍을 불러 내지 못했다. 인자한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 표정하나, 손짓하나에 사람들은 그렇게 열광한다. 그가 가는 곳에는 늘 낮은 곳에 임하라는 메시지가 남는다. 가난하고 병든 자들은 물론이고 세월호가족이나 종군위안부 등 폭력에 의한 희생자들도 ‘파파’의 손을 잡을 수 있었다.그렇다고 특별히 ‘프란치스코 파파’가 우리가 모르고 있던 사실을 드러내 놓은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사회가 부도덕하게 흐르고 그것을 막아내기 위한 노력들이 있음도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긴 말 한마디 한마디에 방점을 찍고 깊이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는 따로있다. 그는 세상으로부터 주목 받지 못하는 자들, 가난하고 병든 자들과 국가와 자본의 폭력
얼마 전 노환과 지병으로 숙부께서 돌아가셨다. 숙부와의 이별이 슬픈 자리였지만, 사촌들이 대부분 미국에 거주하고 있어 오랜만의 해후의 자리이기도 했다. 그 중 한 사촌동생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하였다.“집안일을 하던 중 다쳐서 무릎 부위가 5cm 정도 찢어졌다. 병원을 갔는데 뼈와 인대 등 다른 조직에는 이상이 없고 연조직만 외상을 입었다는 진단을 받았다. 상처를 꿰매는 치료를 받고 며칠간 소독과 후 처치 등 입원과 외래진료를 받았다. 아주 좋지만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전체 진료비가 얼마 나왔는지 예상하는가? 우리 가족은 민간회사 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다.”답은 총 진료비 3만불(약3,000만원)에 보험회사부담을 제외한 본인부담이 20%로 6,000불(600만원)을 지불했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이제 학생이 아니니 학도호국단에 간여할 리가 있겠소. 잠깐 얘기했듯이 연맹단은 사실 이름만 학도호국단에서 빌려왔지, 꼭 학생들만의 단체라고 할 수 없다오. 하여튼 뜻이 맞는 동지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니까, 꼭 같이 가봅시다.”딱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어딘지 은밀한 모임이라는 데 호기심이 일었다. 조성구를 따라 간 곳은 명륜동의 어느 한옥이었다. 고향 마을의 큰집 정도로 이십여 칸이 넘는 꽤 큰 집이었다. 명륜동에는 그런 집들이 여러 채 이어져 있었다.“어서 오십시오, 선배님.”대문을 들어서는 두 사람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는 학생이 눈에 익었다.‘누구더라, 분명히 아는 얼굴인데.’어깨가 벌어지고 눈빛이 유난히 빛나는 그를 바라보며 기억을 되살리는데, 갑자기 그가 놀란 표정이 되
어느 해 봄, 춘천에 사시는 큰 이모부께서 놀러오면서 우렁이를 한 바가지 잡아오신 적이 있었다. 손질해본 적이 없어서 좀 망설여지기는 했지만 나는 제주도의 바닷가에서 잡은 보말을 삶아서 먹던 것과 비슷할 거라 여기고 대뜸 씻어 건져 솥에 넣고 삶았다.그러나 그날 이후로 나는 한동안 우렁이와 마주치고 싶지 않게 되었다. 바늘로 삶아놓은 우렁이의 살을 꺼내보니 그 안에 모양을 갖춘 수수알 만한 새끼우렁이들이 오글오글 들어있었다. 뭔가 하면 안 되는 일을 한 것 같은 죄책감이 한동안 나를 지배하면서 괴롭혔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우렁이를 멀리하는 것은 아니니 내 스스로 얄팍한 나의 밑바닥을 보게 되는 한 예이기는 하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어설프게도 다만 우렁이를 넣은 강된장의 맛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은 까닭에
