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날씨 탓인지 배가 엄청나게 매달렸다. 적당한 간격과 성장이 잘될놈을 두고 열매솎기를 한다. 가위질을 아무리해도 도무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열매가 시원찮은 탓이다. 수정이 원활하지 않았는지 튼실한 놈이 없다. 시원찮은 놈들이 도토리 키재기를 하니 어디 중심을 두고 가위질을 할지 몰라 쩔쩔 매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게다가 병까지 와서 병으로 인한 상처가 없는 놈을 두려니 살피는 시간이 많다. 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 네 시간을 하고 나면 초주검이다. 맛있어야 할 점심은 신역이 고된 관계로 입에 얼른 붙지 않는다. 아내는 대뜸 물에 말아 억지로 먹지만 건강에 좋지 않은 습관이다. 농사는 억지로 되지 않는다. 다만 사람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전력을 다 할 뿐이다. 그 다음은 토양과 물과 하늘
복숭아 열매솎기를 시작하였다. 작년보다 대엿새 이르다. 복숭아는 다른 과일에 비해 수정이 잘 되는 편이다. 벌이 많이 오지 않아도 바람에 의해 수정이 되는 듯하다. 배나 사과를 하는 과수원에서는 꽃가루를 받아 사람이 일일이 인공 수정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벌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토종벌이 멸종될 지경에 이르렀다니 참으로 두려운 사태가 아닐 수 없다. 복숭아는 가지에 다닥다닥 열매가 맺힌다. 한 뼘 정도 되는 짧은 가지에도 열 개 이상 맺히기도 한다. 당연히 빨리 솎아주어야 제대로 클 수 있다. 긴 가지엔 두 개, 짧은 가지엔 한 개를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바닥에 떨어지는 신세다. 제일 크고 모양이 좋은 놈을 남겨두는데 그렇다고 무작정 큰 놈만 두었다간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가끔 특별하게 우뚝
경기도 안성시 미양면 신계리 과채류마을. 주민들의 평균 나이는 60대 후반. 하지만 고령화에 따라 농촌이 붕괴해 간다는 얘기는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다. 이 마을은 쌀을 비롯한 과채류를 생산해 마을만의 판로를 개척했기 때문이다. 마을의 이장이자 동네의 마지막 농사꾼이라 스스로 칭하는 ‘손창규 대표(53,사진)’. 그를 중심으로 마을 기업인 ‘과채류마을영농조합법인’이 태동했다. 지난 2008년 본격적인 사업 시작을 알린 ‘안성 과채류마을’은 마을에서 재배한 농산물의 판로를 열어 주민 소득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더불어 주민들은 농촌체험을 통해 도시민들과 교류하며 농촌 알리기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기업형 마을을 추진했던 손 대표는 “농민들이 애써 키운 농산물이 판로를 찾지 못해 적당한 가격에 넘겨버리는 농촌의
권명리라는 말이 있다. 사람 이름이 아니고 세상을 살아가며 사람들이 좇는 세 가지 욕망, 즉 권력과 명예, 돈을 한꺼번에 일컫는 말이다. 누구라도 그 모두에서 자유롭다고 쉽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드물게 세 가지 모두 돌을 보듯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전에는 성인이라 불렀지만 지금은 기껏해야 기인, 자칫하면 바보로 몰리기 십상일 것이다. 그래도 그런 사람이 있어야 세상이 아직 살만하다고 느끼지 않을까? 농민운동에 젊음을 바친 분들 중에 특히 그런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오늘 만나볼 분 역시 그러하다. 가톨릭농민회가 가장 활발히 활동하던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초까지 6년간이나 전국회장은 바뀌지 않았다. 기라성 같은 농민운동가들이 세차게 활동하던 그 시기에 6년 동안 회장으로 가톨
