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범이는 경허가 내민 피봉을 턱짓하며 물었다.“뭡니까?”“혹 이필제란 이름을 아십니까?”이필제는 도당을 모아 작변을 모의하고 영해 관아를 들이친 후 새재에서 병창을 습격하려다 피체돼 능지처참된 자였다. 불과 이 년 전의 일로 조선에 정씨 왕조를 세우고 본인은 중원에 들어가 천자가 되겠다는 감언으로 사람들을 설득한 자였다. 지금은 잠잠해졌지만 조선을 들썩 들었다 놓은 인물이라 사람들은 이필제란 이름조차 언급하길 꺼렸다.“그럼 이게 그자의 서간이라도 된단 말이우?”“이곳엔 금강경 강해를 듣기 위해 젊은 행자들도 찾아옵니다. 노자께서는
마을부녀회의 공식활동이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마을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온갖 뒷일을 챙기며 마을을 지켜왔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길흉사를 집안에서 치를 때 유족의 마음을 위무하는 일이며, 그 많은 조문객의 음식을 대접하는 일, 평토제 지낼 제례음식 준비하는 일 등 부녀회원이 빠지면 되는 일이 없을 정도였다지요. 그런 일을 마치면 상주가 고마움의 표식으로 사례금을 주었고, 그런 돈들이 모여 부녀회 기금의 종잣돈이 되었다 합니다. 지금은 농약 빈병이나 재활용품 분리수거 등으로 약소한 기금을 모으고 있습니다.그런 우리 마을 부
“의사한테 봉사라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생각해야 한다. 의사들은 최고의 엘리트 집단으로 존경받고 있다. 그 점을 생각할 때 이래선 안 된다. 소통이 돼야 한다. 정부에는 강하면 부러진다는 말을, 의료계에는 현장을 떠나는 행동은 좋은 모습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 이 말은 의사로서 평생 그 직을 봉사직으로 생각하고 실천해온 주혜란 양구군 보건소장의 말입니다.위 인용문에 나오는 ‘히포크라테스’는 고대 그리스의 의사로 평생을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해 온 ‘의학의 아버지’라 불려온 사람으로, 모
겨울, 남녘 들길에 바람이 분다. 언덕바지 밭에서는 파릇파릇 보리가 자라고, 그 보리밭을 꾸불꾸불 둘러치고 있는 얕은 돌담들이 정겨움을 더한다. 이윽고 모시 잠방이 차림의 중늙은이 유봉이, 무명 치마에 베적삼을 받쳐 입은 딸 소화와 어깨에 북을 멘 고수(鼓手) 동호를 데리고 보리밭 돌담길을 걸어 내려온다. 고단한 방랑길이지만 그들에게는 ‘소리’가 있어 그 행로가 외롭지 않다. 아비와 딸이 주거니 받거니 소리를 한다. 진도아리랑이다.…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이내 가슴 속엔 수심도 많다/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음음
언니도 학교 가고동생들도 학교에 가는데나만 동생 돌보느라아기 업어 키우느라학교에 못 갔네학교 가는 그 모습이너무나도 부러워눈물이 그치질 않았지그렇지만 이제는 괜찮다나도 학교 다닌다좀 늦었지만내 이름 쓴 책도 있고어디서 온 편지도 다 읽는다그때 꽁꽁 맺혔던 마음속 한이봄 바람에 얼음 녹듯이살금살금 풀리고 있다 삶의 애환이 담긴 농민들의 손편지, 그림, 시 등 소소하지만 감동있는 작품을 ‘한글꽃이 피었습니다'에서 소개합니다. 게재를 원하는 농민이나 관련단체는 신문사 전자우편(kplnews@hanmail.net)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지금처럼 고여 있으면 안심이 되기도 하지. 밖은 풍설이 치지만 움막에라도 들어앉아 있으면 뭔가 도모할 수 있다는 꿈을 꾸게 된단 말야. 혹한과 폭풍 속에 던져진다는 두려움이 얼마나 크게. 비겁하지?”병호는 기범이가 생각해오던 것들을 단숨에 주워섬겼다. 기범이는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말로 병호를 위로하였다.“내가 벌판에 나가 겪어보고 일러줄게.”병호와 늦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기범이는 조금 있는 논밭뙈기를 박치수에게 내주며 뭐라도 갈아먹으라고 일렀다. 언젠가 혼인을 하거든 지금실에 살림을 차리겠지만 우선은 경서를 읽으라며 집