백중날이 슬쩍 지나갔다. 이 날은 농민들이 고된 일손을 멈추고 쉬는 날이다. 요즘은 모두 홀앗이로 일하기 때문에 이런 명절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러니 백중날도 모두 하우스로 논밭으로 나가 땀을 흘린다. 필자도 과수원의 웃자란 가지를 제거하느라 땀을 흘렸다. 한 시간 남짓 하다 보니 갑자기 굵은 빗방울이 떨어진다. 도랑의 흐르는 물이 금세 과수원 바닥을 강으로 만들 정도로 엄청나게 퍼부어 댄다. 쉬라는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해 아내에게 호박전이라도 부쳐 보라고 한다.느긋하게 쉬고 나니 서쪽이 밝아 온다. 동쪽에 무지개가 진하게 쌍으로 떴다. 어른 아이 따로 없이 무지개를 보고 희망의 나래를 편다. 하늘의 신과 닿을 수 있는 다리라고 생각했다. 또는 선녀가 내려오는 다리라고도 했다.그리스신화에선 무지
“정형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줄 몰랐구려. 내가 많이 배워야 하겠소.”라며 친구로 지내자는 말까지 했다. 선후배 간 위계가 엄격한 고등학교에서 파격적인 일이었다.남은 방학을 고향에서 보내는 동안 선택은 하루도 빠짐없이 농사일을 도왔다. 삼촌과 어머니가 꾸려가는 농사는 겨우 식구들 건사하기에도 빠듯할 정도였지만 할 일은 끝이 없었다. 날마다 논에 나가서 피와 잡초를 매는 일은 실로 고역이었다. 온종일 뜨거운 논물 속에서 벼 포기 사이로 걸음을 떼놓으며 호미질을 하고나면 어디 한 군데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우리 장조카가 철이 나도 너무 난 거 아녀? 공부하기도 힘들 거인데, 워째 날마두 논밭으루 나오는 겨?”삼촌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선택이 대견한 모양이었다. 그런 삼촌에게 넌지시 속을
박과에 속하며 덩굴식물인 오이는 인도 북부가 원산지로 추정되며 우리나라에는 1,500년 전에 중국을 거쳐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비닐하우스를 이용하여 거의 1년 내내 수확이 가능하며,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대표적인 열매채소이다. 오이의 종류는 나라마다 여러 가지 품종을 기르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무침이나 나물, 혹은 오이지를 담는 용도에 맞게 키워져 왔다. 하지만 글로벌시대로 접어든 만큼 장아찌와는 다른 피클이 우리의 식탁에도 자연스럽게 오르기 시작하였다.그러나 우리의 식생활문화는 달라지고 있지만 오이의 품종은 큰 변화 없이 생산되고 있어서 취청오이나 백다다기 같은 오이로 피클을 담가 먹는 생활의 지혜가 발현되고 있다. 그렇더라도 병 안으로 쏙 들어가는 길이의 오
권력으로 상징되는 것은 완장이다. 혁명 빨치산들의 붉은완장은 완강한 권력을 상징했다. 해방공간이 그랬고 한국전쟁당시 인공치하가 그랬다. 그 앞에선 인간의 존엄이나 자주성은 인정되지 않았다. 어린 날 학교에서도 노란완장을 주었다. 교문에 버티고 서서 딱지를 뺏거나 구슬을 압수하기도 했다. 완장의 권력은 허용된 폭력에 다름 아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의 완장폭력은 무시무시하기 까지 했다. 지난시절 검은 띠가 두 줄 그어진 노란 바탕에 ‘지도’라고 쓰인 완장이 설친 때가 있었다. 박정희 정권은 쿠테타로 정권의 정통성이 결여돼 있었다. 따라서 국민들에게 뭔가를 보여 줘야 했다. 그중 가장 큰 것이 보릿고개를 없애는 일이었다. 식량을 축내는 쥐잡기 운동, 건강에 좋은 혼·분식장려, 쌀막걸리 금지, 농촌엔 소
