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플란트는 수술을 해야 한다. 맞다! 수술이다. 어떤 병원에 가면 임플란트 시술에 대하여 수술이라는 단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비교적 간단한 과정으로 임플란트 식립을 한다. 반면 다른 어떤 병원에 가면 사전에 어려운 설명과 주의사항을 교육하고 거창한 수술실에서 복잡한 소독과 격리 등 준비과정을 가지고 수술을 한다. 어떤 것이든 양면이 있다.전자의 경우, 환자를 중심으로 볼 때, 수술 전에 미리 공포를 갖지 않게 한 의료진의 배려를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수술’ 이라는 단어가 단순히 그 행위만을 의미하지 않고 생명을 다룬다는 고귀함과 그것을 행함으로 인해서 생과 사의 갈림길의 공포가 연결되는 어려운 의미를 동시에 내포한다. 그런 점에서의 수술은 공포 그 자체다.환자가 두려워하지 않게‘의사란 환자
삼촌과 같이 사는 여자를 보고 선택은 아연한 기분이었지만 어쨌든 삼촌이 짝을 만났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어릴 적의 충격으로 정신연령이 낮을 뿐 농사일이나 부엌일을 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다고 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농사를 거들던 경택도 봄이 오는 대로 서울로 가겠다고 했다. 집에서는 선택이 서울에서 자리를 잡고 동생을 건사하길 바라는 눈치였지만 제 한 몸도 재열에게 의지해야하는 신세였다.하지만 선택의 수원 생활은 오래 가지 못했다. 덜컥 군대 영장이 나온 거였다. 이미 스물 세 살이었으니까 나올 때가 되어서 나온 거지만 막상 영장을 받고 보니 눈앞이 아뜩했다.“어차피 갔다 와야 할 군대 아닙니까? 저도 내년쯤엔 가야할 텐데, 어쨌든 몸 성히 잘 다녀오세요.”재열은 권업장에서도 능력 있는 직원으로
어머니가 대상포진으로 고생을 하시다 이기지 못하시고 결국 서울 병원으로 가시니 일하러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 나를 배웅하면서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하나 없어 쓸쓸하다. 이런 내 자신을 보면 나는 아직도 어머니로부터 완전하게 독립하지 못하고 사는 반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나에게는 단풍이 한창인 지리산의 능선이 위로가 되어주고 비록 잎은 떨어지고 없지만 꽃보다 고운 색을 자랑하는 열매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감나무들이 있어 위안이 된다. 집을 나서서 계곡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단풍들 속에서 단풍보다 더 빛나는 감나무들이 차를 멈추고 넋을 잃고 바라보게 만든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음이다.가을이 깊어간다는 말은 내가 살고 있는 지리산 북쪽자락의 마을들에서 곶감을 깎는 시
농민들이 길을 나섰다. 우리농업지키기 대장정이라고 이름 붙인 농민들의 길 나섬은 스스로 농업의 운명을 개척해야 하는 긴박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120년 전 전봉준 장군이 백성들을 도탄으로부터 구제하고자 나섰던 길에서 시작해 지금은 공주 우금티 쯤을 달리고 있을 것이다.농민들은 내년에는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으로 농사를 짓는다. 하지만 결국 또 다시 털고 나면 빚잔치로 끝내야 하는 농사임을 안다. 어떤 농사를 어떻게 지어도 마찬가지다. 규모가 커지면 규모있게 망하고 작으면 작아서 망한다. 근본은 이윤 앞에 당할 재주가 없는 것. 그래도 씨앗을 갈무리하고 내년에는 더 많은 수확을 꿈꾸어 본다.인류에게 불을 훔쳐다 준 죄로 프로메테우스는 간을 독수리에게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는다. 지금도 프로메테우스는 간
치주질환의 직접적인 원인은 치태 또는 플라그라고 불리우는 세균막입니다. 치아에 달라붙어 형성되는 이 세균막에 의해 잇몸에 염증반응이 일어나고, 그 염증반응에 의해 치은(잇몸)과 치조골(잇몸뼈)이 파괴되는 것입니다.따라서 치주질환의 치료와 예방의 초점은 치태의 제거입니다. 얇은 막 형태의 세균덩어리인 치태는 치아와 치아의 뿌리부분에 달라붙어 있는데, 이들은 시간이 지나면 치석이라고 하는 돌처럼 단단한 형태로 굳어집니다. 이러한 치석과 치태를 치아로부터 제거하여 잇몸이 스스로 회복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바로 잇몸치료, 치주치료입니다.한꺼번에 모두 제거하려면 치료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쉽고, 치료 후 느끼는 불편감과 치유지연의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보통 치주치료는 단계별로 진행됩니다.첫 단계