부모님과 함께 농사를 짓다보니 집안일이나 농사에 대해 아버지와 대화를 많이 나누는 편이다. 아버지는 비록 배우지는 못했지만 여러 모로 예술적인 감성이 있는 분이다. 책읽기를 좋아하고 젊었을 때 혼자 배웠다는 기타로 수준급의 연주를 하기도 한다. 내가 문학의 길로 들어선 것도 거의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일흔 중반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와 아내는 모두 같은 마을에서 태어나 같은 초등학교를 나왔다. 넷이 일을 하면서 옛날이야기가 나오면 서로의 기억 속에 들어있는 게 비슷해서 누구도 소외(?)받지 않는 즐거운 대화가 오가곤 한다. 고향마을에서 살던 추억담은 거듭 되풀이해도 물리지 않는 주제이다. 하지만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깊은 단절감을 느낄 때가 있다. 정치나 사회문제를
우리가 먹는 음식들에는 혀로 느끼는 단순한 맛과는 달리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사상이 바탕에 깔려 우리 몸에 작용하는 다섯 가지 맛이 있다. 그중 짠맛은 우리 몸의 뭉친 것을 풀어주고 피와 진액을 보충하는 작용을 한다. 예를 들어 대표적으로 짠맛을 가지고 있는 다시마는 근육이나 피부의 뭉친 것을 풀어주는 효능이 있다. 곤포(昆布)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다시마는 해조류 중에서도 의학적인 효능이 가장 많이 밝혀진 최고의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문헌에는 신라와 발해에서 좋은 다시마와 미역이 생산되어 중국에 보냈다는 기록이 있으며 에는 곤포(다시마)를 신분의 귀천 없이 즐겨먹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한방에서 다시마는 성질이 차며 독이 없고 그 맛은 짜다고 말한다. 찬 성질이 몸의 열을 내려주고 짠맛은
이팝나무꽃이 만발 했다. 이팝나무는 본래 중부이남에서 자라는 나무다. 마을 어귀나 밭 뚝 언저리에 느티나무처럼 크게 자라 오월 입하가 되면 온통 하얀 눈을 뒤집어쓴 것처럼 꽃이 핀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스노우 트리(snow tree)라고 한다. 사람들은 이 꽃을 멀리서 보면 하얀 쌀밥이 사발에 담긴 고봉밥처럼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영험한 나무라고 생각했다. 이름에서 보듯 이팝나무는 쌀밥나무를 시골말로 부르는 이름이다. 쌀밥을 이밥이라 한다. 그것이 발음이 파열하면서 이팝이 되었다. 비슷한 이름을 가진 조팝나무는 떨기나무로 큰키나무인 이팝나무와는 혈연적 인연을 갖고 있지 않다. 물론 조팝도 조밥을 의미한다. 꽃이 핀 모양이 좁쌀밥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남부지역에는 이팝나무 천연기념물과 보호수들이 여럿
지난 일주일 동안은 꼬박 사과나무에 매달렸다. 올해는 봄 날씨가 작년보다는 좋아서 사과 꽃이 며칠 일찍 피었다. 개화 시기가 작년보다 늦을 것이라는 예보와 달리 우리 과수원은 거의 닷새 정도나 빨랐다. 일주일 동안 한 일은 사과 꽃 따기였다. 과수원을 하얗게 뒤덮다시피 핀 꽃은 참 보기에 좋고, 요즘처럼 달이 밝은 때에는 봄밤의 정취를 더하기도 하는데 농사꾼은 그런 낭만을 즐길 여유가 없다. 나는 아직도 약간 의구심을 품고 있지만, 필요 없는 꽃을 일찍 따주어야 좋다는 것은 거의 일반화된 상식이 되어버렸다. 여러 개의 꽃이 수정을 하고 열매를 맺느라 들이는 힘을 과일이 될 몇 개의 꽃에 집중하도록 하는 것, 그것이 꽃따기다. 사실 꽃을 피우고 수정을 하기 위해 나무는 대단한 힘을 쏟는다. 나무뿐 아니