교정치료를 위해 치과에 내원하는 환자들 중 앞니가 반대로 물리는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부정교합을 반대교합(Crossbite)이라고 하는데, 이는 한국인에서 비교적 빈도가 높고 가장 가족력이 강한 부정교합의 한 종류입니다. 정상 교합에서는 윗니가 아랫니를 덮는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데, 반대교합은 말 그대로 아랫니가 윗니보다 더 앞으로 나와있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 음식을 앞니로 자르는 절단 기능을 할 수 없어 습관적으로 혀를 이용하게 되므로 식사 시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이게 되고, 발음에도 지장을 주게 됩니다.반대교합은 크게 두가지 원인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하나는 치아가 반대로 물리는 이유가 치아 자체에 있는 경우(치성 반대교합)입니다. 윗니가 입천장쪽으로 기울어져 있거나 아랫
얼마 전 진료실에서 할머니 한 분이 틀니가 잘못된 것 같다고 찾아왔습니다. 틀니를 떨어뜨린 적도 없는데 잇몸이 불편해서 틀니를 며칠 빼놨는데 틀니가 들어가지 않는 다는 것이었습니다. 틀니를 만든지도 3년 정도 됐고 그전에는 큰 불편 없이 잘 쓰고 있었는데 며칠 사이 들어가지도 않게 되었다며 속상해 하셨습니다. 할머니는 부분틀니(국소의치)를 장착하고 계신 분이었고 보름 정도 틀니를 쓰지 않은 동안 남은 치아(지대치)가 이동하여 틀니가 맞지 않게 된 것이었습니다. 틀니의 경우 잇몸 뼈의 지속적인 흡수로 인하여 정기적인 치과 내원이 반드시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큰 불편이 없으니 3년이 넘게 치과를 한번도 내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사이 잇몸 뼈가 흡수되어 틀니의 수리(첨상)가 필요한 상황임에도 그냥 사용하
누가 장리 빚을 내고 싶어서 낼까. 따지고 보면 함께 온 학우들 대다수는 서울에 살거나 농사를 짓지 않는 집안의 자식들이었다. 설령 집에서 농사를 짓는다 해도 끼니 걱정 따위를 할 필요가 없는 부농이나 지주의 자식에 속했다. 어쩌면 그들은 어느 정도 농촌에 대한 낭만적인 생각을 가지고 농촌계몽대로 왔을 터였다. 잠시 생각을 고른 선택이 다시 입을 열었다.“농사라는 건 늘 생각처럼 되는 게 아닙니다. 풍년과 흉년이 되풀이된다고 하지만 흉년이 드는 해가 더 많다고 봐야 됩니다. 그리고 한 해 농사로 겨우 풀칠을 하는 정도라 해도 살다보면 급하게 돈이 들어갈 일이 누구에게나 생기게 마련이지요. 그렇게 되면 그대로 수렁으로 빠지는 겁니다. 오할이나 되는 빚을 내어 쓰게 되어 가을에 갚고 나면 두어 달 식량도 남
가을에 거둬들인 식재료들이 다 떨어지고 먹을 것이 없어 배고픈 서러움을 겪는 시절을 일러 보릿고개라 하였다. 내가 어렸을 때 그때는 정말 먹을 것이 없어서 밥 때가 되어서도 제대로 배불리 먹기 어려웠기 때문에 간식 따위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시기였다. 어른들은 산에 가서 소나무 속껍질을 벗겨다 그걸로 송기떡이라는 떡을 해먹었고 아이들은 소나무의 상처 난 곳에서 볼 수 있는 송진을 뜯어 씹으며 배고픔을 달래던 때였으니 그랬을 것이다. 그러다 밀이삭이 패고 적당히 단맛이 들 무렵이 되면 아이들은 어른들의 눈총을 받으면서 밀서리를 하고 다녔다. 밀서리를 하고 나면 아무리 손이나 소맷자락을 끌어당겨 입 주변을 문지르고 집으로 들어가도 어른들이 알아채시고 야단을 치셨다.밀농사 하는 곳을 만날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의 서슬 퍼런 권력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던 겨울이었다. 이수금 의장은 정읍에서 첫 깃발을 올린 고추수매 싸움을 주도하다가 구속되었다. 그의 구속은 더 큰 불길로 번져갔다. 삼천리 방방골골 여기저기로 번지는 들불이 되고 말았다.전국수세대책위원회 위원장 시절 난 이 의장을 처음 보았다. 5척 단신에 다부진 체격, 형형한 눈빛. 책에서 봐왔던 녹두장군의 모습이었다. 게다가 한복을 입고 연단에서 수세폐지의 당위를 토해내는 모습은 서른을 갓넘긴 내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 기억에 각인된 안중오거리의 농민집회는 이후 내 인생을 농민운동으로 이끈 전환점이었다. 내 맘속에 의장은 내 앞에 나타난 녹두장군 전봉준이었다.시대는 민주화의 물결이 춤을 췄지만 농민들은 개방의 파도가 덮치는 시련에 맞닥뜨
