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에 30도를 넘고 며칠 사이에 남도까지 첫서리가 내리는 등의 널뛰는 날씨 때문에 농사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지만, 그래도 얼추 수확이 마무리되는 즈음입니다. 수확 시기에 농민의 시간은 분 단위로 나눠 써도 모자라고 또 모자랍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보내던 전쟁 같은 시간이 지나고 나니 이 생각 저 생각 상념에 빠집니다.일전에 세계 여성농업인의 날 행사가 온라인으로 생중계되었고, 여러 행사 가운데 눈여겨 볼만한 내용이 있었으니, 오전에 있었던 국제 청년여성농업 정책토론회였습니다. 마늘 심을 준비를 하려고 창고에서 마늘쪽 분리 작업
“엄마, 지금 일어나야 해요~.” 9살 첫째가 아침 7시에 나를 깨웠다. 보통 늦잠 자는 아이를 깨우는 부모의 모습도, 해뜨기 전 밭으로 나서는 농부의 모습도 아니다. 지난 밤 농사 공부를 하다가 새벽이 되어 누웠는데, 두 살배기 셋째가 환절기 코막힘으로 잠을 못 자서 덩달아 잠을 설친 탓이다. 막내를 업고, 아침밥을 차려주고 부지런히 먹으라고 채근하며 셋째도 밥을 먹인다. 아이들이 등교하면 셋째와 놀아주다 낮잠을 재운다.나에게 아이의 낮잠 시간은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는 자유 시간이지만, 집에서 멀리 떨어진 밭에 나갈 수는 없는
며칠 전에 남편 친구의 아내가 택배를 보내왔다. 바쁠 때 남편을 빌려준 덕분에 식구들이 고향 여행을 아주 잘 할 수 있어서 무척 고마웠다고 했다. 취미로 재봉틀을 배워서 옷을 만들어서 보냈단다. 그냥 취미로 만든 옷이 아니라 오랫동안 갈고 닦은 재주처럼 정교했고 게다가 예쁘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유형의 옷이었다. 전화를 끊은 후에도 고마운 마음이 길게 이어져서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뱃살 가려주는 옷을 찾게 된다면 고맙고 다행이지요. 뱃살 가려주면서 최소한의 맵시 살려준다면 명품이 아닐까 싶네요. 그 명품에 만드는 사람
강원도의 겨울은 한적하다. 겨울이 한적하다는 얘기는 나 같은 소농은 겨울 동안의 생활비를 걱정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그런 와중에 옆 동네 마을기업에서 전통짚풀공예를 하는 장인께서 겨울 동안 짚풀공예품 만드는 기술을 배우면서 공예품을 만들면 최저임금 정도의 보수를 준다고 제안을 해주셨다. 청년창업농지원 받는 것에도 문제가 없는 두 달 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덕에 경제적으로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그런데 해가 바뀌고 여성농업인 바우처(강원도는 여성농업인 복지바우처) 카드를 신청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그 잠깐 일하면서 들었던 4대보
일전에 모임이 있어서 한 언니를 태워서 약속장소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귀농한 지 8년 남짓 된 언니, 중년 언니들의 로망인 연금을 타는 남편과 사는데도, 어찌나 농사일을 열심히 하는지 주위 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지경입니다. 귀농하면서 택한 작목이 고사리입니다. 새싹이 눈을 틔우는 이른 봄부터 늦봄까지 고사리를 꺾는데, 고사리를 꺾는 시간보다 사이사이의 풀을 매는 시간이 더 많기도 합니다. 그렇게 첫 정을 들인 고사리 농사는 아무리 힘들어도 마냥 사랑스럽기만 하다며 애지중지 농사를 짓습니다.그렇다고 고사리 농사만 짓는 것은 아닙니
“엄마는 왜 주말에도 일해!?” 토요일에 이어 일요일까지 내처 일하려 하니 아이들의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이 입장에서는 토요일을 양보하여 일하는 엄마 옆에서 기다려 주었으니 일요일은 같이 놀아주겠지 했는데, 엄마는 간만에 비가 멈추었으니 밭 정리할 일이 시급하여 자기 마음을 몰라주니 따져 묻는 것이었다. ‘농사짓는데 주말이 어딨냐’ 타이르고 싶지만, 이렇게 엄마와 같이 놀고 싶어하는 어린 시절도 한 때 아닌가 하여 일하려던 마음을 접었다.그래도 콩대가 길어 나자빠진 물레콩과 연일 습하여 곰팡이의 밥이 되어 버린 붉은어금니동부콩