골다공증은 대표적인 노인 근골격계 만성질환입니다. 최근 빠르게 진행되는 인구 고령화와 함께 골다공증에 걸리는 환자도 점차 많아지고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2050년 골다공증 유병률이 지금의 약 4배로 증가하게 될 것으로 분석하였으며, 우리나라도 2017년 고령사회 진입에 이어 2026년 초고령사회(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 20.8%로 추정)로의 진입이 예측되는 만큼 골다공증 환자가 큰 폭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골다공증은 ‘골 강도의 약화로 골절의 위험성이 증가하는 골격계 질환’입니다. 골다공증은 흔히 골절로
산에 나무하러 가거나 꼴 베러 갔던 아이가 땅거미가 진 뒤에 집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동무들과 함께라면 무서움이 덜하지만, 혼자서 집으로 돌아올 때는 자꾸 누군가가 뒷덜미를 잡아끄는 것만 같았다. 평소 지나쳐 다니던 바윗돌이 괴물형상으로도 보이고, 나무 숲속으로 트인 허공의 모양이 소복을 입은 여자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 때는 그것이 결코 이상한 형상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뒤에 가던 걸음을 계속해야 안심이 되었다. 아이들이 그렇게 겁을 먹는 데에는 동네 사람들에게서 주워들은 이야기들이 큰 몫을 했다,-달 뜨는
새로 자리 잡은 농장 땅을 다듬고 감자를 심었다. 날이 풀리고 이제는 땅을 갈아야겠다 싶어서 하루 날을 잡고 아침부터 농막을 들락거리며 정리를 시작했다. 다른 일이 바빠 그동안엔 아침 일찍 들르거나 저녁 늦게 와서 감자 씨만 관리했는데, 아침부터 일한 첫 날 나는 종일 손님맞이를 해야 했다.땅이 팔렸다는 소문은 이미 났을 것이고 누가 오는지, 뭘 할 건지 궁금했는데 사람은 안보이고 저온저장고 들어서고 퇴비가 쌓이니 아마 많이들 궁금하셨을 것이다. 처음 농장을 소개받았을 때 주변에 인가가 없고 개천과 농지만 있어서 조용하겠다 싶었는데
서러운 날도 많았어요힘들었던 일도 많았고요어려운 시절에 태어나학교는 생각지도 못했지요그 시절 내 인생은깜깜한 어둠이었어요그러던 어느 날복지관 한글교실용기내어 들어갔지요열심히 공부했습니다아파도 참고 부지런히 공부했지요이제는버스도 알아서 타고병원도 나 혼자 찾아 다녀요은행에서 내 이름도 척척 쓰니걱정이 없어요대낮이 된 것 같아요봄에 핀 장미꽃처럼내 마음도 활짝 피었어요 삶의 애환이 담긴 농민들의 손편지, 그림, 시 등 소소하지만 감동있는 작품을 ‘한글꽃이 피었습니다'에서 소개합니다. 게재를 원하는 농민이나 관련단체는 신문사 전자우편(k
과거 국민들은 우리 사회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부정부패를 일순위로 꼽았습니다. 이러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빈부격차와 사회적 불평등이 사회문제 1번으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전에도 경제문제를 부정부패 다음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부정부패가 1등이었던 것은 군부독재 등 암울한 시대 상황 때문이었으리라 봅니다.먹고 사는 문제는 과거나 지금이나 항상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도 있고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사람이 못 먹으면 관가의 포도청에 잡혀가 고초를 받더라도
동무들과 소 먹이러 산에 갔던 아이들은 산속에서 이런저런 해찰에 정신을 팔다가, 해가 서녘으로 기울어서 제 그림자가 바지랑대만치나 길어지면 이제 슬슬 귀가를 서두른다.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숲속 여기저기를 헤매는가 싶더니, 다시 산모롱이를 돌아갔다가 허겁지겁 제 자리로 돌아온 송남이가 당황스레 말한다.-야, 길수야, 용철아, 니들 우리 소 못 봤어? 소가 안 보이네.-글쎄, 우리 소는 저쪽 언덕에서 혼자 풀 뜯고 있던데.-걱정할 것 없어. 송남이 니네 소, 먼저 동네로 내려갔나 보지 뭐. 얼른 집으로 가보자.소가 혼자서 집으로 가버
이맘때가 되면 길가 벚꽃보다 반가운 것이 텃밭의 부추다. 겨울에 숨죽이고 있다가 봄 기운이 살랑해지면 싹을 키워 올리는 첫 부추는 대문을 잠가놓고 먹는다 할 만큼 보약이라고 했다. 젓갈을 넣고 살살 버무리면 입맛 돋우는 겉절이, 데쳐서 참기름에 무치면 부추나물, 무엇보다도 부추전은 먹을 때마다 호들갑스럽게 맛있다. 텃밭의 부추는 봄부터 가을까지 요긴한 반찬거리가 되어 준다. 그래서 부추를 키우는 곳엔 다른 잡초가 나오지 못하게 상토를 두툼하게 깔아놨다. 한 뼘 정도 자란 부추를 베면서부터 입에 침이 고인다 싶었는데 보라색 제비꽃이
