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당산나무에 대한 전통은 참으로 소중하고 또 잘 이어가야 할 소중한 문화 자산이란 생각이다. 마을 초입이나 들판 가운데서 농사일에 지친 농민들에겐 새참과 휴식의 장소로, 아이들에겐 놀이터가 되어주던 당산나무는 마을 사람들의 소통 공간이기도 했다. 당산나무의 너른 그늘은 말 그대로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줬다. 긴 세월 동안 마을과 들녘을 굽어살피며 주민들의 안녕을 지켜주고 있는 지리산 자락의 그 나무 어르신들을 소개한다.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보았다 하는가”전북 정읍 황토현 동학농민혁명기념관, 나는 커다란 판화 앞에 오래도록 서 있다. 판화 속 농민군, 그들의 부릅뜬 눈을 본다. 내지르는 함성을 듣는다. 콩 볶듯 울리는 총소리, 지축을 흔드는 방포소리, 찢어진 깃폭, 총 맞은 까마귀, 진군의 함성과 쓰러진 이들의 통곡소리 뒤엉킨다.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는 내가 되어 흐른다. 판화는 우금티 전투를 형상한 것이다. 갑오년이 저물고 있었다.새해 벽두 고부 농민봉기로부터 촉발된 갑오년의 농민항쟁은 3월 봉기와 집강
눈앞의 보물은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가까운 곳에 있으니 언제든 갈 수 있고, 너무 가까이 있다 보니 오히려 멀리 있는 오일장들이 더 근사해 보여서 내 시선은 자꾸 멀리 있는 오일장들에 멈춰있었다. 그러다 이번에 날도 춥고 백신 접종 후 체력도 급격히 떨어진 것 같고 하여 선택한 장이 남원오일장이었다. 그렇다고 처음 간 곳은 아니다. 교육이 있어 가기도 했고 아주 가끔 필요한 것들이 있어서 잠깐씩 들러보기는 했어도 이번처럼 아예 작정을 하고 장엘 나간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너무 기대치가 낮아서였는지 아무리 추워서 발이 시려도
도올 김용옥 선생과 함께 지난해 10월 26일 해남 땅끝마을에서 시작한 ‘국민총행복과 농산어촌 개벽대행진’은 12월 15일 춘천시 강원대행진을 끝으로 8개도 18개 시・군 순회를 무사히 마치고 오는 19일 서울 전국대행진을 남겨두고 있다. 우리는 대행진에서 국민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농산어촌(‘농촌’으로 줄임) 개벽의 ‘3강 5략’(3대 강령과 5대 방략)을 제시하고 민회(民會)를 개최하여 민초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함께 실천방안을 논의했다.3강이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농촌’, ‘먹을거리 위기에 대응하는 농촌’,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은 정월 초하루 설과 팔월 보름 추석이다. 남녘에서는 당연하게 휴일로 정해 온 국민이 즐거운 명절을 보낸다. 그렇다면 북녘에서는 어떻게 보낼까 궁금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북에서도 설과 추석은 국가에서 정한 법정 공휴일로 전 인민이 역시 즐거운 명절을 보낸다.설 명절에는 새해 달력 등을 선물로 학교 스승이나, 가까운 친지 등을 방문해 세배도 드리고 떡국을 나눠 먹으며 덕담을 하면서 보내고, 추석에는 조상님께 제도 올리고 분가한 형제자매가 모여 성묘도 함께 가는 등 남녘의 어느 가족과도
통영의 오일장은 중앙전통시장, 중앙활어시장, 통영활어시장이 어우러진 거대한 시장의 외곽을 둘러싸고 길가에 늘어선다. 오일장이 서지 않는 날은 물론이고 주말이면 발 디딜 틈이 없이 북적거리는 상설시장의 가장자리 도로변에서 오일마다 서는 장이 소박하기 짝이 없다.어떤 오일장은 상설시장을 무색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쯤 되면 통영의 오일장은 꽤 쓸쓸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오일장이 없어질 만도 한데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것은 신기할 정도이다. 그나마 외지에서 온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 건 오일장을 따라 걷다 보면 벽화로 유명한