임상호뿐 아니라 많은 학생들 생각이 그랬다. 산업을 일으켜야 한다느니 공업을 발전시켜야 한다느니 하는 논의가 무성했다. 일제가 남긴 산업 시설을 기반으로 신흥 부자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었다. 무상으로 들여오는 미국 농산물을 가공하여 밀가루나 설탕, 면직물 따위를 만드는 공장에는 아침저녁으로 젊은 노동자들이 떼를 지어 드나들었다.“그야 당연하지. 생필품을 우리 힘으로 만들어 써야 하는 건 꼭 필요하고 지금 부자들이 수입해서 쓰는 물건들도 우리가 만들어야겠지. 하지만 우리 국민 대다수가 농민이고 농업이 기반인 한 제일 중요한 문제가 농촌 문제인 것도 틀림없지. 그래, 상호 너처럼 생각하고 그 길로 나가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나나 선택 형처럼 농촌으로 가는 젊은이도 있어야겠지. 근데, 문학가의 꿈은 어쩌시려나
연암 박지원은 명문가의 집안에서 수재로 자라난 사람이다. 그러나 출세와 벼슬에는 관심이 없이 평생을 학자로서만 지내다가 오십이 넘어서야 생계를 위해 지금의 함양군 안의면 일대의 안의현감으로 몇 년간 일을 했다. 연암은 현실에 깊은 회의를 가지고 두통과 우울증을 앓고 있었지만 양반전, 광문자전, 호질, 민옹전 같은 글을 통해 양반계급과 현실을 비판하고, 그러면서도 유머 넘치는 글을 쓴 훌륭한 작가였다. 이용후생을 내세우는 북학파를 이끌며 학문을 했던 사람으로 청나라의 문물을 보고 기록한 기행문인 열하일기는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전해진다.연암은 학문만을 하다가 안의현감으로 부임했지만 책상 앞에서만 쓰이는 공부를 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매우 직분을 잘 수행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인근에서 끊임없이 동원
여주 출신으로 국회의원을 지내고 1990년 체육청소년부 장관을 지낸 정모 의원이 신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이후 모처에 모여 회식을 했더란다. 그때 그 자리에 초대받은 정모 의원이 늦게 도착해 걸판지게 취한 장성들을 향해 내던진 한마디가 ‘똥별’이였단다. 그날 정모 의원은 장성들에게 얻어맞았다나 어쨌다나. 이미 고인이 돼버려 확인할 길은 없지만 어쨌든 정곡을 찌른 말이었다. 지금은 달라졌겠지만 군대에서 유행했던 말을 살펴보면 군대 내의 사회상도 함께 볼 수 있어 흥미롭다. ‘군대일 하나마나, 군대잠 자나마나, 군대밥 먹으나마나’란 말과 ‘소령중령대령은 권총도둑놈, 소위중위대위는 깡통도둑놈, 일병이병상병은 깜밥도둑놈’이란 유행어를 보면 군대내의 부패구조를 여실히 드러낸다 하겠다. 이런 군대
교정치료는 다른 치과치료에 비해 오랜 기간에 걸쳐 진행되고 일반적으로 입 안에 고정식 장치를 부착하고 있기 때문에 교정치료를 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좀 더 구강관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교정 치료 중 발생하는 대부분의 문제는 교정치료를 시행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흔히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이므로 환자나 보호자가 담당의사의 지시에 잘 따르고 협조한다면 큰 부작용 없이 교정치료를 마무리 할 수 있습니다.❶ 치아 표면의 탈회와 충치탈회란 치아표면이 하얀색으로 부식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교정치료를 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발생할 수 있지만 보통 1년 이상의 기간 동안 고정식 장치(브라켓)를 부착하고 있는 교정환자의 경우 음식물이 잘 끼고 칫솔질이 어렵기 때문에 보통의 경우보다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게 됩니다
선택도 놀랐다. 정부에서는 입만 열면 농정이 우선이요, 농민을 위해 온갖 노력을 하는 것처럼 선전을 해대더니 실상은 아예 정책이라곤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니. 게다가 그런 말을 농림부 당국자에게 직접 들으니 실로 아연할 따름이었다.이미 마음이 떠난 학교생활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대학 진학이나 취업을 준비하는 학우들 틈에서 선택은 한 가지 고민에 휩싸였다. 졸업하고 고향으로 내려가서 농민운동을 할 것이냐, 아니면 서울에서 가까운 곳에 근거지를 마련하느냐 하는 문제였다. 처음에는 당연히 고향으로 가려 했는데, 집이 충남 부여 인근인 재열이 자신은 경기도 수원에서 농민운동을 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마음이 흔들렸다. 그나 선택이나 조건은 비슷했다. 둘 다 어려운 형편인 집안의 장남이었다.“선택 형도 마