그 무렵 병호는 주기를 정하지 않고 송진사가 정해주는 날 종정마을을 찾았다. 송진사는 병호를 만나면 모일에 오라고 일정을 정하였는데 대략 한 달에 한 번꼴이었다. 송진사는 집에 머물며 경서를 읽거나 절구를 짓는 것이었으나 그즈음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다른 지역 선비들과 서신을 주고받으며 어떤 때는 직접 출타하여 호서와 한양을 다녀온다는 것이었다. 누구와 무엇을 이야기하며 서신으로 어떤 담론을 나누는지 알지 못하였으나 병호는 그 일이 국정과 무관치 않다고 보았다. 호포제(戶布制)를 시행할 무렵 이미 스승은 불쾌한 기색을 드러
공부를 하니마음이 항시 즐겁다모르면 모르는 대로그냥 덤덤히 살아온 내 인생늦은 나이에라도공부를 하게 되니응어리 맺혔던 마음이 풀리고어두웠던 세상에불을 켠 것만 같다내 인생이이제 시작하는 것 같다 삶의 애환이 담긴 농민들의 손편지, 그림, 시 등 소소하지만 감동있는 작품을 ‘한글꽃이 피었습니다'에서 소개합니다. 게재를 원하는 농민이나 관련단체는 신문사 전자우편(kplnews@hanmail.net)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병호는 목을 돌려 사내들을 보았다. 맨상투거나 떠꺼머리인데 이마를 동인 자는 무명 아래로 자자(刺字) 자국이 선명하고 갈고리에 팔이 패인 자, 얼굴에 지네 같은 자상이 있는 자까지 몰골부터가 의협과는 담 쌓은 자들이었다. 그들을 향해 그가 공손히 말하였다.“그쯤 했으면 술맛도 나려니와 그만하면 어떨지요.”그러나 말만 공손하지 눈이 어찌나 살기등등한지 무뢰배들은 잠깐 말을 놓쳤다. 이윽고 자자 자국 있는 작달막한 자가 이죽거렸다.“방금 짖은 것은 어느 집 발바리인가?”와하하 웃음이 터졌다.“이분은 전주영장 김시풍 영감의 족질이올시다.
밭에는 겨울 이기고 고개를 내민 쪽파들로 푸른빛이 춤추고 있었습니다. 우리보다 조금 덜 추운 동네에 사는 친구가 쪽파를 까서 김치를 했다기에 우리 집 쪽파는 언제 커 파김치를 담그나, 하면서 2주를 보냈습니다. 조금씩 나온 파로 양념간장도 만들고 국 끓일 때도 넣고 하면서요. 토요일 아침, 이정도면 우리 집의 파도 어지간히 컸겠다 싶어 밭으로 가 보았습니다. 신통하게도 굵은 파들이 뽑히기를 바라는 듯 밭은 푸른빛으로 뒤덮였습니다. 이만큼은 오빠네 주고, 이만큼은 동생네 주고, 이만큼은 아들네 주고, 이만큼은 딸네 주고, 이만큼은 우
많은 분들이 새해만 되면 올해는 다이어트에 성공해서 멋지고 건강한 몸을 가지겠다는 결심을 하고 헬스장을 등록합니다. 그런데 작심삼일이라고 일주일만 지나도 북적이던 헬스장은 한산해지죠. 굳게 결심한 다이어트가 일주일 만에 끝나는 건 의지박약의 문제가 아닙니다. 배고픔에 대한 우리 몸의 반응을 잘 이해하지 못한 탓입니다.먼저 살이 찌는 이유에 대해 알아봅시다. 단순하게 살이 찌는 이유를 정리하면 먹는 만큼 에너지 소비가 되지 않아서 몸 안에 잉여 에너지가 쌓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먹는 양을 줄이기 위해서 식욕 억제제를 처방받거나 식사
-며칠 전에, 물웅덩이 안쪽 구석으로 이따만한 구렁이가 들어가는 걸 봤거든. 넌 그것도 모르고 저 웅덩이 물 마셨지? 이제 큰일 났다. 그 웅덩이에 뱀이 알을 까놨는데 그걸 마셨으니.-구렁이 알 그런 것 없었어. 내가 물에 떠 있는 나뭇잎 같은 거 후후 불고 나서 마셨거든.-바보야, 뱀 알은 워낙 작아서 눈에 안 보인단 말야. 아랫말 사는 어떤 형도 여기서 물 마셨는데, 며칠 뒤에 목구멍으로 새끼 뱀 한 마리가 쑥 나왔대. 아니 똥구멍으로 나왔다던가?나이가 한두 살 위인 짓궂은 녀석이 다소 어리숙해 뵈는 아이에게 이렇게 엄포를 놓으
어릴 적 맏이로 태어나 당연히 학교 보내 줄줄 알았는데떼를 써도 보내주지 않아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늦게나마 도서관을 만나 한글을 읽어 간다한글은 대충 읽어도 핸드폰은 한글을 알아야 문자를 보내지보내는 법을 몰라서 고생도 많이 했다내가 생각해도 신기한 것은도시가스 검침은 예전에 숫자를 적어 냈는데요새는 사진으로 찍어 보내달라고 한다도서관에서 핸드폰 배우는 시간에 배워서사진 찍어서 우리집 주소도 적고 기사한테 보냈다행복한 하루 되라고 답장이 왔다공부는 참 좋은 것 같다나를 자신 있게 만들어 주니잘배워서 어디에서도 꿀리지 않는 내가 되어