대파밭의 풀을 뽑다가 해가 지면 다음 날 시작해야 할 자리를 표시해 두고 퇴근을 한다. 시장에 들러야 하는데 어두워진 시간에는 문을 닫기 때문에 마트로 들어간다. 제육볶음용 돼지고기와 콩나물을 바구니에 담아서 계산대에 올린다.“이제 가서 언제 밥을 차릴까요?”낯익은 계산원이 동병상련의 위로 한마디를 건넨다.“그러게 말이요.”30년을 같이 산 남편한테 듣지 못하는 위로를 친분을 쌓아본 적이 없는 다른 여성한테 들으면서 한숨이 절로 나온다.결혼한 여성은 1시간 늦게 출근하고 1시간 먼저 퇴근한다(황석영, )던 그쪽
우리 마을은 매년 복날이 되면 온 마을사람들이 모여 간단한 행사를 진행하고 함께 삼계탕을 먹으며 더위도 이기고 서로의 안부도 물으며 지내왔다. 행사는 대부분 마을회관에서 진행이 되고, 함께 나눌 음식의 준비는 어느 곳이나 그렇겠지만 당연히 부녀회의 몫이다. 올해는 코로나19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모두 모여서 함께 먹을 수 없으니 포장 용기를 구입해서 한 그릇씩 포장하여 집집마다 배달하자는 의견이 나와서 논의하게 됐다.어차피 모이지는 못하는 상황이니 음식 준비를 동네 식당에 맡기고 배달만 역할을 나누자는 의견에 다들 동의하는 분위기
뜨거웠던 지난여름의 추억이 뭐냐고 물으면 단연코 참깨 수확이라고 말하렵니다. 지난 3일부터 근 보름 넘게 온통 참깨 농사에 매달렸습니다. 폭염이 한창 기승을 부렸던 시기였지요. 그때는 인격을 유지하며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아침저녁의 짧은 그 시간뿐인지라 그동안에 참깨를 베고 털고 말리고 키질을 하느라 영혼이 가출하는 듯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넘길라치면 땀이 비 오듯 해서 더는 움직이기조차 어려웠습니다. 확실히 기후위기가 맞다고, 어떻게 이렇게 더울 수가 있냐고 투덜대면서도 꾸역꾸역 일했습니다. 대부분의 농민들이 농사일을 할 때
청년에서 장년으로, 이제 마흔을 앞둔 나이가 되었다. 농촌에서는 꽤 젊은 나이에 속하지만, 사실 불혹이라는 길 앞에 선 것이다. 매년 조금씩 시야가 넓어지고 깊어지는 것이 나이 드는 맛이라면, 여성농민으로 뿌리내리는 삶에서는 왠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세계가 좁아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활동하라’는 구호를 가슴에 새겨보지만, 농사라는 작업 특성상 매일 익숙한 환경, 일정한 루틴, 평생을 한 마을 안에서 몇몇 아는 얼굴들 사이에만 있다 보니 작은 지역 사회 안으로 생각이 수렴되는 것 같다.성숙함이란 나이
농사를 짓다 보면 경제작물 외 다른 농사가 많기 마련이다. 양념이며 푸성귀 종류가 좀 많은가. 봄에 심어서 요즘 따 먹는 오이 호박 가지 고추 등등. 초가을에 배추를 비롯한 쪽파 무 당근을 파종하면 김장할 때 비용을 줄일 수 있다. 필요한 양념을 다 키워서 먹지는 못하더라도 소비가 많거나 애착이 가는 농사가 각자 다른 것 같다. 나의 경우는 풋고추와 풋호박 그리고 참깨 농사다.양념 농사는 파종하고 수확해서 입으로 들어오기까지 거의 여성농민의 수고로 이뤄진다(남편과 친하게 지내면 협조 정도가 다르다).거의 모든 밭작물이 물빠짐이 좋아
시골 동네에서 내 나이 정도 되면 삼촌 또래의 동네 어른들과 친한 오빠 동생 사이처럼 지내면서 말도 좀 편하게 하게 된다. 워낙 나이 드신 분이 많고, 젊은이들이 없으니 중간에 있는 나이대들은 그렇게 어울리게 되는 듯하다. 그렇게 만나면 한 톤 높은 목소리로 친근하게 근황과 농담을 주고받지만 그렇다고 딱히 진짜 친하지는 않은 동네 어른들이 있다. 그런 어른 중 한 명이 ‘아이고 우리 윤정이 시집갈 때 됐는데 살 좀 빼지 그러냐~’라며 엉덩이를 툭 친다. 순간 너무 당황해서 얼굴은 굳고 말문이 막힌다. 주변을 보니 다들 아무렇지도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