[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전국이 ‘민주화’ 열망에 휩싸였던 지난 1980년대, 제주 학생운동사에 기록적인 사건이 하나 있었다. 가 지난 2007년, 6월 항쟁 20주년 특별기획으로 제주의 민주화 운동을 조명했다. 민주화 운동 태동기의 내용을 기록한 기사에서 제주대학교가 ‘1985년 5월 광주학살 규명시위와 횃불시위’를 하면서 학생운동의 일대 전환기를 맞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횃불시위의 도화선이 된 건 이보다 3개월 앞에 있었던 ‘제주대 여학생들’의 반정부투쟁이었다.제주 학생운동의 주역, 농촌으로1985년 2월 9일 ‘
사람은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생존에 필수적인 건강하고 안전한 먹을거리를 안정적으로 섭취할 권리가 있다. 유엔은 1948년 세계인권선언(제25조)과 1966년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제11조)’을 통해 ‘적절한 먹을거리(adequate food)’를 인간의 기본권리(인권)로 선언하였고, 우리나라는 국제규약에 1990년 가입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먹을거리 기본권을 보장받고 있는가.전남 해남군에서 지난 10월 26일 시작한 국민총행복과 농산어촌 개벽대행진은 지금까지 8개도 18개 시·군 가운
최근 북녘을 방문(2020년 1월 세계적인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북녘 가는 길이 막히기 전)하면서 가장 바뀐 모습 중 하나가 자동차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 당시에는 평양 시내가 정말 한산했다. 국가의 중요 행사 중이라 차량을 통제하고, 행사장소로 이동하는 길은 특히 더 통제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평양 시내에 자동차가 많이 보이지는 않았다.그러나 1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평양은 자동차로 넘쳐난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로 자동차가 많았다. “석유 한 방울, 나사못 하나 들어오지 못하는 물 샐 틈 없는
오래전 강경은 이른 봄부터 초여름까지는 대규모의 파시가 열리던 큰 포구였고 육로가 거미줄처럼 얽히며 전국을 오가기 전까지는 손가락 안에 드는 큰 장이 강경장이었다고 한다. 황석어, 꼴뚜기, 갈치 등 팔다가 남은 것으로 담은 젓갈과 여러 가지 새우젓이 발달해 젓갈시장으로 자리를 잡은 곳이다. 하지만 금강하구둑의 설치로 뱃길마저 막혀 지금은 그저 작은 시골의 쇠락한 시장이 되었다. 그나마 막힌 뱃길에도 불구하고 산지의 생선들을 육로로 들여와 여전히 젓갈을 담아 파는 젓갈시장이 건재한 탓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지는 않고 있는 곳이다.충남
젊은이가 뛰어들지 않는 농업, 젊은이가 돌아오지 않는 농촌. 그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기어코 땅을 일구며 공간을 지켜가는 청년들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들이 품고 있는 큰 뜻과 달리 현실은 어제도, 오늘도 순탄치 않다. 농촌의 유일한 미래인 청년농을 지지하기 위해 우리는 충분한 공력을 투입하고 있는가. 11월 좌담회는 현장의 청년농민들을 초빙해 그들의 삶을 청해 듣는 자리로 마련했다.사회 심증식 편집국장·정리 권순창 기자 우리 농업에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가장 큰 이유는 청년농이 유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간단한 자기
국민총행복과 농산어촌 개벽대행진이 지난달 26일 전남 해남군 땅끝마을에서 봉화를 올리고 출발했다. 12월 중순까지 이어지는 매주 1박 2일의 대장정이다. 26일 해남군, 27일에는 곡성군에서 민회를 개최했다. 기후위기, 먹을거리위기, 지역위기 극복을 위한 다양한 방안이 논의됐고, 우리가 주장하는 삼강오략(三綱五略)에 대한 현장의 반응이 뜨거웠다.지난달 칼럼에서는 첫째 강령인 기후위기에 대응한 농촌을 위한 방략, ‘공익적 직접지불 확대’를 설명했다. 이번 칼럼에서는 셋째 강령인 지역위기에 대응하는 농촌을 위한 방략, ‘농촌주민수당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