우리는 생강을 김치를 담글 때 양념으로 쓰고 주로 생선이나 육류의 냄새를 제거하는 등의 향신료로 사용한다. 양념이라는 말은 약으로 생각하고 먹으라 하여 약념(藥念)에서 출발했다. 藥念 중의 대표인 생강은 따뜻하고 매운 맛을 가진 약성이 강한 약재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우리가 몸에 좋다고 해서 양념으로 쓰이고 있는 약성이 강한 음식의 재료들을 밥이나 빵처럼 많은 양을 상식(常食)하면서 몸이 건강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옳지 않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양념은 약념(藥念)일 뿐이니 음식의 맛과 향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아주 조금씩 넣어 먹는 것이 바람직하다.생강은 고려시대에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고려 현종 9년인 1018년에 최초로 재배되었다는 기록을 고려사에서 찾을 수 있다. 비장
논두렁을 건들건들 걷는 모습이 건달 같아서 건달농사꾼이라 했든가. 평생농사를 지어도 아내의 입에서 늘 튀어 나오는 건달농사꾼. 하는 일이 옹골지거나 맵차지 않고, 하는 듯 마는 듯 하는 사람을 두고 건달이라고 했다.건달의 원래 말이야 간다르바에서 나온 말씀이다. 간다르바는 부처님 곁에서 악기를 다루는 악사들의 이름이다. 실제 석가모니 옆에서 악기를 켜던 건달들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절간에 들어서면 사천왕문을 지나는데, 네 분의 사천왕 중에 악기를 들고 있는 분부터 많은 탱화에는 그렇게 등장한다. 그러니까 건달은 보컬그룹의 다른 이름이지 싶다. 그런데 보컬그룹 사람들이 생업은 안하고 늘 노래에 악기나 켜는 모습이 안 좋게 보였나 보다. 그래 션찮게 일하거나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우리는 건달이라고 한 것이
“다들 똑똑한 젊은이들이니까 한자 뜻만 풀어도 무슨 뜻인지 알 겁니다. 한 마디로 논에 베지 않은 나락이 서 있는 채로 미리 판다는 이야기지요. 당장 돈이 급하니까 돈 있는 사람이나 쌀장수에게 헐값으로 넘기게 되는 겁니다. 그런 형편이니까 당연히 추수기 때 가격보다 아주 싼 가격에 넘길 수밖에 없고, 다시 돈이 궁하게 되니까 이듬해에는 더 빨리 입도선매에 나서고, 이런 과정이 삼사년 반복되면 결국 논까지 빚쟁이한테 넘어가고 맙니다.”권태헌은 잠시 말을 멈추고 젊은이들을 둘러보았다. 농정국 관리의 말에 회원들은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않고 귀를 기울였다. 농촌의 궁핍한 실상에 대해 알 수 있는 길은 거의 없었다. 가끔 개탄하는 어조의 신문 칼럼이 나오는 정도였다. 권태헌의 말은 듣기에 따라서 정부가 농업 정
아침저녁으로 부는 찬바람이 솜털을 일으켜 세운다. 늘 그래왔듯 지리산 깊은 골짜기의 가을은 겨울이 벌써 턱 앞에 와있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제대로 난방을 해야 하는 기간이 6개월은 되는 곳이라 이쯤에는 김장 걱정, 메주 걱정, 난방 걱정, 겨울옷 걱정 따위로 통장의 잔고를 자꾸만 살피게 된다. 우리 집은 농사 없이 사는 살림살이라 가을걷이로 넉넉한 이웃들과는 달리 텅 빈 창고 때문인지 한기가 뼛속까지 스미는 걸 느낀다.아침에 일 보러 나오는데 병원에 가야겠다며 어머니가 따라나서신다. 그런 어머니의 얼굴이 여느 날과는 달리 어째 어두워 보인다. 평소에 하는 어깨 치료 말고 또 어디가 편치 않으신가 하여 궁금하지만 선뜻 여쭙지 못하고 눈치만 살핀다. 살림 팽개치고 나다니는 죄인 같은 딸이라 그렇다. 그러다
황금들녘이 점점 좁아져 간다. 들판은 풍년인데 농심은 흉흉하다. 정부의 거짓말에 넌더리가 난단다. 언제나 관료권력은 거짓으로 점철했다.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 것이 농심이다. 그렇게 역사가 흘러 대명천지 현재도 거짓말로 일관된다.일미칠근(一米七斤)이란 말이 그렇다. 쌀 한 톨에 농부가 흘린 땀방울이 七斤이라고? 역으로 말하면 땀방울七斤이 들어있지 않은 쌀은 쌀도 아니다 란 것 아닌가. 그 의미는 농부들은 농부격에 맞게 열심히 땀 흘려 일해라, 손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또는 허리가 굽어 알아서 기도록하란 말이다. 은근한 협박이며 이데올로기지 않은가. 그래서 쌀 한 톨에 담긴 七斤의 의미를 풀어 보았다.쌀의 전래는 중앙아시아로부터 시작한다. 거기 곤륜산이 있고 서왕모가 산다. 서왕모의 정원에는 복숭아나
