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49년 전인 1975년 9월, 일본인 손님 한 사람이 우리 집에 왔다.일본의 유기농업 단체인 ‘애농회’를 만든 고다니 준이치 선생이었다. 그 2년 전에 나의 아버지는 일본으로 고다니 선생을 찾아갔다. 그분이 내는 잡지를 감명 깊게 읽고 계셨기에 한 번 만나고 싶으셨다고 했다. 두 사람은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다니 선생은 “이제까지 많은 한국 지인들이 초청했지만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는데 당신을 만나서 이야기하니까 한국에 가고 싶어졌다. 당신이 초청해 주면 열매 있는 한국 방문이 될 것 같다”고 했다. 농부인 그분은
3월 11일, 농협 2층에 구름 인파가 몰렸다.주민토론회 시작하기 1시간 전, 100여 개가 넘는 의자를 보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10분을 남기고서야 그래도 안심이 되었다. 절반의 자리가 채워졌기 때문이다.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오늘은 참석자 수보다 더 큰 의미가 있는 주민토론회이기에 준비하고 노력한 만큼 최선을 다해 참가하신 주민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듣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데, 오후 2시가 되었을 때 주민토론회 참석자는 100여 명이 넘어갔다. 부족한 참석자 명부를 추가로 복사해서 한 사람도 빠짐없
아빠는 왜 그렇게 살아?시골 마을에 살다 보니 농사 이외에 다른 일도 조금씩 한다. 그중에는 동네 병원의 이사장이라는 직함도 가지고 있다. 중학교에 다니는 딸아이가 이 이야기를 들었나보다.딸 : 아빠! 아빠가 동네 병원 이사장이라며?아빠 : 응, 이사장이지.딸 : 우와, 아빠 대단한데. 그럼 거기서 돈 얼마나 받아?아빠 : 돈? 안받는데. 도시의 의료사협(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은 약간의 활동비를 받는가 몰라도 우리는 안 줘. 오히려 내 돈 쓰면서 다니는데.딸 : 뭐야. 말이 된다고 생각해? 어떻게 병원 대표가 돈을 쓰면서 다
오랜 친구로부터 커피체인점 쿠폰을 생일선물로 받았다. 커피 두 잔에 1만원. 그런데 시골에는 그 유명한 체인점이 없다. 믹스커피를 즐겨 먹던 나는 ‘커피 값이 많이 비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론 보도를 보니 커피 소비량이 한국이 전 세계 2위라고 한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1.4잔, 1년에 520잔을 마신다고 한다. 순간 단순하게 떠오른 생각은 ‘1인당 1년에 커피값으로 소비하는 금액이 100만원이 훨씬 넘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이었다.얼마 전부터 많은 언론이 ‘사과값이 비싸다. 과일값이 천정부지로 오른다’, ‘사과는 왜 수입을
어릴 적 경주에서 정월 대보름이 되면 달집태우기와 쥐불놀이를 하며 첨성대 근처에서 즐겁게 놀았던 기억이 오래도록 남아 있다. 둥근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면서 본 아이들의 쥐불은 둥근 원을 그리며 쉼 없이 돌아가는데 신비롭기까지 했다.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달집도 쥐불놀이도 사라진 도시의 정월 대보름은 오곡밥과 나물을 먹는 그저 그런 날이 되어 버렸다.음력 새해의 첫 보름인 대보름은 기이 제1편에 신라 21대 소지왕(재위 479~500년)의 ‘사금갑’이라는 전설에서 임금을 구해준 까마귀에게 해마다 찰밥을 준 것에서 유래
2023년 국제정세를 살펴보면, 몇 가지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그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이 바로 전쟁의 일상화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장기전 양상을 띠면서 벌써 3년째로 접어든다. 그리고 미국의 지원에 힘입은 이스라엘과 아랍권의 전쟁이 확장되고 있는 양상이다. 이 모든 전쟁에는 미국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중동권의 전쟁에는 직접적으로 개입하고 있다.전쟁의 참화는 참전 중인 군인들의 피해보다는 민간인. 특히 여성과 아이들에게는 상상할 수도 없는 끔찍한 참혹함을 주기에 그 어떤 경우에라도 전쟁은 즉각 중단돼야 하는 것이
