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홍천군청 앞 광장 전광판에 ‘군정구호’와 ‘군정비전’이 순서를 바꾸며 지속적으로 노출됐다. ‘군민이 주인되는 새로운 홍천’ 그리고 ‘힘차게 도약하는 경제 으뜸도시 홍천’.뜻깊은 구호와 비전이 보이는 전광판 아래 군민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각양각색의 손팻말을 든 이들은 송전탑, 양수발전소, 석산 개발, 골프장 건설 등 각종 난개발 논란으로 생존에 위협을 받고 마을공동체 파괴가 심각한 홍천 지역의 주민들이었다. 모이고 보니 모든 농촌파괴형 난개발 사업을 망라한 축소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주민들이 들고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서울 가락시장, 국내 최초 최대의 공영도매시장이다. 운영 주체인 서울특별시농수산식품공사가 밝힌 가락시장의 거래 규모는 연간 230여만톤, 하루 7,500여톤에 달한다. 전국 32개 공영도매시장이 취급하는 총거래량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국내 농수산물 유통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그런데 가락시장이 텅 비었다. 전국에서 각양각색의 농산물을 싣고 온 5톤 차량으로 빽빽하던 도로도, 차량에서 하역한 농산물로 가득했던 각 도매시장법인 경매장도 텅 비었다. 당연지사 차곡차곡 쌓여 있는 농산물 사이를 오가며 품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1월 마지막 날 제주도의 날씨는 흐렸다. 비가 오다 그치기를 반복했고 중산간 지역은 안개가 자욱해 비상등을 켜고 운행할 정도였다. 설 명절 대목을 앞두고 밀감 수확 현장을 찾아 나선 길, 흐린 날씨가 영향이 있지 않을까 우려 속 찾아간 곳은 다행히 시설하우스였다.하우스 문을 여니 밀감이 가득 담긴 노란 컨테이너 상자가 이미 수두룩하다. 사방으로 가지를 뻗은 밀감나무 사이를 헤치고 하우스 안으로 들어가자 ‘사각사각’ 거리는 가위질 소리가 곳곳에서 들리기 시작한다. 더불어 담소를 나누는 여성농민들의 목소리가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시금치를 캔다. 방수복을 입고 일방석에 앉아 낫으로 뿌리를 캐 올린다. 겨우내 언 땅을 뚫고 올라온 시금치다. 지난해 10월에 파종, 11월에 수확을 시작해 한겨울이 제철인, 남해의 시금치, ‘보물초’다.파란 바구니엔 앞서 캔 시금치가 수북이 쌓여있고 그 앞엔 ‘남해군 보물초’라 적힌 하얀 비닐에 10kg씩 담아 무게를 잴 저울이 놓여있다. 뿌리에 붙은 흙을 털어내느라 목장갑은 이미 흙범벅이다.날이 조금 풀리고 남도의 섬이라 한낮 기온은 영상이지만 바다에서 불어오는 겨울바람은 옷깃을 여미게 할 정도로 오싹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감타래에 매단 수만 개의 감이 그 특유의 주황빛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서서히 말라가고 있다. 완숙하기 전에 채취한 떫은 감이 백두대간 깊은 산골 청정자연의 힘으로 조금씩 건조되며 달콤하고 쫀득한 맛의 곶감으로 변화하는 과정이다. 함양곶감은 조선 시대 고종에게 진상될 정도로 식감이 부드럽고 맛이 뛰어나 예로부터 ‘고종시’로 불렸을 만큼 지역의 명물이다.지난 6일 경남 함양군 서하면 월평마을의 한 곶감건조장. 철제계단을 밟고 2층에 오르니 선친에 이어 2대째 곶감 농사를 짓고 있는 김형두(64)씨가 곧 출하를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수천 평 야트막하게 비탈진 밭고랑 사이사이마다 태국에서 온 외국인노동자들이 점점이 자리 잡고 있어 찾아가는 길, 아침 이슬이 맺혀 있는 무밭 사이를 지나가니 청바지가 이내 물기로 흥건하다. 사뭇 추워진 날씨에 겹쳐 입은 옷 위로 방수복까지 입은 외국인노동자들은 일방석을 착용한 채 제 팔뚝보다 굵은 무를 뽑아 비닐에 담는 작업에 여념이 없다. 밭 위쪽에서 바라보니 무 이파리로 파릇파릇했던 밭에 새로운 길을 내는 것 같다.한 손으로 밭에서 ‘쑤욱’ 무를 뽑을 때마다 이파리에 맺힌 이슬이 사방으로 튕긴다. 그럼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한글날이었던 지난 9일 오전 11시,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에서 방산면 방향으로 운행하는 현대운수(주) 버스가 차고지를 나선다. 