간혹 아이가 또래보다 말하는 것도 늦고 발음도 부정확하다고 걱정을 하시며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오시는 부모님이 계십니다. 이런 아이들을 검사해 보면 ‘시옷’이나 ‘치읓’ 등의 발음을 분명하게 하지 못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그저 습관적으로 발음을 하거나, 어리광을 부리거나 귀여워 보이기 위해 일부러 혀 짧은 소리를 낸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부정확했던 발음이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정확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그러나 ‘혀 짧은 소리’는 단순히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또는 일부러 내는 소리가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실제로 혀가 짧아서 의도하지 않게 혀 짧은 소리를 내는 경우가 있습니다.혀가 짧다고 하는 것은 실제로 혀의 길이가 짧다는 말이 아닙니다. 혀 끝과 혀의 아래
자연치가 없어지면 할 수 있는 방법은 과거에는 브리지와 틀니가 있었다.하나의 치아가 빠지면 인접한 두 개의 건강한 치아를 갈아서 이를 기둥으로 삼아 다리를 놓는 것과 같은, 말 그대로 브리지(bridge)를 치료의 기본으로 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자연치아의 훼손이 심각하고 일정기간 지나면 2차적인 질환이 발생할 수 있었다.브리지의 문제점은 첫째, 자연치를 갈아야 하는 어려움이다. 기둥치아에 소위 금니가 들어갈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멀쩡한 치아를 갈아내어야 한다. 이렇게 갈아내는 것은 기둥치아를 매우 약하게 만들고 수명을 짧게 만든다.둘째, 옆니에 매달려 있는 형상이니 인접치가 원래 설계되어진 것보다 많은 하중(약 50% 이상)을 더 받게 되어 수명에 한계가 있었다.틀니는 브리지보다도 더 많은
재열에게서 미리 들은 권태헌이라는 이는 특이한 경력에 협동조합운동에 대해 강한 열의를 가진 인물이었다. 이미 일제하에서부터 만주에서 농업합작사를 통해 조합운동에 눈을 뜬 그는 해방 후에 농림부에 특채되어 지속적으로 조합운동을 펼쳐나갔다. 조봉암이 농림부장관을 하던 시절에 그에게 협동조합운동의 경험과 이론을 제공한 사람도 권태헌이었다. 조봉암은 그의 이야기를 듣고 협동조합이 우리 농촌의 미래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협동조합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통령 이승만과 국회를 장악하고 있던 한민당 세력은 농촌에 변화를 불러올 협동조합운동을 적극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결국 법안은 국회에 계류되었다가 폐기되었고 이후 육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도 농협법은 통과되지 못하고 있었다.“선생님은 이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간식거리가 정말 없었다. 도시에 사는 아이들은 그나마 가게에서 몇 가지 안 되는 과자라도 사먹을 수 있었지만 그 시절의 농촌 아이들은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따서 먹고 주워 먹고 그렇게 자랐다. 나도 동갑내기 외삼촌과 함께 그렇게 돌아다녔고 가을이면 더욱 바삐 돌아다녔다. 산에 가서 떨어진 밤도 줍고 도토리도 줍고 들에 가서는 콩서리도 해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를 돌이켜보건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썩은 나무 등걸에서 뜯어온 버섯을 끓는 물에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 먹었던 것이다.그 버섯은 검은색 젤리 같기도 하고 보들보들한 것이 끓는 물에 데쳐 고추장에 살짝 찍어 입에 넣으면 씹기도 전에 목으로 슬쩍 넘어가는 맛이었다. 어른들 몫을 남겨두었다가 아무 버섯이나
항간에 떠도는 일식이 님, 이식이 놈, 삼식이 새끼라는 우스개소리가 있다. 몇 일 전 고등학교 동창모임을 필자의 과수원에서 치렀다. 삼십 여명 모여서 고기도 굽고 햅쌀밥에 아욱된장국으로 배들을 불렸다. 모두 만족한 듯 초로의 그림자들이 지워진 환한 웃음꽃이 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이 하나둘씩 현역에서 물러나기 시작했다며 고민들을 털어 놓는 것이 아닌가. 필자야 평생농부니 퇴직 걱정은 없어 그런 고민을 해보지 못한지라 친구들의 심각함이 가슴에 닿지 않았다.한 친구가 말하길 혹시라도 퇴직 후에 삼식이 새끼는 되지 말라며 좌중을 폭소로 몰고 갔다. 집에서 한 끼 먹으면 일식이 ‘님’ 이라고 존칭하고 두 끼 먹으면 이식이 ‘놈’이라며 하대를 하고 세끼 다 먹으면 삼식이 새끼라고 욕을 한단다. 퇴직 후에 자기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