2023년은 모처럼 태풍이 없는 해다. 8월 말과 10월 초 사이 제주와 일본 사이를 지나는 태풍은 평균 3회 정도인데 몇 년 만에 태풍 없는 해를 맞이했었다. 거대한 바람과 쇠못 같은 폭우를 경험해보지 않는 사람은 그 위력을 실감하지 못한다. 남한 인구의 상당수가 거주하고 있는 서울과 경기 일원, 그리고 서해안 쪽은 태풍의 경로가 아니며, 제주와 남해안을 거친 태풍은 대지와 만나면서 그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한반도 중반부에 이르게 되면 위력이 약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평생 태풍의 비와 바람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사
지역에서 여성농민회 회원 분들과 대화하면 여성농민의 지위 보장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농민의 지위 보장은 무슨 의미일까? 1년 내내 가정 살림은 거의 도맡아 하며, 농사철에는 남편과 함께 논밭에서 일하고, 텃밭 농사나 일부 밭작물의 경우 어떤 도움도 없이 오로지 맨몸 하나로 영농활동을 하는 여성농민들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말이나 선언이 아닌 ‘법’으로 보장하라는 것이다.너무도 당연한 요구이며, 이런 요구를 해야 한다는 현실이 가슴 아픈 일이다.지금 농촌현장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현실적으로 농업
유기농업의 한 종류로 생명역동농업(Bio-Dynamic Agriculture)이 있다. 지금부터 꼭 100년 전인 1924년에 독일의 루돌프 슈타이너로부터 시작된 농법이다. 이 농법은 현재 유럽과 미주, 호주 등의 40여 개국에서 실행하고 있다. 우리 농장에서도 19년 전부터 이 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생명역동농법이 가지고 있는 특징 중 하나가 파종달력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 달력은 어느 날에 어떤 종류의 작물을 심어야 좋은 농산물을 얻을 수 있는가를 알려준다. 독일의 마리아 툰 여사가 20년 동안 실험과 관찰을 통해 황도상의
2024년 청룡의 해가 밝았다. 내가 사는 나주 금성산에도 새해 해맞이 인파로 북적였다. 떡국을 먹기 위해 서 있는 시민들이 새해 소망을 가득 담아 기꺼이 나이 한 살을 맛있게 챙겨 먹는 풍경에 마음이 훈훈하다. 기다리고 기다린 새해 아침 붉은 태양이 저 멀리 동녘의 구름 안개를 뚫고 솟아올랐다.마음속으로 소원을 빌었다.우리 가족의 건강과 큰딸의 임용고시 합격을….4월 총선에서 진보당의 국회의원 당선을….올 한 해 농민들의 농사가 무탈하고 좋은 가격을 받아 웃을 수 있는 해가 되소서….나는 지역에서 의용소방대와 자율방범대 활동을 하
장관이 바뀌었다이번에 바뀐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 장관은 2024년 1월 1일에 맞춰 제법 긴 글을 발표했다. 그중 농업부문의 선제적 기후위기 극복방안은 탄소중립직불금과 스마트팜 정도로 읽힌다.우선 탄소중립직불금은 2024년에 시행된다. 이를 위해 농식품부는 이미 2023년 5월에 연구용역을 발주한다. 제목은 ‘탄소중립직불제 기본구상 연구’이고, 2023년 10월에 제출돼야 할 보고서는 아직 제출되지 않았다. 그런데 연구용역을 발주하면서 농식품부가 ‘왜 이런 사업을 하려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다. 아주 재미있다.농식품부는 탄소중립
우리나라 사과 재배는 100년이 넘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긴 세월 동안 고품질 다수확을 위한 많은 재배 기술이 개발돼 발전해 왔다. 거름과 퇴비를 만들고 농약과 비료, 미량원소 영양제 등 많은 것들이 변해왔다.그중 하나가 나무의 수형이다. 재배 기술이란 단위 면적당 최대의 수확량으로 고부가가치 상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재식 거리, 열간 간격, 나무의 높이, 가지의 배치 등에서 100년간 수많은 실험이 있었다. 그중 많은 실험들은 실패로 돌아갔고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들의 몫이었다.농업직 공무원이나 학계에서 유럽이나 외국 선진
30대 후반까지 도시에서 살면서 계절은 그저 덥고, 춥고가 반복되고 거기에 맞게 옷을 갈아입는 정도의 의미가 있었고 생활 속의 변화는 거의 없었다. 쳇바퀴 돌 듯 사는 삶은 계절과는 별개였고, 가끔 저녁에 친구들과 술 한 잔하는 걸로 위안을 찾을 뿐 참 허한 삶이었다.여러 고민 끝에 귀농을 하고 시골에 와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계절의 변화였다. 봄·여름·가을·겨울마다 피고 지는 것도 다르고, 할 일도 다 달랐다. 드디어 철을 알게 된 것이다.온갖 생명들이 움트는 봄에는 씨앗을 뿌리지만 뿌리지 않아도 절로 올라오는 봄나물이 지천이고