버스 기사는 김정용(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민주버스본부 강원지부 현대운수지회 조직부장)씨. 양구 읍내를 훑듯 여러 정류장을 지그재그로 지나친 버스가 양구중앙시장 인근에 선다. 정류장에 서 있는 승객을 본 김씨가 말한다. “도사리 사시는 어머니네.”차 문이 열리자 올해 나이 여든다섯, 송순규 할머니가 버스에 올라 교통카드를 찍으며 기사에게 인사를 건넨다. “기사양반, 안녕하슈!” 단말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일 년 농사일을 마무리해야 마음이 편하니까, 그런 의미로 하는 거지. 수확의 기쁨이 있고 그런 건 아녀. 쌀을 귀하게 여기는 시대가 아니잖아. 사회적 분위기도 그렇고. 쌀이 홀대를 받으니까.”한 해 농사의 결실을 맺는 자리, 추수에 나선 농민 표정이 그리 밝지 않다. 알곡이 여물어 고개 숙인 벼의 누런 빛은 여전히 풍요롭건만 이 황금들판을 바라보는 농민 마음이 예전과 같지 않아서다.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삼화마을. 지난 4일 산내면에서 가장 먼저 추수를 시작한 이곳 들녘이 나락을 베는 콤바인 소리로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일본 핵오염수, 오늘 방류하면 그 대가는 내일의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정부는 국민 안전을 위한 목소리를 괴담으로 치부하지 말고 일본의 무책임한 해양투기에 제동을 걸어야 합니다.”일본 정부가 이르면 이달 말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 투기를 강행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전남 해남군민들이 지난 7일 해남군민대회를 열어 일본 핵오염수 방류 저지 및 해남 수산업을 지키기 위한 단체행동에 나섰다.‘일본 핵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해남공동행동’ 주최로 군청 앞 잔디광장에서 열린 이날 대회에서 군민들은 “한국 전체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마늘 20kg이 담긴 붉은 망을 겹겹이 쌓아 올린 경매장 한 편에 한 농민이 쪼그리고 앉았다. 두 손으로 턱을 괸 얼굴에 주름이 여러 갈래로 도드라지고 눈두덩이 속 움푹 파인 두 눈이 정면을 응시한다. 이윽고 경매장 전면에 설치한 전광판에 마늘 경락가가 하나둘 표시되자 한숨인 듯 아닌 듯 내쉬는 숨과 함께 얼굴을 쓸어내리며 자리에서 일어선다.“값이 너무 헐어. 이러면 생산비도 안 나와. 어림없지. 올해 (마늘) 농사지은 사람 중 손발 드는 사람들이 쌨지 싶을 정도여.”지난 1일 경남 창녕군 대지면 창녕농협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여기가 여간 들이 넓어? 농림부 장관부터 농지를 해제하면 안 됐어. 우리보다 앞서 (산업단지 개발을) 겪은 사람들이 ‘정말 억울하다. 절대 쫓겨나지 말라’고 당부하더라고. 동네 단출하고 앞뜰 넓고 뒷산 든든하고 모두 한 가족 같은 우리 마을 사람들을 그냥 이대로 살게 해줬으면 좋겠어!”2021년 11월 1일부터 시작한 진천테크노폴리스산업단지 반대 군청 앞 농성에 매일같이 참여했던 김상만 노인회장의 바람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현실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영화처럼 아름답지 않았다.결국, 마을 주민들은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지리산 자락의 유려한 능선, 맑은 하늘과 흰 구름까지 지상의 풍경을 고스란히 물그림자에 담고 있는 논에 모를 심는다. ‘착착착착’ 이앙기의 규칙적이고 경쾌한 소리와 함께 파릇파릇한 모가 논에 심겨 물결에 흔들린다. 논둑과 맞닿아 이앙기가 미치지 못한 곳에선 한 여성농민이 직접 손모를 내고 있다. “심든 안 심든 밥 한 공기 차이”라며 논 구석구석에 손모를 내는 수고로움을 덜했으면 하는 바람에 참견도 해보지만 여성농민은 좀처럼 허리도 펴지 않은 채 묵묵히 모를 잡고 있다. 선선한 바람이 일손을 가볍게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