미역 미역은 전복, 소라의 중요한 먹이로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등지에서만 식용하고 있다. 고려 인종 때(1123년)에 송나라의 사신 서긍이 편찬한 에는 ‘미역은 귀천 없이 즐겨 먹고 있다. 그 맛은 짜고 비린내가 나지만 오랫동안 먹으면 그저 먹을 만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조선시대의 문종 때(1451년)에 완성된 에는 미역을 따는 ‘곽전’에 관한 기록이 있으니 미역이 예로부터 귀족이나 서민을 가리지 않고 널리 사랑을 받으며 식용을 했다는 기록인 셈이다. 민간에서는 산모가 출산을 하면 ‘첫국밥’이라고 하여 미역국을 끓여 먹이는데 이때의 미역은 해산미역이라고 하여 자르지 않은 길고 넓은 것을 값도 깎지 않고 사서 끓이게 된다. 미역국은 산모의 출산 후 자궁을 수축시켜줌은 물론 젖
참으로 오랜만에 촌로로부터 들어본다. 6,70년대에 벤또, 빠께쓰, 쓰메끼리 등과 같이 일제의 잔재말로 노인들 입에 달려 쓰던 말이다. 그 노인이 대뜸 야마시 정권이라고 격하게 꾸짖는 것이 아닌가. 야마시(やまし)? 사기라고 해석하나? 앞뒤 전후로 노인이 격노하며 뱉은 말은 사기 치는 정부라는 뜻일 터. 그렇다면 야마시의 정확한 뜻은 뭘까. 사전을 뒤져보니 山師(やまし) 즉 광산업자나 산림업자를 부르는 말로 되어있다. 후에 광산업이나 산림업이 투기성이 강해지다 보니 투기업자로 의미변화가 되고 투기는 거짓과 사기성이 농후하기에 사기의 의미까지 덧붙여진걸 알 수 있다. 그러니 어른께서 비명처럼 내지른 한마디는 이 정권의 정곡을 찌르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자초지종은 이렇다. 어른은 70이 넘었지만 지금도 정
이정찬 국산밀산업협회 이사장 전국농민회총연맹 대변인으로도 활약하며 우리밀 사업에도 두드러진 활동을 벌인 이정찬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이사장. 사라질 뻔한 우리밀 산업을 현재의 수준까지 끌어올리는데 함께해 온 이 이사장은 과천시의회 의장을 역임하기도 했으며 현재는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이사장을 겸직하고 있다. 우리밀을 살리기 위해 현대자동차, 삼성전자등 대기업의 구내식당, 고속도로 휴게소 등에 우리밀국수를 납품하고 판매했던 (주)보리식품에 참여도 했었지만 IMF를 겪으면서 회사가 부도를 맞이하며 고생을 한 그가 우리밀 산업에 다시 뛰어 들었다. 우리밀 세상을 만들어 국민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상을 지향하는 이정찬 이사장을 지난 18일 구로구 소재 국산밀산업협회 사무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대
결혼하기 전 완도에서 배를 타고 다시 들어가는 조그만 섬 생일도에 인사를 간 것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겨울이었다. 하룻밤을 묵으면서 김을 채취해서 말리고 상품으로 만드는 귀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새벽의 바닷바람은 얼마나 찬지 통증이 느껴진다. 하지만 김을 채취해 생산하는 어민들은 그런 통증 따위를 탓하면서 투정부릴 여유가 없다. 하루가 너무 짧기 때문이다. 채취한 김을 민물에 넣고 여러 번 씻어 바닷물의 소금기를 빼야 하고, 대나무 발에 한 장 한 장 떠서 해가 뜨기 전에 말리기 위한 준비를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해에 다 말리지 않으면 색이 변하고 상해 상품의 질이 떨어지므로 해가 떨어지기 전에 잘 마르도록 기원하면서 자주 들여다보는 일도 잊지 않는다. 김이 다 마르면 걷어다 백장씩 모아 작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