본격적인 선거철이다. 21대 국회가 마무리되고 나라의 새로운 일꾼을 선출할 22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5개월 앞으로 다가와 있다. 매번 국회의원 선거마다 반복되는 상황이라 이제 놀랍지도 않지만, 선거구 획정은 아직도 깜깜하기만 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된지라 정치 신인들은 나름 준비한 일정대로 등록을 마치고 선거전에 본격적으로 돌입한 상태이고, 기존 현역 의원들은 여론조사 추이를 지켜보면서 저울질하고 있다.이번 선거구 획정에 관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권고안이 며칠 전에 발표된 뒤, 농민들은 의외로 담담한 반응을 보였
공익형직불제란 ‘농업 및 농촌의 공익기능 증진과 농업인의 소득안정을 위하여 일정 자격을 갖춘 농업인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이전에는 농업인직불제란 이름으로 단위면적당 직불금을 지급했었다. 그러다보니 면적이 적은 농가의 경우 제곱미터 당 100원 남짓한 직불금이 지급되어 1,000평이라고 하더라도 30여만원에 불과했다. 2020년 새로 변경된 공익형직불제의 경우 소농에게도 최소한의 직불금을 지급하게 되어 있어, 최소 120만원이 지급된다.그런데 이 직불금의 도착지는 경작을 하는 농민보다는 농지의 소유주인 경우가 많다. 농지를
농지은행의 사업 중 ‘농지임대수탁사업’이라 해서, 농지를 소유하고 있지만 직접 농사짓기 어려운 소유주와 농지를 임차하고자 하는 임차농의 계약을 체결해주는 제도가 있다. 임대계약금액의 약 5%를 임대인이 수수료로 부담하지만 직접 경작이 곤란한 농지를 처분하지 않고 계속 소유가 가능할뿐더러 이후에 처분하더라도 양도소득세 부과율을 낮춰주는 혜택도 있으니 따르지 않을 수 없다.언제부터인가 농지를 소유한 임대인이 직접 임차인을 선정해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아니라 농지은행포털이라는 인터넷 공간에 공고를 올리고 공개입찰을 통해 농어촌공사에
작년 10월에 대산농촌재단에서 열린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한 적이 있다. 독일의 농업과 농촌 관련 전문가 3명을 초청해 연 심포지엄인데, 강사 중 한 사람인 요세프 히머는 유럽연합(EU)의 농업 정책에 대해 이야기했다. 독일 알고이라는 지역의 농업국 국장이기도 했던 그는 강연을 시작하면서 첫머리에 “나는 공무원이지만 농민 편에서 일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에 나는 감동을 받았다. 농업 관료라면 당연히 해야 할 말이고 마음가짐이지만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EU의 새로운 농업정책은 더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
나주혁신도시에서 24시 마트를 운영하고 있는 후배를 만났다. 7평 남짓한 빽빽한 매장은 한 사람만 걸어 다닐 수 있을 만큼 좁디좁은 공간이다.“야, 엊그제 언니들이랑 다 서울농민대회에 올라왔는디 한번 올라오제 그랬냐” 하니까 “오빠~ 하루도 쉬도 못해요”라며 하소연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요즘 애들은 정말 상대하기 힘들다고 한다. 어느 날은 새벽에 알바 직원이 근무할 때 젊은 청년 몇이 들어와 술이랑 사갔는데 며칠 뒤에 경찰에서 전화가 왔다는 것이다. “미성년자 학생들한테 술을 팔았다고 신고가 들어왔는데요~.” “그럴 리 없는데요
신문에 내년 상반기에 담배값을 올릴 수도 있다는 기사가 났다. 세상은 원래부터 합리적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담배와 술은 분명 발암물질이다. 자국민의 건강을 유지해야 할 국가가 재정을 확충하는 수단으로 이용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술과 담배는 끊으면 된다.수시로 농산물가격이 비싸다는 기사와 생산비를 보장해달라는 농민의 이야기가 섞여 나온다. 한편으로는 농가의 소득을 보장하겠다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본인들이 직접 나서 값싼 외국농산물을 수입해 전체 농산물가격을 낮추는 농림축산식품부를 보면 화가 나
사람에게 한 가지 음식만 계속 먹으라 하면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 밥도 먹고, 채소도 먹고, 고기도 먹어야 한다. 건강의 기본은 다양한 영양분을 다양한 음식을 통해 섭취하는 것이다.사과 꽃은 충매화이다. 화분 매개 곤충이 없으면 결실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한 자가불화합성(自家不和合性) 식물로 같은 꽃이나 같은 그루의 다른 꽃 화분이 수분하여도 여러 가지 이유로 수정하지 않는다.그래서 옛날부터 사과밭에는 수분수(受粉樹) 역할을 할 수 있는 여러 품종을 혼식해 왔다. 이와 함께 벌과 곤충들이 공존하면서 수정을 도왔다. 그런데 요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