기차 밖으로 남원이라는 표지가 나오고 선택은 이형제 선생을 생각했다. 그 곳 어디쯤에서 농촌운동을 하고 있을 선생과 몇 차례 편지를 주고받다가 한동안 소식이 끊긴 상태였다. “정형, 뭔 생각에 그리 잠겨 있소?”인섭이었다.“여기 아는 분이 살고 있어서 잠시 그 분 생각을 했소.”“호오, 정형 발이 생각보다 넓구만. 나도 예까지 와보는 건 처음인데. 곧 우리가 내릴 역이 되는가보오. 구례역이라던데. 듣기로는 전라도에서도 아주 시골이라 합디다.”선택이 속한 조가 도착한 마을은 여러 모로 고향 마을과 비슷했다. 산굽이를 따라 이어진 백여 호의 집들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산촌이었다. 산촌이면서도 마을 앞은 구불구불한 논배미가 꽤 넓었고 한창 보리가 익어 구수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밥상에서 가지는 그다지 맛있는 채소는 아니었다. 놀러 나가거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의 텃밭에서 쉽게 따먹었던 시원하고 달착지근한 오이와는 달리 가지는 한 입 베어 물면 그 아린 맛에 바로 뱉어버리게 되는 것이어서도 더욱 그랬을 것이다. 어린 나이의 나에게 익힌 가지의 물컹거리는 식감도 과히 좋은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그러나 살짝 쪄서 무친 가지의 혀에 감기는 부드러움이 적당히 좋은 걸 보면 나이가 드는 모양이다. 적당한 단맛에 적당한 담백함이 갖은 양념과 어우러져 묘하게 중독되게 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가지다.가지와 같은 식물에는 인체에 유익한 작용을 하는 식물에만 들어 있는 생리활성물질들이 있다. 식물성 생리활성물질은 특히 일곱 빛깔 무지개 같
밤나무는 밤나무인 모양인데 나도밤나무와 너도밤나무가 있다. 이 나무들은 설화를 가지고 있는데 두 나무가 지역을 달리할 뿐 같은 이야기다. 먼저 나도밤나무는 서해안 일대에 주로 자라는 나무다. 열매는 밤과 전혀 다른 모습이며 민간에서 합다리나무라고 부른다. 설화 중에 율곡선생 탄생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신사임당이 율곡을 잉태했을 때 산신령이 말하기를 아이가 호환으로 죽을 운명이니 밤나무 100그루를 잘 기르면 호환을 면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만 한 나무가 죽어 100그루를 채우지 못했다. 호랑이가 율곡을 채가려 할 때 옆에 나무가 썩 나서 “나도 밤나무다” 해서 호환을 면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이의 호가 율곡이 됐다고도 한다.너도밤나무는 울릉도에만 존재한다. 밤이 달리기는 해도 밤과는
오늘은 어린이들의 충치를 예방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 그 효과가 매우 우수한 ‘치아 홈 메우기’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만 6세가 되면 입안 제일 깊숙한 곳에 커다란 어금니가 나옵니다. ‘제 1대구치’ 라고 하는 이 치아는 아이의 평생에 걸쳐 음식을 씹는 일과 턱의 발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치아입니다.그러나 이 ‘제 1대구치’는 아직 유치원에 다니거나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할 어린 나이에 입안 깊은 곳에서 나오기 때문에 부모님들은 이가 나는 것을 잘 알지 못하거나 유치(젖니)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이 치아의 씹는 면과 옆면에는 본래 좁고 깊게 패여 있는 골짜기와 같은 부분이 있는데 그 홈이 너무나 깊어서 여기에는 칫솔이 도달할 수가 없으며 따라서 음식물찌꺼기나 치태가 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